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밝은도량에는
온갖 나무와 야생화들
그리고 산나물과 약초들
하늘거리는 바람소리
바람에 낙엽 서걱이는 소리까지
가만히 앉아 느껴보면
온갖 대자연의 소리들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새소리가 얼마나 경쾌하게 들리는지 몰라요.
내가 가만히 들어 본 새소리만 해도
한 10가지는 족히 넘을 것 같습니다.
그 울음소리들도 얼마나 신기하고 독특한지...

또 작년 가을까지 도량 주위에서 놀던
꿩 가족들도 겨우내 자취를 감추었는데
여름이 되면서 다시 도량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어디로 다녀 온 건지,
아니면 겨울잠을 자고 온 건지는 몰라도
얼마나 반가운지 모릅니다.

좀 야속한 건
이녀석들이 예뻐서 다가가는데
조금만 인기척이 들리면 냅다 꼬리를 빼고
도망쳐 버리는 것이 몹시 서운해요.

요즘에는
이제 본격적인 여름꽃들 나물들 산야초들이
한창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고마리, 며느리배꼽, 닭의장풀
괭이밥, 수영, 소리쟁이,엉겅퀴, 며느리배꼽, 메꽃,
망초꽃, 고들빼기꽃, 원추리꽃, 괭이밥꽃, 씀바귀꽃,
수영, 소리쟁이, 별꽃, 돌나물꽃, 뱀딸기열매,

다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고
이렇게 내가 알 수 있는 것들 외에도
아직까지 그 이름도 쓰임도 알 수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관심을 가지고 산야초들
산나물이며 약초 꽃들을 바라보고 공부하다 보면
정말 한도 끝도 없기도 하고
그 신비로움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즘 한참 농사지은 것을 수확하고 있는데
법당에서 지은 농사는
거의 수확이랄 게 없을 정도입니다.

산 중턱인데다
낙엽 떨어져 썩은 부엽토가 충분하지 않을까 싶어
그냥 조금 개간해 씨만 뿌렸더니
이 녀석들이 처음에 조금 고개를 내미는가 싶더니
기운이 달리는지 영 올라오지를 못하데요.

정말이지 혹독하게 실패를 맛보고 있는 중입니다.
저 아래 마을 내려가면
누가 지은 농사고 할 거 없이
모두 다 잘 크고 싱싱한 채소들이 푸르른데
법당만 영 기척조차 없으니
신도님들께서 비료 조금만 뿌리자는 말이
왜 그리 혹하게 만들던지요.

내가 농사지어 팔아먹을 거였다면
아마도 당연히 비료를 주고 말았을 겁니다.

안 되겠다 싶어
인근 나무아래에서 부엽토를 긁어다가
한 몇 일 깔아주고,

인근 마을에 인심좋은 모종파는 할머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조언을 구했더니
좋은 거름을 한 포대 주셔서
그놈을 조금 섞어 뿌려주고는
씨앗을 다시 뿌려 보았습니다.

좀 늦는 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조금 힘을 쓰고 올라오는 듯도 해요.

또 감자 심은 것들도
나무들 사이에 햇빛 조금씩 비치는 곳에 심었다보니
이녀석들이 햇빛 서로 받으려고 위로만 자꾸 크다가 넘어져요.
아무리 북주기를 해 줘도 고개를 떨구데요.

게다가 거름도 얼마 없다보니
줄기가 굵지는 못하고 위로만 크니
감자 농사도 영 시원치 못합니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을 겁니다.
그나마 조금씩 큰 것들도 있거든요.
저 아래 땅콩도 몇 개 안 되지만 잘 살고 있고,
상추도 거름 하나 없어서 하나도 안 크나보다 했더니
아래 모종한 상추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커서 요즘 먹고 있습니다.

전에 강원도 영월에서 이모님댁 모종을 몇 개 얻어 온
배추도 처음에는 영 안 클것 같더니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크고 있습니다.

