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7.12.28 행하면서 동시에 버리라 (1)
  2. 2007.12.21 이것만은 반드시 버려라 (1)
  3. 2007.12.11 즐거움은 결국 고통이다





보살은
모든 보살행을 갖추고 익히지만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다.

진리에 집착하지 않고,
소망에 집착하지 않고
선정(禪定)에 집착하지 않는다.

적정(寂靜)에 집착하지 않고
깊은 진리의 세계에 들어가는 일에 집착하지 않고
중생을 교화하여
그 덕을 성취시키는 일에 집착하지 않는다.

[화엄경]



참으로 수행 잘 하는 사람은
스스로 수행을 잘 하는 것을 모른다.
국자가 국 맛을 모르듯.
선정에 든 사람은 선정에 든 것을 잊으며,
적정에 든 사람은 적정에 든 것을 모른다.

스스로 수행을 잘 하고 있다는 상이 생기고,
깊은 선정에 들었다는 생각이 있으며,
스스로 깨달았다는 상이 생기면
거기에 집착이 생기고
집착이 생기면 모든 것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참된 수행자는 하되 함이 없이 행하는 이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는 것이야말로
이 공부의 핵심이다.

참된 진리는
그 진리 자체에도 집착하지 않고
참된 선정은 그 선정에 집착하지 않는다.

금강경은 불법 그 자체에도 집착하지 않았을 때
참된 불법이 드러남을 설하고 있다.

불법을 공부하면서도 불법 공부에 집착하지 않고,
몇 시간이고 몇 일이고 참선에 들어 선정을 얻더라도
거기에 집착하지 않으며,
수많은 중생을 교화하여 포교했더라도
스스로 포교를 잘 했다는 상이 생기지 않았을 때
그것은 참이다.

스스로의 수행력을, 포교력을,
많은 공부의 이력을 들추면서
자랑삼아 말하는 이들은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행을 하고,
보시를 하고, 수행을 하고, 좋은 일을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하고 나서는 반드시 잊어버리라.
놓아버리라.

놓아버리는 순간 그것은 보석처럼 빛나지만
드러내는 순간 그 빛은 사라지고 만다.

불교는 불교 그 자체에도 집착하지 않았을 때
참된 불교가 드러나는 것이다.
불교는 불교가 아니다. 그러므로 불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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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법상




[사진 : 법주사]

내 것이라고 집착하는 마음이
갖가지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이 된다.
온갖 것에 대해 취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훗날 마음이 편안하여 마침내 근심이 없어진다.

[화엄경]

자기 마음에 드는 것에
집착하지 않아야 할 것이니
이것은 탐심을 끊어버리기 위함이다.

자기 마음에 거슬리는 것에
성내지 않아야 할 것이니
이것은 진심을 없애기 위함이다.

어리석은 말에
집착하지 않아야 할 것이니
이것은 치심을 끊기 위함이다.

수행은 집착하지 않고
동요하지 않는 지혜의 연마이다.

[잡아함경]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세 가지 독이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것이다.

이는 모두 ‘나’에 대한 집착에서 오는 것이니,
내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
탐욕을 끊는 공부이고,
내 생각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성냄을 끊는 공부이며,
실체적인 어떤 ‘나’가 있다는 생각을 비우는 것이
어리석음을 끊는 공부가 되는 것이다.

이같은 탐진치(貪瞋痴)의 뿌리는
한마디로 아상(我相), 아집(我執)에 있다.
‘나’라는 상에 집착하기 때문에
‘내 것이다’라는 소유욕이 일어나고,
나의 소유물이 없으면 곧 나도 없다는 착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처럼 내가 마음에 드는 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는 집착과 소유욕을 버리는 것이
탐심의 뿌리를 뽑는 첫 번째 수행이다.

두 번째로 ‘내가 옳다’는 생각에 집착하므로
내 생각과 어긋나는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는
화를 내게 된다.

내가 옳다는 것은 너는 틀리다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모든 다툼과 성냄의 씨앗이다.
사실 그 어떤 생각도 전적으로 옳거나 그를 수 없다.
다만 서로 다를 뿐이지 옳고 그른 것이 아니다.

마음에 거슬리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이 내 생각과 다르다고 화를 낼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주는 것
이것이 진심의 뿌리를 뽑는 두 번째 수행이다.

그리고 셋째로 이 모든 뿌리에 있는 생각인
‘내가 있다’고 하는 착각이 바로 어리석음 곧 치심이다.
나는 실체적인 것이 아니라
인연 따라 생겨난 비실체적이고 연기적인 존재임을 바로 알고
나에게 집착하지 않는 것이
치심의 뿌리를 뽑는 세 번째 수행이다.

수행이란 이렇듯
‘나’에 집착하지 않고 동요하지 않는 지혜를 연마하여
탐진치 삼독심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일이다.
Posted by 법상




[사진 : 범어사]

고통의 원인은 탐욕이다.
세상의 즐거움이란 결국 고통 아닌 것이 없다.
탐욕은 어리석은 사람이나 하는 것,
모든 고통과 근심은 바로 탐욕에서 생기는 것이다.

[화엄경]

온갖 괴로움의 원인은 바로 탐욕이다.
중생은 생각이 어리석어 탐욕을 즐거워한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탐욕이 바로 괴로움인 줄 알기 때문에 수시로 끊어버린다.
탐욕을 욕망으로 채우려고 한다면
그것은 마치 소금물을 마셔 더욱 갈증이 심해지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탐욕을 없앤다면 괴로움은 저절로 없어질 것이다.

[성실론]



탐욕은 괴로움이다.
탐욕을 채우는 데에서 오는 즐거움 또한
결국 고통이 되고 만다.
탐욕을 채우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더 탐욕은 커진다.
만족은 잠시일 뿐 이윽고 또 다른 탐욕이 생겨난다.

우리의 삶을 가만히 살펴보면
죽을 때 까지 오직 탐욕을 채우기에만 여념이 없지 않은가.
많은 이들이
탐욕을 채웠을 때 오는 잠시의 행복이
참된 행복인 줄 착각하고 산다.

탐욕을 채우기 위해
온갖 악행과 기만을 서슴지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탐욕을 채워나간다.

나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상대방을 짓누르고 밟고 일어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된다.
아니 당연한 정도가 아니라
능력 있는 사람이고 훌륭한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그래서 슬프다.
이 세상도 슬프고, 탐욕에 물든 사람들도 슬프다.
탐욕이란 사람을 눈멀게 하고,
온전한 만족에서 멀어지게 하며,
영적인 성숙과 이별하게 만든다.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탐욕이다.
탐욕이 없으면 괴로움도 없다.
그렇다고 탐욕을 끊기 위해 탐욕을 미워하고 증오할 필요는 없다.

탐욕에 대한 그 어떤 분별도 버려야 한다.
탐욕 그 자체는 좋거나 나쁜 어떤 실체적인 것이 아니라
다만 인연따라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중립적이고 비실체적인 것이다.

탐욕을 없애려고 애쓰지 말고,
좋아하거나 싫어하지도 말고,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머물렀다가
어떤 일들을 만들어내고 또 어떻게 사라지는가를
그냥 알아차리고 지켜보기만 하라.

그랬을 때 전체적인 탐욕에 대한 지혜가 생기고
지혜의 빛은 곧 탐욕을 사랑으로 불태운다.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