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기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8.04 수능 백일기도, 인터넷으로 동참하기!
  2. 2009.07.22 힘 있는 대장부로 살라

 

 

매미 소리며 풀벌레 소리, 새소리가

귓전을 시원하게 씻어주고 있습니다.

 

활짝 열려 진 창 밖으로

밤송이가 한창 익어가고 있네요.

밤송이는 아침 햇살을 받아 가시 끝이

반짝 반짝 윤이 나듯 빛나고 있습니다.

 

창 쪽으로 고개를 90도 돌리기만 하면

이 초록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방 안에 앉아 다른 일을 하다가도

문득 주의를 귀로 가져가 보면

그야말로 온갖 생명들의 오케스트라 합주가

요란하다 싶을 정도로 지저귐을 느낍니다.

 

이번 여름은

여느 때보다 분명히도 덜 덥습니다.

저의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창문을 활짝 열고 지내는데요,

그래서 자주 풀벌레며 나방들이며 모기들이

모기장 쳐진 창에 부딛쳐 들어오고 싶다고 애원을 해 대고는 있지만

그리고 때때로 아주 작은 것들은 성공을 하여

방 안을 자유로이 날아다니고 있지만,

이렇게 활짝 창을 열어두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때가 비워지는 듯,

이 방 안이 저 창 밖의 대자연과 알몸으로 만나는 듯

또 하나의 자연 속에 앉아 있는 것 같아 아주 행복합니다.

 

 

벌써 내일이면

이번 백일기도가 시작이 되는 입재날입니다.

준비는 되셨겠지요? ^^

 

한 생을 살아가며

백일기도를 한 번도 해 보지 않는다면,

그건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우스게 소리로 이야기를 합니다.

죽고 나서 염라대왕 앞에 갔을 때,

죄 지은 것이 많아 지옥행이 결정되었더라도

마지막으로 혹시나 그 생에서 닦은 수행이 있는가를

최종 점검을 하는데,

바로 그 때 백일기도를 몇 번 하고 온 사람,

혹은 수행과 기도를 때때로 닦고 온 사람이냐 아니냐가

아주 결정적인 다음생의 행로를 좌지우지하게 된다고 말입니다.

 

백일 동안 수행을 하는 이유가 뭘까요?

우리는 평소에 늘 깨어있지 못합니다.

깨어있지 못하다보니 늘 우리 주변의 유혹들에 휩싸여 있고,

또 그런 유혹과 집착과 욕심들에 빠져서 살고 있습니다.

 

내 안에 중심을 잡고 살기 보다는,

부처님 가르침에 중심을 두고 청정하게 살기 보다는,

아마도 더 많은 시간을

어리석고도 아집에 찬, 집착과 욕심과

번뇌와 망상 속을 거닐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불교 공부를 해도,

좀처럼 삶이 바뀌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바로 쌓인 습 때문입니다.

중생의 업장, 업습이라는 것이 무섭고도 짙어서

한 두 번 절에 가고, 수행하고, 기도한 것 가지고

다 녹여낼 수는 없단 말입니다.

 

그래서 백일이라는 기간을 정해서

특별 수행의 기간으로 삼는 것입니다.

스님들도 1년에 한두번씩 모여

안거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수행은 장작에 불을 붙이는 것과 비슷합니다.

나무와 부싯돌을 비벼 불을 내게 할 때,

조금 비비다가 말고,

조금 비비다가 만다면

전혀 불이 붙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 번 비비기 시작하면

불이 붙을 때까지 계속해서 비벼야 하는 것이지요.

붙기 직전까지 갔다가 힘들다고 그만두고 그만두고 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한 번 열심히 정진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불을 붙여 놓으면

그 때부터는 저절로 힘 들이지 않고도

불길이 활활 타오릅니다.

 

이게 바로 '흐름에 든 자'가 되는 때입니다.

수행과 정진의 흐름을 타게 된단 말이지요.

그럴 수 있으려면

백일 정도의 시간을 정해 두고

가행 정진하는 때를 가져야 합니다.

 

백일기도, 가행정진의 때에는

다른 모든 일상의 일들보다

수행하고 정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야 합니다.

