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예불을 모시고
대웅전 계단 앞에 섰더니
오늘따라
짙은 안개가 이 작은 산사를 한껏 감싸고 있습니다.



저 작은 텃밭도
새벽 짙은 안개 속에서
더없는 싱그러움이 느껴집니다.



새벽 이슬을 머금고
이른 아침부터 싱그럽게 깨어있는
여린 채소들을 보고 있노라면,
새벽녘에도 잠들어 있는 게으른 수행자를 경책해 주는
엄한 스승님을 만난 것 같은 고마운 행복을 느끼기도 합니다.



터벅 터벅 걷는데
이 이른 새벽부터 밭에 나가
일을 하시는 아주머님들 손길이 바쁩니다.



이른 새벽에 밭에 나가 일을 하시는 분들을 뵈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서 미소가 띄어지고
그 분의 생기어린 하루를 위해 기도를 하게 됩니다.



밭에 나가 일하는 것 뿐 아니더라도
이른 새벽에 깨어나 명징한 하루를 시작하시는
모든 분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런데요.
새벽 이 청청한 기운을
가만히 느끼며 걷다 보면
그 어느 때 보다 더없이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새벽!
말만 들어도 기운이 나고
생기가 돌고 싱그러움이 가득한 단어입니다.

새벽엔
길을 걸으세요.
새벽에 걷는 숲길은
생각만 해도 더없이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새벽 숲길을 걷다 보면
만물이 막 생동하며 깨어나는
마치 어린 찻잎 같은 생기로움이 느껴집니다.



주위에 숲이 있다면
마음을 맑게 비우고
새벽에 일어나 그 숲을
터벅 터벅 거닐어 보시길...

물론 숲길이 아니더라도
새벽에 마음을 비우고
천천히 걸을 수 있는 사람은
그 마음이 얼마나 한가하며 여유롭겠나 싶습니다.

새벽이 참 좋습니다.

한쪽에선 어둠이 막 걷히면서
또 다른 한 쪽에서는 여린 빛이 세상을 수 놓는
그 가운데
길을 걷고 있노라면 난 행복을 느낍니다.

조금 더 걷다 보면
저 산 너머에서부터
붉은 해가 불쑥 솟아오르는데
바로 그 대자연의 클라이막스를 두 눈으로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에도 환한 빛 한 줄기 수 놓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세상에는
새벽에 잠을 자는 사람과
새벽에 깨어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새벽에 습관적으로 잠에 골아 떨어져 있는 사람과
일찍 일어나 맑고 청정한 정신으로
몸도 마음도 맑은 휴식을 취하며
새로운 하루를 준비할 수 있는 사람.

새벽에 잠을 자 두는 것만이 휴식일 수는 없어요.
오히려 제 생각에는
조금 피곤하더라도 새벽에 맑게 깨인 정신으로 일어나는 편이
더없는 영혼의 휴식을 가져다 줄 것 같습니다.

물론 저 또한
새벽 예불이 끝나고
새벽에 잠에 떨어지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날은
왠지 컨디션이 그냥 저냥 합니다.

새벽에 맑게 깨어있으면서
좌선에 들거나
산길을 거닐거나
텃밭에서 일을 하거나,
그도 아니면 창문 활짝 열어 두고
째잘거리는 새소리 들으며 좋은 책을 읽거나,
그런 날은
하루 종일 상쾌하고 거뜬하지요.

잠도 버릇이고 습관이데요.
처음에는 새벽에 일어나기 힘들어도
한 몇 일 큰 맘 먹고 일어나
그 밝은 기운에 몸을 맡기고
대자연과 함께 일어나면
우리 몸도 마음도 대자연과 하나되어 흐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또한 대자연의 일부이듯
대자연이 깨어날 때
우리도 함께 깨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대지와 함께 일어나 호흡하고 움직이며
온전히 법계와 하나되는
또 하루의 삶을 시작할 수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대자연이 새로운 하루를 맞이했는데
아직까지도 이불 속에서 잠에 골아 떨어져 있다면
우리의 영혼도 함께 잠에 들어
맑은 깨어있음을 방해하고
삶의 빛을 잃어 버리게 될 것 같습니다.

새벽에
잠을 자는 사람이 되지 말고
새벽에
깨어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길...

'산방한담 산사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운 겨울, GOP 순례  (0) 2008.01.16
눈이 내립니다  (0) 2008.01.11
새벽에 깨어있는 사람  (0) 2007.12.12
목을 베는 것과 봄바람을 베는 것  (0) 2007.12.12
목탁소리 소개 기사가 났네요  (1) 2007.12.12
사법을 버리고 정법의 길로  (0) 2007.12.11
Posted by 법상
지난 주였지요.
주섬주섬 챙겨
청량 리 역으로 나갔다가
태백행 밤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참 오랜만에 타 보는 밤기차.