콩 심은 곳은
법당 있는 쪽에서 조금 먼 곳이라
아예 물도 주지 않고 심기만 했었어요.
물론 처음 심을 때는 그 날 저녁 비 오는 날을 택했지요.

그래도 올해에는 꼬박꼬박
비가 제 때 내려 주어서
아직까지는 콩도 제법 올라오고 있습니다.
물론 콩이 아직 달리지는 않았으니
좀 더 지켜봐야 겠지만요.

또 법당에서 한 100미터 떨어진 곳에
고추, 가지, 오이, 토마토, 방울토마토, 참외, 호박
심어 둔 곳에도 거름이 덜 하다 보니
그리 크고 실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더디게 크고는 있어요.

물론 모종 두세개가 이유없이 죽기는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어요.
죽은 곳 주변에 개미가 많은 곳도 있고,
칡뿌리가 방해하는 곳도 있어서
그런 것이 이유일 수 있겠다 추측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어쨌든 내 농사는
모든 면에서 너무 게으르고
일반 상식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우리 신도님들이 성격이 좋아 말씀은 안 하셔도
속으로는 안타까운 마음 한창일겁니다.

아직 많이 모르지만
그래도 전 좀 더 연구해 볼까 합니다.
자연 그대로의 힘으로
농사도 자연이 지어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자연과 하나되는 농사법.

내가 뿌린 채소씨가 잘 안 크잖아요.
그런데 그 곁에서 잡초들은 정말 잘 자라고 있거든요.
잡초들은 거름 없어도 잘 자라고
비료 뿌려주지 않아도 잘 자라고 있습니다.

문제는 거름이 없어서가 아니고,
비료를 뿌리지 않아서가 아닌것 같습니다.
씨앗에 그 문제가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전 생각해 봅니다.

씨앗을 그동안 너무 약하게 키웠던 거지요.
사람의 힘으로 돌보고 비료도 주고, 잡초도 뿌려주고 해서
끊임없이 스스로 클 수 있는 야생의, 자생의 힘을
사람들이 없애버리지 않았나 싶은 생각입니다.

요즘 나오는 무슨 종묘상에서 파는 씨앗들이
거의 그렇게 너무 약합니다.

자연의 것들은
따로 물 주지 않아도
하늘에서 내리는 물만 가지고도 잘 자라고,
거름이나 비료 주지 않아도
흙에 있는 것 만으로도 잘 자라고,
제초제나 농약 뿌리지 않아도
스스로 커가고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뿌리는 씨앗만 안 그렇다면
그 이유는 사람들이 뿌리는 씨앗이 너무 약하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야생스럽지 않은
온실에서 조심스레 큰 여리디 여린 씨앗을
제 마음이나 신념만 가지고
야생의 잡초들과 경쟁을 시키다 보니
당연히 경쟁에서 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요즘 또 하나의 관찰이
어느정도 경쟁에서 지고 또 어느정도 이기는가
그것도 주 관심사 중에 하납니다.

아래 모종 심은 상추나 배추도
처음에는 시들시들하여 다 죽은 듯도 하고
영 거름이 없어 죽어가는 듯 하더니
그래도 크게는 아니지만 조금식 다시 되살아납니다.

상추는 힘없이 그래도
다른 야생초들과 어렵게 겨루고 있어서 대견합니다.

상추 심은 곳에 피어났던
민들레 두 송이를 그대로 놓아두었었습니다.
민들레 잎이 크게 자라면 상추잎만큼 자랍니다.
그리고 그 영양가도 못지 않아요.

그래서 요즘은 오히려 상추보다
그 곁에서 더 힘있게 자라나는 민들레 잎을
뜯어다가 상추처럼 쌈 싸 먹고 있어요.
그런데 이 두 녀석만 봐도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상추는 힘겹게 커가고 있고
그 속도도 한참을 더디게 크는 반면에,
민들레는 그야말로 쑥쑥 커가고 있습니다.
똑같은 땅 똑같은 조건에서 이렇게 큰 차이가 나요.

