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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상주 대원정사 일요법회(13:30), 부산 목탁소리 토요법회(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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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기본 교리강좌 46

네 가지 괴로움, 사고(四苦) - 삼법인 강의(11)

괴로움의 종류 - 사고팔고 이처럼 무상하고 무아인 것은 언제나 고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느끼는 괴로움이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대표적인 괴로움을 불교에서는 사고(四苦), 팔고(八苦)로 분류하고 있다. 즉, 사고(四苦)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생노병사(生老病死)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괴로움을 말하고, 여기에 다시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음성고(五陰盛苦)를 포함시키면 여덟 가지의 괴로움인 팔고가 되는 것이다. 사고팔고를 하나 하나 살펴보자. 1) 생고(生苦) 첫째는 생고(生苦)로, 언뜻 생각해 보면 태어나는 것이 어떻게 괴로움일까 싶지만 가만히 사유해 보면 생(生)이야말로 노병사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태어나기 때문에 존재의 모..

일체개고, 무상 무아는 곧 괴로움 - 삼법인 강의(10)

3. 일체개고(一切皆苦) 무상, 무아는 곧 괴로움이다 괴로움 혹은 즐거움이란 것이 무엇인가. 내 뜻대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될 때 우리는 즐거움을 느끼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괴로움을 느낀다. 내가 원하는 대로 잘 되면 행복, 안 되면 불행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것을 원하는가. 항상 하는 것을 원한다. 나라는 존재가 항상 하는 것을 원하고, 내 소유가 항상 하는 것을 원하며, 내 가족이 항상 하는 것을 원한다. 내가 빨리 죽기를 원하거나, 내 소유와 지위와 권력과 또 내 이웃들이 항상 하지 않고 빨리 없어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항상 하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들이 고정된 실체가 있어야 한다. 변하지 않고 실재적으로 존재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언제까지고 내 곁에 붙잡아 ..

제법무아의 생활실천, 지관 - 삼법인 강의(9)

이와 같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일체 모든 것들은 전부가 실체적인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다만 인연 따라 잠시 모임으로써 그러한 모습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언젠가 그 모든 것은 사라지고 말 것이며, 지금 이 순간도 끊임없이 변화해 가고 있다. 이처럼 ‘일체 모든 것’들이 고정된 실체가 없으며, 무아라면 그 어떤 것에 집착할 수가 있을까. 내가 집착할 수 있는 일체 모든 대상들은 전부 무아이며, 고정된 실체가 없다. 그것이 ‘내 것’이라고 아무리 이름을 써 놓고 고집을 부려 봐야 어디에도 영원한 ‘내 것’은 없다. 내가 없을진데 내가 소유하는 것이야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살펴보면, 끝끝내 집착을 포기하지 못하며, 애욕과 욕심의 충족만이 살 길인 양, 돈과 재산과 ..

참나, 주인공, 불성도 없다 - 삼법인 강의(8)

이렇게 제법무아에서는 모든 존재에 대해 고정된 실체가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제법무아에서 무아는 ‘고정적인 실체로써의 나’ 혹은 ‘본질적인 나’라는 것 또한 없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본질적인 나, 즉 불성(佛性)이나 여래장(如來藏), 참나, 진아(眞我), 대아(大我), 주인공 등도 과연 무아인가 하는 점이다. 보통 불교를 믿는 이들은 중생의 성품을 버리고 부처의 성품을 깨달아야 한다거나, 거짓나를 여의고 참나를 찾아야 한다거나, 불성을 깨닫고 주인공을 찾아야 한다고 배워왔다. 그렇다면 이는 지금까지 배워 온 사실과는 어긋나는 교리가 아닌가. 여기에서 불교를 공부하는 이들이 꼭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근본법과 방편법의 이해가 대두된다. 즉 본질적인 가르..

'나'는 이렇게 있는데 왜 무아지? - 삼법인 강의(7)

‘내가 있다’는 아상의 타파 나라는 존재도 마찬가지다. 내가 보기에는 나라는 존재가 이렇게 엄연히 존재하며, 먹고 자고 마시며 움직이고 일을 하는 내가 있다. 불교에서는 이런 나까지를 다 부정하며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라는 존재 또한 인연 따라 잠시 만들어진 가합의 존재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존재가 왜 무아인지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자. 보통 우리가 ‘나다’라고 하는데는 먼저 ‘내 몸’, 즉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어 ‘내것이다’고 하는 내 소유물에 대해 나라고 생각하고, 또한 ‘내가 옳다’고 하는 내 생각, 내 가치관, 내 견해나 사상 등을 나라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내 느낌’‘내 감..