아직 어둔 밤
태백역 내려 목욕탕에서 잠시 예불좀 하고
이른 아침 불켜진 식당에서 공양도 하고
태백산 새벽 첫 버스에 올라탔지 요.

첫 차이기도 하 고
영동지방 폭설 소식 때문이기도 하겠고,
지금 창밖으로 펑펑 나리는 눈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버스 안은 조용 ~

설악산에
신 흥사로 봉정암에서 오세암 백담사로
휘휘 둘러 참배하고 오려고 했었는데
폭설 소식에 입산 금지라고 하여
아쉬운 발길 돌리 다 보니 이 버스 한 켠으로까지 밀려 왔습니 다.

유일사 매표소 에 내리니
펑펑 내리는 눈에 산으로 난 발자국이
별로 없어 낯설다 는 것 빼고는...
얼마나 아름다운 설경인지...



눈덮인 산 속
저벅 저벅
하얀 눈을 맞으며 걸어 오릅니다.



오르는 동안
내 발길에 마음을 모으기 보다
연신 두리번 두리번 거리면서
마음 속 에 온갖 감탄사가 뿜어 나오데요.

눈 덮인 산길 이,
또 숲 속 나무 위에 올라 앉은 눈꽃들이
그냥 내 마음에 분별을 딱 멈추게 하면서
아득하게 하곤 하였습니다.

눈덮인 유일사 의 풍경이란
더 이상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
충만함 혹은 고요 함.
아직도 제 가슴 속에 청청한 외로움으로 자리하고 있습니 다.



눈이 오고 또 바 람에 눈발이 날려 그런지
그 작은 도량 주변으로 사람 발자국 하나
그려져 있지 않은
그야말로 고요하고 적적한 도량입니다.
유일사를 거닐 다 보니 이제 눈은 멈추고 따스한 햇살이 내려 쬡니다.



유일사를 조금 지나고 나면
이제부터 주목 군락지가 펼쳐집니다.
눈쌓인 주목 나무 를 보셨는지요.
한 몇 백년은 족히 넘었을
두 팔로 가득 안을 수 없을 만큼 거한 주목숲에
겨울 눈꽃이 잔치를 여는 듯 합 니다.



천제단에 오르니
산 바람이 얼마나 매섭게 차가운지...
엊저녁 청량리역에서 얼 핏 들은
'올 해 들어 가장 큰 추위'라던 말이 정말이지 뼛속까지 실감이 납니 다.



그 아래로 한 5분 내려오면
단군성전 이 있고,
또 그 바로 아래 망경사 도량이 그야말로 그림처럼 펼쳐집니 다.



눈덮인 산사
대웅전 처마 끝에 메달린 풍경소리가
눈을 머금고 딸랑거리며 섯습니다.



눈속에 잠긴 산사야 많이 보아오긴 했지만
망경사는 거한 산과 눈꽃덮인 주목으로 뒤덮인
대웅전과 뒷산의 풍경
그리고 그 앞으로 펼쳐진 하얀 설경,
저멀리 문수봉의 우뚝선 모습들이 적적하게 조화롭습 니다.



점심 공양을 절에서 간단히 하고
문수봉으로 향하는데
사람들 발자국 찾아 가느라 꾀 고생했던 기억이 나네요.
흠 뻑 빠져 있다가 내려오니
기분이 참 좋습니다.



Posted by 법상




이 곳 감악산에는
온갖 약 초들이 많아
멀리서도 약초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러면 뭐 하나요.
나처럼 까막눈인 사람한테는
그저 스쳐지나치는 들풀일 뿐이니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산 속으로 들 어 갈 것도 없이
우리 절 주변, 집 주변, 들, 밭에 보면
이름모를 수많은 야초들이
모두들 제 자리에서 온전한 삶을 살고들 있습니다.

우리가 이름 붙여
이건 뭐 고, 이건 그냥 잡초고,
이건 좋은 풀, 저건 나쁜 풀,
이건 먹을 수 있고 저건 먹을 수 없고,
나누어 놓았 으니 말이지

사실 그네들 입장에서야
우 리들 하나 하나가 내 스스로는 소중한 것처럼
아주 소중 하고 온전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 겁니다.

세상 어는 것이라도
아무 의미 없는 것은 없어요.
아무리 사소한 들풀이며 잡초일 지라도
모두들 이 법계에서 제 몫을 온전히 해 내고 있습니 다.

그것도 이 우주를 살리고 지구 를 살리고
자연의 섭리에 일체를 내맡기면서
진리와 하나되는 삶 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은 잡초가 잡초가 아니고
이 자연에서 본다면 인간이 유일한 잡초일 것 같습니 다.

