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단순하게 생각해서
누구나 잘 살기 위해 세상을 살아간다.
또 누구나 삶의 목적은 잘 사는데 있다.

그러나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길인가.
'이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라는 정답이 있고 체크리스트가 있어서
매일같이 잠자리에 들기 전, 또 매 해를 보낼 때마다
그 표를 하나하나 내 삶과 대조해 보면서 체크해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 삶이라는 것이 그렇게 딱 정해진 것 만은 아니기에
그런 것이 있을리 만무하다.

그러나 조금 큰 틀에서 본다면
어떤 종교에서든, 어떤 사상이나 가르침에서든
공통적으로 적용될 법한 일반적인
‘잘 사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를테면 부처님도 하느님도
또 수많은 인류의 성자, 사상가들도 모두가 한결같이
'사랑을 베풀라' '자비를 베풀라' '이웃과 나누라' '보시하라'는
말씀을 하고 계신다.

그 본질은 어느 종교에서도 다르지 않다.
보시와 베풂이라는 그 본질은 진리의 영역이다.
베풀고 보시하는 길은 참된 삶을 살기 위해서라면
누구나 가야할 근본이 되는 가르침이요 진리인 것이다.

다만 각 종교별로, 사상가별로 그 구체적인 방법은 다를 수 있다.
십일조를 내든 자유롭게 보시를 행하든,
절이나 교회에 내든 불우한 이웃에게 내든,
사람에게만 사랑과 자비를 베풀든
풀이며 나무 산천초목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에게 베풀든,
그 구체적인 방법은 서로 다를 수 있는 부분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기답게 저마다의 개성으로써 실천 해 나가야 할
세부적인 부분 보다는
전체적인 진리의 본질로써
우리가 삶 속에서 어떻게 마음을 쓰고,
어떻게 참된 삶을 살아 나갈 수 있는가 하는
실천의 정신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종교에서든, 어느 사상에서든,
진리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는 가르침이라면
대부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을만한
그런 구체적인 수행방법을 언급함으로써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이 되는 법'에 대한
최소한의 사유의 뜰을 제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 가지를 적어 보는 것이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이 목록을 펴 들고
하나 하나 내 마음과 비추어 보며
사유의 뜰을 넓혀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혹은 매 순간 순간 시간 날 때도 좋고,
그것도 아니라면 어떤 괴롭거나 힘겨운 경계를 당해 마음이 휘둘릴 때
그 때 이 목록을 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모르긴해도 아래에 열거된 마음공부 목록만 잘 점검하더라도
어지간한 괴로움이나 경계는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내적인 힘이 쌓일 것이라고 본다.

또 기독교나 혹은 또 다른 종교의 신자나 종교가 없는 분이더라도
이 목록의 가르침들은 대부분이 수용 가능한 것들일 것이다.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사실 모든 종교의 가르침은 끊임없는 복습의 연장이다.
가르침의 본질은 이미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마음을 비우고 이웃과 나누며 욕심과 집착을 버리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런 가르침들이 항상 내 가까이에서 살아 움직이고
실천의 힘이 되며 내 존재 안에 숨쉬도록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복습만이 우리 내면에 힘을 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아래의 목록은 한번 읽고 그만 두기 보다는
가까운 곳에 두고 '잘 사는 방법' 체크리스트처럼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울러 이 목록의 구체적인 이해와 방법들, 깊은 이해는
이 목탁소리의 글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하나씩 터득해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 일체를 다 받아들이라. 수용하라.

내 삶에 등장하는 그 어떤 사건도, 사람도
모두 온전한 진리의 목적을 가지고 온다.
이 세상에는 정확히 필요한 일만이 정확히 필요한 바로 그 때에
정확히 필요한 만큼의 크기로 찾아온다.

또한 그 모든 것들은 좋은 것이든 싫은 것이든
모두가 나를 돕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내게로 온다.
그 모든 일들이 부처의 자비요 신의 사랑이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대 긍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좋다고 너무 붙잡지 않고 싫다고 버리려 애쓰지 않고
다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괴로울 일이 없다.

