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은
집착하지 말고 다 버려라.


내 것이 아닌 것을
모두 버릴 때
세상을 소유할 수 있다.


만약 어떤 이가
뒷동산에 있는 나뭇잎을 가진다고 했을 때
왜 나뭇잎을 가졌느냐고 그와 싸우겠는가.


수행하는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자기 소유가 아닌 물건에 대하여
애착을 버려야 할 것이니
버릴 것을 버릴 수 있어야 마음이 평온하다.


[잡아함경(雜阿含經)]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경구 가운데 하나.

"만약 어떤 이가
뒷동산에 있는 나뭇잎을 가진다고 했을 때
왜 나뭇잎을 가졌느냐고 그와 싸우겠는가."

뒷동산에 있는 나뭇잎을
나의 소유라고 하고
'내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어리석은 일이다.

어찌 뒷동산의 나뭇잎이
내 것일 수가 있는가.

마찬가지로
이 대지의 한 부분을 가지고
어찌 '내 땅'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저 대지 위를 걷는
소나 돼지를 가지고
어찌 '내 소' '내 돼지'라고 할 수 있겠는가.

어찌 한 사람을 가지고
'내 여자' '내 남자'라고 소유코자 할 수 있는가.

그런 것은 없다.
다만 모든 존재는
저 홀로 존귀하며,
저마다가 자신의 주인일 뿐이다.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완전히 독자적이고 독존적이지
'내 것'이라고 묶어 둘 수 있는 것은 없다.

잠시 인연따라
나에게로 왔다가
인연이 다 하면
내게서 멀어지는 것일 뿐.

과연
무엇을 가지고
소유라고 할 수 있겠는가.

본래부터
‘내 것’이 어디에 있는가.

‘나’라는 존재 또한
잠시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 따라 가는 무상한 존재인데,
하물며 ‘내 것’이라고 붙잡아 두고
집착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뒷동산의 나뭇잎이 어찌 ‘내 것’일 수가 있으며,
땅에 금을 그어 놓고 돈을 지불한다고
어찌 ‘내 땅’일 수가 있겠는가.

'내 돈'이라고,
'내 땅'이라고,
'내 집'이라고,
'내 사람'이라고,
'내 물건'이라고,
'내 자식'이라고,
'내 지위'라고,
'내 가족'이라고,
'내 권력'이라고,
'내 종교'라고,
'내 계급'이라고,
'내 소유'라고...

그것은 인간의 오만한 생각일 뿐.

이 세상에
내가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내 것’이라고
붙잡아두고, 집착하려 할 때
모든 괴로움이 시작된다.

잠시 이 세상에 살며 소유하는 것일지라도
그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할진데
내 것이 아닌 것이야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참된 행복은
버릴 것을 버릴 줄 아는 용기에서 온다.

버리고 버리고,
비우고 또 비우고 나면 마음이 평온하다.

전체를 버렸을 때
비로소 전체를 가질 수 있다.









Posted by 법상


많은 사람들이
소유에 집착 하면서
동시에 자유를 찾아 나서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소유와 자유를 동시에
얻을 수 있기란
삶과 죽음 을 동시에 가지려는 것처럼
어리석은 생각입니 다.

가진 것이 많을 수록
집착하고 있는 것이 많을 수록
그만큼 자유를 빼앗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 다.

소유는 우리를 얽어매고
되려 우리를 소유해 버리고 맙니다.

소유를 통해 행복을 찾으려 하지 말고,
그냥 지금 이 대로의 텅 빈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냥 그냥 지금 여기에서
충분하고 꽉 찬
온연한 내면 을 비추는 텅 빈 충만을 말입니다.

그것을 느끼지 못 한다면
언제까지고 행복은 요원하기만 할 것입니다.

자꾸 늘 리려고 하고,
채우려고 하면
세상에 얽매임이 많아 지다 보니
우리 본연의 맑은 참빛을 놓치게 됩니다.

텅 비 워 버리면
그냥 그대로 충분하고 자유로워
그 속에서 참 성품 의 밝은 빛을 보게 됩니다.

자유와 행복이란
얼 마나 채우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비우느냐에 달 려 있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욕망이 아닌 필요에 의한
최소한의 소유,
소유라 는 관념도 비워 버린
무소유의 소유,
그런 맑고 텅 빈 소유를 하라는 것입니 다.




Posted by 법상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앞으로 앞으로
나아 가는 일만 연습해 왔습니다.
보다 빨리, 보다 거침없이 돌진하는 일에만 익숙합니다.