인간들만이 유독 자연을 훼손 하고,
나 아닌 것을 자비로써 감싸안지 못하고,
세상을 살기 어려운 곳으로 만들며,
완전한 존재인 세상 만물을
이렇궁 저렇궁 하면서 제 편한 데로 나누어 놓고는
좋 은 것이라거니 싫은 것이라거니 하고 분별을 하면서
취하고 버리는 작업, 살리고 죽이는 작업을 일삼는단 말입니 다.

하기야 인간들 제 스스로도
별 생각 없이 죽고 죽이고 하는 마당에
사소한 풀 한 포기 뽑아내는 거야 일도 아닐지 모르지요.

우리 절 옆 밭에도 봄나물이
서로 고개를 치켜들면서 한창 새로움을 뽐내고 있습니 다.
가끔 유원지나 절에 가 보면
노랗고 파란 옷들을 짝 맞춰 차려 입고 소풍 온
유치원 어린이들의 파릇파릇하 고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 처럼 말이지요.

절 마당 옆에 개나리 밭이 있 었는데
개나리에게 미안하다는 말 건네고
또 염불 한 번 외 주고 는
다른 곳으로 옮겨 심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밭을 만들려고 터를 가꾸는 중입니다.
비료나 농약, 제초제 를 쓰지 않고
또 흙을 숨 못쉬게 만드는 비닐도 쓰지 않으면서
그저 조촐하게 채소를 가꾸어 먹으려고 말입니 다.

개나리를 옮기면서
또 땅 을 들척이면서
흙 속에 지렁이며 작은 벌레들과
또 풀들을 갈아 업다보니 미안한 생각도 많이 들데요.

그래도 과감하게 자를 때는 자 르고
뽑을 때는 뽑고,
때로는 삽질을 하다가 지렁이를 죽 이게도 되더군요.
미안한 마음 관찰하면서
또 가 슴 한켠이 시릴 땐 염불도 외 주면서 작업을 합니 다.

작년 여름인가
법당 앞마 당 잔디밭에 풀이 하도 많이 자라
예초기로 풀을 자르고
또 도량 주변에 난 풀들을 뽑고 있었지요.

그런데 한 법우님께서
왜 풀을 뽑아야 하느냐고,
왜 풀을 잘라 내야 하느냐고 하는 바람에
물론 자르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또 미안하지만 최소 한의 부분에서는
잘라야 하는 경우가 있노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 다.

그러고 보면
농사를 짓더라 도
늘 자연에게 미안한 마음과
또 동시에 감사한 마 음을 항상 가져야겠습니다.

네 생명 없애면서
내 한 끼 식사를 만들려니
미안한 마음 또 감사한 마음이 안 들 겠어요.
그러면서 또 그 마음에 너무 얽매여도 안 되겠지만 말입니 다.

너무 얽매여 버리면 아예 농사 도 지을 수가 없고,
풀 한 포기 생명 살리려고 내 생 명 쓰러져 갈테고,
그것은 어쩌면 그 풀들한테도 잘못하 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풀의 인연이고 풀의 삶이라 면 말이지요.

그래서 농사를 지으면서도 그 렇고
우리 일상에서도 그렇고
최소한의 생명을 희생시키 려고 해야 할테고,
별 생각 없이 함부로 들풀이며 나무 를 잘라내도 안되겠습니다.
그러나 해야 할 때는 공한 마음 으로
최소한의 희생이 따르도록 해야 할 것 같습니 다.

밭에 서서 보니
아직 씨앗 도 뿌리지 않았는데
벌써 자연이 제 스스로 만들어 준 음 식들이 가득합니다.

아직은 이름도 잘 모르고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다 보니
한정되긴 하지만
냉이나 쑥 소리쟁이 민들레 같은 것들이
제법 밥상을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처음엔 나도 겁냈었는데
황 대권님의 '야생초 편지'를 읽고는
어지간한 것들은 먹어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다들 맛이 있고
또 아버님 말씀처럼 봄철에 올라오는 여린 새순, 나물이나 풀들은
거의 다 먹어도 될 만큼 다양하다는 말이 실감이 납니 다.

오랜만에 찾아갔던 고향에서
아버님께서 이것 저것 가르쳐 주시며
봄나물 얘기, 농사 짓는 얘기, 또 자연에 대한 얘기를 해 주시는데
예전엔 왜 이런 소중한 법문에 관심이 없었는지 말입니 다.

농사를 짓고
내 스스로 땅 을 일궈
기른 채소를 먹고, 기른 과일을 먹고
그 땅에서 올 라오는 나물들을 먹어 봐야
비로소 사람 사는 것이 무 엇인지를 알 수 있다고 하십니다.

