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말라야 명상순례' 카테고리의 글 목록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상주 대원정사 일요법회(13:30), 부산 목탁소리 토요법회(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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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말라야 명상순례 40

개미 누들 수프

안나푸르나를 오르던 날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걷고 또 걷다보니 뒤늦게 점심식사를 하지 못한 생각이 났다. 배시계는 꼬륵꼬륵 자명종을 울려댄다. 한참을 걷다보니 작은 간이식당이 보여 반가운 마음에 요기를 하기로 한다. 딱히 메뉴랄 것도 별로 없지만 그래도 이 허름하고 지저분한 식당에서 특별한 것을 주문할 생각도 없고 또 시간도 없고 해서 그저 간단히 ‘누들스프’라고 쓰여 있는 우리말로 ‘라면’을 주문한다. 기다리다가 잠시 주방을 구경하러 들어갔더니 눈에 들어오는 풍경! 설거지도 하지 않은 아마도 이전 사람에게 음식을 해 주던 것 같은 냄비에 그대로 물을 붓고 끓이기 시작하는게 아닌가. 순간 황당한 마음이 일어났지만 인도에서 그랬듯 이 정도야 그냥 지켜봐주며 웃어넘기기로 한다. 여기는 네팔이 아닌가...

히말라야의 별, 깊이 바라보다

언젠가 히말라야 산길을 걷다가 촘롱이라는 산중 마을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저녁을 먹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밀린 빨래도 해서 널고 촘롱의 밤 공기에 몸과 마음을 씻으러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아! 또 한 번의 내 인생의 클라이막스가 등장한다. 아! 나는 이런 밤하늘을, 이런 별들을, 이런 은하수를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지리산에서 보았던, 그리고 설악산 중청산장과 지난 가을 비온 뒤 강원도 양구에서 보았던 별들을 다 합쳐놓은 것보다 더 밝고 초롱초롱히 빛나는 별들을, 그것도 몇 배는 많은 숫자를 지금 한 눈에 바라보고 있다. 별빛이 이럴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처음 깨닫고 있다. 어떻게 저토록 많은 수의 별들이, 쏟아져 내리지 않고도 저렇게 떠 있을 수 있는지. 내 생에 이렇게 많은 별들의 숫..

야생의 숲길을 걷는 즐거움 - 안나푸르나 순례(10)

길을 찾고 얼마 안 가 구루종(Ghurjung, 2050m) 마을에 도착. 잠시 롯지에서 평소에 잘 안 먹던 콜라를 한 병 시켜 의자에 앉아 에둘러 돌아온 길을 바라본다. 이렇게 휘휘 돌아 올 일은 아니었는데, 또 그저 산 중턱으로 난 소로길을 따라 오기만 했어도 비교적 평탄한 길로 무난히 올 수 있었는데, 저 깊은 계곡 아랫마을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온 것을 생각하니 꼭 우리 인생을 보는 듯 하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길을 걷는다. 다시 저 아래 계곡 킴롱코라(Kimrong Khola)까지 내려갔다가 다리를 건너 다시 저 건너편 산 위까지 올라가야 한다. 이제 좀 익숙할 법도 한데,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30여 분을 내려가고 다시 느릿느릿 1시간 이상을 걸어 오른다. 건너편 산 ..

나를 돕는 신비로운 존재들 - 안나푸르나 순례(9)

촘롱은 안나푸르나 지역에서 가장 크고 번화한 마을이다. 게스트 하우스도 많을 뿐 아니라 따뜻한 물이 부족하지 않아 샤워를 할 수도 있고, 어떤 롯지에는 탈수기도 있어 빨래를 빨리 말려 입을 수도 있다. 전기 사정도 좋아 전기제품이나 특히 카메라 건전지 충전을 마음껏 할 수도 있다. 처음 촘롱 입구에서 본 롯지에는 한글로 김치찌개, 김치, 된장에 심지어 백숙까지 한다며 한국인을 잡아끄는 곳도 있었다. 내가 머문 롯지에서도 네팔 닷밧을 시켰더니 한국인이라고 특별히 김치를 추가로 얹어주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많이 비싸지만 전화를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마을이기도 하다. 그런데다 촘롱을 넘어서면서 급격하게 뛰는 물가를 생각했을 때 촘롱은 모름지기 모든 여행자들이 마지막으로 문명의 혜택을 큰 부담없이 누릴 수 ..

하산, 아! 이 낯선 외로움 – 안나푸르나 순례(8)

히밀라야 일출을 기다리며 그 어떤 날보다 일찍 눈을 뜬다.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서 보는 일출, 그것을 어둠이 채 거치기도 전부터 하나하나 누려본다. 롯지는 여전히 어둡고, 하늘의 별은 선드러지게 빛난다. 후레쉬를 켜고 롯지 뒤편 작은 언덕에 오른다. 아직 밝아지기 전인데도 이 찬 공기를 마다않고 많은 여행자들이 눈 부비며 이불을 막차고 나와 있다. 이 곳에서의 일출이나 일몰이라는 것은 사실 직접 태양이 산 너머로 뜨고 지는 것을 보는 게 아니라 저 머얼리 어딘가에서 뜨고 지는 태양이 그 빛을 설산의 영봉들에게 나누어주는 붉은 의식을 보는 것이다. 태양이 떠오르는 순간 이 대지위 가장 높은 곳부터 붉은 은총이 시작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가장 높은 봉우리 끝자락에 붉은 점이 찍히다가 서서히 그 점이 아내..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서의 하룻밤 – 안나푸르나 순례(7)

4,000고지, 양떼들의 존재감 MBC를 지나 ABC로 가는 길은 이번 트레킹 중에서도 최고의 클라이막스다. 절정이란 말은 이럴 때 하는 것! 이 길은 사람의 길이 아닌 대자연의 길이요, 이 지구가 아니 어쩌면 우주 저 끝의 알 수 없는 근원에서부터 잉태된 태초부터의 선물일런지 모르겠다. 대 장엄의 서사시요,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소름끼치는 하모니가 지금 내 앞에서 이렇게 연주되고 있다. 지구상에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타박타박 발걸음을 옮기다 말고 몇 걸음 못 가 이내 걸음을 멈추고 서서 '아!' '아!' 하는 탄성을, 내가 지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이 모든 것을 느끼는 어떤 존재가 내 입을 빌려 마구마구 쏟아내고 있는 듯 하다. ABC가 가까워지도록 바람이 약간 서늘할 뿐, 예상했던 것..

새로운 행성,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 – 안나푸르나 순례(6)

데우랄리 계곡을 따라 베이스캠프로 데우랄리 깊은 계곡에 날이 밝는다. 바로 곁에 계곡이 있어 그런가, 아니면 그만큼 높이 올라와서 그런가. 데우랄리는 지금까지 묵은 곳 중에서 가장 춥고 바람이 많은 곳이다. 어지간히 바람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이 곳 계곡의 골바람은 한겨울 살을 에는 그것처럼 차다. 밤새 꿈속에서도 들려오던 계곡 물소리, 바람소리와 짧은 작별을 고하고 이제 이번 트레킹의 목적지라 할 수 있는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ABC, Annapurna Base Camp, 4130m)와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MBC, Machhapuchhare base camp, 3700m)를 향해 발을 옮긴다. 계곡의 아침은 늦다. 완만한 경사의 오르막을 한참 오르도록 저 위에 봉우리에서만 밝게 빛나는 햇살은 내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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