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삼천사]

일상에 파묻혀 있을 때,
삶의 진지한 관찰을 놓치고 있을 때,
깨어있음의 빛이 희미해 질 때,
나는
좀 더 깨어있기 위해 애쓰곤 한다.

그러나 가만히 관찰해 보면
깨어있기 위해 애쓰는
바로 그 애씀이
나를 더욱 희미해지게 만드는 주범이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애쓸 때
노력할 때,
아무리 그것이 깨어있음을 위한 것이고,
부처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나의 깨어있음을 더욱 방해하곤 한다.

깨어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깨어있는 수행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사실은 전혀 수행자답지 못한 생각이 아닐까.

깨어있음은
노력이나 애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깨어있기 위해 노력하고 애쓰게 되면
마음은 그 노력으로 인해 더욱 힘겨워짐을 느낀다.

노력하고 애쓴다는 것은
내 스스로 난 아직 덜 깨어있단 말이고,
그러니까 더 깨어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의 나와
깨어있음의 이상이 실현되는 순간의 나를
분리시키는 일일 뿐이다.

그런 분리가 자리잡고 있는 동안
나는 전혀 깨어있지 못한
희미한 정신으로 남아 있게 된다.

노력할 때
마음도 평화롭지 못하다.

깨어있음은,
알아차림은 노력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알아차리는 것일 뿐.
그저 바라보는 것일 뿐.

깨어있고자 하는 노력은
오히려 나를 깨어있음과 멀어지게 한다.

깨어있는 수행은
잘 하고
못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알아차리고 바라보는 것일 뿐.

관 수행이 잘 될 때는
'잘 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전에
그저 그렇게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잘 안 될 때는
'잘 안 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다만 바라보면서 그렇게 안 되고 있음을 보고 있으면 그 뿐.

그렇게 분명하게 보고 있다면
그건 잘 되는 것도 아니고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잘 된다'고 생각하면 벌써
잘 된다는 분별이 들어갔다는 말이므로
그건 잘 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수행이란
잘 하고 못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할 뿐'
'다만 바라볼 뿐'

수행이 잘 된다는 생각,
잘 안 된다는 생각,
그 생각이 깨어있음을 방해하는 주범이다.

잘 되고
잘 안 된다는
바로 그 생각을 놓으라.
그 생각을 지켜보라.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