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8.29 마음을 돌리면 모든 상황이 행복!
  2. 2007.12.31 외부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임진강의 낙조]

우리의 삶에서
마음 씀씀이를 배우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공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음을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같은 조건 속에서도
같은 환경 속에서도
어떤이는 지옥이 될 수 있지만
어떤이는 천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사람이
참으로 당당한 수행자입니다.
내 마음인데 내가 자유롭게 써야지
다른 경계에 이끌린다면 그건
내 마음 떳떳한 주인공이 아닌
노예의 나약한 마음일 것입니다.

이 마음을 자유롭게 쓰는 방법,
'마음 돌리기'의 가르침을
깨우치게 된 작은 인연이 있었기에
적어 볼까 합니다.

한번은 논산 군법당 법회에 참석키 위해
은사스님을 모시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법회 시간은 다가오는데
갑자기 차가 밀리기 시작하는데
마음이 얼마나 조마조마하던지
조금만 더 밀리면 법회에 늦을 것 같았습니다.
약 5000명의 장병들이
은사스님의 설법을 듣기 위해
모여있을 것을 생각하니 더욱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런 내 마음과는 다르게
큰스님은 시종 편안하셨습니다.
그러더니 '허허'하고 웃으시면서
"법계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우렁차게 설법하라고 밥때를 챙겨주시는구나"
하시며 밥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항상 만행중에는 도시락을 싸서
다녔지만 시간이 모자라 못 먹고 굶을 때가
다반사였답니다.

그러시고는
"법상아!
수행자는 법계를 써먹을 줄 알아야 되는게야..
일체 법계가 나를 도와주는 도리를 알아야 하는게지.

마음을 어떻게 돌리느냐에 따라
그 어떤 경계도 나를 도와주는 부처님의
나툼이 될 수 있는게지...
마음을 돌리고 나면
모든 것이 내편이야..."

큰스님의 벽력같은 말씀에
조금씩 조바심나는 마음을 돌리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 졌습니다.

그리고 빨리 가야한다는 착을 놓아버리고
밀리는 도로사정에 대해서도
공양하라는 것으로 마음을 돌리고 나니
이내 고요해졌습니다.

옆에 계시던 보살님께서,
10여년 스님을 모시고 다녔지만 한 번도 차가 막혀
법회에 늦은 적이 없었으니
걱정 안해도 될 거라며
안심을 시켜 주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공양을 끝내었는데...
거짓말처럼
차가 뻥 뚤리는 것이었답니다.

은사스님께서는
하하 웃으시며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우리 제자들 공부시키라는 법신 부처님 나툼이라며..
그렇게 소탈한 웃음을 지으셨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돌려
'착'되는 마음을 놓아버리면
비로자나 법신 부처님께서 법계에 나투어
그 고요하게 놓여진 마음이 시키는대로
그저 그렇게
여여하게 되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은 너무도
맑고 향기롭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계에서도
마음을 돌리고 나면
모두가 부처님의 나툼이라는
소중한 가르침을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눈물이 나도록 은사스님이 높아보였습니다.
스님을 향한 감사의 예를 마음속으로
가만히 드려 보았습니다.

그 어떤 외부 경계도
경계가 괴로운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바로 '내 마음'이 괴로운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꾸어야 할 것은 그 외부의 '경계'가 아니라
바로 '내 마음'인 것입니다.
내 마음 돌리면 모두가 천상입니다.
내 마음 돌리면 모두가 행복입니다.

마음 돌리기...
수행자의 당당함이
여기에서 나오는 듯 합니다.

까짓거 하는 일이 잘 안되더라도
부처님께서 더 잘하라고 채찍하시는구나
하고 마음을 돌려 보면 어떨까요?

잘 안 되는 속에 잘 되어짐이 있고
괴로움 속에 행복해질 수 있는 너른 길이 있고
답답함 속에 훤칠하게 뚫려 있는 확연함이 있음을

안 되는 것도 되기 위해 안 되는 것임을

그렇게 믿고 맡기며
내 안에 있는 부처님 참생명
주인공 자리에
모든 것을 내던져 보시기 바랍니다.