 

적당히 내가 할 일 다 하고

남는 시간에 수행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백일이라는 기간 동안에는

하루 일과의 가장 중요한 중심이 '수행'에 있습니다.

 

그러니 어때요?

예를 들어 대비주 독송을 하겠다고 하면

어떤 사람은 7독하기도 힘들어 해요.

21독 하면서도 아주 어렵다고 합니다.

 

절 수행을 할 때도

어떤 사람은 매일 108배 한 번 하는 것도 힘들어 해요.

 

그런데 사실 대비주 21독이나 절 108배 정도는

20분 정도면 할 수 있는 수행입니다.

그런데 삶에서 적당히 내가 할 일 다 하고,

남는 시간에 기도 수행도 조금 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20분, 30분 시간내서 수행하는 것도

아주  어렵고 힘든 일이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만약 나의 하루에서

이 백일 동안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수행이고,

가장 중요한 또 가장 긴 시간, 가장 또렷한 시간에

기도와 수행에 힘을 쏟겠다고 생각하면 어떻습니까?

 

그 때는 절 수행을 해도 500배, 1000배를 해도 그리 어렵지 않고,

대비주도 100독, 200독을 해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래봐야 2시간 정도면 끝나는 기도이거든요.

하루 2시간, 3시간, 5시간을 기도, 수행에 투자하겠다고 딱 생각하고,

하루의 가장 중요한 때에 기도 수행을 하겠다고 하면

기도에 임하는 마음자세 자체가 달라집니다.

 

20분, 30분 수행하는 것도 어려운데,

어떻게 2시간, 3시간을 수행에 투자하느냐고 생각하고,

너무 힘들지 않을까 싶겠지만,

막상 2시간 이상 수행하겠다고 하고 시작하면

오히려 그것이 훨씬 더 수월합니다.

 

훨씬 집중이 잘 되고,

수행의 힘이 단순 수치 이상으로 더 커집니다.

뭐랄까요, 기도를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집중이 되고 수행력이 쌓이기 시작하는 때는

오히려 30분 이후 부터이기 때문입니다.

 

처음 30분 정도는 그야말로

시동 거는 정도의 시간 밖에 안 됩니다.

하루 동안, 일상 동안에 복잡하고, 정신 없고,

번뇌와 욕망과 집착들로 더렵혀져 있던 마음의 때를

살짝 잠잠해 지도록 하는,

그래서 앞으로의 기도 수행이 더 큰 정진력으로 바뀌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라는 말이지요.

 

 

그렇다고 너무 겁먹지는 마십시오.

겁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기왕에 백일기도를 시작하려 한다면

가행정진의 본 의미를 되세겨,

한 번 멋지게 해 보자 하는 의미입니다.

 

매일 목탁소리에 와서

다른 법우님들의 수행일기를 읽는 것

그것만 꾸준히 하시더라도

내 공부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물론 스스로 매일 수행일기를 쓰거나,

매일은 아니더라도 2일에 한 번, 3일에 한 번이라도

꾸준히 수행일기를 스스로를 관찰하며 써 나가신다면

물론 더없는 공부가 될 것입니다.

 

이제 내일부터 백일기도가 시작되는데요,

아마 많은 분들이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고민이 많으실 줄로 압니다.

그런데다가 가행정진을 이야기 해 놓으니

더 겁을 먹을 수도 있겠는데요,

처음부터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고,

조금씩 시작하셔서 점차 힘이 커 지면

조금씩 수행의 시간을 늘려가시면 됩니다.

 

할까 말까 아직도 망설이시는 분이 계시다면,

'저질러라. 표현이 성불의 지름길이다'라는 수행문을 하나 보내드립니다.

저지르지 않는다면,

이리저리 분별하느나 저지르지 못한다면

수행은 없습니다.

 

다음번 백일기도 때나 동참해야지

이번에는 내가 여건이 너무 힘들어 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다음번은 없어요.

우리 삶은 오직 지금 밖에 없습니다.

이번 생에 이번 기회를 못 붙잡으면

다음 생 또 그 다음생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가장 여건이 어려울 때가

가장 수행하기 좋을  때입니다.

그리고 미래의 어느 때보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가장 수행하기 좋을 때입니다.

 

지금 저질러 동참하세요.