요즘 같아서는
정말이지 농사지으려고 씨 뿌릴 것 없겠다 싶어요.
이렇게 민들레처럼 그냥 야생의 것들을
따먹을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아요.
아니 너무 많은 게 아니라
따 먹지 못하는 것이 거의 없다는 말이 더 맞을 정돕니다.

앞에서 조금 언급했지만
요즘 밥상에 오르는 것들만 해도
고마리, 며느리배꼽, 닭의장풀
괭이밥, 수영, 토끼풀, 소리쟁이,엉겅퀴, 며느리배꼽 등이 있어요.
여린 것은 먹을 수 있고
조금 크거나 꽃이 피면 못 먹는다는 것도
알고보면 못 먹는다는 게 아니고
좀 억새서 먹기 힘들다는 말이거든요.
다 먹을 수 있습니다.

농사를 좀 게으르게 하고,
내 노력 좀 덜 들이면서
자연의 노력을 흠뻑 받을 수 있도록
대자연의 온전한 흐름에
턱 내맡기면서 자랄 수 있도록
참된 부처님의 농사가 꼭 있을 것입니다.

그런 농사를
발견했으면 하고
모든 이들이
그런 대자연의 부처님 농법으로
농사 지을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완전 초보 농사꾼이
너무 말만 앞서는거 아닌지 부끄럽습니다.



Posted by 법상



[춘천 청평사 오르는 길에...]

비가 옵니다.
방안 널찍한 창 문을 활짝 열고
빗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습니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기가 참 힘든데
오늘은 아침부터
우울한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거친 파도처럼 밀려오다 밀려가다 그럽니 다.

나무들이며 들풀, 야생화들도
오늘은 한참 정신이 없어 보입니다.
저 녀석들 지금이 야 한참 정신 없다 보니
하늘에서 내리는 거친 비를 원 망할 지 모르겠지만
이런 역경이 자신을 더욱 강인하 게 만들어 준다는 걸
아마도 지금은 모를 겁니다.
비 가 그치고 햇살 쨍 하고 내려 쬘 때
그 때 조금씩 느낄 수 있겠지요.

이른 아침
저 숲 위로, 나 무 위로, 들풀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듣고 있자니
차 한 잔 생각도 나고
감성이 더 여리고 새록해 집니다.

저렇게 떨어지는 비를
그대 로 맞고 있는 나무들은, 저 숲의 생명들은
참 의연도 합니다.

절 주위는 얕은 산이라
온 갖 나무들이며 들풀, 꽃들이
피고 지고 피고 지고
잠시 도 쉬지 않고 너가 지면 또 내가 피어나고
핀 꽃이 지 면 또 다른 꽃이 피고 그럽니다.

풀들도 처음 여린 잎의 생김새 와
한참 물이 올라 피어오른 모습은 전혀 달라요.
처음 엔 작은 풀이거니 했는데
비 한 번 오고 시간 조금 지 나고 나면
꼭 나무 처럼 쑥쑥 자라 나를 당황케 하는 녀석들도 있고,

처음엔 예쁘고 귀엽던 것들이
얼마나 생명력이 강하고 번식력이 강한지
무서울 정도 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기도 합니다.

채소밭에 너무 큰 풀들은 뽑아 주는데
한참 풀들을 뽑아주다 보면
뿌리가 얼마나 길고 굵 은 지
세상 위로 올라온 것의 몇 배 이상은 됨직한 뿌리를 보 면
섬짓 이네들의 생명력에 놀라고 두려움 마저 일게 될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뽑아 낸다는 것이
어떨 때는 참 미안하기도 하고
저 녀석들도 다 이유가 있 어 피어오르는 것이고,
저렇게 당당한 뿌리를 만들었을 것인 데 하고 생각하면
풀 뽑는 일도 잠시 머뭇거리게 됩니 다.

