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부'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9.11 행복해지는 두 가지 방법
  2. 2009.07.22 힘 있는 대장부로 살라
  3. 2008.01.20 진실한 주인공의 자리




행복에 이르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욕망을 가득 채웠을 때 오는 행복과
또 하나는
욕망을 비웠을 때 오는 행복이 그것입니다.

욕망을 가득 채워야 행복한데
그냥 욕망 그 자체를 놓아버리면
더이상 채울 것이 없으니
그대로 만족하게 되는 것이지요.

전자의 행복은
또 다른 욕망을 불러오고
잠깐 동안의 평온을 가져다 주며,
유한하기에 헛헛한 행복이지만,

후자의 행복은
아무것도 바랄 것 없이
그대로 평화로운
무한하고 고요한 행복입니다.

모든 성자들이
'마음을 비워라'
'그 마음을 놓아라'
하는 이유는
바로 욕망을 비웠을 때 오는 행복이
지고한 참된 행복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엇에 욕망을 가지고 있는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충족되었을 때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가장 되고 싶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가만히 마음을 비추어 보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 놈이
지금 이 자리에서 비워야 할 것들입니다.

비운다는 것은
하지 않음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걸리지 않음, 집착하지 않음을 이르는 것입니다.
언제라도 포기할 수 있고,
결과에 연연해 하지 않을 수 있음을 말입니다.

마음 비우기의 참 큰 매력은
비우고서 했을 때
그 때 정말 큰 성취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이룬 성취는
이미 나를 들뜨게 하지 않는 평온한 성취입니다.
또한 설령 성취하지 못하였더라도
내 마음 비웠기에
아무런 괴로울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채우는 행복
비우는 행복

자!
어떤 행복을 만드시겠어요?






그 어떤 경계가 닥치더라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세요.
인정하지 못할 때, 받아들이지 못할 때
괴로움은 옵니다.

경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무언가 경계에 대한 분별을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대상에 대한 집착이 생깁니다.
경계를 두 가지 극단의 분별로 몰아갑니다.

음식을 먹을 때
맛이 있고 없고를 분별하기 전에
음식 그 자체로써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인정했을 때 음식 은 그저 음식일 뿐입니다.
맛있는 음식이거나 맛없는 음식이 아닙니다.

온전히 인정하지 않으면
음식이란 대상에 대해 맛 이 있고 없고 등의
온갖 분별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며
그 분별은 음식에 대한 집착으로 비롯되는 것입니다.

맛이 없 다는 것은
이 음식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받아들이지 못하면 내 마음이 괴롭습니다.
그러나 음식을 받아들인 다는 것은
인연따라 온 음식을 분별없이 그냥 먹는다는 말입니다.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있기 때문 입니다.
내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기 때문입니다.

내가 없어질 때
우리는 일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 다.

인정하지 못할 때
분별과 집착 그리고 괴로움은 시작되지만,
일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의 마음 은 대상에 상관없이 평온해 지는 것입니다.

괴로움의 실체는 ‘인정하지 못함’입니다.
인정하는 순간 괴로움은 사라집니 다.

대장부 수행자는
다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건 받아들이고 저건 못 받아들인다면
그건 졸부의 못난 마음입니 다.

수행자는
내 앞에 펼쳐지는 그 어떤 경계라도
다 받아들이고 다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받아들이는 일이 바로 녹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수행의 가장 큰 적은
게으름과 편해지려는 마음입니다.

아상 은 끊임없이
내 몸뚱이 편해지는 쪽으로 움직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모든 행동의 근본은 편해지려는 마음입니 다.

사실 모든 행동은
편해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돈을 버는 것도 편해지려고 하는 것이고,
사람을 만나 는 일, 무언가를 추구하는 일에서
사랑하는 일이며 잠을 자는 일 조차
편해지기 위한 일들입니다.

수행이라는 것은
바 로 이 편해지려는 마음을 닦는 것입니다.
편해지려는 그 하나의 목적으로 일을 하고자 하고
편해지지 않는 일들은 하지 않으려 고 애를 씁니다.

하기 싫은 일이라는 것은
우리 마음을 편하지 않게 하는 일들입니다.
하기 싫은 일을 할 때 우리 마음 은 편치 않습니다.
수행이 편해지려는 마음을 닦는 것이라 할 때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큰 수행이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수행은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수행하지 못한
어리석은 중생의 마음이란
‘절대 하기 싫은 것 하 지 않는’ 마음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고
우리 몸 편하게 하는 일만 하고 산다면
우리의 삶 은 온갖 번뇌에 휩싸여
내 안의 맑음과는 자꾸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게을러서 일찍 일어나기 싫고,
아침에 일어나 108 배 하기 싫고,
화를 내는 상대방을 따뜻하게 품어주기 싫고,
맛없는 음식은 먹기 싫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기 싫고,
그야말로 하기 싫은 일은 하기 싫은 것입니다.

