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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28 생활 속에서 깨어있으라



[정동진 바닷가에서...]

망상이 일어남을 두려워 말고
'알아차림'이 더딜까 두려워하라.
망상이 일어나면 곧 알아채라.
알아채면 없느니라.

지눌스님의 수심결에 나오는 말입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신 '알아차림'의 수행이야말로
모든 수행의 뿌리가 됩니다.

다른 말로
관(觀)
혹은 위빠싸나라고도 하여
요즘 대중적으로도 많은 호응을
불러 오고 있는 수행법이기도 합니다.

대기업의 사원 연수에서도
위빠싸나를 지도하여 마음을 맑히는 수행을 통한
능률 향상에 큰 이바지를 하고 있음은 잘 알고 있는 일입니다.
그만큼 '관'수행은
종교적인 벽을 넘어 너무도 대중적이며
보편적이고 과학적인 수행방법입니다.

우린 생활 속에서
나 자신을 놓치며 살아가기 쉽습니다.
아니 일생을 살아가면서
온전히 깨어있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절절할 것입니다.

상황에 이끌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이끌려
괴로울 때, 화가 날 때, 답답할 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이러한 순간 순간
우린 그 상황에 이끌려 상황에 휘둘리게 됩니다.
상황에 노예가 된다는 말입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 올라
친한 친구와 싸움을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싸우는 순간 우린 친한 친구라는 것도 망각하고
이렇게 욕을 하면 안된다는 것도 잊은채
그저 욕하고 주먹이 날라가고 그럽니다.
이를 보고 '정신이 나갔다'고 합니다.

이렇듯 순간의 상황에 이끌려 내 마음을 챙기지 못하고
정신을 밖으로 나가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렇듯 우리는 수많은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화가 나는 순간 '화 남.. 화 남... ' 하고
알아 차릴 수 있다면...
친구에게 욕을 하는 순간 '욕 함... 욕 함...' 하고
알아 차릴 수 있다면...
어떤 최악의 상황이더라도
나를 마음대로 내 몰 수는 없습니다.

욱! 하고 올라오는 마음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올라오는 마음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기에
그 마음에 노예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나다'하는 아상(我相)이 없는 마음이며
나를 한 발짝 물러나서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내 욕심을 채우려는
어리석은 '분별심(分別心)'이 없는 마음입니다.

'나다'하는 아상이 없어 분별하지 않는 마음은
맑고 향기로운 수행자의 본분입니다. 알아차리는 순간 순간
그 어떤 분별도 일으키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일이 일어나도 호들갑스럽지 않게...
나쁜 일이 일어나도 여법하게 태연할 수 있게...
'좋다' '나쁘다'는 분별의 마음이 없어야 합니다.

일이 잘 안되고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오더라도
오직 그 마음 관찰하면 그만입니다.
분별심을 내어
'왜 답답하지'
'왜 나는 되는 일이 없지...' 한다면
이는 수행자의 당당함이라 할 수 없습니다.

좋다 나쁘다는 것은 그 대상에
'나'라는 아상을 세우고 있기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나'가 있기에 좋고 싫음이 있는 것입니다.

신심명(信心銘)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도의 궁극적 경지는 어렵지 않으니
오직 분별, 선별하지 않음이니라.
단지 싫어하지 않으며 좋아하지 않으면
환히 드러나 명백해지노니라.

이렇듯 '알아차림' 관수행이야말로
생활 속에서
'나'를 잃지 않고 언제나 깨어있을 수 있는
생활 속의 불교 수행입니다.

임제스님께서는
'특별히 구하는 바 없는 일상의 평범함이
그대로 불법'이라 하셨습니다.
'평상심이 도(道)'라는 것은
우리 생활 속에 수행코자 하는 법우님들께
매우 중요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상의 평범한 모든 일과 속에서
언제나 마음을 '바로 여기'에 집중하여
분별없이 관찰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임제스님께서 말씀하신 '평상심이 도'의 본 뜻일 것입니다.

밥 먹을 때 가만히 밥 먹는 것을 지켜 볼 수 있고
화장실 가서 똥 누울 때 가만히 지켜 볼 수 있고
화 나서 싸울 때 가만히 화 나는 마음을 지켜 볼 수 있고
탐욕심이 일어 날 때 가만히 욕심나는 마음을 지켜 볼 수 있다면
오직 '현실'의 마음에 깨어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수행심이며 구도심이고 보리심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밥 먹을 때 밥만 먹지 못하고
똥 누울 때 똥만 누지 못합니다.
언제나 한 가지에 집중치 못하고
항상 다른 두세 가지, 아니 그 이상의 생각들에 얽매여 있습니다.

언제나 '나'를 관찰하며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을
가만히 알아차릴 수 있다면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당당할 것입니다.

내면에 커다란 바위를 두고 있는 듯
살아가며 어떤 비바람이 몰아쳐도
끄떡하지 않을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늘 깨어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은
나 자신을 항시 '관찰'하며
살아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나와 나의 환경을 이루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은
바로 '나'에게서 나왔기에
'나'를 올바로 관찰함으로써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 대한
또 나 자신에 대한
확연한 통찰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