마음 공양이 최고의 공양입니다. "아무리 일이 잘 안 풀리더라도
그것에 화를 내고 분별심 낼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좋은 쪽으로 마음을 잘 돌리면
모든 일이 풀리게 되어 있는게야...
법계는 그런 사람을 위해 돌아가기 마련이지..."

은사스님의 말씀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약해 질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상황을 잘 써먹으라는 말씀이십니다.
우주 법계의 주인이 되라는 말씀이십니다.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누님에게 남동생이 크게 다쳤다고 연락이 왔었습니다.
턱뼈가 부러지고 이빨이 나가는 바람에
약 8주의 진단이 나오고 치료비용도
약 2천 만원이 넘게 들것이라고 하며 걱정이었죠.

부모님이 얼마나 걱정하실까 하여
위로를 드리려고 전화를 했답니다.
당연히 망연자실하여 괴로워하실 것을 염려하였으나
전화를 드리자 오히려
나에게 고맙다고 몇 번이고 하시며
우리 아들 법사님이 기도해 준 덕분에
그나마 더 잘못될 수 있을 것이 이 정도였다고 하시며
꿈 이야기를 들려 주셨답니다.

그저 동생이 다치던 날 꿈에 내가 나타났더라고 말입니다.
스님이 된 이후로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는데
그날 마침 꿈에 나타난 것이
동생을 구하려고 한 것이었으리라고 믿으시며
그나마 이 정도인 것에 대해
부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짓고 계셨던 것입니다.

저는 어머님의 전화를 끊고
참으로 얼마나 감사드렸는지 모릅니다.
관세음보살님의 나툼도 이럴 수 있을까 하며...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하신 어머님이시지만
마음만은 이렇게도 순수하구나... 하고 말입니다.

이런 마음을 내지 않고 걱정하시며
가만히 잘 있을 놈이 다쳐 왔다고 한탄을 하며
괴로워한다면 부모님의 마음은
상대적으로 지옥인 것이지만
이렇게 마음을 돌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부처님의 마음을 자꾸 연습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같은 경계가 닥쳐도 그것에 꼼짝 못하고 이끌려
마음을 빼앗기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경계를 돌려서 내가 주인이 되어
슬기롭게 이겨내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내가 우주 법계의 주인이 되어
그 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인연생기한 무상한 경계들을
주체적으로 이끌고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거대한 우주의 인연의 고리에 이끌려
노예의 삶을 살 것인가 하는 중대한 문제인 것이지요.

마음을 돌리면 인생은 괴로움이 아닙니다.
모든 경계에 나의 마음을 올바로 돌리면
모든 경계가 수행의 재료가 되고 ,
나를 도와주는 경계가 되는 것입니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처럼
인생에 있어서의 길흉화복은 언제나 바뀌게 마련입니다.
또한 지금 당장에는 불행이라 느끼는 것도
마음을 어떻게 돌리느냐에 따라
보다 낳은 행복을 위한 과정이 되어질 수 있습니다.

어떤 조건 속에서도
마음 닦는 이의 마음은
언제나 고요하고 평온합니다.



Posted by 법상




경계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그대로 텅 비어 고요합니다.
여여하며 여법합니다.

그런 경계가 좋고 싫은 이유는
경계에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 마음에 분별이 있는 탓입니다.

경계에 휘둘리는 마음 또한
내가 만들어낸 것이지
경계는 본래 휘둘리고 말고 할 것이 없습니다.

맑은 하늘에
인연 따라 구름이 모이고 흩어지듯
텅 비어 고요한 본래자리에
인연 따라 이런 저런 경계가 잠시 모이고 흩어지는 것일 뿐입니다.
좋고 싫은 경계가 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무분별의 경계가 꿈처럼 잠시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경계가 일어날 때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있는 그대로의 경계가 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모인 경계를 가만히 두지를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편견없이 바라보지를 못합니다.
거기에 이름을 붙이고, 모양을 짓고
좋고 나쁜 분별을 일으킵니다.

