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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상주 대원정사 일요법회(13:30) 부산 목탁소리 토요법회(13:30) www.moktaksor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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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온과 식온무아 - 오온(7) (5) 식온과 식온무아 식온의 의미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안이비설신의라는 주관계가 색성향미촉법이라는 객관계를 만나 접촉할 때 수상행이 일어난다고 했으며, 십팔계에서는 안이비설신의가 색성향미촉법을 만나면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이 일어난다고 했다. 즉, 안이비설신의가 색성향미촉법을 만날 때 수상행식이 함께 일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수상행식은 늘 함께 일어난다. 여기에서 식온(識薀)이란 일반적으로 식별, 분별, 의식, 알음알이, 대상을 아는 마음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심의식(心意識)이 동의어라고 보았을 때, 식온은 쉽게 말해 ‘마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마음은 ‘대상을 아는 것’이며, 의식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대상을 의식하고 알 때는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이 아니라, 자.. 공감수 2 댓글수 0 2015. 3. 24.
  • 행온과 행온무아 - 오온(6) (4) 행온과 행온무아 행온의 의미 행온은 의지 작용, 형성 작용을 말한다. 무언가를 행하려는 의지, 의도, 의향 등을 나타내는 것이며, 하고자 하는 욕구나 바람의 의미도 담고 있다. 이것은 업을 일으키는 형성력이 된다. 그래서 업(業)과 행(行)이라는 용어는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십팔계가 촉하면 수상행이 나타난다고 했는데, 눈이 무언가를 보았을 때 수온으로 좋고 나쁜 느낌을 느끼고, 상온으로 그것이 무엇인지를 개념화하여 사유하고 나면, 행온에서 좋은 것은 더 가지고 싶고, 싫은 것은 멀리하고 싶은 의지, 욕구가 일어나는 것이다. 배고픈 상황에서 눈으로 사과나무를 보았을 때, 수온은 배가 고프다는 인연 따라 그 사과에 대해 좋은 느낌을 일으키고, 상온은 그것을 먹을 수 있는 ‘사과’라고 개념 지어.. 공감수 4 댓글수 0 2015. 3. 15.
  • 상온과 상온무아 - 오온(5) (3) 상온과 상온무아 수온과 상온의 상호피드백 만약에 이처럼 고정된 실체로써의 ‘느낌’이 정해져 있지 않다면, 우리는 왜 좋거나 싫은 느낌을 느끼는 것일까? 싫은 느낌을 느끼며 괴로워하고, 좋은 느낌을 느끼며 행복해하는 것일까?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좋은 느낌도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안다면 거기에 얽매이고 집착하며 애착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싫은 느낌도 고정된 것이 아님을 안다면 거기에 얽매여 괴로워하고 아파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의 모든 대상에 대해 특정 느낌을 투영시키고 개입시킨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싫은 느낌이 일어나는 것은 그 대상 자체에 실체적인 ‘싫은’ 어떤 것이 있어서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알고 있던 다른 어떤 대상에 비해서 싫은 것일 뿐이.. 공감수 1 댓글수 0 2015. 3. 1.
  • 수온과 수온무아 - 오온(4) (2) 수온과 수온무아 수온의 의미와 종류 앞에서 십팔계가 ‘촉’하게 되면 그에 따라 수상행이라는 오온이 연기한다고 했다. 안이비설신의라는 주관계가 색성향미촉법이라는 객관계를 만나면 그에 따라 식과 수상행이 생기는 것이다. 여기에서 안이비설신과 색성향미촉은 ‘색’이며, 의와 법은 ‘마음’이다. 즉, 안이비설신이라는 우리 오관에서 각각 색성향미촉의 대상을 만날 때 수상행식이라는 마음작용이 생겨나며, 의와 법이 만날 때 즉 마음 내부에서도 수상행식이 일어날 수 있다. 눈으로 무언가를 볼 때, 귀로 어떤 소리를 들을 때,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 보고, 몸으로 촉감을 느낄 때 우리는 그 대상에 대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좋거나 나쁜 어떤 특정한 느낌으로 받아들인다. 비오는 날에 대해 어떤 사.. 공감수 4 댓글수 0 2015. 2. 25.