나아가는 일만이 나를 살찌우는 일이 며,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성공하게 만드는 일이라 생각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이 너무 빨라졌습니 다.
너무 급해졌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무언가 크게 잘못하고 있는 것 같고,
다른 사람들에게 뒤쳐지는 것처럼 느껴집니 다.

한 순간도 ‘멈춤을 위한 멈춤’을 해 보지 않았습니다.
하기야 어쩔 수 없이 멈추게 되었을 때 조차
가만히 온전히 멈춰 서 있지 못하고
무엇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니 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가르침은 세상과 거꾸로 가는 법이 라 하셨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일 말고
이제 멈추는 일을 배워야 합니다.

수행이란 멈춤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잡으려 하고, 나아가려 하는 일에서
놓아버리고 멈추는 일로 바꾸는 일이 수행입니다.

멈춘다고 해서 도태되는 것 이 아닙니다.
멈추어 선 그 자리에도
우리가 원하는 행복의 가능성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멈추어 선 그 자리에
일체 만법이 다 녹아 있습니다.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
하나가 곧 일체이고 일체가 곧 하나이며,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한 티끌 가운데 시방을 머금고 있으며,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한 생각 속에 무량겁이 다 녹아 있고,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
처음 발심한 그 순간의 한마음이 정각을 이룬다 하였습니다.

나아가야만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멈추어 선 이 자리에서
지금 여기가 바로 온전한 ‘성취’ 의 자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온전한 깨달음의 자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잠시 멈추고
고개들어 하늘을 바라 보세요.
바쁜 일은 없습니다.





방에 청소해야 할 양이 많다고,
언제 이걸 다 치우나 하고 걱정하지 마 세요.
결과에 마음이 미리 가 있으면 안됩니다.

다 치운 후에 깨끗해질 것을 생각하고 청소하면
깨끗해 져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청소를 하면서도 계속 벅차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냥...
순간 온전히 하나 하나 치우기만 하 는 것입니다.

이 순간 떨어진 장난감을
온전히 책상 위에 올려 놓는데만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직 그 순간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널부러진 이불을 개고,
온전히 집중하여 휴지를 들고 휴지통에 집어 넣습니다.

온전히 순간 순간의 행에 집중할 뿐입니다.
결과에 마음이 머물지 말고, 오직 순간 순간 ‘할 뿐’입니다.
휴지를 드는 순 간이 그대로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청소이후에 깨끗해지기 위한 수단이 되어선 안됩니다.

집중하면서 청소를 하면
아무 리 양이 많더라도 힘이 들지 않습니다.
마음에 깨끗해 져야 하는데 하는
결과에 대한 마음이 놓여지기 때문입니다.

바라 는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바라는 바가 있으면 마음은 이미 바라는 바의 성취에 가 있지만,
바라는 바가 놓여지면 오직 순간 순간 이 최선일 뿐입니다.

단지 휴지를 들어 휴지통에 놓을 뿐...
떨어진 책들을 주울 뿐이고, 책장에 꽃을 뿐...
오직 매 순 간 순간이 온전한 목적이며 깨달음의 순간인 것입니다.
순간 순간 온전한 행이 되는 것이고,
온전한 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그냥 필요 한 것 말고
‘정말’ 필요한 것들 말입니다.
없으면 안 되는 것들 말입니다.

큰 집, 큰 차, 좋은 옷, 좋은 음식인가요?
그렇지 않 습니다.

차는 없어 도 살 수 있으며,
옷이 없어 도 살 수는 있습니다.
집이 없어 도 당장에 죽을 일은 아닌 것입니다.

정말 필요 한 것은
공기이고 물이며 대지이고 태양입니다.
공기가 없 으면 우리는 금방 죽게 될 것이며,
물도 태양 도 대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에 환 경 오염이 극심해 오존층이 뚫려,
어쩔 수 없 이 공기를 돈 주고 사야 하는 때가 온다면
과연 값을 얼마로 해야 하겠습니까.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 될 것입니다.
아무리 비 싼 값을 부르더라도 못 사서 안달일 것입니다.
돈은 없어 도 되지만 공기가 없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생 각해 보면
정말 필요 한 것들은 돈 주고 살 수 없는 것들입니다.
돈 주고 살 필요도 없는 것들이지요.
우리가 돈 없이도 충분히 살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랑이며 행복, 깨달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아무 리 많이 주더라도
결코 얻을 수 없는 것들의 이름입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아주 작은 부분입니다.
아주 작은 행복이며 아주 사소한 것들입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속에
정말 필요 한 것들은 다 들어 있습니다.
돈이 없어 도 우리는 이미 다 누리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정말 필요 한 것들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사소한 것들에 더 많이 마음을 두고 삽니다.