연이어 좋은 분별엔 애착[탐(貪)]의 마음을,
나쁜 분별엔 성내는 마음[진(嗔)]을 일으킵니다.
그런 두 가지 분별이 생기는 연유는
본래 나도 경계도 모두 공하고 허망함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치(癡)] 때문입니다.
그 때부터 괴로움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경계는 아무런 잘못이 없음을,
아무런 분별이 없음을
밝게 깨쳐 알 수만 있다면 거기에 휘둘릴 것도 없습니다.

한 여름에는 너무 더워 짜증이 나고 화도 나고 그럽니다.
그러나 ‘더위’는 그냥 더위일 뿐입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더위’일 뿐
좋고 싫다는 고정된 분별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더위는 나쁘고 싫은 것이라든가
좋은 것이라든가 하는 분별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텅 비어 고요한 더위라는 경계에
우리는 온갖 분별을 부여하고
그렇게 스스로 부여한 분별 때문에 괴로워 합니다.

한 여름에 땀을 뻘뻘흘리며 일을 할 때는
더위라는 경계에 ‘짜증난다’ ‘미치겠다’ ‘쪄죽겠다’ 하며
나름대로의 싫은 마음을 덧붙입니다.
그러나 애써 찾아간 사우나에 들어가면
그보다 더한 더위에서도 ‘시원하다’ ‘피로가 확 풀린다’
하고 좋은 마음으로 분별을 몰아갑니다.

본래 ‘더위’라는 경계는 텅 비어 고요하기에
좋을 것도 싫을 것도 없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더위’ 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서 좋고 싫다는 분별을 일으키고
그렇게 스스로 만들어 놓은 분별 때문에 또 한번 괴로워합니다.

내 마음이 좋고 싫은 것이지
경계가 좋고 싫은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모든 경계는 이처럼 아무런 잘못이 없고, 분별이 없지만
우리 마음은 작은 경계에도 끄달리고 휘둘리고 그럽니다.
그러니 제 혼자 만들고 그렇게 만든 분별로 인해
제 혼자 괴로워 하고 그러는 기가 막힌 세상입니다.

그러니 깨달은 이가 우리를 바라본다면
얼마나 우습겠습니까.
얼마나 기가 막히겠는가 말이지요.

어떤 사람은 밤하늘의 달을 보면서
한없이 북받쳐 오르는 우울함에 어쩔 줄 몰라하고,
또 어떤 사람은 달을 보면서 행복해 합니다.
똑같은 달을 보면서 괴로워하는 사람, 적적해 하는 사람,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사람, 기뻐하는 사람 등 제각각입니다.

하늘의 달은 아무런 분별도 없고 잘못도 없습니다.
그냥 떠 있는 달일 뿐이지만,
우리 마음은 과거 달과의 연관된 기억이나 추억들로 인해
좋고, 싫고, 우울하고, 그리워하는 등의 분별을 일으킵니다.

육체적인 노동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일이라고 생각하면 힘들고 고된 일이 되지만,
운동 삼아 하는 일이라 생각하면 오히려 기쁜 마음입니다.
일은 힘든 것이고 운동은 즐거운 것이지만,
사실 이 두 가지는 모두 똑같이 육신을 움직이는 것일 뿐입니다.

애써 운동을 하느라고 헬스크럽에 가서 땀을 뻘뻘 흘리며
육체적 한계를 느낄 만큼 무거운 역기를 들고도 힘든 줄 모르고,
샤워 후엔 그렇게 개운하고 시원하여 힘이 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을 할 때면 그보다 더 가벼운 것을 들고도
쉽게 피곤해지고 노곤해져 일이 끝나면 녹초가 됩니다.