저질러 놓고 뒷 마무리를 못할 바에야

아예 저지르지도 않겠다는 생각을 버리세요.

저질러 동참했다가

중간에 포기하는 편이 훨씬 아름답습니다.

 

작심삼일도 7번을 하면 21일 기도가 되고,

일주일 기도도 7번을 하면 49일 기도가 됩니다.

몇 번이고 백일기도를 시작했다가

포기하는 것이

아예 시작조차 못 하는 것 보다

얼마나 큰 힘인지 모릅니다.

 

자꾸 포기하고 또 다시 시작하고,

그래야 조금씩 정진력이 쌓이고, 수행의 기운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조금 더 가행정진할 수 있는

분명한 시절인연이 도래하는 겁니다.

 

수행하는 것도

한 번에, 단번에 깨닫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몇 생을 이어가면서

수행하고 좌절하고, 정진하고 포기하고,

그러면서 그게 실패인 것 같지만,

그게 바로 조금씩 수행과 인연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도 그렇게 저지르고 포기하고 저지르다가 실패하고

그런 일을 수도 없이 경험하셨습니다.

부처님의 과거생, 전생담이라는 것이 모두

부처님이 이번 생에 깨달아 부처가 되기 위한

백일기도와 같은 수행의 시절이었던 것입니다.

 

당장 부처님의 생에서도

이 수행 해 보고 놓아버리고, 저 수행 해 보고 놓아버리고,

결국 그 힘이 모여서,

'이 자리에서 깨닫기 전에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대 결단과 큰 정진력이 서게 된 것 아니겠습니까?

 

이 백일기도 수행이라는 이 것이 바로

그 시절인연을 만나기 위한

아주 소중한 첫 시작, 첫 단추가 될 것입니다.

 

저지르지 않고,

그저 방관자로 머물거나,

이 사람들 참 열심히 한다,

목탁소리 법우님들 수행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그러고만 있을 것입니까?

 

내가 당장 도반으로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법우님이 우리의 아름다운 '도반'입니다.

 

도반이 되어,

우리의 수행에

더 큰 힘을 실어 주시기 바랍니다.

 

아래에 저희 관음사에서 실시하는 기도 방법을

몇 가지 안내 해 드립니다.

처음 기도하시는 분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시겠거나, 어려우시다면 참고하세요.

 

우선 매일 108배를 1번이든, 2번이나 3번이든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만큼을 정하여 합니다.

첫째는 108배 수행입니다.

 

둘째는 '감사와 사랑의 호흡관'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를 호흡에 맞춰

하루에 100회 이상을 계속해서 하는 것입니다.

또 때로는 감사와 사랑의 대상을 정하여 하는 것도 좋습니다.

오늘은 남편에게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를 반복하고,

내일은 자녀를 향해, 또 이웃을 향해,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을 향해,

또 사람들을 넘어서 사물을 향해서도 합니다.

밥을 먹으면 밥에게 감사와 사랑을 보냅니다.

차를 타며 차에게 감사와 사랑을 보냅니다.

집에게, 방에게, 옷에게, 신발에게, 회사에게,

가깝고 먼 일체 모든 이들을 향해 감사와 사랑을 보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자비관'입니다.

 

셋째는 자신의 근기에 맞는 수행을 합니다.

금강경 1독, 3독, 7독이나,

대비주7독, 21독, 50독, 100독이나,

지장경 독송이나,

염불 수행 30분도 좋고,

참선 30분도 좋고,

광명진언 30분, 1시간도 좋습니다.

염불, 독송, 진언, 참선 등

자신의 근기에 맞는 수행을 한 가지 정해서 합니다.

잘 모르겠는 분은 그저 절 수행 하나만 하셔도 좋습니다.

 

넷째는 수행일기를 씁니다.

또 목탁소리에 올라와 져 있는 다른 도반들의 수행일기를 읽습니다.

수행일기를 쓰고 읽는 것 만으로도 큰 공부가 됩니다.

가능하시다면 수행일기를 읽으시고 댓글로 응원의 마음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보내주신다면,

법우님들께 큰 힘이 되겠지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단순한 댓글이라도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이 기회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라는 댓글 달기 운동에 동참해 주세요.