삶을 전체적으로 받아들이라.

∎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고 말하라.
∎ 과거에 좋지 않았던 일들이 되돌아보면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없는가. 괴로운 상황이나 미운 사람이 내게 주는 긍정점을 찾아보라.
∎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더라도 ‘우주가 나를 돕고 있다’고 외치라.



2. 집착을 버려라. 놓아라. 비워라.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집착에 있다.
집착이 있으면 반드시 그곳에는 괴로움의 씨앗이 있다.
돈도 명예도 사랑도 소유도 성공도 지식도 가치관도 집착할 것이 못 된다.
모든 수행의 핵심, 모든 행복한 삶의 핵심은 무집착에 있다.

변한다는 이치를 받아들이면 집착할 것이 없음을 알게 된다.
모든 집착을 놓는 자리가 부처자리요 영성이 충만해지는 자리다.
아상을, 집착을, 욕망을, 번뇌를, 소유를, 생각을 놓고 비워라.
비우면 채워지고, 놓으면 잡히며, 버렸을 때 전체를 잡을 수 있다.

텅 비면 충만하다.

∎ ‘지금 죽을 수 있는가?’ 죽을 수 없다면 이유를 10가지 적어보라. 그것이 바로 가장 큰 내 집착의 실체다.
∎ 괴로운가? 그렇다면 그 원인은 무언가에 대한 집착에 있다. 집착의 실체를 찾아보라.
∎ 내 욕망과 집착의 목록을 만들라. 욕망을 버리기 쉬운 것부터 지워본다.



3. 지금 이 순간에 깨어있으라. 관하라.

생각을 과거나 미래로 내보내지 말라.
오직 지금 이 순간을 지켜보라.
‘지금 여기’에 집중하라.
객관의 관찰자가 되어 나를 바라보라.
한 발자국 뒤에서 나를 지켜보라.

내 생각, 느낌, 몸, 호흡, 그리고 대상을 아무 판단 없이
다만 지켜보고 관찰하라.
지금 이 순간에 깨어있을 때
비로소 내 안 깊은 곳의 신성을 불성을 일깨우게 된다.
영성이 충만해지고 존재는 깊은 휴식에 든다.

깨어있는 관수행이야말로 깨달음의 요체다.

∎ 아침 저녁으로 10분 좌선에 들어 마음을 무심하게 바라본다.
∎ 하루 일과 중 ‘3분호흡관’으로, 들숨과 날숨에 숫자를 붙이며 호흡을 관찰한다.
∎ 화날 때 화부터 내지 말고 화내기 직전 호흡을 10번 크게 들이 쉬고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난 뒤에 화를 내더라도 낸다.



4. 부처님께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 자연의 흐름에 맡긴다.

내가 무엇을 한다는 생각을 버리라.
나는 없다. 오직 본연의 성품이 있을 뿐.
내가 한다고 하면 내가 괴롭고 즐겁지만
모든 것을 맡기면 괴로울 것도 즐거울 것도 없다.

늘 한결같이 살 수 있다.
모든 것을 맡기고 자연스럽게 살라.
자연의 흐름, 진리의 흐름에 내 몸을 맡기라.
일을 할 때도 자연스런 분위기와 흐름을 타고
자연스럽게 되어지는 것이 가장 좋다.

∎ 3번 이상 권유하고 시도해서 안 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것, 포기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 모든 것을 ‘내 일이 아닌 부처님 일’ ‘하느님 일’이라고 생각하고 맡긴다.
∎ 잘 되든 못 되든 상관하지 말고 당신이 하시는 일이니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라.



5. 사랑과 자비를 베풀라. 나누어 주라.

‘내 것’이란 없다.
잠시 나에게로 흘러왔다가 흘러갈 뿐이다.
그것을 흐르도록 두라.
내 안에 가둬 쌓아두지 말라.

소유든, 사랑이든, 마음이든, 가르침이든 이웃과 함께 나누라.
끊임없이 자비와 사랑을 베풀라.
베풀되 베풀었다는 상 없이 베풀라.