제법무아의 의미 - 삼법인 강의(6)

제법무아의 의미 앞에서 제행무상의 ‘제행’이 ‘모든 존재’, ‘모든 행’을 말한다고 했는데, 제법무아의 제법 또한 ‘모든 존재’라는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여기 제법(諸法)에서 법(法, dharma)은 ‘존재’‘일체 모든 존재’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법이라고 하면 ‘진리’‘진리의 가르침’ 정도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불교에서 ‘법’이라는 용어는 이외에도 ‘존재’‘일체 모든 존재’라는 의미로도 쓰여 진다. 예를 들어 삼법인에서 ‘법’은 ‘진리’를 의미하며, 제법무아에서 ‘법’은 ‘존재’를 의미한다. 무아(無我)는 ‘내가 없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나’라는 것은 나라는 개인 뿐 아니라, 모든 인간을 넘어서 일체 모든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고정된 실체로써의 본질적인 나라는 것도..

변화를 받아들이라 - 삼법인 강의(5)

변화를 받아들이라 – 제행무상의 생활실천 이처럼 연기법의 핵심,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일체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진리, 즉 무상(無常)의 진리이다. 제행무상의 진리야말로 진리의 도장, 즉 법인인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존재는 항상 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한다. 또한 모든 존재가 만들어내는 그 모든 행위나 사건 또한 끊임없이 변한다. 사람도 변하고, 사람의 마음도 변하며, 사람의 행위 또한 끊임없이 변한다.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고 찰나 찰나로 흐른다.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진리와 하나 되어 흐르라. 그러면 어떻게 진리와 하나 되어 흐를 수 있는가. 변화한다는 진리, 무상이라는 진리와 하나 되어 흐르면 된다. 변화를 받아들이며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변화의 흐름에 몸을 맡기라. 그 흐름을..

무상의 과학적 증명 - 삼법인 강의(4)

제행무상 강의(3) 현대과학과 무상 앞서 살폈듯이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무상하다는 것이 첫 번째 진리의 법인이다. 그런데 현대 과학에서는 과연 이 무상의 이치를 어떻게 볼까. 미시와 거시의 현대 물리학을 살펴보면 놀랍게도 불교의 제행무상의 이치를 고스란히 증명해 주고 있다. 이 세상이 무상하다는 이치를 증명해 보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세상을 쪼개고 쪼개서 가장 작게 쪼개어질 수 있는 물질의 최소 단위에 대해 무상을 입증해 보이는 것과 이 세상을 넓히고 넓혀서 가장 넓게 확장했을 때의 전 우주가 무상하다는 이치를 입증해 보이는 방법이 있다. 이 세상을 만드는 물질의 최소 단위가 모두 무상하고, 나아가 이 세상을 확장하여 온 우주 전체가 무상하게 되면 그 안에서 살고 있는 모든 존재 또한 무상할..

업도 운명도 변한다 - 삼법인 강의(3)

무상은 허무주의가 아니다 이처럼 제행무상의 이치는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인생무상’이라는 표현에서 보는 허무주의적이고 공허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무상하기 때문에 허무한 것이 아니라, 무상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무상은 이 세상에 대한, 우리의 삶에 대한 지극히 공평무사한 통찰일 뿐이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이 무상의 이치를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무상은 허무주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본질적인 진리를 나타내는 말일 뿐이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의 삶은 무상하기 때문에 그 어떤 가능성도 활짝 열려 있는 변화무쌍한 삶의 희망을 품어볼 수 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일지라도 나를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 열등감은 내 스스로 만든 것일 뿐이지,..

제행무상의 의미 - 삼법인 강의(2)

제행무상의 의미 제행의 제(諸, sarva)는 ‘일체’‘모든’의 뜻이고, 행(行, samskara)은 sam이라는 ‘함께’, ‘~모여서’라는 말과 kara라는 ‘만든다’‘행한다’는 의미가 합쳐져 만들어진 말로, ‘함께 모여 만들어진 것’‘지어진 것’이라는 의미로 여러 가지 원인과 조건들이 모여 어떤 존재를 만들고 어떤 일을 행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아무 원인과 조건 없이, 아무런 이유 없이 하는 행이나, 존재가 아니라 어떤 원인과 조건에 따라 만들어진 존재나 어떤 이유나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유위(有爲)’라고 하는 것을 말한다. 즉 유위행(有爲行)과 유위법(有爲法)을 아울러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유위법이라고 할 때 ‘법’은 ‘존재’를 나타낸다. 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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