  • 오온과 오온무아, 색온 - 오온(3) 2. 오온과 오온무아 앞 장에서 삼법인의 제법무아를 살펴보면서, 무아야말로 초기불교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며, 무아는 곧 연기, 중도, 공과 다르지 않은 개념이라고 했다. 부처님께서는 전 생애에 걸쳐 이 무아의 가르침을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편의 가르침을 전해주셨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오온의 가르침이다. 내가 없다고 하는데 도대체 왜 내가 없다는 말인가? 이렇게 몸뚱이도 있고, 생각하고, 느끼고, 의도하며, 의식하는 마음도 분명히 있는데 왜 무아라고 하셨을까? 바로 그 답변으로 설하신 가르침이 오온이다. 무조건 ‘내가 없다’, 무아다 라고 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세부적으로 분석해 보면 어떤 요소들로 나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그 각각의 부분들이 왜 실체가 없.. 공감수 2 댓글수 0 2015. 2. 22.
  • 오온의 성립 - 오온(2) (2) 십팔계와 촉에서 생겨난 수상사 그런데 이 십팔계의 삼사화합을 통해 ‘무언가가 있다’는 의식인 ‘촉’이 나타나게 되면, 이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 즉 촉에 의해 수상사(受想思)가 생겨난다. 여기에서 수상사는 곧 오온의 수상행(受想行)을 의미한다. ⟪잡아함경⟫306경에서는 “안과 색을 연하여 안식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하는 것이 촉이다. 촉에서 수상사가 함께 생겨난다.”라고 말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와 성을 연하여 이식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하는 것이 촉이며, 촉에서 수상사가 함께 생겨난다. 나아가 의와 법을 연하여 의식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하는 것이 촉이며, 그 촉에서 수상사가 함께 생겨난다. 안이비설신을 서로 연결하고 종합하여 통합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의’라고 했으니,.. 공감수 3 댓글수 0 2015. 2. 10.
  •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실체 - 오온(1) 4장. 오온 1. 오온의 성립 (1) 십팔계와 촉 – 우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실체 우리는 앞 장에서 십팔계가 성립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6가지 주관자아계와 6가지 객관대상계 그리고 6가지 의식계가 서로 계역을 이루어 나뉘어 져 있는 의식상태를 십팔계라고 한다고 했다. 이렇게 각각 6가지 주관계, 객관계, 의식계가 계역을 이루며 나뉘어 져 있다가 이 세 가지 계역이 합쳐져 접촉을 하는 것을 ‘촉(觸)’이라고 한다. 이 세 가지는 언제나 함께 모여서 나타난다. 눈으로 색을 보게 되면 안식이 생기는 것이다. 이처럼 주관인 눈과 객관인 색, 그에 따른 본다는 의식인 안식이 하나로 합쳐졌을 때 우리는 비로소 무언가를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세 가지 계가 각각 존재하고 있다가 세 .. 공감수 1 댓글수 0 2015. 2. 5.
  • 분별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보라 - 십팔계(2) 분별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보라 여러 사람이 똑같은 거리를 걸었을지라도 사람에 따라 그 거리에서 본 것은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똑같은 소리를 듣고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으며, 같은 음식의 향기를 느끼면서 좋다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이처럼 육입처는 외부에 있는 육경이라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식대로 인식한다. 자기 마음에 끌리는 것만을 인식하는 것이다. 육근이 육경을 인식할 때 육근을 ‘나’라고 착각하는 육입처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육근을 ‘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육경을 인식할 때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내가 원하고 욕망하는 방식대로 육경을 해석해서 보는 것이다. ‘나’라는 허망한 착각, 즉 아상이 생겨나면 ‘나’에게.. 공감수 2 댓글수 0 2015. 2. 1.
  • 마음이라는 착각 - 십팔계(1) 3. 십팔계 십이입처와 육식의 발생 위에서 육입처는 외부에 있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자아의식을 개입시킨다고 했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을 느끼며 생각하는 내가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즉 십이입처에서 아상과 법상이 생긴다. 이렇게 육내입처에서 내부의 감각 및 지각 기능과 활동하는 것을 보고 ‘나’라고 착각하는 아상이 생겨나고, 외부의 대상을 보고 ‘세계’라고 착각하는 법상이 생겨난다. 이런 착각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육내입처는 육외입처를 보면서 자기에게 도움이 되거나,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쪽으로 욕망과 집착을 일으킨다. 아상이 활동하는 것이다. 이처럼 십이입처는 ‘자아’와 ‘세계’를 나와 세상이라고 착각하는 허망한 의식이다. 그런데 자.. 공감수 4 댓글수 0 2015. 1. 27.