베풀어도 사실은 베푼 것이 아니라
잠시 이쪽에서 저쪽으로 인연따라
정확히 필요한 곳에 가 닿을 뿐이다.

준다는 것은 곧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면 받게 되고,
준 바 없이 주면 무한한 복을 받게 된다.

∎ 월급을 받으면 일정액을 떼어 순수하게 베풂을 위한 몫으로 정해두라.
∎ 돌려받을 수 없는 곳, 받을 수 없는 사람에게 베풀자.
∎ 매월 좋은 책을 10권씩 사서 버스기사, 회사 동료, 이웃들에게 아무 이유 없이 주자.



6. 적게 생각하고 많이 행동하라. 생각날 때 바로 저질러라.

될 수 있다면 머리를 적게 굴리는 것이 좋다.
생각은 본연의 진리를 막아선다.
생각과 판단을 줄이면 삶이 선명해지고 명료해진다.

많이 생각하기 보다는 많이 저질러라.
행동은 깨달음의 지름길이란 말이 있다.

∎ 도움을 주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면 바로 주라. 생각이 많으면 주지 못한다.
∎ 한 생각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바로 저질러라.
∎ 오랫동안 마음만 있었지 용기를 내지 못한 것이 있다면 저질러보라.



7. 내 생각을 남에게 주입하지 말라. 고집을 버리고 활짝 열려있으라.

어떤 한 가지 생각에도 전적으로 고집하지 말라.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유연성을 키워라.
어떤 가르침도, 어떤 사상도 다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가슴을 열어라.

어떤 사람에게도 배울 수 있는 자세를 가지라.
내 생각이 옳을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생각도 옳을 수 있다.
내 생각을 상대에게 주입하지 말라.

∎ 전혀 새로운 분야의 책도 한번쯤 사서 읽어 보고, 나와 생각이 맞지 않는 사람의 말도 한번쯤 수용하는 자세로 들어보라.
∎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배울 수 있는 점을 찾으라.
∎ 다른 종교의 성전을 읽어보라.



8. 부족하게 불편하게 산다. 아끼고 절약한다.

자식을 실패로 이끄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원하는 것을 다 해주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가지고 싶은 것을 다 가지고 사는 것 보다
조금 불편하고 부족하게 절약하며 사는 가운데에서
사유의 뜰이 넓어진다.

몸이 불편하면 정신이 깨어나지만,
몸이 게으르고 편한데 익숙해지면 정신의 지평이 축소되고 만다.

또한 아끼고 절약하는 가운데 충만한 복이 깃든다.

∎ 집에 있는 쓰지 않는 것들을 모아 필요한 곳에 나누어 준다.
∎ 무언가를 살 때는 이것이 욕망에 의한 것인가 필요에 의한 것인가를 살피라. 사고 싶은 것을 바로 사지 말고 좀 나둬 본다.
∎ 아끼고 절약한 만큼을 돈으로 환산하여 저축하고 보시한다.



9. 매일 기도의 시간을 가진다. 수행과 명상을 실천한다.

기도만큼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행위는 없다.
물질은 육신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기도는 정신에게 필요한 것이다.
물질은 이번 생으로 끝나는 것이지만 기도는 다음 생까지 이어진다.

아침 저녁으로 기도와 수행의 시간을 가지라.
아침의 기도는 낮 동안의 재앙을 없애주고
밤의 기도는 밤 동안의 재앙을 소멸시킨다는 말이 있다.

기도와 수행의 시간을 가지는 자에게 충만한 평화가 깃든다.

∎ 매일 아침 기도는 거르지 않는다.
∎ 기도의 본질은 감사다. 매 순간 순간 아무리 작은 일에도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 주 1회 이상은 자신이 믿는 종교의 성전에서 기도를 한다.



10. 적게 말하고 많이 들어라. 침묵하라.

말이 많아지면 그만큼 허물도 늘어난다.
입이 가벼우면 생각도 가벼워지고 행동 또한 가벼워져
자기 중심을 잡기 어렵다.
입이 화의 근원이고 번뇌의 근원이 된다.