모든 수행일기를 읽으시고 읽으신 수행일기 아래에

읽었다는 표시로 그저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댓글을 달지 하고 고민스럽다면 말입니다.

 

다섯째는 매일매일 보시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저금통을 마련하고 매일 매일 일정액수의 보시를 실천합니다.

또 꼭 돈이 아니더라도,

매일 좋은 일, 남을 돕는 일을 한 가지식 의도적으로 합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감사한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댓글 하나,

책을 사서 나누어 주어도 좋고,

목탁소리의 글을 프린트 하여 읽어보라고 주는 것도 좋고,

사무실 청소를 백일간 남모르게 하는 것도 좋고,

아내 대신 집에 가서 집안 청소나 설겆이를 도와줘도 좋습니다.

남편이나 아이 학교, 직장 가기 전에

작은 쪽지를 힘내라고 남겨 줘도 좋고,

그저 뜬금없이 사람들에게 감사와 사랑의 문자메시지를 보내도 좋습니다.

무엇이든 다른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어떤 한 가지를

백일 간 실천 해 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될 수 있다면 가능한 분들 만이라도,

가까운 곳에 절이 있다면

절에 가서 새벽기도나 사시불공에 동참하는 것도 좋습니다.

집에서만 혼자 기도하는 것 보다

절에서 함께 기도하면 그 힘이 더 클 수밖에 없고,

또한 절의 밝은 기운, 파장도 받아 올 수 있습니다.

저희 절에서도 백일동안 새벽기도(5시), 사시불공(10:30)을

매일 합니다.

절에 가지 못하시는 분들께서도

전국의 절에서 이맘 때면 어디서든 새벽과 사시불공을 올리니까

함께 동참한다는 마음으로 그 시간에 함께 집에서

기도, 수행에 동참하셔도 좋습니다.

몸은 멀리 있지만 마음은 모두 관음사 대웅전에 모여

함께 정진하도록 하지요.

 

아직 망설이신다면,

그냥 미래는 신경쓰지 말고,

지금 당장에 저질러 댓글로 동참의사를 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백일기도 시일이 늦어졌더라도,

중간에 함께 동참하셔도 좋습니다.

 

수능 백일기도 인터넷에서 함께하는 곳, 목탁소리 카페 : 목탁소리(http://cafe.daum.net/truenature)

                                                      목탁소리 홈페이지 : 목탁소리 (http://www.moktaksori.org)



Posted by 법상




수행자는
힘이 있습니다.

내면의 힘이
당당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에
삶의 그 어떤 경계라도
쉽게 수행자를 뒤흔들 수 없습니다.

입시철이 다가오거나,
진급철이 다가오거나,
이런 저런 어려운 일이 닥치면
백일 기도다 뭐다 해서 열심히 기도하시는 분들이 봅니다.

이런 때를 계기로
진실된 마음 내어 기도를 하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그런 세속적인 바램(욕망)들로 인해
마음 공부를 할 수 있는 인연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런 기도의 의미를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입시기도나, 진급기도 같은 기도는
그 목적이 '합격'이나 '진급'에 있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명확히 하고 정진을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입시기도나 진급기도를 할 때
합격하기 위해서, 진급하기 위해서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낙방을 하게 되었을 때
낙담을 하고 괴로워 하고
부처님을 원망하고 스님을 원망하며
심지어는 종교를 바꾸겠다는 말까지 나오게 되는 것이지요.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먼저 백일기도를 시작할 때
명확하게 해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합격하고 진급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입시며 진급이라는 경계 앞에서
당당해 지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점 말입니다.

좋은 결과를 바라는 마음에서
백일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결과에도 내 중심을 잃지 않고
당당하고 겸허하게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기 위해서,
그만큼 내 마음공부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수행 정진을 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백일기도를 하시는 분들이
처음에는 꼭 합격하고 진급해야 한다는 마음에서
기도를 시작하셨는데
한참을 정진하다보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 지고
까짓 결과야 어떻게 되더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노라고 말씀들 하
십니다.

기도 정진을 올바로 하게 되면
당연히 이런 마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정진을 하면 잡는 마음, 바라는 마음에서,
놓는 마음, 수용하는 마음, 당당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기도 정진은 내 그릇을 키우는 일입니다.
그릇이 큰 사람은
합격을 못 하더라도, 진급 못 하더라도
크게 휘둘려 괴로워 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만큼 그릇이 큰 것이지요.