  • 마음이 만들어낸 세상 - 십이처(3) 마음(의입처)이 만들어낸 세상 청정한 육근으로 인식되는 세상은 괴로울 것이 없지만, 육근이 오염되고, ‘나’라는 관념이 개입되게 되면 육근에 대한 의식이 육내입처로 바뀌면서 괴로움이 생겨난다. 이것이 고의 원인이라고 했다. 여기에서는 12연기의 지분 중 하나인 육입(육내입처)이 왜 괴로움의 원인인지를 배웠을 것이다. 그러면 육근이 오염되면서 어떻게 육입처의 의식으로 왜곡되는지를 살펴보자. 앞에서 안이비설신 오근이 각자 자신의 대상을 인식한 것을 가지고 의근(마음)은 종합하여 사람, 동물, 과일, 산과 들 등 삼라만상으로 인식하며, 나아가 행복, 질투, 고요, 기쁨 등의 정신적인 것들 또한 인식하게 된다고 했다. 의근의 대상은 물질적 정신적인 모든 것, 존재와 비존재의 모든 것을 대상으로 지각하는 것이다... 공감수 3 댓글수 0 2015. 1. 25.
  • 괴로움의 원인과 아상 - 십이처(2) 육내처와 아상의 발생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안이비설신의 육근은 육경을 대상으로 인식한다. 그런데 육근이 청정할 때는 육경을 대상으로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된다. 자기 식대로 해석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외부의 대상을 보기 때문에 안팎이 둘로 나뉘지도 않고 분별과 차별도 없으며 그렇기에 괴로움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상대방이 나에게 뚱뚱하다고 말할지라도 그저 뚱뚱한 것을 뚱뚱하다고 했구나 하고 분별없이 받아들이면 괴로울 것이 없다. 뚱뚱하다는 말 그 자체는 중립적이다. 살이 안 쪄서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그 말은 듣기 좋은 칭찬처럼 들릴 것이고, 아프리카의 뚱뚱한 것이 미의 기준이라는 부족에서는 최고의 찬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중립적인 말을 내 식대로 해석하여.. 공감수 2 댓글수 0 2015. 1. 18.
  • 육근과 십이처의 이해 - 십이처(1) 육근과 십이처의 이해 앞에서 육근은 눈귀코혀몸뜻이라는 우리의 감각기관을 비롯한 감각기능, 감각활동이라고 했다. 우리는 육근을 통해 외부의 대상을 인식하여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 안의 감각기능인 육근을 통해 외부의 대상인 육경을 인식하다 보니, 내 안에 육근이 진짜로 있고, 내 밖에는 육경이 진짜로 있는 것 같은 착각을 가지게 된다. 내 안에 육근이 진짜로 있고, 내 밖에 육경이 진짜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인연 따라 그 기능과 활동을 할 뿐이지만 우리는 그러한 감각활동을 하는 존재를 ‘나’로 그 감각의 대상을 ‘세계’로 나누어 분별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 육근이라는 인연 따라 생겨난 감각기능과 활동을 ‘나’라고 여기는 잘못된 착각을 육내입처 혹은 육내처라고 하고, 그 감각 대상을 ‘세계’.. 공감수 3 댓글수 1 2015. 1. 5.
  • 육근청정의 빛나는 순간 - 육근과 육경(2) 부처의 육근과 중생의 육근 우리의 육근은 끊임없이 외부 경계에 따라 끄달리고 휘둘리곤 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언제가지고 외부 경계에 끄달리며 마음을 오염시켜야 하는 것일까? 외부 경계는 실체적으로 번뇌를 야기하는 티끌과 같아서 언제나 우리 마음을 오염시키는 것들일까? 그렇지 않다. 외부 경계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아무런 문제도 없다. 언제나 여여하게 오고 갈 뿐이다.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오고 갈 뿐이다. 문제는 그러한 중립적인 현상에 대해 분별하고, 해석하며, 끄달리고, 오염되는 우리 마음에 있다. 겨울이 춥고, 여름이 더우며, 비 오는 날도 있고, 바람 부는 날도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자연의 이치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겨울은 좋고 여름은 싫다거나, 반대로 겨울은 싫고 .. 공감수 3 댓글수 0 2014. 12. 31.