그래서 될 수 있다면
풀 도 그대로 함께 자랄 수 있도록 내 버려 둡니다.
너무 커 서 채소들 키를 웃자랄 때가 되면
그런 녀석들만 뽑아서 옆에 놓아둘 뿐
될 수 있다면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저 채소들에게도 살아남기 위한 경쟁력도 될 것이 고,
그 경쟁력이 더욱 채소들을 생명력 있게 가꿀 것이 며,
또한 함께 자라주는 따뜻한 이웃이고
도반이 될 수 도 안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기도 합니 다.

이렇게 여러 가지 풀들이 함 께 자라고
이웃 풀들과 함께 경쟁도 하고
또 함께 살아가려고 서로 서로 도와 주기도 하면서
그렇게 자라난 채소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부실하고 열매가 적을 지 몰라도
그 생명력은 더욱 강인하며
실제로 병해충으로부터의 예방 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채소도 생명인데
우리 사람 들하고 사는 것이 다를 리야 있겠어요?
사람도 마찬가 지 아닙니까.
늘상 온실 속에서 자란 채소들 처럼
온갖 시련과 힘 겨운 경계를 당해 보지 못하고
늘 행복하게만, 늘 풍족하게 만, 늘 보호 속에서만 자란다면
그 사람의 내적인 생 명력은 빛을 잃게 되고 맙니다.

시련과 역경 속에서
실패 도 맛보면서 주춤주춤 거리다가
그래도 딱 버티며 일어서기 를
몇 번이고 반복할 수록
우리들의 내적인 삶의 빛 은 더 생기를 띨 수 있는 법이지요.

본래부터 아무리 큰 시련이며 역경이라도
꼭 우리가 이겨낼 수 있는 만큼만 오고
또 꼭 필 요한 바로 그 때 오지
내가 이겨내지 못할 일이
도저 히 이겨내지 못할 때
찾아오는 법은 없다고 그럽니 다.

채소도 키워 보니까 우리하고 똑같습니다.
처음에 자랄 때 오이에 진딧물이 자꾸 붙길래
손으로 떼어주고 떼어주고 하다가
어디서 주워 들은 얘기를 듣 고 담뱃재 우린 물도 줘 보고
그래도 그래도 끊임없이 끊 임없이 진딘물이 생기데요.

그래서 그래 너도 먹고 살아야 지 싶어
그냥 내 버려 두었지요.
그래도 다행인 건 이 진딧 물도 양심은 있는지
전체 오이를 다 괴롭히는 건 아니고
그 중에 부실한 몇몇 오이에만 가서 붙어 있으니
그래 도 얼마나 고맙나 싶어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었지 요.

우리 사람들이야 어디 그럽니 까.
될 수 있으면 좋은 것, 많은 것 더 가지려고 하고
그것도 모자라 최대한 많은 양을 모아 축적하려고 안달이 지
양심이라는 것이 우리들 욕심 앞에 맥을 못 추지 않아요.
진딧물에게도 배울 점이 있는겁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보니까
진딧물이 많이 붙은 오이에만 개미들이 모여요.
아직도 긴가 민가 하지만
아마도 개미들이 진딧물을 잡아 먹는 가 봅니다.
그러더니 며칠 전 부터는
무당벌레들도 몇몇마리 나와 서는
진딧물 사냥에 나서 주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내가 할 일 을 자기네들끼리 알아서 잘 해 주고 있어요.
그런데 여기다가 진딧물 싫다고 농약 막 쳤어 봐요.
그 농약에 개미들 도 무당벌레도 다 죽었을 거 아닙니까.

사람의 일도 마찬가지지 요.
시련과 역경이, 힘겨운 일이 생기면
그거 이겨내려고 발버둥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 그냥 주저 않아 버 리지만,
그 상황이 아무리 최악이다 싶더라도
대자연 부처 님의 숨결에 일체 모든 것을 내맡기고 살 수 있다면
분명 대자연 우주 법계에서는 해답을 내려 줄 것입니 다.