어떠 어떠 하게 되었을 때, 무언가를 이루었을 때
그 때를 행 복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가 장 필요한 것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니 말입니다.

‘정말 필 요한 것’의 소중함을 알게 될 때
지금 이 순 간
행복의 모 든 조건은 이미 다 갖추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이 모습 그대로’
우린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Posted by 법상




[사진 : 법주사]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은
집착하지 말고 다 버려라.
내 것이 아닌 것을 모두 버릴 때
세상을 소유할 수 있다.

만약 어떤 이가
뒷동산에 있는 나뭇잎을 가지고 간다고 했을 때
왜 나뭇잎을 가졌느냐고 그와 싸우겠는가.

수행하는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자기 소유가 아닌 물건에 대하여 애착을 버려야 할 것이니
버릴 것을 버릴 수 있어야 마음이 평온하다.

[잡아함경(雜阿含經)]



본래부터 ‘내 것’이 어디에 있는가.
‘나’라는 존재 또한
잠시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 따라 가는 무상한 존재인데,
하물며 ‘내 것’이라고 붙잡아 두고 집착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뒷동산의 나뭇잎이 어찌 ‘내 것’일 수가 있으며,
땅에 금을 그어 놓고 돈을 지불한다고
어찌 ‘내 땅’일 수가 있겠는가.
그것은 인간의 오만한 생각일 뿐.

이 세상에
내가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고 일체의 모든 소유를 다 버리고
완전한 거지가 되라는 말은 아니다.
인연 따라 자연스럽게 나에게로 온 것에 대해서까지
억지로 다 버릴 필요는 없다.

그러나 자기 소유물들의 특성을 알 필요는 있다.
내 소유물들은 인연 따라 잠시 나를 스쳐갈 뿐이다.
우리는 그것을 잠시 보관하면서 인연 따라 쓸 뿐이다.

잠시 스쳐가는 것들을 스쳐가지 못하게
‘나’라는 틀 속에 가두게 되면
나를 중심으로 우주적인 에너지는 정체되고 만다.

세상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이 끝없는 우주를 여행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들의 목적은 끊임없는 여행에 있지
어느 한 곳에 정착하는데 있지 않다.
바로 그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사실은 ‘내 것’이 아니라
여행길 위에서 잠시 들른 간이역일 뿐이라는 것을.
그 어떤 것도 종착역으로써 나에게로 온 것은 없다.
내가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이지.

그러니 내 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시했다 하더라도
사실은 보시가 아니라 그저 가야할 곳에 갔을 뿐인 것이다.
그것이 그것의 다음역이었던 것이지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준 것이 아니다.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주고 받았다는
그 생각이 바로 집착이다.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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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있는 이는 자녀로 인해 기뻐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로 인해 기뻐한다.
사람들은 집착으로 기쁨을 삼는다.
그러니 집착할 것이 없는 사람은 기뻐할 것도 없다...
자녀가 있는 이는 자녀로 인해 근심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 때문에 걱정한다.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은 마침내 근심이 된다.
집착할 것 없는 사람은 근심할 것도 없다.
[숫타니파타]

많은 사람들에게 소유가 기쁨이다.
집착하는 것을 얻었을 때 하늘을 날아갈 듯 기쁘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내 것’이라는 소유를 늘리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삶의 과제일 것이다.

자녀가 있으면 자녀로 인해 기쁘고,
돈이 있으면 돈 때문에 기쁘고,
차가 있으면 차로 인해 기쁘다.

그러나 이 모든 소유에서 오는 기쁨은
항상 하지 않으며 근원적이지 않다.
언젠가 소유물은 없어지고 만다.
소유한 것이 소멸되었을 때 그에 따른 괴로움이 동반된다.
그러나 소유하더라도 소유에 대한 집착이 없을 때
그 때 참된 기쁨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은 우선 당장에 달콤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마침내 근심이 되고 만다.
집착으로써, 소유로써 행복을 찾고자 한다면
그것은 그 이면에 행복의 크기만 한
불행의 씨앗을 키우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자식이 있으면 자식 때문에 기쁘지만
또한 자식으로 인해 괴롭고,
돈이 있으면 돈 때문에 기쁘지만
돈 때문에 괴롭기도 하다.

모든 소유의 기쁨은 곧 괴로움으로 바뀐다.
이것은 영원한 진리이다.

세상의 모든 집착을 놓으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그 소유물에 집착하지 말라.
집착 없이 소유한다면 세상을 다 소유해도 상관없다.
언젠가 소멸되었을 때 마음에 아무런 파장이 없을 것이기에.
집착이 없으면 근심도 없다.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