침묵하는 자는 쉬 들뜨지 않으며 가볍지 않고 쉽게 행동하지 않는다.
내 생각과 견해를 상대방에게 말함으로써 인정받고자 하는 생각을 버리라.
침묵 속에 기도와 명상이 있고, 신과 부처와의 대면이 있다.

∎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하고 공감해 주라.
∎ 때때로 말하지 않는 ‘묵언’의 시간을 가지라. 묵언의 하루를 보내는 것도 좋다.
∎ 대화중에 말을 관찰하고, 내가 하루 종일 했던 말의 목록을 적어보라.



11. 자연의 먹거리로 소식하라. 자연치유력을 높인다.

인공적인 것, 가공된 것, 인간의 욕심이 개입된 먹거리는
곧 우리 몸을 혼탁하게 만드는 주범이 된다.
몸이 맑아져야 마음도 함께 맑아진다.

될 수 있다면 자연 그대로의 먹거리가 좋다.
자연의 생명이 담긴 음식은 곧 우리 몸의 자연치유력을 높여주어
온갖 병을 예방해 준다.

또한 음식을 먹을 때는 소식을 원칙으로 한다.
많이 먹을수록 식복이 다해 수명도 줄어든다.
많이 먹으면 정신이 둔해진다.

∎ 가족이 함께 주말농장이라도 찾아 가 자연의 먹거리를 직접 생산해 먹어본다.
∎ 가공식품, 인스턴트식품, 탄산음료 등을 먹지 않는 날을 정하라.
∎ 하루 한 끼 이상은 잡곡밥과 야채, 콩, 감자 등만으로 소식한다.



12. 홀로 있는 시간을 가지라. 외롭고 고독한 시간을 즐기라.

외롭게 홀로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 안의 참나를 만나는 소중한 통로가 되며,
그 때 비로소 신과 부처와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홀로 있다는 것은 곧 전체와 함께 있다는 것이다.
홀로 존재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정신이 내 안에 뿌리를 내린다.

∎ 때때로 홀로 여행을 떠나라.
∎ 하루 중에 아무 생각 없이, 일 없이 다만 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지라.
∎ 일주일에 몇 일은 집에서 TV를 꺼 두고 지내라.



13. 매일 숲길을 걸으라. 산책의 시간을 가지라.

숲길이나 산길을 홀로 걷는 산책의 시간은
더없이 소중한 자기와의 대면이며
걷는 일 자체가 경행의 수행이 된다.

걸음을 관찰하며 걸으라.
마음을 관찰하며 걸으라.
서서 두 발로 대지 위를 걷는 것이야말로
몸 건강에도 정신 건강에도 큰 도움을 가져온다.

아침 저녁 조용한 산책의 시간에
가장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떠오르고,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도 된다.

때때로 산을 찾으라.

∎ 아침이나 저녁 중 한 때를 정해 가까운 산으로 산책을 나서라.
∎ 주말이면 홀로 혹은 가족과 함께 산을 찾으라. 때때로 지리산을 홀로 종주해 보라.
∎ 숲길을 걸으며 발바닥에 마음을 모아 집중하고 그 느낌을 알아차린다.



14. 자연의 변화를 살핀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을 유심히 지켜본다.

자연이야말로 가장 진리와 합일을 이루며 사는 생명이다.
자연과 가까이할수록 우리 마음도 자연을 닮아가고
자연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자연의 변화를 지켜보는 일은 곧 마음을 비우는 일이 된다.

∎ 봄부터 겨울에 이르기까지 나무나 야생화를 하나 정해 유심히 관찰하라.
∎ 계절의 변화를 오감으로 느껴보고, 자연 관찰 일기를 적으라.
∎ 식물도감을 가까이 하고 식물의 이름을 알아본다.



15. 자기다운 삶을 살라. 누구처럼 살려고 애쓰지 말라.