아무리 관찰해 보아도
자연 은 참으로 신비롭고 또 정확하다는 걸 느낍니다.
정확하 게 그 일이 바로 그 때 정확하게 일어나고 있어요.
필요 한 일이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 생겨나는 겁니 다.

우리들 인간들 머리로
그 위대한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려고만 하지 않고,
자연 과 함께 그 이치에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갈 수 있다면
저 숲 속의 생기어린 생명력과 포근함을
우리 사람 들 내면에서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연의 이치에 모든 것을 내맡 기고 산다는 것은
흡사 '내 일'이 아닌 '부처님 일'로 알 고 산다는 말이고,
자성불 주인공 자리에 일체 모든 것 을 맡기고 산다는 말입니다.
대자연 우주가 그대로 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의 화신이기 때문이지요.

이 대자연의 숨결에
일체 우리의 모든 것을 내맡기고 살면,
그래서 내 일로 잡 고 살지 말고
대자연 법신 부처님의 일로 돌려 놓고 살 면
우리 사람들에게서도
저 대자연의, 저 청청한 숲의 향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osted by 법상



바람이 좋다.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숲을 지나 뺨까지 스치는 바람을
그대로 맞고 있으면 나는 행복을 느낀 다.

매일 매일
공양 때 마다 밥상위로 올라오는
아직은 어린 상추, 케일, 근대, 쑥갓들 하 며,
지난 주 보살님께서 담아주신 물김치들로
요즘은 밥 때가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내 손으로 직접 지은 채소,
비료, 농약, 제초제를 뿌리지 않은 온연한 채소들을 보 고 있으면
자식 키우는 재미가 이런게 아닐까 싶 다.

하기야 자식들이야 키우는 재미는 있다지만
하도 말썽을 피고
다 커서는 부모 속을 얼마나 썩이 나.
이 녀석들은 별 속도 안 썩이면서
하루에 세 번 거스르지 않고 효도를 하니 얼마나 고마운 지...

비료를 안 뿌리니까
이렇게 더디고 실하지 않다면서,
농약을 안 뿌리니까
이렇게 잎이 벌레를 먹었다면서
제초제를 안 뿌리니까
채소에게 갈 양분이 잡초들에게 다 간다면서
이러면 안된다고 고집하시던 마을 분들도
이젠 법당 채소에 탐을 내는 분위 기.

그런데
직접 농사를 지어 보니까
농부들의 마음 백번 이해가 간다.

비료 조금만 뿌리면
열 개 달릴 꺼 스무게 삼십게는 달릴 것이 고,
비실비실 작은 상추잎도 더 커지겠고,
농약 조금만 뿌리면
벌레 안 먹은 보기 좋고 윤기있는 채소를 재배할 테 니...

그 유혹을 그래도 이겨내려면
밝은 지혜, 온전한 앎이 있어야 할 것 같 다.

비료 주어서, 농약 뿌려서 열매가 더 열리면
그만큼 열매의 생명력은 떨어지게 마련이 다.
인간의 손길로 잔뜩 영양제 뿌려주고
외부로부터의, 벌레로부터의 재해를 막아주니
열매는 몸집만 크고 열매가 많아질 지언정
그 내적으로 실하지 못하고 생명력이 떨어지지 않겠 는가.

사람도 고난과 힘겨움을 당해 보고
그 속에서 내면의 힘도 생기는 것이 고,
아프고 고달파 봄으로써
더 튼튼한 건강을 챙기게 되는 것이 며,
외부로부터의 경쟁상대가 있어야
내적으로 더 똘똘뭉치고 실해지지 않는 가.

그러니 그런 생명력 없는 음식 아무리 많이 먹어도
입에는 달고 보기에는 좋을지언정
우리 몸을 그만큼 약화시키고
생명력을 감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 같 다.

요즘이야
채식도 온통 사람들 손으로 생명력을 떨어뜨린
나약하고 겉만 뻔지르르한 채식이고,
육식도 사람들 먹기 위해 억지로 먹이고 길러서
살만 잔뜩 찌워 잡아 죽인 육식이니
뭐 하나 마음 놓고 먹을 만한 것이 없 다.