그러나 그릇이 작은 사람일수록
결과에 크게 얽매여 세상 이제 다 산 것 처럼,
바라던 결과가 아니면 더 이상 다른 길은 없는 것처럼,
그렇게 꼼짝달싹 못 하고 괴로워 합니다.

부처님은
합격시켜주시는 분이 아니시고,
진급시켜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왜 이렇게 단순하고 당연한 진리를 외면하는 것입니까.

합격이며 진급은 내 스스로 하는 것이지요.
내가 공부한 만큼, 내가 열심히 산 만큼
온당한 결과를 받는 것이
그것이 수행자로서 당당한 노릇 아니겠습니까.
인연법을 온전히 믿고 따르는 불자가 아니겠습니까.

다만 입시며 진급철이 오면
백일기도를 하고 스 님들께서도 백일기도를 시키시는 이유는
그만큼 업장을 소멸시키고,
그릇을 키우도록 하기 위함이며,
마음공부를 시키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물론 백일기도를 지극한 마음으로 하게 되면
무조건 합격을, 진급을 한다기 보다,
내 안에 있던 불합격에 대한, 탈락에 대한 조급한 마음이 녹게 되고,
그런 평온한 마음은 내 마음을 밝은 쪽으로 몰아갑니다.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 보다는 밝은 마음을 가지는 편이
법계를 더욱 밝게 울릴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또한 지극하고 간절한 기도는
나를 변화시키고 법계를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명확한 인과응보까지 다 덮어 버릴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 간절함이 내 안 뼛속까지 깊이 파고들어 자성부처님을,
또 우주 법계를 울려퍼져 법신부처님을 감동시킬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명확한 진실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 기도한다고 무조건 합격하고 진급하는 것은 아니다.'
하는 온당한 진리를 말이지요.

기도 정진을 지극한 마음으로 하게 되면
그만큼 업장이 녹게 되고,
또 내 마음공부가 익어가며 그릇이 커져
어떤 결과에도 크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당당한 마음자리 중심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백일기도의 목적인 것이지
합격이, 진급이 목적인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힘이 있다고 서두에 말씀을 드렸던 것입니다.

모름지기 힘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는 데에도 힘이 있어야지요.

그 힘이라는 것은
내면에 중심이 딱 잡혀
그 어떤 경계에도 휘둘리지 않는 힘을 말하는 것입니다.

꼭 합격해야만 할 것 같고,
꼭 진급해야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고,
그 길이 아니면 세상 어찌 살아가나 걱정스러울 것이지요.
이 길 아니면 절대 안 된다는 그 한 생각 때문에
때로는 비열하고 치사한 짓 까지
차마 밝히기 어려운 야비한 짓까지 서슴지 않기도 하지 않던가요.

이 길 아니면 절대 안 될 것 같은
바로 그 마음을 놓아 버릴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그래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을 수 있도록
어떤 결과 속에서도, 어떤 상황 경계 속에서도
당당하고 평화롭게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렇기에 수행자는 당당합니다.
아무리 높은 직장 상사 앞에서라도,
심지어 내 목줄을 잡고 있는 진급 심사위원 앞에서라도
언제나 당당하고 떳떳한 자기 중심을 잡고 살 수 있는거예요.

세상의 겉에 드러난 껍데기에
자기의 영혼까지 팔아서는 안 됩니다.
내 양심까지, 내 맑은 영혼까지
세속적인 가치에 다 빼앗겨선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세상일이라는 것이
다 그렇듯 힘겹고, 답답하고, 마음대로 잘 안 됩니다.
마음대로 안 되니 세상아니겠습니까.
그렇더라도
우리는 우리 중심까지 잃고 헤매여서는 안 됩니다.

입시철이 다가오고,
진급 때가 다가오면 더욱 열심히 정진하세요.

합격하게 해 달라고,
진급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진급을 하든 떨어지든
내 안에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기를,
당당하게 결과를 받아들이고 감사할 수 있기를,
그렇게 큰 마음, 큰 사람일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언제나
당당하게 사십시오.
힘 있는 대장부로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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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