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경전에는 탐욕에 관한 많은 가르침들이 등장한다. 우리 마음을 오염시키는 세 가지 삼독심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 또한 탐욕심이다.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괴롭게 하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증일아함경의 말씀을 들어보자.


“마음이 탐욕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중생들이 무거운 짐을 지게 된다. 탐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한 무거운 짐을 벗을 수는 없다. 짐을 지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병이요, 짐을 벗어버리는 것은 최상의 즐거움이니 무거운 짐을 버릴지언정 새 짐을 만들지 말라.”


탐욕하고 욕망한다는 것은, 공연히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일을 뿐이다. 우리는 지금 이대로도 이미 충분하고 충만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삶은 원만하게 이어진다. 하루 세 끼니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고, 애쓰지 않더라도 맑은 공기를 충분히 들이마실 수 있다. 걷고 싶으면 걸을 수도 있고, 살고 싶어서 이렇게 살아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이처럼, 지금 이대로 충분한 존재가 갑자기 무언가를 더 가지고 싶어진다. 더 이상 지금 이대로를 가지고는 부족하다고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다. 남들이 가진 좋은 집과 차와 소유물들이 내가 가진 것보다 더 좋아보이기 시작한다. 그 때부터 탐욕과 욕망이라는 무거운 짐을 스스로 짊어지게 되는 것이다.


탐욕과 욕망의 짐을 스스로 짊어지기 시작하면서 삶은 고되고, 힘들며, 끊임없이 소유하고 쟁취해야 하는 투쟁의 장이 되고, 남들과 싸워 이겨야하는 생존경쟁의 장이 되고 만다. 한 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된다. 빨리 더 많은 것을 채워야 하고, 가져야 하고, 빼앗아야 한다. 남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야 하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해야 한다. 삶이 힘겨워지고, 할 일이 많아지는 것이다. 이 얼마나 무거운 짐인가?


그래서 화엄경에서는 이렇게 설하고 있다.


“고통의 원인은 탐욕이다. 세상의 즐거움이란 결국 고통 아닌 것이 없다. 탐욕은 어리석은 사람이나 하는 것, 모든 고통과 근심은 바로 탐욕에서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 모든 근심과 고통은 바로 탐욕에서 생기는 것이다. 아무 문제 없던 자연 상태,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는데, 남들과 비교하기 시작하고, 남보다 더 많이 가지려는 탐욕을 가지기 시작하면서부터 고통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성실론에서는 이렇게 설한다.


“중생은 생각이 어리석어 탐욕을 즐거워한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탐욕이 바로 괴로움인 줄 알기 때문에 수시로 끊어버린다. 탐욕을 욕망으로 채우려고 한다면 그것은 마치 소금물을 마셔 더욱 갈증이 심해지는 것과 같다. 탐욕을 없앤다면 괴로움은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무언가를 가지고 싶고, 얻고 싶고, 되고 싶다면 그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것을 하고 싶다면 최선을 다해 그것을 하라. 다만 ‘절대로’, ‘반드시’ 그것을 해야 한다거나, 그 결과를 얻지 못하면 절대 안 된다고 여기지는 말라. 최선을 다해 그것을 하되, 결과는 법계의 뜻에 맡겨 보라. 그것이 바로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는’ 것이며, 탐욕 없이 행하는 것이다.


이처럼 탐욕과 욕망을 버리라고 해서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하되, 함이 없이 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탐욕이 괴로운 줄 알아 수시로 끊어버리는 것이다. 집착 없이 행한다면 괴로움은 저절로 사라져 갈 것이다. 지금 나는 탐욕과 욕망으로 이 일을 행하고 있는가? 아니면 집착 없이 행하고 있는가를 늘 살펴 보라.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