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지리산 산행기
[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아. 이런 밤!
이렇게 가슴 깊은 곳까지
울울적적 창연한 여울이 넘쳐날 때면
난 외로운 시인이 되고 고독한 명상가가 된다.
상상해 보라.
어느 누구인들 가슴을 차분히 가라앉힐 수 있겠는가.
아마도 밤새 비가 내렸나 보다.
이 새벽, 창밖으로 들어오는 논밭의 풍경이며
그 위로 지리산의 위용이
마을까지 내려온 하이얀 비구름 안개와 어우러져
한 폭의 청청한 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아무도 없는 이 거대한 지리산 품 속에
나 홀로 비를 벗삼아 산길을 걷는다.
상상만 하더라도 이 얼마나 외롭고 무섭고 또 설레는 일인가.
외롭고 무섭다는 말은 내게 있어 참 좋은 말이다.
물론 그동안 사람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던
외롭다, 무섭다는 단어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말이다.
우린 어떤 단어에 공통적인 관념을 주입시켜 놓고
천편일률적으로 엇비슷한 해석을 해 버리는데
똑같은 단어라도 절대 같은 단어가 될 수는 없는 법.
내게 있어 ‘외롭다’는 단어는
벗어나고 싶다거나, 우울하다거나 하는
그런 ‘싫은’ 느낌의 말이 아닌,
내면의 뜰을 호올로 거닐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모처럼 ‘나 자신’이 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며,
그 안에는 ‘고독’ ‘좌절’ ‘우울’ 보다는
당당함과 자유로움 또 평화로운 깨어있음이 내포되어 있는 말이기도 하고,
우뚝 선 내 삶의 주인공으로 걷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무섭다’라는 말 또한 ’두렵고 겁난다’는 의미 보다는
그 이면에 대자연의 경외감과
그 속을 걷고 있는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는
그런 내식대로의 말풀이가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산 길.
한참을 걸어도 그 흔한 오다가다 만나는 사람 하나 찾기가 쉽지 않은
오직 바람과 비, 나무와 풀, 새들과 자연이 내 길에 벗이 되어 주는
이 외롭고 무서운 산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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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상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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