같은 육체적 노동이지만
마음 따라 일도 되었다가 운동도 되는 것입니다.
마음 따라 괴로워 녹초가 되기도 하고, 되려 힘이 펄펄 나기도 합니다.
육신을 움직인다는 것은 똑같은 것입니다.
경계는 같지만 마음에서 일이다, 운동이다 분별하여
더 힘이 나게도 하고 녹초가 되게도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을 보고 좋은 사람, 미운 사람 하고 분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누구라도 그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미운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밉다고 그 사람이 미운 사람하고 고정된 것이 아니며,
내가 좋다고 그 사람이 좋은 사람하고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다 내가 만들어 놓은 분별일 뿐입니다.

그렇게 스스로 만들어 놓고는
좋은 사람 보면 애착을 하여 헤어짐을 괴로워하고,
미운 사람 보면 괴로워하여 만남을 괴로워하고,
그렇게 제가 만들어놓은 틀에 제가 걸려 괴로워합니다.
기막힌 중생놀음이라는 것이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누군가에게 욕을 얻어먹으면 기분이 상합니다.
그러나 ‘욕’에도 좋고 싫음이 본래 없습니다.
내가 욕을 얻어먹거나
나와 가까운 사람이 욕을 얻어먹으면 기분이 상하지만,
미운 사람에게 누군가가 욕하는 것을 들으면 되려 통쾌합니다.

나와 얼마나 가까운가에 따라,
즉 아상이 얼마나 큰 대상인가에 따라
같은 욕설에도 우리 마음은 천차만별로 변화합니다.
그러니 ‘욕’ 그 자체가 좋거나 싫은 것은 아닙니다.
영화에서 나오는 그럴듯한 욕은 참 듣기 좋기도 합니다.
본래 정해진 바가 없기에
인연 따라 좋았다가 싫었다가 하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경계가 이와 같을진데
어찌 좋고 나쁨이 따로 정해져 있겠습니까.
똑같은 경계일지라도
좋다고 분별할 수도 있고, 나쁘다고 분별할 수도 있으며,
사랑할 수도 있고, 미워할 수도 있으며,
힘 빠지는 일일 수도 있고, 힘 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 모든 경계에 뭣하러 끄달립니까.
왜 아무런 잘못도 없는 경계를 탓하는가 말입니다.
‘괴로움’ 하고 딱 정해졌다면이야, 절대적 괴로움이라면이야
어쩔 수 없이 괴로움을 당해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 앞에 펼쳐지는 그 어떤 괴로움도 절대적일 수는 없습니다.
괴로움이기도 하고 즐거움이기도 한 것입니다.

선택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괴로움도 즐거움도 내가 선택하는 일인 것입니다.
경계는 아무런 분별도 잘못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택 또한 하나의 분별입니다.
그러니 그냥 놓아버리면 됩니다.

그냥 내버려 두면 그대로 자연스러운 세상입니다.
아무것도 잡지 않으면 그대로 고요한 세상입니다.
좋고 싫고 분별하지 않으면 그대로 해탈의 경계인 것입니다.

가만히 있는 경계를
애써 좋다 나쁘다 분별하고,
행복하다 괴롭다 분별하여,
좋다고 잡으려 애쓰고 싫다고 버리려 애쓰느라
우리의 삶이 많이 번거로워 졌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면 평화로운데 말입니다.
그냥 놓아버리면 본래자리 그대로인 것입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경계를 애써 탓하지 마십시오.
조건이 별로라고, 환경이 별로라고
부모님이 별로라고, 남편이 별로, 친구 성격이 별로라고 탓하지 마십시오.
그들에게는 절대 아무런 잘못도 없습니다.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나에게로 돌릴 일입니다.
내 마음이 변하면 경계는 따라서 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싫은 경계를 잡으면 괴로움이고,
좋은 경계를 잡으면 즐거움이지만,
그 마음 놓면 해탈입니다.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