남처럼 살려고 애쓰지 말고 독창적인 자기 자신의 길을 걸으라.
'나'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진리의 표현이다.
진리가 '나'로써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이야말로
나로써 피어나는 진리를 꽃피워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누구처럼 사는 것은 억지스럽지만
나답게 사는 것은 자연스럽고 쉽다.
자기다운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이 세상에 나온 진리의 목적을 이뤄내는 것이다.

∎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은 무엇인가. 그 일에 에너지를 쏟으라.
∎ 사소한 것일지라도 나의 긍정점을 100가지 이상 찾아보라.
∎ 무엇이든 남과 나를 비교하지 말라.



참된 앎은 곧 존재를 변화시킨다.
수첩에 적거나 프린트를 하여
눈이 자주 가는 곳에 붙여 놓고 틈틈이 읽기라도 해 보라.
분명 삶에 변화가 찾아 올 것이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은은히 삶 속에 스며들 것이다.
하나 하나의 목록이 어찌 생각해 보면 별 내용 아닌 듯 느껴질 지 모르지만
이 안에 우주의 신비로운 지혜의 소식이 담겨 있다.

모르긴 해도 수많은 종교나 사상, 철학, 성인들의 가르침이
이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을 것이다.
물론 사람들에 따라 이것이 가지는 의미는 다르겠지만,
어떤 사람은 이 가르침들 안에 깨달음의 씨앗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삶을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억지로 실천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무슨 거창한 수행을 한다거나,
삶을 변화시키겠다거나 하는 노력을 기울일 것도 없다.

쉽고 단순하게 실천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다만 틈틈이 반복해서 읽고 사유해 보라.
이 목록이 가지는 좀 더 본질적인 의미를 삶 속에서 찾다보면
어느 순간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작은 깨우침이 찾아 올 지 모른다.

이해되지 않거나,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어떻게 현실에서 실천해야 할지 모르겠더라도 괜찮다.
점차 이해는 깊어질 것이다.

우리 안에 본연의 깨달음이 항상 자리하고 있음을 받아들이기 바란다.
자기 자신의 본래 능력을,
우리 안의 불성이며 신성을 너무 쉽게 무시하지 말라.
반드시 안에서 깨우침의 향기가 피어오를 것임을 믿어도 좋다.

다만 반복해서 읽고 사유해 보라.
그것도 어렵다면 그저 읽기만 해도 좋다.
반복해서 읽다보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내면 깊은 곳에
몇몇 언어들이 생명력을 일으키며 물결을 일으킬 것이다.

수행이란, 마음공부란 사실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들은 수행과 명상에 대한 너무 높은 울타리를 치고 있었다.
억지스런 노력과 애씀은 오히려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수행을 오히려 나와 멀어지게 만든다.

고행주의를 버리라고 했던 부처의 말은
이미 2,500여 년 전에 있어왔지만
그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수행은
고도의 고행과 노력을 감당해 낼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수행은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어떤 고난도의 기술이 아니다.
가장 단순하고 쉬운, 너무 쉽고 단순해서 오히려 어렵게 느끼는 것이
수행이요 명상이다.

그러니 그동안 가져왔던 수행에 대한,
명상에 대한 벽을 깨라.

아주 자연스럽게, 아주 쉽고 단순하게,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긴장을 풀기 바란다.
그랬을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변화될 수 있다.
내 안의 깊은 휴식의 공간이 비로소 본연의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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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법상




혼자 있어야 한다는 것은,
외로움과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철저한 고독과 마주한다는 것은,

한 편 바깥 세상에 대한
모든 기대와 관심을 다 놓아버리고
혼자서 걷는다는 말도 되지만,

또 한 편 그 내적인 의미는
내적인 고독, 내적인 침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서는
수많은 생각과 기억, 고정관념, 편견, 판단을 비롯한
수없이 많은 것들이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혼자서 가만히 있는다고
다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예요.
다 혼자서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머릿 속에서 온갖 생각과 기억들이 춤을 춘다면
그 사람은 결코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온갖 과거로부터 온 생각과 기억 판단들과
함께 있는 것이지요.