  • 경계에 끄달리지 말라 - 육근과 육경(1) 육근과 육경의 이해 일체법을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순서는 육근(六根)과 육경(六境)에 대한 이해이다. 보통 육근은 우리 몸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고, 육경은 각각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에 대응하여 감각되어지는 외부의 감각대상이라고 알고 있다. 먼저 간단히 살펴보면, 육근은 눈, 귀, 코, 혀, 몸, 뜻으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이며, 육경은 그 대상인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이다. 각각 여섯 가지 감각기관은 그에 따르는 감각대상을 가지고 있다. 눈(안근)은 색(색경)을 대상으로 하며, 색은 빛깔과 모양을 지닌 모든 대상을 의미한다. 사람, 산과 들, 나무와 짐승들, 달과 별 등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색’이다. 귀(이근)는 소리(성경)를 그 대상으로 하고, 코(비근)는 향기(.. 공감수 3 댓글수 0 2014. 12. 30.
  • 일체법이란 무엇인가 - 십이처와 십팔계 일체법이란 무엇인가 앞에서 연기법과 삼법인을 살펴보며, 이 세상의 모든 법은 인연 따라 화합된 존재로써 항상하지 않으며, 고정된 실체로써의 자아가 있지 않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고정된 실체로써의 ‘나’가 아니고, 내 바깥에 있다고 생각하는 ‘세계’, ‘대상’이라는 것 또한 실체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내적인 ‘자아계’도 공하고, 외적인 ‘대상계’ 또한 텅 비어 공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여기고, 내 바깥에는 ‘세계’가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있지도 않은 ‘나’와 ‘나의 대상’을 있다고 착각하며 살게 되었을까? 우리가 ‘있다’고 여기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며, 그것은 정말로 있는 것일까? 초기불교의 .. 공감수 2 댓글수 0 2014. 12. 30.
  • 열반에 모든 것을 맡기라 - 삼법인 강의(16) 열반에 모든 것을 맡기라 - 열반적정의 생활실천(2) 그러나 우리는 안타깝게도 비움의 삶을 살지 못하고 채움의 삶을 살려고 애쓴다. 그렇기에 우리 삶은 더욱 채워짐으로써 조금씩 윤택하고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더 많은 채움을 얻고자 끊임없이 전 속력을 향해 질주하는 삶이 되고 있다. 그 질주는 멈추지 않는다. 빨리 달려야 더 빨리 완전한 채움에 이를 수 있고, 남보다 더 많이 채워 부자가 될 수 있으니까. 그러나 부처님은 말한다. 그 무서운 질주를 멈추고 삶을 바라보라고. 이처럼 우리의 삶은 두 가지의 길이 있다. 비움의 길 혹은 채움의 길. 비움의 길은 진리의 길이며 부처님의 길이요, 채움의 길은 중생의 길이며 무지의 길이다. 부처님께서는 끊임없이 비움에 이르는 길을 우리의 내면에서 설법하고 .. 공감수 1 댓글수 0 2014. 12. 16.
  • 내면의 열반을 일깨우라 - 삼법인 강의(15) 열반적정의 의미 열반적정은 열반이 적정하다는 뜻으로, 열반은 적정과 동의어다. 열반은 니르바나(Nirvana)라는 말을 음역(音譯)한 것으로 타오르던 불길을 ‘확 불어서 꺼뜨린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 중생들에게는 끊임없이 내면에 탐진치 삼독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탐욕의 불길이 끊이지 않고 활활 타오르고 있으며, 조금만 참지 못할 일이 생겨도 성냄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며, 그 근본에는 어리석음이라는 무지의 불길이 불같이 타오르고 있다. 우리 인생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이 불길은 끊임없이 타오를 지언정 단 한 순간도 꺼지지 않고 있다. 이 탐진치 삼독의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일시에 ‘확 불어서 꺼뜨린 상태’가 바로 열반적정의 상태다. 연기법과 무상과 무아를 깨달아 모든 탐욕이 사라지고, 성냄이 사.. 공감수 3 댓글수 0 2014. 3. 11.