그것이 다 사람들 욕심에서 나온 어리석은 결과 다.
사람들은 사실 최소한의 보조역할만 하면
채소도 다 우리 먹을 만큼 자라 줄 것이 고,
동물들이야 우리 사람들의 보조도 필요없이
잘 자라게 되어 있을 것이다.

대자연 우주는 그렇게 본래부터
다 갖추고 있는 온전한 하나의 생명체 다.
사람들 욕심만 갖다 붙이지 않으면
그들은 절대 부족할 것 없이 충분히 사람도 먹여 살리고
온 우주 법계가 서로 서로를 먹여 살리도록 되어 있 다.
그것이 법계의 온전한 본래 모습.

대자연 우주 법계 보다
사람이 더 잘난줄 아는 것이 병통이 다.
사람이 더 잘났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대자연의 이치는 덮어두고 사람의 생각대로 행한 다.
그러나 절실히 필요한 자각 하나.
사람의 지식이 더 올바른 것이 아니라
대자연 우주 법계의 지혜가 더 근원적이라는 사 실.

그런데 농업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대량 생산, 대량 축적, 대량 소비라는 허울만 좋 은,
사실은 엄청난 어리석음과 욕심을 동반한
농업혁명이 아닌 농업폐망의 길로 들어서고 있음을 알지 못한 다.

더 많이, 더 큰 것을 더 빨리 얻으려는 욕심으로
대자연 우주를 마구 훼손하여 그 속에서
질소, 인산, 칼리라는 비료의 3요소를 뽑아내어
비료를 만들어 놓았고,

채소, 농작물과 공존하면서
그들의 생명력을 강화시켜주고 상생하고 있는 소중한 해 충들을
아주 몰살시켜 채소만 멀쩡하게 잘 자랄 수 있게
농약들을 개발시켰으며,

땅심을 좋게 하고, 황폐화되고 산성화된 흙을 비옥하게 바꾸어 주는
소중한 야생의 풀들을 잡초라고 몰아붙여
청산가리 1만배가 넘는 독극물인 제초재를 개발시켜 놓고 말았다.

이것이 다 어리석음에서 나오는
법계 전체를 보지 못하고
당장의 욕심만을 추구하고자 하는 탐심과 치심에서 나온 것이다.

본래 좋고 나쁨이 없기 때문에,
좋은 것이 있으면 나쁜 것이 있어야 하 고,
나쁜 것이 있음으로 인해 좋게 될 수 있다는 공존의 원 리
연기의 원리를 모르는 어리석음이 그 바탕이 된 것이 다.

산업혁명, 농업혁명이 사실은
그 근본이 어리석음인 줄 누가 알고나 있겠는 가.

해충이 있어야 익충도 있는 법이고,
잡초가 있어야 채소도 있는 법이다.
좋고 나쁨을 나누어 놓고
그 가운데 좋은 것만을 선택하려고 하면
그것은 벌써 분별심, 어리석음의 결과인 것입니 다.

좋고 나쁨이 나뉘지 않은
법계 전체의 여법한 모습을 보지 않는데서 오는
어리석음인 것이다.

이 어마어마하게 인류가 병든 결과는
결국 인간의 욕심과 어리석음에 기인하는 것이 다.

인간이 욕심으로 축적하려는 욕심 때문에
더 많이 더 크게 대량으로 생산하게 되는 것이 고,
결국 대량생산은 전체 농업을 파괴하고 말았 다.

그렇게 세상이 혼탁해 지니
자연스럽게 육신도 혼탁해 지는 것이고,
따라서 마음도 함께 혼탁해져 가는 것이 다.

이렇게 세상이 다 오염되어 가는
오탁악세의 세상...

그래도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은 있다.
우리 마음 안에...

