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 일일문자

내 고유한 본질을 표현할 의무

목탁 소리 2014. 11. 3. 19:19

 

 

 

[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다음은 아니타 무르자니의

 ’그리고 모든 것은 변했다’의 한 부분입니다.

“나는 내 자신에게,

내가 만난 모든 이에게,

그리고 삶 자체에게

언제나 내 고유한 본질을 표현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누군가가 혹은 무언가가 되려는 노력은

나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진정한 나 자신을 앗아가기만 했다.

그럴수록 다른 이들이

내 진정한 모습을 경험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을 뿐이었고,

내가 그들과 진정으로 만나지 못하게 만들 뿐이었다.

진정한 내 자신이 되지 않는 것은 또한

내가 여기에 와서 되고자 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존재의 모습을

이 우주로부터 빼앗는 것이었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삶 자체에

언제나 자신의 고유한 본질,

나다운, 자기다운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자신의 본질을

표현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즉,

나는 다른 누군가가 되려고 노력하면서

다른 뭔가가 되려고 노력하면서

다른 사람처럼 되려고,

딴 사람 저게 좋아 보이고,

저 사람은 저게 좋아 보이고,

저 사람의 삶이 더 멋있어 보이고,

저 사람이 가진 돈이 부럽고,

저 사람의 외모가 부럽고,

저 사람의 능력이 부럽고,

저 사람 아들은 시험도 잘 보고, 학교도 좋은 데 갔고,

남의 남편은 돈도 잘 벌어 오는데, 진급도 잘하고 하는데

내 남편은 왜 이런가하면서 남들과 비교하곤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끊임없이

내 바깥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그 사람과 나의 삶을 비교하고,

어떤 비교 우월감에 때로는 우쭐하다가

또 비교 열등감에 때로는 기분이 축 쳐지기도 하고

이런 삶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산단 말이에요.

 

즉, 나 자신이라는

내 자신의 진정한 삶을 살지 못하고,

타인의 삶을 살지 못해서 안달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이죠.

그래서 진정한 나 자신이 되지 않는 것은

내가 여기서 와서 되고자 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본연의 존재의 모습을

이 우주로부터 빼앗는 것과 다르지 않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으로써 살면 됩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전혀 기웃거리지 않더라도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수용하고,

허용하면서,

지금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해주면서 사는 것이지요.

설사 내가 온갖 고통을 겪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나를 괴롭히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나다운 삶에서 나만이,

이 우주에 있는 이 세상에 있는 그 많은 인구 가운데

오직 유일하게 나만이 겪을 수 있는 그 경험을 통해서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깨달음을 얻고,

그 깨달음을 이 우주법계 전체와 공유하기 위해서,

그럼으로써 내가 우주법계의 하나이면서

전체인,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인

그러한 방식으로 내가 이 우주법계 전체에 도움을 주는 방식이고,

공헌한다고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방식으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다운 방식으로 살 때만이

가장 자기다운 방식으로 우주법계에 기여할 수 있고,

자기부처를 드러낼 수 있는 겁니다."

<법상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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