  • 삼독의 소멸이 곧 열반 - 삼법인 강의(14) 열반적정(涅槃寂靜) 사법인의 관계 - 일체개고와 열반적정의 관계 이상에서 삼법인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상에서 살펴본 제행무상과 제법무아는 모든 존재에 대한, 나아가 이 우주에 대한 기본적인 통찰이요 특성임을 알았다. 무상과 무아를 벗어나는 것은 이 우주 어디에도 없다. 무상과 무아야말로 수레의 양 바퀴와도 같은 ‘법의 도장’ ‘진리의 도장’, 법인(法印)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행무상과 제법무아를 삼법인에서 제외시키는 경우는 없지만, 세 번째 법인이 무엇이냐 하는 점에서는 엇갈리곤 한다. 많은 책들이나 스님이나 교수님들께서도 삼법인을 설할 때 때로는 일체개고를 또 때로는 열반적정을 말하곤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맞는가. 보통은 열반적정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열반적정을 넣자니 일.. 공감수 2 댓글수 0 2014. 3. 11.
  • 집착을 내려놓으라, 삼법인의 생활실천 - 삼법인 강의(13) 이상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체개고, 즉 인간이 괴로운 이유는 나라는 오온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여덟 가지의 괴로움이 결국에는 ‘나’라는 아집(我執), 오온의 집착에서 생겨난다. 내가 늙지 않고 싶은 것에 집착하고, 병들고 싶지 않은 건강한 몸에 집착하고, 죽고 싶지 않은데 집착하며, 사랑하는 이와 늘 함께 하고자 하는데 집착하고, 미워하는 이와는 멀어져야 한다는 마음에 집착하고, 얻고자 하는 것을 얻어야 한다는 집착을 가지고, 결과적으로 ‘나’라는 오온에 집착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모든 괴로움은 바로 집착에서 온다. 일체개고라는 현실의 통찰은 바로 모든 인간이 집착하고 있다는 전제 속에서 진리인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나라는 것에 집착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집착이 남아 있는 동안은 누.. 공감수 4 댓글수 0 2014. 2. 11.
  • 여덟가지 괴로움, 팔고 - 삼법인 강의(12) 5) 애별리고(愛別離苦) 앞의 네 가지 생노병사의 괴로움이 몸의 괴로움이라면 애별리고와 원증회고, 구부득고는 정신의 괴로움이라고 할 수 있다. 애별리고는 좋아하는 것과 떨어져야 하는 괴로움이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좋아하는 사물 등 자신을 즐겁고 안락하게 해 주며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여러 가지 조건이나 상황, 사물이나 사람들과의 헤어짐 혹은 이별에서 오는 고통을 말한다.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싶고, 좋은 사람과는 늘 함께 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곧 애욕과 집착이 생기고, 애욕과 집착은 우리를 얽어맨다. 물론 언제까지고 애착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면 상관없겠지만, 제행무상의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이치에 따르면 그 어떤 것도 언제까지고 내 것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은.. 공감수 3 댓글수 0 2014. 1. 23.
  • 네 가지 괴로움, 사고(四苦) - 삼법인 강의(11) 괴로움의 종류 - 사고팔고 이처럼 무상하고 무아인 것은 언제나 고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느끼는 괴로움이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대표적인 괴로움을 불교에서는 사고(四苦), 팔고(八苦)로 분류하고 있다. 즉, 사고(四苦)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생노병사(生老病死)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괴로움을 말하고, 여기에 다시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음성고(五陰盛苦)를 포함시키면 여덟 가지의 괴로움인 팔고가 되는 것이다. 사고팔고를 하나 하나 살펴보자. 1) 생고(生苦) 첫째는 생고(生苦)로, 언뜻 생각해 보면 태어나는 것이 어떻게 괴로움일까 싶지만 가만히 사유해 보면 생(生)이야말로 노병사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태어나기 때문에 존재의 모.. 공감수 2 댓글수 0 2014. 1. 12.
