'울릉도여행'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9.10.30 울릉도 내수전 일몰의 외로운 풍경

첫째날, 내수전 일출 전망대에 올라...


울릉도에 도착하자마자
복잡한 도동을 피해
언덕 하나 넘어 가까운 이웃 마을 저동에 여장을 풀었다.



소박하고도 호젓한 어촌 저동의 풍경을 뒤로
내수전 일출 전망대에 올랐다.

가슴이 탁 트이는 바다 풍경,



그리고 고개들어 바라보면
우뚝 솟은 높은 산의 신비로운 그림.
그 위로 떠가는 구름, 태양.



이제 해는 서산 너머로 떨어지고
바다는 조금씩 어두운 침묵 속으로 잠긴다.

조용하다. 고요하다. 적멸!
저동항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의자에 앉아 내 삶을 의지한다.



아랫마을 개짓는 소리,
일 끝나고 들어가는 농부의 경운기 소리,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나직한 파도소리,
그리고 침묵, 침묵, 침묵!!!

세상도 침묵하고 내 마음도 깊은 침묵에 잠긴다.
이 거대한 산과 바다의 침묵,
선(禪)으로 이끄는 이 풍경들이 내 마음을 비워준다.

저 멀리서부터 스치우는 바람이 지나는 소리
들리고 듣는다.
저 멀리 저동항 불빛들이 하나 둘씩 켜지고
내 마음에도 고독의 불빛이 짠히 켜지고 있다.





산은 높다. 그리고 바다는 넓다.
높고 넓은 산과 바다, 그 한 가운데
그 둘을 잇는 그 속에 한 존재가 서 있다.
높고 드넓은 산과 바다의 마음이 되어.

바다 한 가운데 홀로 외로이 떠 있는 섬,
죽도, 죽도는 또 하나의 고독이다.



내 안의 외로움과
산과 바다의 깊은 침묵의 외로움,
그리고 저 바다 속 홀로 떠 있는 죽도의 외로움은
오롯이 한마음이다.



아!! 이 고요, 이 침묵, 이 고독이 좋다.
평온하고 깊다.

두 세 차례 몇몇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드문 드문 내 앞을 스치고 있다.
사람들은 오고 또 가고 시간은 흐르는데
나 홀로 시간이 멈춘 듯 그렇게 그렇게 앉아만 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짐작해 볼 뿐.
어둠이 내려앉고
산과 바다의 빛이 바뀜을 통해 시간을 바라보고 있다.



이 고요함이 좋다.
이 외로운 침묵이 좋다.

아니, 좋다기 보다 아주 미미한 감각.
좋되 좋지 않고, 외롭되 외롭지 않은 작은 떨림.
내가 좋은 것이 아니라
이 대지가 이 산이 이 바다가 좋다.
그 좋은 대자연의 영혼에 내 마음이 살짝 포개어지는 듯 하나되는 듯
그런, 그런 느낌...

어쩌면 내 전생은 외로움이었는가. 침묵이었는가!
내 온 곳은 외로움이고 침묵의 그 곳이다.
그리고 내가 다시 돌아가야 할 곳도 외롭고 고요한 침묵의 그 곳!
그 곳은 일상에서는 잘 보여지지 않다가
이렇게 홀로 깊은 존재의 침묵을 마주할 때
그 때 힐긋 힐긋 그것도 아주 미세한 감각으로 보여질 뿐이다.

바다엔 침묵이 깊고 하늘엔 구름이 짙다.
저 산 위에 떠 있는 먹구름 사이로 간간이 햇살이 비치며 흐른다.



하늘 천신이 손전등으로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곳에
그림처럼 사는 사람들의 삶을 비춰보는 듯
햇살은 한 줌씩 산 허리를 스쳐가고 있다.



하늘의 구름도 노을이 선사하는 노랗고 붉은 빛의 옷을 갈아 입고
바다와 산과 들녘, 그리고 바람과 파도가 만들어내는
대자연의 오케스트라 연주에 막바지 혼을 다하고 있다.
산 너머로 지는 태양에 비친 구름 빛이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답다.



그렇듯 저 높은 산 바로 위에 앉아 짙은 구름 뒤에 숨은 채
잠깐 잠깐씩 보여주던 애잔한 햇살도
이제 완전히 서산 뒤로 넘어갔고 어둠은 더욱 짙게 깔렸다.
대자연의 어둠이 깊어지면서 사람들의 불빛은 더욱 늘었다.
이제 나도 저 사람들의 불빛 속 어딘가에 몸을 뉘여야지.

이제 어둠도 제법 깊어졌고 배도 출출해 온다.
저 아래 불빛들 속에 내 작은 거처로 발길을 돌린다.
터벅 터벅 내려오는 길, 어둠은 깊고 침묵은 무겁다.

바닷바람이 싸늘하게 불어 와 내 안 깊은 곳에까지 가 닿는다.
밤 바다를 스치운 찬 바람이 살갖을 적실 때
온 존재의 감각이 깨어나는 듯 몸까지 출렁이며 파도친다.
그래서 한여름보다 이렇듯 늦가을이나 겨울 문턱에서
대자연과 접촉하는 느낌은 ‘깨어있음’이란 청량한 존재감을 가져다 준다.