마음 하나 바르게 쓸 수 있다면
생명력 떨어진 채소도
중생의 육신을 뜯어먹는 육식도
우리 마음으로 다 정화시킬 수 있 고,
그런 음식들의 폐해에서 벗어날 수도 있는 것이 다.

기쁜 마음으로,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우주 법계의 은혜로움에 보은하는 마음으로
기분 좋고, 맛있게 먹는 것.

기왕에 먹을 거라면
몸에 좋지 않은 것이라도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먹는 것.

그것이 보다 근원적인 마음씀이 될 수 있 다.

될 수 있다면
육식 보다는 채식을 해야 하겠고,
술도 될 수 있다면 자재를 하고,
담배도 될 수 있다면 끊어야 하고,
오신채도 될 수 있다면 적게 먹으면 좋 고,
인스턴트 식품, 탄산음료 등도 줄여 나가는 것이 좋은 일이 지만,

꼭 먹어야 한다면
꼭 먹어야 할 때가 생긴다면
이 우주 법계에 감사하는 마음으 로,
그 음식도 나와 둘이 아닌 마음으로
고기들 천도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먹어야 하겠 다.

Posted by 법상




이 곳 감악산에는
온갖 약 초들이 많아
멀리서도 약초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러면 뭐 하나요.
나처럼 까막눈인 사람한테는
그저 스쳐지나치는 들풀일 뿐이니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산 속으로 들 어 갈 것도 없이
우리 절 주변, 집 주변, 들, 밭에 보면
이름모를 수많은 야초들이
모두들 제 자리에서 온전한 삶을 살고들 있습니다.

우리가 이름 붙여
이건 뭐 고, 이건 그냥 잡초고,
이건 좋은 풀, 저건 나쁜 풀,
이건 먹을 수 있고 저건 먹을 수 없고,
나누어 놓았 으니 말이지

사실 그네들 입장에서야
우 리들 하나 하나가 내 스스로는 소중한 것처럼
아주 소중 하고 온전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 겁니다.

세상 어는 것이라도
아무 의미 없는 것은 없어요.
아무리 사소한 들풀이며 잡초일 지라도
모두들 이 법계에서 제 몫을 온전히 해 내고 있습니 다.

그것도 이 우주를 살리고 지구 를 살리고
자연의 섭리에 일체를 내맡기면서
진리와 하나되는 삶 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은 잡초가 잡초가 아니고
이 자연에서 본다면 인간이 유일한 잡초일 것 같습니 다.

인간들만이 유독 자연을 훼손 하고,
나 아닌 것을 자비로써 감싸안지 못하고,
세상을 살기 어려운 곳으로 만들며,
완전한 존재인 세상 만물을
이렇궁 저렇궁 하면서 제 편한 데로 나누어 놓고는
좋 은 것이라거니 싫은 것이라거니 하고 분별을 하면서
취하고 버리는 작업, 살리고 죽이는 작업을 일삼는단 말입니 다.

하기야 인간들 제 스스로도
별 생각 없이 죽고 죽이고 하는 마당에
사소한 풀 한 포기 뽑아내는 거야 일도 아닐지 모르지요.

우리 절 옆 밭에도 봄나물이
서로 고개를 치켜들면서 한창 새로움을 뽐내고 있습니 다.
가끔 유원지나 절에 가 보면
노랗고 파란 옷들을 짝 맞춰 차려 입고 소풍 온
유치원 어린이들의 파릇파릇하 고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 처럼 말이지요.

절 마당 옆에 개나리 밭이 있 었는데
개나리에게 미안하다는 말 건네고
또 염불 한 번 외 주고 는
다른 곳으로 옮겨 심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밭을 만들려고 터를 가꾸는 중입니다.
비료나 농약, 제초제 를 쓰지 않고
또 흙을 숨 못쉬게 만드는 비닐도 쓰지 않으면서
그저 조촐하게 채소를 가꾸어 먹으려고 말입니 다.

개나리를 옮기면서
또 땅 을 들척이면서
흙 속에 지렁이며 작은 벌레들과
또 풀들을 갈아 업다보니 미안한 생각도 많이 들데요.