생활 수행자라고 한다면
그런 하기 싫은 일을 찾아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수행이기 때문입니다.

수행을 하긴 해야겠는데 하지 못하는 이유는
수행이 몸뚱이 편 하게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꾸만 편한 수행을 찾는 것은
수행과 멀어지는 일이기만 합니다.

옛 스님들은 수 행의 어려움을
‘도를 구할 때 뼈를 부수어 골수를 뽑아내듯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꾸 쉽게 쉽게만 하려는 우 리 몸뚱이 착심을
잘 지적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수행이 잘 되는 날 수행 잘 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며 그리 큰 공덕이 되지 못하지만,
수행 하기 싫고 수행이 안 된다 싶을 때
그 때 ‘싫은 마음’ 조복 받고 정진하는 것이
그것 이 참된 수행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날마다 새롭게 일어나라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법상 (무한,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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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법상




수행자는
힘이 있습니다.

내면의 힘이
당당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에
삶의 그 어떤 경계라도
쉽게 수행자를 뒤흔들 수 없습니다.

입시철이 다가오거나,
진급철이 다가오거나,
이런 저런 어려운 일이 닥치면
백일 기도다 뭐다 해서 열심히 기도하시는 분들이 봅니다.

이런 때를 계기로
진실된 마음 내어 기도를 하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그런 세속적인 바램(욕망)들로 인해
마음 공부를 할 수 있는 인연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런 기도의 의미를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입시기도나, 진급기도 같은 기도는
그 목적이 '합격'이나 '진급'에 있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명확히 하고 정진을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입시기도나 진급기도를 할 때
합격하기 위해서, 진급하기 위해서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낙방을 하게 되었을 때
낙담을 하고 괴로워 하고
부처님을 원망하고 스님을 원망하며
심지어는 종교를 바꾸겠다는 말까지 나오게 되는 것이지요.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먼저 백일기도를 시작할 때
명확하게 해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합격하고 진급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입시며 진급이라는 경계 앞에서
당당해 지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점 말입니다.

좋은 결과를 바라는 마음에서
백일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결과에도 내 중심을 잃지 않고
당당하고 겸허하게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기 위해서,
그만큼 내 마음공부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수행 정진을 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백일기도를 하시는 분들이
처음에는 꼭 합격하고 진급해야 한다는 마음에서
기도를 시작하셨는데
한참을 정진하다보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 지고
까짓 결과야 어떻게 되더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노라고 말씀들 하
십니다.

기도 정진을 올바로 하게 되면
당연히 이런 마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정진을 하면 잡는 마음, 바라는 마음에서,
놓는 마음, 수용하는 마음, 당당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기도 정진은 내 그릇을 키우는 일입니다.
그릇이 큰 사람은
합격을 못 하더라도, 진급 못 하더라도
크게 휘둘려 괴로워 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만큼 그릇이 큰 것이지요.

그러나 그릇이 작은 사람일수록
결과에 크게 얽매여 세상 이제 다 산 것 처럼,
바라던 결과가 아니면 더 이상 다른 길은 없는 것처럼,
그렇게 꼼짝달싹 못 하고 괴로워 합니다.

부처님은
합격시켜주시는 분이 아니시고,
진급시켜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왜 이렇게 단순하고 당연한 진리를 외면하는 것입니까.

합격이며 진급은 내 스스로 하는 것이지요.
내가 공부한 만큼, 내가 열심히 산 만큼
온당한 결과를 받는 것이
그것이 수행자로서 당당한 노릇 아니겠습니까.
인연법을 온전히 믿고 따르는 불자가 아니겠습니까.

다만 입시며 진급철이 오면
백일기도를 하고 스 님들께서도 백일기도를 시키시는 이유는
그만큼 업장을 소멸시키고,
그릇을 키우도록 하기 위함이며,
마음공부를 시키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물론 백일기도를 지극한 마음으로 하게 되면
무조건 합격을, 진급을 한다기 보다,
내 안에 있던 불합격에 대한, 탈락에 대한 조급한 마음이 녹게 되고,
그런 평온한 마음은 내 마음을 밝은 쪽으로 몰아갑니다.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 보다는 밝은 마음을 가지는 편이
법계를 더욱 밝게 울릴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또한 지극하고 간절한 기도는
나를 변화시키고 법계를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명확한 인과응보까지 다 덮어 버릴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 간절함이 내 안 뼛속까지 깊이 파고들어 자성부처님을,
또 우주 법계를 울려퍼져 법신부처님을 감동시킬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명확한 진실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 기도한다고 무조건 합격하고 진급하는 것은 아니다.'
하는 온당한 진리를 말이지요.

