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 태그의 글 목록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상주 대원정사 일요법회(13:30), 부산 목탁소리 토요법회(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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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12

허락받은 소유물

처음 은사스님께 계를 받을 때 그 때 받은 것들이 있습니다. 정당하게 소유해도 좋다는 두 가지 말입니다. 하나는 발우... 그리고 또 하나는 가사와 장 삼... 처음 출가할 때는 달랑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무소유... 수행자는 발우와 가사장삼 이렇게만 있으면 온천하 우주법계를 거저 다 가질 수 있다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그 때는 정말 무엇하나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행자 생활이 끝나고 받아든 발우와 가사장삼... 그것은 단 순한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당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수억을 준다한들 이것들과 맞바꿀 수 있었을 까요... 늘 이 것들은 제 방 한 켠을 채우고 있습니다. 게을러지고, 나약해질 때, 그리고 탐심 이 올라올 때도 고개를 들고 이 놈들을 바라봅니다. 그러면서 떠올립니다. 수/ 행/..

뒷동산의 나뭇잎을 가져라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은 집착하지 말고 다 버려라. 내 것이 아닌 것을 모두 버릴 때 세상을 소유할 수 있다. 만약 어떤 이가 뒷동산에 있는 나뭇잎을 가진다고 했을 때 왜 나뭇잎을 가졌느냐고 그와 싸우겠는가. 수행하는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자기 소유가 아닌 물건에 대하여 애착을 버려야 할 것이니 버릴 것을 버릴 수 있어야 마음이 평온하다. [잡아함경(雜阿含經)]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경구 가운데 하나. "만약 어떤 이가 뒷동산에 있는 나뭇잎을 가진다고 했을 때 왜 나뭇잎을 가졌느냐고 그와 싸우겠는가." 뒷동산에 있는 나뭇잎을 나의 소유라고 하고 '내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어리석은 일이다. 어찌 뒷동산의 나뭇잎이 내 것일 수가 있는가. 마찬가지로 이 대지의 한 부분을 가지고 어찌 '내 땅'이라고 할 수 있..

욕망이 아닌 필요에 의한 소유

많은 사람들이 소유에 집착 하면서 동시에 자유를 찾아 나서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소유와 자유를 동시에 얻을 수 있기란 삶과 죽음 을 동시에 가지려는 것처럼 어리석은 생각입니 다. 가진 것이 많을 수록 집착하고 있는 것이 많을 수록 그만큼 자유를 빼앗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 다. 소유는 우리를 얽어매고 되려 우리를 소유해 버리고 맙니다. 소유를 통해 행복을 찾으려 하지 말고, 그냥 지금 이 대로의 텅 빈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냥 그냥 지금 여기에서 충분하고 꽉 찬 온연한 내면 을 비추는 텅 빈 충만을 말입니다. 그것을 느끼지 못 한다면 언제까지고 행복은 요원하기만 할 것입니다. 자꾸 늘 리려고 하고, 채우려고 하면 세상에 얽매임이 많아 지다 보니 우리 본연의 맑은 참빛을 놓치게 됩니다...

외롭게 사는 즐거움

때때로 홀로 존재하고 싶은 깊은 속 뜰의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언젠가 나 홀로 떠나 그림자와 함께 여행하던 그 바닷가 외로운 포구, 혹은 저 홀로 울울창창 소리치며 그 깊은 산 우뚝 솟아 있던 한 그루의 소나무가 지독하게 보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럴 때는 한 며칠 일도 다 때려 치고 내 행동 범위도 최소한의 것으로 한정시킨다. 사람들을 만나거나 아니면 핸드폰, 전화 벨 소리에 귀 기울이거나 행여 TV를 켜거나 신문 보는 것조차 번거로워 잠시 접어 둔다. 될 수 있다면 먹는 음식도 소박하면 좋겠고, 군것질도 끊고 나면 속이 비어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야말로 입에는 말이 적고, 마음에는 일이 적고, 뱃속에는 밥이 적을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배려한다. 그럴 때면 이른 새벽 뒷산 깊숙이까지 ..