  • 일체개고, 무상 무아는 곧 괴로움 - 삼법인 강의(10) 3. 일체개고(一切皆苦) 무상, 무아는 곧 괴로움이다 괴로움 혹은 즐거움이란 것이 무엇인가. 내 뜻대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될 때 우리는 즐거움을 느끼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괴로움을 느낀다. 내가 원하는 대로 잘 되면 행복, 안 되면 불행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것을 원하는가. 항상 하는 것을 원한다. 나라는 존재가 항상 하는 것을 원하고, 내 소유가 항상 하는 것을 원하며, 내 가족이 항상 하는 것을 원한다. 내가 빨리 죽기를 원하거나, 내 소유와 지위와 권력과 또 내 이웃들이 항상 하지 않고 빨리 없어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항상 하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들이 고정된 실체가 있어야 한다. 변하지 않고 실재적으로 존재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언제까지고 내 곁에 붙잡아 .. 공감수 3 댓글수 0 2014. 1. 12.
  • 제법무아의 생활실천, 지관 - 삼법인 강의(9) 이와 같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일체 모든 것들은 전부가 실체적인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다만 인연 따라 잠시 모임으로써 그러한 모습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언젠가 그 모든 것은 사라지고 말 것이며, 지금 이 순간도 끊임없이 변화해 가고 있다. 이처럼 ‘일체 모든 것’들이 고정된 실체가 없으며, 무아라면 그 어떤 것에 집착할 수가 있을까. 내가 집착할 수 있는 일체 모든 대상들은 전부 무아이며, 고정된 실체가 없다. 그것이 ‘내 것’이라고 아무리 이름을 써 놓고 고집을 부려 봐야 어디에도 영원한 ‘내 것’은 없다. 내가 없을진데 내가 소유하는 것이야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살펴보면, 끝끝내 집착을 포기하지 못하며, 애욕과 욕심의 충족만이 살 길인 양, 돈과 재산과 .. 공감수 3 댓글수 1 2014. 1. 5.
  • 참나, 주인공, 불성도 없다 - 삼법인 강의(8) 이렇게 제법무아에서는 모든 존재에 대해 고정된 실체가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제법무아에서 무아는 ‘고정적인 실체로써의 나’ 혹은 ‘본질적인 나’라는 것 또한 없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본질적인 나, 즉 불성(佛性)이나 여래장(如來藏), 참나, 진아(眞我), 대아(大我), 주인공 등도 과연 무아인가 하는 점이다. 보통 불교를 믿는 이들은 중생의 성품을 버리고 부처의 성품을 깨달아야 한다거나, 거짓나를 여의고 참나를 찾아야 한다거나, 불성을 깨닫고 주인공을 찾아야 한다고 배워왔다. 그렇다면 이는 지금까지 배워 온 사실과는 어긋나는 교리가 아닌가. 여기에서 불교를 공부하는 이들이 꼭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근본법과 방편법의 이해가 대두된다. 즉 본질적인 가르.. 공감수 3 댓글수 3 2014. 1. 5.
  • '나'는 이렇게 있는데 왜 무아지? - 삼법인 강의(7) ‘내가 있다’는 아상의 타파 나라는 존재도 마찬가지다. 내가 보기에는 나라는 존재가 이렇게 엄연히 존재하며, 먹고 자고 마시며 움직이고 일을 하는 내가 있다. 불교에서는 이런 나까지를 다 부정하며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라는 존재 또한 인연 따라 잠시 만들어진 가합의 존재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존재가 왜 무아인지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자. 보통 우리가 ‘나다’라고 하는데는 먼저 ‘내 몸’, 즉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어 ‘내것이다’고 하는 내 소유물에 대해 나라고 생각하고, 또한 ‘내가 옳다’고 하는 내 생각, 내 가치관, 내 견해나 사상 등을 나라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내 느낌’‘내 감.. 공감수 3 댓글수 0 2013. 12. 31.
  • 제법무아의 의미 - 삼법인 강의(6) 제법무아의 의미 앞에서 제행무상의 ‘제행’이 ‘모든 존재’, ‘모든 행’을 말한다고 했는데, 제법무아의 제법 또한 ‘모든 존재’라는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여기 제법(諸法)에서 법(法, dharma)은 ‘존재’‘일체 모든 존재’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법이라고 하면 ‘진리’‘진리의 가르침’ 정도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불교에서 ‘법’이라는 용어는 이외에도 ‘존재’‘일체 모든 존재’라는 의미로도 쓰여 진다. 예를 들어 삼법인에서 ‘법’은 ‘진리’를 의미하며, 제법무아에서 ‘법’은 ‘존재’를 의미한다. 무아(無我)는 ‘내가 없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나’라는 것은 나라는 개인 뿐 아니라, 모든 인간을 넘어서 일체 모든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고정된 실체로써의 본질적인 나라는 것도.. 공감수 2 댓글수 0 2013. 12. 31.