혼자 있는다는 것은,
내면적으로 완전히 침묵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내적으로 침묵한다는 말은
과거로부터 배워왔거나 익혀왔거나 들어왔던
수많은 기억, 판단, 편견, 이미지, 사상, 고정관념, 생각들을
온전히 비워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생각 생각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이미 과거의 일들입니다.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던 수많은 복잡한 것들에
얽매여 있다면
결코 침묵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말 없는 것이 침묵이 아니예요.
내적인 침묵이 참된 침묵입니다.

과거의 기억을 들추어 내지 말고,
그 어떤 가르침이나 사상, 이데올로기도 따르지 말고,
누군가에게 혹은 어디에선가 배워온 것을 쫒지 말고,
지금 이 순간
고요 속의 즉각적인 통찰만을 따르면 됩니다.
온전히 내가 되라는 말입니다.

지금의 나를 돌이켜 보면,
만들어진 나, 교육되어진 나, 훈습되어진 나일 뿐
지금 이대로의 텅 빈 나가 되지 못합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
지금까지 가져오지 마세요.
그랬을 때 우리는 온전히 내가 될 수 있습니다.
내적으로 완전히 침묵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배운 것, 익혀온 것을 바탕으로
지금을 판단하지 말고
아무런 판단이나 기억도 일으키지 말고
오직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뿐'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완전한 내적 침묵 속을
거닐음도 없이 거닐고 있음입니다.
그것만이
내 안의 온갖 기억들을 비워낼 수 있는 길입니다.

무언가를 배우려고 하지 말고,
깨달음을 찾아 나서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찾는다는 것은
이미 또다른 색안경이며 기억, 앎을 만드는 것일 뿐이고,
또다시 '교육되어진 나'를 만드는 일이 될 뿐입니다.

내 안에는 너무 많은 생각, 사상, 기억, 앎들이 있어요.
그로인해 우리는 침묵하지 못합니다.
그로인해 속 뜰의 나 자신을 마주하지 못합니다.
그런 것들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어요.

참나를 찾기 위해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또다른 스승을 찾아 나서고,
또다른 성전을 찾아 나선다고 하면
그것은 이미 또다른 사상을 배우고자 하는 것일 뿐이고,
내 안에 또다른 관념을 주입시키는 것밖에 되지 못합니다.

불교는 쌓는 공부가 아니라 비우는 공부입니다.
다만 방편으로 비우기 위해 쌓는 것을 가르칠 뿐이예요.
그동안 제가 한 말이
'비우기 위해 쌓는 것'을 말했다면
지금 제가 하는 말은
'비움' 그 자체를 말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온전한 비움을 위해
내적인 완전한 침묵을 위해
우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애써 찾아 나서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아무런 분별도 없이,
아무런 판단도 없이,
과거를 떠올리거나 미래를 계획함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마음 모아 알아차리면 됩니다.

아무런 판단 분별 없이
'알아차림'만이 있을 수 있다면
바로 그 순간
알아차리는 나도 없고 알아차려지는 대상도 없습니다.

관하는 나가 없는 이유는
'나'라는 것은 과거의 산물이기 때문이고,
그 과거의 기억으로 걸러진 판단 분별 때문에 생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관할 때 '관하는 나'도 없고, '관하여지는 대상'도 없습니다.

다른 것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체 모든 생각이며 느낌을 있는 그대로 관하되,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좋다거나 싫다거나 하는 그 어떤 분별도 일으키지 말고,
다만 관하면서 그것과 하나되어 흐르기만 하세요.

이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궁극의 수행이며,
수행 아닌 수행인 것입니다.








Posted by 법상




외로움의 의미를
생각해 보셨는지요.

외롭다는 것은
내가 나를 알아간다는 것입니다.
나와 조금 더 가까워 진다는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
외로움은 고개를 치켜들고 찾 아와
혼자있음의 고요를 방해합니다.

외로움은
가진 것이 없을 때 찾아옵니다.

아무것도 없 을 때,
내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우린 외로움에 눈물을 흘립니다.