그래도 과감하게 자를 때는 자 르고
뽑을 때는 뽑고,
때로는 삽질을 하다가 지렁이를 죽 이게도 되더군요.
미안한 마음 관찰하면서
또 가 슴 한켠이 시릴 땐 염불도 외 주면서 작업을 합니 다.

작년 여름인가
법당 앞마 당 잔디밭에 풀이 하도 많이 자라
예초기로 풀을 자르고
또 도량 주변에 난 풀들을 뽑고 있었지요.

그런데 한 법우님께서
왜 풀을 뽑아야 하느냐고,
왜 풀을 잘라 내야 하느냐고 하는 바람에
물론 자르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또 미안하지만 최소 한의 부분에서는
잘라야 하는 경우가 있노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 다.

그러고 보면
농사를 짓더라 도
늘 자연에게 미안한 마음과
또 동시에 감사한 마 음을 항상 가져야겠습니다.

네 생명 없애면서
내 한 끼 식사를 만들려니
미안한 마음 또 감사한 마음이 안 들 겠어요.
그러면서 또 그 마음에 너무 얽매여도 안 되겠지만 말입니 다.

너무 얽매여 버리면 아예 농사 도 지을 수가 없고,
풀 한 포기 생명 살리려고 내 생 명 쓰러져 갈테고,
그것은 어쩌면 그 풀들한테도 잘못하 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풀의 인연이고 풀의 삶이라 면 말이지요.

그래서 농사를 지으면서도 그 렇고
우리 일상에서도 그렇고
최소한의 생명을 희생시키 려고 해야 할테고,
별 생각 없이 함부로 들풀이며 나무 를 잘라내도 안되겠습니다.
그러나 해야 할 때는 공한 마음 으로
최소한의 희생이 따르도록 해야 할 것 같습니 다.

밭에 서서 보니
아직 씨앗 도 뿌리지 않았는데
벌써 자연이 제 스스로 만들어 준 음 식들이 가득합니다.

아직은 이름도 잘 모르고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다 보니
한정되긴 하지만
냉이나 쑥 소리쟁이 민들레 같은 것들이
제법 밥상을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처음엔 나도 겁냈었는데
황 대권님의 '야생초 편지'를 읽고는
어지간한 것들은 먹어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다들 맛이 있고
또 아버님 말씀처럼 봄철에 올라오는 여린 새순, 나물이나 풀들은
거의 다 먹어도 될 만큼 다양하다는 말이 실감이 납니 다.

오랜만에 찾아갔던 고향에서
아버님께서 이것 저것 가르쳐 주시며
봄나물 얘기, 농사 짓는 얘기, 또 자연에 대한 얘기를 해 주시는데
예전엔 왜 이런 소중한 법문에 관심이 없었는지 말입니 다.

농사를 짓고
내 스스로 땅 을 일궈
기른 채소를 먹고, 기른 과일을 먹고
그 땅에서 올 라오는 나물들을 먹어 봐야
비로소 사람 사는 것이 무 엇인지를 알 수 있다고 하십니다.

씨앗을 뿌리고
그 흙을 뚫 고 처음 작은 순이 올라올 때
그 신비롭고 경이로운 모 습을 지켜보면서
우리 아이들도 커야 하고
또 도시인들도 그것을 알 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봄이 되면서
내 인생에 늘 상 오는 봄이지만
이번 봄은 좀 더 새로운 무언가가 꿈 틀거리며 가슴을 칩니다.

봄이 되고 만물이 생기롭게 돋 아나면서
내 삶의 봄도
새롭게 돋아나는 듯 생기롭습니 다.

흙을 만지고
숲 속을 거닐 며
깨어나는 자연에 몸을 맡기면
나 또한 새봄을 맞아
저 심연 깊은 뿌리로부터 물이 오르고
내 삶의 가지며 잎 또한 점차 푸르러 지는 것 같습니다.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