씨앗을 뿌리고
그 흙을 뚫 고 처음 작은 순이 올라올 때
그 신비롭고 경이로운 모 습을 지켜보면서
우리 아이들도 커야 하고
또 도시인들도 그것을 알 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봄이 되면서
내 인생에 늘 상 오는 봄이지만
이번 봄은 좀 더 새로운 무언가가 꿈 틀거리며 가슴을 칩니다.

봄이 되고 만물이 생기롭게 돋 아나면서
내 삶의 봄도
새롭게 돋아나는 듯 생기롭습니 다.

흙을 만지고
숲 속을 거닐 며
깨어나는 자연에 몸을 맡기면
나 또한 새봄을 맞아
저 심연 깊은 뿌리로부터 물이 오르고
내 삶의 가지며 잎 또한 점차 푸르러 지는 것 같습니다.
Posted by 법상




오후가 되더니
갑자기 하늘 이 맑게 어두워지고
이내 후두둑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 진다.

마침
다실 문을 활짝 열고
차를 한 잔 마시고 있던 중이었다.
이럴 때 갑자기 귀 속을 씻어주는 빗방울 소리는
이 얕은 산사에선 얼 마나 좋은 다반(茶伴)인지 모른다.

낮은 산 밑 작은 도량
이 6 월 청청한 산방에서
빈 속에 맑은 차 한 잔
그리고 갑 작스레 떨어지는 빗소리 좋은 도반...
생각이 되시는 가.

덕분에 어제 밤은
늦은 녘 까지 방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오랜만에 떨어지는 빗소리 를 보고 있자니
조촐한 도량의 풍경하며
이 산사 를 은은히 비추고 있는 외로운 가로등 하며
가슴 속 깊 이 파고드는 그 어떤 떨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빗방울이 좋고,
그 떨어지 는 빗방울에
묵은 때 벗어내는 이 자연이 좋 다.

우리들 또한 이 속에서 함께 숨쉬는
대자연의 숨결 그대로였을 터인데...
비가오면 비를 맞 고
눈이오면 눈 속을 걸어야 하는
그런 나그네였을 것이 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나그 네 성품, 대자연의 성품을
많이 잊고 지내고 산 다.

내가 그렇고,
우리 모두가 그러하며,
이 세상이 이 법계와 하나이기를 거부하게 된 것은 아닌가.

이 어둠 속에
이 비를 느끼 면서
문득 미친 생각 하나 스쳤었다.
발가벗고 이 산 속 에서
나무들과 함께 비 흠뻑 맞으며
첨벙첨벙 뛰어 놀고 싶다 는 생각.
물론 실천은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부디 자유롭 게 실천할 수 있기를 법계에 빌어 볼 뿐...

사실은 그렇게 살았어야 하는 우리일 터인데...

그러고 보면
우리도 그렇 고, 우리 아이들도 그렇고
참 딱한 처지다.

그 흔한 흙한 번 맨발로 밟아 보지 못하고,
떨어지는 빗속을 맨몸으로 흠뻑 맞아 볼 생각조차 하지 못 하고,
저 나무를 두 팔 벌려 껴안고는 그 숨결을 느껴보지 못하며,
풀벌레와 친구가 되지 못한다.

구두를 신고 딱딱한 아스팔트 를 밟아야 하고,
고급 우산으로 떨어지는 비를 막아야 하 며,
모처럼 방에 들어온 풀벌레를 홈키파로 죽여야 한 다.

하기야 요즈음의 시대가
빗 물을 맨 몸으로 맞을 수 없게 되었고,
풀벌레나 꽃가 루 같은 것들에게 조차
무슨 전염을 옮기고, 무슨 무 슨 알레르기를 조심해야 할 정도로
우리도 나약해 졌고, 자연 도 오염을 시켜 버렸으니 어쩔 도리는 없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이 대 자연과 하나가 됨을 의미하고,
우주 법계의 큰 흐름 에 온전히 나를 맡기고
그것과 함께 흘러 가는 것을 의미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처럼
그리 거창하거나 요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대자연의 섭리 는 그대로 우리의 삶이요 진리인 것이다.

그저 이 우주 법계 대자연의 순일한 흐름처럼
아무런 분별 없이
턱 맡기고 흐 르면 그만이다.
그것이 수행이고 그것이 부처의 삶인 것이다.

요즈음 들어
사람들과 함 께 하고 싶은 마음 보다
이네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 이 더 간절하다.

이 맑은 법신 부처님의 숨결 과...

비가 오니 자연도 씻길 때가 되었나 보다.
자연도 이제 목이 말랐는가.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