  • 변화를 받아들이라 - 삼법인 강의(5) 변화를 받아들이라 – 제행무상의 생활실천 이처럼 연기법의 핵심,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일체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진리, 즉 무상(無常)의 진리이다. 제행무상의 진리야말로 진리의 도장, 즉 법인인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존재는 항상 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한다. 또한 모든 존재가 만들어내는 그 모든 행위나 사건 또한 끊임없이 변한다. 사람도 변하고, 사람의 마음도 변하며, 사람의 행위 또한 끊임없이 변한다.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고 찰나 찰나로 흐른다.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진리와 하나 되어 흐르라. 그러면 어떻게 진리와 하나 되어 흐를 수 있는가. 변화한다는 진리, 무상이라는 진리와 하나 되어 흐르면 된다. 변화를 받아들이며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변화의 흐름에 몸을 맡기라. 그 흐름을.. 공감수 2 댓글수 1 2013. 12. 31.
  • 무상의 과학적 증명 - 삼법인 강의(4) 제행무상 강의(3) 현대과학과 무상 앞서 살폈듯이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무상하다는 것이 첫 번째 진리의 법인이다. 그런데 현대 과학에서는 과연 이 무상의 이치를 어떻게 볼까. 미시와 거시의 현대 물리학을 살펴보면 놀랍게도 불교의 제행무상의 이치를 고스란히 증명해 주고 있다. 이 세상이 무상하다는 이치를 증명해 보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세상을 쪼개고 쪼개서 가장 작게 쪼개어질 수 있는 물질의 최소 단위에 대해 무상을 입증해 보이는 것과 이 세상을 넓히고 넓혀서 가장 넓게 확장했을 때의 전 우주가 무상하다는 이치를 입증해 보이는 방법이 있다. 이 세상을 만드는 물질의 최소 단위가 모두 무상하고, 나아가 이 세상을 확장하여 온 우주 전체가 무상하게 되면 그 안에서 살고 있는 모든 존재 또한 무상할.. 공감수 3 댓글수 0 2013. 12. 31.
  • 업도 운명도 변한다 - 삼법인 강의(3) 무상은 허무주의가 아니다 이처럼 제행무상의 이치는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인생무상’이라는 표현에서 보는 허무주의적이고 공허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무상하기 때문에 허무한 것이 아니라, 무상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무상은 이 세상에 대한, 우리의 삶에 대한 지극히 공평무사한 통찰일 뿐이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이 무상의 이치를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무상은 허무주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본질적인 진리를 나타내는 말일 뿐이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의 삶은 무상하기 때문에 그 어떤 가능성도 활짝 열려 있는 변화무쌍한 삶의 희망을 품어볼 수 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일지라도 나를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 열등감은 내 스스로 만든 것일 뿐이지,.. 공감수 3 댓글수 0 2013. 12. 31.
  • 제행무상의 의미 - 삼법인 강의(2) 제행무상의 의미 제행의 제(諸, sarva)는 ‘일체’‘모든’의 뜻이고, 행(行, samskara)은 sam이라는 ‘함께’, ‘~모여서’라는 말과 kara라는 ‘만든다’‘행한다’는 의미가 합쳐져 만들어진 말로, ‘함께 모여 만들어진 것’‘지어진 것’이라는 의미로 여러 가지 원인과 조건들이 모여 어떤 존재를 만들고 어떤 일을 행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아무 원인과 조건 없이, 아무런 이유 없이 하는 행이나, 존재가 아니라 어떤 원인과 조건에 따라 만들어진 존재나 어떤 이유나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유위(有爲)’라고 하는 것을 말한다. 즉 유위행(有爲行)과 유위법(有爲法)을 아울러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유위법이라고 할 때 ‘법’은 ‘존재’를 나타낸다. 좀 .. 공감수 2 댓글수 0 2013.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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