오래도록 느릿 느릿한 발걸음으로 바닷길을 걷는다.
방파제에서 바라 본 저동항의 불빛들이
내 안의 서정과 감성을 마구 뒤흔들며 일깨우고 있다.



이런 깨어있는 시린 외로움의 청안청락의 시간을
그냥 좁은 골방 안에서 가둬두기 싫어
늦은 밤까지 옷깃을 여미며 저동항 곳곳을 거닐었다.

동네 작은 분식점이 마침 문을 열고 있어 들어갔더니
중고생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며,
공사 인부들이 소주 한 잔 기울이며 회한을 품어내는 소리가
이곳도 사람사는 곳이란 새삼스런 자각을 일깨워 주었다.

아! 그랬었구나.
이 외로운 섬 속에도 삶이 있고 고뇌가 있고
사람 사는 향기가 물씬 풍기는 그 누군가의 고향이구나.
모처럼 홀로 서정적이고도 선(禪)적인 섬 풍경에 깊이 빠져들다 보니
잠시 세상의 일을 잊고 말았는가.

식당에 들어 와 음식을 시키고 앉아 있자니
아침 10시 쯤에 포항에서 배를 타기 전 터미널 앞 식당에서
간단히 된장찌개를 먹고는 내내 빈 속이었음이 상기되었다.
그러고 보니 전망대에서 내려올 때만 해도 속이 출출했었는데
배고픔도 잠시 잊고 저동항의 밤풍경에 젖어 있었나 보다.



공양을 하고는 소화도 시킬 겸
조금 더 걸으며 어촌의 밤 풍경을 느끼다
늦은 밤이 되어 방 안에 들어 녹록한 몸을 뉘였다.


둘째날, 새벽 저동항의 일출(민박집 나섬, 06:40)

저동항의 불빛 속에서 잠을 청하고 새벽을 맞는다.
일찌감치 눈이 뜨여졌다.
창문 커튼을 열고 기지개를 쫘악 켜고 나니
새삼 내 몸이 머물고 있는 곳이
낯선 섬 어느 귀퉁이란 사실이 느껴지며
자유로움, 평화, 혹은 그 어떤 짠한 해방감 같은 것이 밀려온다.




이런 느낌을 가만히 느껴보는 것 또한
일상을 벗어난 여행이 내게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다.
저동항과 촛대바위의 깨어남을 창 밖으로 바라보며
아직 깨어나지 않은 어둠을, 그리고 낯선 섬에서의 설렘,
일상에서의 해방과 자유를 될 수 있는 한
온 몸의 감각으로 깊이 충분히 느끼고 또 느꼈다.



이 울릉도가 준 또 하나의 선물은 사람이다.
하룻밤을 머문 허름한 민박집 주인 어르신의 인간미와 자상함은
도무지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다.
내가 태어나서 이런 깊고 진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고작해야 엊저녁에 도착하여 오늘 새벽에 떠날 사람이고
그것도 엊저녁에는 늦게까지 내수전 전망대에 올랐다가
저동항의 야경 속에서 거닐다 늦게 들어간 것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잠깐 스친 인연일진데
그 잠깐의 시간 안에서 인간의 깊은 향기를 듣는다는 건 참 어려운 일 아닌가.

아직도 그 짠한 사랑과 관심과 인간미는 내 안에 온기가 되어 남아 있다.
전혀 모르는 한 사람이 한 사람과 만나 이런 깊은 관계를
그것도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가질 수 있다는 건
세상이 얼마나 살아볼만한 곳인가를 깨닫게 해 주는 삶의 축복이요 선물이다.

누가 소개를 시켜주는 바람에 엊저녁을 이 민박집에서 묵었는데,
이 선택이야말로 울릉도라는 섬에서 보고 느낀 최고의 선물로 기억된다.
그래서 만행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전혀 다른 삶 속으로 뛰어들어 본다는 건 이렇듯 새로운 선물을 선사해 준다.

찬 물에 세수를 하고 정신을 일깨우며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주인 어르신께서 방 안으로 들어오시더니 지도를 펴서
오늘 하루 내 일정을 꼼꼼하게 체크해 주신다.

촛대바위에서의 새벽 일출, 아침 공양, 안평전까지의 차편,
성인봉 오르는 길, 등산후 나리분지에서의 점심 식당,
그 이후 바닷길 코스에서부터 통구미의 일몰까지
오늘 하루의 일정을 하나하나 지도를 짚어가면서 설명해 주셨다.

민박집을 나서면서 방값이 생각보다 너무 헐어
조금 더 드리겠다고 했더니
방도 좋지 않은데 뭘 더 주느냐고 한사코 마다하신다.
이런 분께는 그 배로 값을 치르더라도 아까운 생각이 없다.

은사스님께서는 항상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거나 거래를 하실 때
생각보다 더 많은 액수를 지불하곤 하셨다.
분명히 더 깎을 수도 있는데 깎기는 커녕
오히려 달라는 액수보다 더 많이 얹어 드리는 일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사람들과의 거래에서는 미리부터 조금 받고 많이 주겠노라는
그런 생각이 있으셨던 것 같다.