묵은 짐 정리하기

가진 것이 너무 많아 하나 씩 하나 씩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정리를 해야겠다고 늘 생각해 오다 이제서야 묵은 일을 시작해 본다. 꼭 필요한 것들이라는 것은 정말로 꼭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말하는데,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이 속에 들기가 어렵다. 물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놈이 욕망의 소산인가, 아니면 '최소한의 필요'의 범주에 들어있는 것인가가 보인다. '최소한의 필요'가 아닌 것들은 대개 욕망이 개입된 것들이기 쉽다.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하다 보면 모든 물질마다 제각기 독톡한 분별이 따르게 마련인데, 대부분 그 분별로 인해 첫 생각 정리 대상이었던 것들이 다시금 '소유'의 범주로 슬그머니 들어오기 쉽다. 그래서 정리할 때는 마음을 잘 비추어 보아야 그 분별에 속지 않을..

집착을 버리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전부다

hpDZfPGLshppTMnffi1nI0qa8i3 무언가를 나누어 주거나 또 무언가를 받을 때, 참 기분이 좋다. 줄 때도 기분이 좋고, 받을 때도 기분이 좋다. 그런데 주었을 때 좋은 기분하고 받았을 때 좋은 기분은 좀 다르다. 주었을 때 기분이 좋은 이유는 무얼까. 무언가를 주게 되면 ‘내 것’이 소멸되기 때문에 괴로워야 할텐데 좋은 것은 무엇때문인가. 그것은 우리 안의 참나, 다시 말해 온 우주 법계의 참성품이 둘이 아닌 하나로써, 대아(大我)로써 존재하기 때문이다. 주는 자도 받는 자도 주는 것 또한 모두가 하나의 성품이니까 무엇을 주고 받고도 없이 그냥 좋은 것이다. 즉 주었을 때 좋은 기분은 가만히 살펴보면 근원적인 기쁨이라고 할 수 있고, 받았을 때 좋은 기분은 보통 세간적인 기쁨이라고 할 ..

보시, 자비로운 나눔 - 연기법의 생활실천(2)

이와 같이 일체 모든 존재들이 바로 나를 키워주었고, 자비로운 보살핌으로 나를 살려주었다면 그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 우주 법계의 일체 모든 존재들로 인해 내가 살아갈 수 있게 되었고, 보살핌을 받게 되었으며, 먹고 자고 살아갈 자양분을 얻게 되었다면 우리가 이 우주와 세상의 모든 존재들을 향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되겠는가. 감사를 실천하는 것이다. 감사의 마음만 보낼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감사의 실천을 행할 일이다. 이 우주 법계의 은혜에 대한 보답이 바로 보시며 나눔이다. 사실 우주에 대한 보답이라고 하지만, 사실 엄격히 따진다면 보답이라는 말도 필요 없다. 그들이 있기에 내가 있고 내가 있기에 그들이 있으며, 이 우주가 있기에 내가 있고 내가 있으므로 우주가..

관자재보살 행심바라밀다시 조견

관자재보살 행심바라밀다시 조견 관자재(觀自在) 불교를 잘 모르는 이들도 ‘관세음보살’이라는 명칭은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예로부터 불교를 믿지 않는 이들도, 어렵고 힘들 때면 의례히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명호(名號)를 부르는 염불이 우리 민족의 보편적인 신앙이 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이라는 명호의 의미는 ‘세간의 음성을 관하는 보살’이라는 뜻으로, 사바세계의 중생이 괴로움에 처해 있을 때,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일심으로 부르면 그 음성을 듣고 곧 구제해 주신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렇다면, 관세음보살이 과연 어떤 분이기에 그렇게 많은 이들이 부르고 신앙하고 있는 것일까요? 관세음보살의 다른 이름이 바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입니다. 이 두 이름..

머물지 않고 떠나는 즐거움

[사진 : 법주사]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은 집착하지 말고 다 버려라. 내 것이 아닌 것을 모두 버릴 때 세상을 소유할 수 있다. 만약 어떤 이가 뒷동산에 있는 나뭇잎을 가지고 간다고 했을 때 왜 나뭇잎을 가졌느냐고 그와 싸우겠는가. 수행하는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자기 소유가 아닌 물건에 대하여 애착을 버려야 할 것이니 버릴 것을 버릴 수 있어야 마음이 평온하다. [잡아함경(雜阿含經)] 본래부터 ‘내 것’이 어디에 있는가. ‘나’라는 존재 또한 잠시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 따라 가는 무상한 존재인데, 하물며 ‘내 것’이라고 붙잡아 두고 집착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뒷동산의 나뭇잎이 어찌 ‘내 것’일 수가 있으며, 땅에 금을 그어 놓고 돈을 지불한다고 어찌 ‘내 땅’일 수가 있겠는가. 그것은 인간의 오만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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