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부쩍 가난과 청빈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며 또 돌아보게 된다.
가난한 삶, 청빈한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에게 있어 아니 나에게 있어 가난의 의미는 무엇이었는가.

가난이란
모든 수행자들의 삶에 있어,
아니 모든 근원적인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다.

가난한 삶이란
곧 근원적인 삶을 의미하며,
‘나’ 자신과 소탈하고 순수하게 대면할 수 있는
직접적이고 가장 체험적인 수행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가난이야 말로
삶을 보다 윤기있고 지혜로우며
향기롭게 또 맑게 가꾸어 갈 수 있도록 하는
소중한 체험이자 요소인 것.

가난해야 그 속에서 맑음과 청정이
또 참된 지혜가 움튼다.
부유한 사람이 수행하기 보다
가난한 사람이 수행하기 훨씬 더 쉽고,
부유한 사람이 지혜롭기 보다
가난한 사람의 속 뜰에서 더 충만한 지혜가 움트는 법.

가난해야 수행하지
부유하면 수행은 벌써 멀어지고 만다.
가난과 수행
이것은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이다.

가난했을 때
그 안에서 법계를 체험할 수 있고,
이 대자연의 경이로움이며
참 진리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다.

가난 속에서
또 저 대자연에 기댄 맑은 의식 속에서
지혜가 움트고 사랑이 움트지
저 빌딩 숲 속에서
거대한 부유함 속에서
참되고 맑은 지혜와 사랑은 그 생명력을 잃고 만다.

인류의 모든 성인들은 다 가난했다.
어쩔 수 없는 가난이기 보다는
극복해야 할 과제로서의 가난이기 보다는
그들의 삶의 지혜의 근원으로서의 가난이었다.

가난을 가까이 하고 살수록
우리 안의 지혜와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다.
가난하게 살자.
가난하게 살고 있는지 비추어 보고 살자.

그렇다고 가난한 삶이란
단지 외적인 모습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돈’ 없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돈이나 경제력 같은 단어가
‘가난’이라는 단어를 좌지우지 할 만큼
그렇게 영향력 있는 요소가 못 된다.

가난은 돈이나 경제력과 상관없다.
많이 소유하고 있더라도
우리는 그 속에서 가난해질 수 있다.
아무리 적게 소유하더라도
그 속에서 부유할 수 있는 것 처럼...

어쩌면 작은 의미에서 물질적 가난이 필요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도 나도 물질적 가난을
구하려고 애써 좋은 조건의 직장을 그만둘 필요는 없다.

물론 물질적 가난은 모든 이들에게 있어
맑고 지혜로운 삶을 누리도록 해 주는
참 좋은 요건이 된다.
그러나 그것이 절대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모르긴 해도 우리에게 있어
‘가난한 삶’은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설사 물질적 풍요와 부를 가지고 있더라도
우린 그 속에 살면서 가난해 질 수 있어야 하는 것.

그것은 어렵지만 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많이 소유하고 있더라도
그 소유에, 그 부와 풍요에 집착하지 않는 것.

다시말해 삶 그 자체가 가난해야 참된 가난이지
물질적으로 가난한 것만이 참된 가난인 것은 아니라는 말.
물질적으로 가난해도
마음 속에 욕심과 욕망을, 또 물질적인 부를 원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결코 가난하지 않다.

그러나 비록 많이 소유해도
그 사람의 말과 행동과 생각이 가난할 수 있다면
그는 실로 가난한 것이다.

삶의 모습에 있어 가난이란
말하자면 청빈 같은 것인데,
마음에는 바라는 것이 없이 자족할 수 있어야 가난이고,
행동에 있어 절약하고 절제하며
최소한의 소비로 살아갈 수 있어야 참된 가난이라 할 수 있다.

많이 소유해도 소박하게 살 수 있다.
배고플 때 인연따라 내게 온 공양을 먹으면 되는데
욕심이 시키는 대로 밥이 있는대로 불구하고
더 맛있고, 더 많고, 더 비싼,
더 좋은 음식, 더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려고 한다면
이것은 소박하게 사는 것도, 가난하게 사는 것도 아니다.

칫솔질을 할 때라도
한 컵으로 할 수 있는데
수돗물을 콸콸 쏟아 붓는다면
이 사람은 가난한 삶과는 거리가 멀다.

추우면 있는 옷 챙겨 입으면 되는데
더 비싸고, 더 좋고, 더 예쁜 옷을
그것도 몇 벌씩, 해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계절이 다가올 때마다
새로 사 입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언젠가 어릴적 아버님께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무슨 기업의 회장이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을 마시고는
남은 소주를 호주머니에 넣고 가더라는 말씀.

이런 사람이 요즘에는 있는가 싶은 마음이 들지만
이런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참으로 부유하면서도 가난한 사람
맑은 가난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아끼고 절약할 줄 아는 마음 그리고 실천,
보다 단순하고 소박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
욕심과 욕망 보다는
정말 필요한 작은 소유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에 집착하지 않아
언제든지 누구에게라도 베풀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은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맑은 가난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수백억을 가지고 있더라도
가난에서 오는 참된 지혜와 미덕을
그대로 안으로 움트게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부유한 물질들은
그 사람 것이 아니라
법계의 것이고 우리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늘 가난을 꿈꾼다.
내가 늘 부유하게 살지만, 그래서 항상 부끄럽지만
내 안에서는 늘 맑은 가난을 꿈꾸고 있다.

우리들 모두가,
이 세상의 모든 이들이
맑은 가난을 꿈꾸며 실천할 수 있을 때
바로 그곳이 극락이고 천상이 아니겠나.

그랬을 때
이 세상은 항상 충만한 곳이고,
넘치는 곳이 될 것이다.

우리가 삶 속에서
가난을 실천할 수 있는 길은 부지기수다.

‘최소한의 필요’의 영역을 정하고
그 이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아낌없이 다 베풀어 주는 것도 가난의 실천이며,
무엇보다 삶이 절약과 절제되어 있어야 가난이고,
마음에 바라는 것 없이 만족할 때 참된 가난이라 할 수 있다.

꼭 필요한 곳이라면
전 제산이라도 다 베풀어 줄 수 있어야 하겠고,
꼭 필요하지 않은 곳이라면
물 한방울 낭비하는 것에도 부끄러워 할 수 있어야 하겠다.

이 가을...
가난에 대해 생각해 보고
내 안의 가난에 대해 돌이켜 본다.

또 우리 모두가
가난에 대해
내 삶의 가난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비추어볼 수 있었음 하고 바란다.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