경주 남산 중턱에 도량을 지으실 때에도
그 시골 땅을 대구 시내 땅값을 쳐 주며 사셨고,
무언가 도움을 받으면 그 도움에 대한 몫보다 항상 더 많이 얹어 주셨다.
도량의 처사님이나 공양주 보살님께도
항상 월정 보시금 이외에 기도 때며 행사 때마다
당신과 똑같은 몫의 대중 보시를 나누곤 하셨다.

그런 마음으로 사시다 보니
사람들과의 거래에서 손해를 본다거나
흔히 있을 거래에서의 손실로 인해 마음 아파하는 일이 없다.
남들이 보기에는 손해이겠지만
당신의 거래에서는 그것이 당연한 일상이셨다.

그런 은사스님의 가르침은 내내 내게도 넓은 마음을 심어주셨다.
은사스님 도량에서 하산하여 내 길을 처음 갈 때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낯선 세상 물정을 거래할 때
처음에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바가지를 씌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는데
은사스님처럼 그래 주는 마음으로 손해보는 마음으로 살자 하고
턱 놓고 가니까 가는 곳곳에서 오히려
향기나는 사람, 풋풋한 사람들을 만나곤 했다.

설사 조금 손해를 보고 거래를 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로인해 손실을 보았다거나
어떻게 저렇게 장삿속을 드러내며 이익을 챙길 수 있느냐거나 하는
그런 진심과 분별이 생기지 않아 좋았다.

기어이 민박집 어르신께도 내가 받은 감사의 마음의 표시로
주머니 속에 얼마를 더 넣어드리고 나오는데
같이 가자시며 잠바를 걸쳐 입고 따라 나서신다.

한사코 춥다고 안 나오셔도 되니까 그냥 계시라고 해도
끝까지 따라 나오시면서 식당도 소개해 주시고
일출을 보고 택시를 잡아타는 것까지 끝가지 챙겨 주셨다.

든든히 아침 공양을 하고 나가니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고 있다.



촛대 바위 너머 저 멀리 수평선 가까이부터 붉은 색감이
하늘로 하늘로 번져 오르기 시작한다.



어둑어둑하던 하늘과 구름들이
조금씩 조금씩 가장자리부터 붉은빛 물감을 풀어내고 있다.
그러더니 이내 그 옅은 먹구름 사이로
햇살 한 줄기 거짓말처럼 고개를 내민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자니
어느덧 햇살이 찬연히 구름의 빛깔을 황홀하게 바꾸어 놓더니
이내 구름들이 조금씩 걷히고
붉은 태양 빛을 배경으로 파아란 하늘이 속살을 수줍은 듯 드러내고 있다.



아직 바람은 차다.
찬 바람이 계속 신경이 쓰인다.
여기 택시값이 여행자에게는 부풀려 지는 경우가 많다고
일출 보고 나서 정직한 택시 기사를 불러주시겠다며
끝까지 찬 바람 속에서 매일 아침 일상처럼 맞을 일출을
천진하게 함께 기꺼이 맞이해 주시는 어르신이
혹시나 감기나 걸리지 않으실까 걱정이 되었다.

들어가시라고 몇 번을 더 말씀드려도
막무가내로 손가락을 수평선 쪽을 가리키시며
딴 생각 말고 일출 놓치지 않게 눈을 떼지 말라시며
일출은 잠깐 사이에 불쑥 떠오른다고 조언을 해 주신다.



이 곳에서는 창만 열면 일출을 맞이 할 것 같지만
사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하신다.
울릉도에서는 일 년에 3/1 정도 밖에
화창한 일출을 감상할 수 없다고 하시며
오늘이 바로 그 날인 것 같다고 어린애처럼 좋아하신다.

드디어 붉은 태양이 저 바다 위로 힘주어 떠오른다.



새벽부터 일 나간 어부의 작은 배를 뒤로
온 세상을 일깨우는 광명, 일광보살이 내 눈앞에 나투고 있다.





저동항도 함께 깨어난다.



붉은 빛을 받아 저동항 집집들이, 어선들이
선홍빛으로 단장을 하고 있다.



몇 몇 여행자들은 새벽 일출을 보겠다고
방파제로 등대로 뛰어 나왔고
바다 갈매기들도 일광보살의 설법에 날개짓으로 화답하고 있다.



아! 뜨겁다.
차고 시리지만 뜨겁다.



속 깊은 곳까지 붉어진다.



저동항 어선이 들어오고
어부들은 오징어를 분주하게 다루며 삶을 살아내고 있다.



어르신 말씀이 지금은 고작 이정도지만
옛날에는 이 곳 전체가 오징어 배들과 사람들
또 파닥거리는 오징어들로 가득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러고 있는데 할아버님께서 어느새 전화를 하셨는지
한 택시기사님께서 우리를 부르며 손짓하고 있다.
할아버님 처럼 믿음이 가고 든든한 또 순수해 보이는
30대 후반쯤의 청년 택시기사다.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