기도 정진을 지극한 마음으로 하게 되면
그만큼 업장이 녹게 되고,
또 내 마음공부가 익어가며 그릇이 커져
어떤 결과에도 크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당당한 마음자리 중심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백일기도의 목적인 것이지
합격이, 진급이 목적인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힘이 있다고 서두에 말씀을 드렸던 것입니다.

모름지기 힘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는 데에도 힘이 있어야지요.

그 힘이라는 것은
내면에 중심이 딱 잡혀
그 어떤 경계에도 휘둘리지 않는 힘을 말하는 것입니다.

꼭 합격해야만 할 것 같고,
꼭 진급해야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고,
그 길이 아니면 세상 어찌 살아가나 걱정스러울 것이지요.
이 길 아니면 절대 안 된다는 그 한 생각 때문에
때로는 비열하고 치사한 짓 까지
차마 밝히기 어려운 야비한 짓까지 서슴지 않기도 하지 않던가요.

이 길 아니면 절대 안 될 것 같은
바로 그 마음을 놓아 버릴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그래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을 수 있도록
어떤 결과 속에서도, 어떤 상황 경계 속에서도
당당하고 평화롭게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렇기에 수행자는 당당합니다.
아무리 높은 직장 상사 앞에서라도,
심지어 내 목줄을 잡고 있는 진급 심사위원 앞에서라도
언제나 당당하고 떳떳한 자기 중심을 잡고 살 수 있는거예요.

세상의 겉에 드러난 껍데기에
자기의 영혼까지 팔아서는 안 됩니다.
내 양심까지, 내 맑은 영혼까지
세속적인 가치에 다 빼앗겨선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세상일이라는 것이
다 그렇듯 힘겹고, 답답하고, 마음대로 잘 안 됩니다.
마음대로 안 되니 세상아니겠습니까.
그렇더라도
우리는 우리 중심까지 잃고 헤매여서는 안 됩니다.

입시철이 다가오고,
진급 때가 다가오면 더욱 열심히 정진하세요.

합격하게 해 달라고,
진급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진급을 하든 떨어지든
내 안에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기를,
당당하게 결과를 받아들이고 감사할 수 있기를,
그렇게 큰 마음, 큰 사람일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언제나
당당하게 사십시오.
힘 있는 대장부로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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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법상



그대들이 진리답게 살려면
대장부의 기상을 가져야만 한다.

깨진 그릇에는
좋은 음식을 담을 수 없듯이
자기의 분명한 마음의 중심도 세우지 못하고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면 결코 법다울 수 없다.

그릇이 크고 중심 잡힌 사람은
남들의 말에 현혹되지 않는다.
자기가 살아가는 곳곳에서 주인이 되면
그가 사는 곳이 항상 참됨이 되니
조건에 휘둘리지 말라.

[임제록(臨濟錄)]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가 바로
당당한 자기중심을 세우는 일이다.

우리 삶의 모습은 늘 주변상황에 이끌리고,
조건에 휘둘리며, 칭찬과 비난에 휘둘리곤 한다.
그것이 다 자기중심이 서 있지 못한 탓이고,
그릇이 작은 탓이다.

그릇이 크고 자기 안에 중심이 선 사람은
남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상황이나 경계에 휘둘리지 않으며,
언제나 자기가 발 딛고 서 있는 바로 그곳에서 주인이 된다.

스스로 주인이 되어 사는 것이야말로 참사람의 행이다.
누구라도 자신이 살아가는 곳곳에서 주인공이 되면
그가 서 있는 곳은 다 진실한 것이다.

그 어떤 곳에 있더라도,
그 어떤 상황, 그 어떤 사람과 함께 있더라도,
그 어떤 장소에 있더라도
지금 이 순간 내가 있는 바로 그 곳에서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지금 여기’가
가장 중요한 삶의 순간이고, 참된 순간이다.

다른 곳에서 찾지 말라.
다른 순간을 찾지 말라.
바로 지금 여기이지 다른 곳, 다른 때가 아니다.
어느 곳에서라도 주인으로 살지 객으로 살지 말라.

‘나 자신’으로써 사는 것이 주인공으로 사는 것이다.
‘남처럼’ ‘누구처럼’ 살려고 하지 말라.
‘누구처럼’ 살려고 했을 때,
그것은 벌써 지금의 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비교 속에서 행복을 얻으려는 것이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 자신’의 빛을 찾고
그 빛으로 삶을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진실한 삶이다.

자신이 살아가는 바로 그 곳에서
지금 그 모습으로 주인공이 되면
바로 그 자리가 진실의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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