외로움이란 이름으로
우리의 혼자 있음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외로움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외로움이란 느낌이 없다면
우린 쉽게 혼자 있을 수 있을 것입 니다.
그랬다면
아마 보다 많은 수행자들이
깨우침을 얻었을 지 모릅니다.

외로움이란 느낌 때문에
우 린 그 느낌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
자꾸 밖으로 무언가를 찾아나섭니다.

혼자 있으면
도대체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TV를 켜든가,
비디오를 빌려 보던가,
사람들 많은 곳을 방황하던가,
아련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고...

외로움에서 벗어나려는
그런 일들 때문에
오랜만에 맑게 텅 비어지려던 내면은
다시 금 물들어 꽉 채워지게 됩니다.

혼자 있을 때,
외로움 그 속으로 들어가
온전히 느껴보고 하나 될 때,
우린 조금씩
내면의 참나와 마주할 수 있습니다.

늘상 밖으로 치닫는 사람은
내면이 헛헛하지만,
혼자 있음 을 즐기는 수행자는
맑은 향기가 충만합니다.

혼자 있어도
당당하고 초연합니다.

무언가 함께 할 때 당당한 것,
많이 가지고 있을 때 행복한 것,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마는
수행자는 아무것도 없이 홀 로 있을 때도
당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혼자 있어
외로움을 온전히 느끼는 것!
그것이 내 영혼을 맑혀 줄 것입 니다.

외로움 속에서
혼자 있음! 그 속에서
우린 가장 순수해 질 수 있습니다.

혼자인 순간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내면은
조금씩 참나에게로 다가서는 것입니다.




사람을 믿으려 하지 말고
법을 믿어라.
사람은 변함이 있지만
법은 변함이 없다.

믿었던 사람이
남들로부터 비난을 당하면 실망하게 되고,
믿었던 사람이
파계 하면 실망하게 되고,
믿었던 사람이
다시 세속으로 돌아가면 실망하게 되고,
믿었던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의지처를 잃게 된다.

법을 믿지 않고 사람을 믿으면
그와 같은 허물이 생긴다.

[잡아함경]의 말씀입니다.
불법 을 믿을 것이지
스님을, 사람을 믿지 말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변합니다.
변하는 사람을 믿으면
사람 이 변할 때
내 마음도 함께 흔들리게 됩니다.
중심이 흔들리게 됩니다.

그러나
오직 법을 믿고 부처님 을 믿으면
결코 흔들리는 법이 없습니다.

금강과도 같은 굳은 믿음이란
그 대상이 사람에 있지 않고
법과 부처님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성철스님이 파계를 하고,
원효스님이 속세로 돌아가고,
법 정스님이 대사찰을 소유하고,
원성스님이 결혼을 하고,
법상스님이 큰 죄를 지었더라도

내 마음의 중심은
한 치 도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스님들이 타락하고,
절이 청정함을 잃더라도
내 마음 공부는
한 치의 흔 들림도 없어야 할 것입니다.

자성부처님을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을 일이지
사람을 등불로 삼아선 안 될 일입 니다.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할 일이지
승등명(僧燈明)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고락의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우둔한 범부들이 느끼는 감정보다도
지혜로운 사람이
감정적으로 더 예민할 수도 있다.

다만 지혜로운 사람 은
즐거움을 만나도 함부로 행동하지 않고
괴로움에 부딪쳐도
그것 때문에 공연히 근심을 더하지 않아
괴로움과 즐거움 의 감정에 구속받지 않고
그 모두를 버릴 줄 알아
감정의 굴레를 벗어나 자유로울 뿐이다.

[잡아함경]

지혜로운 수행자라고
괴로움과 즐거움의 감정이 없다거나
늘 여여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경계를 만나
감정이 올라오는 것은 똑같습니다.

다만 어리석은 중생은
올바로 관찰하지 못하기에
그 감정에 마음이 머물 러 휘둘리지만,
지혜로운 수행자는
즉한 순간 관하여 깨어있기에
그 감정에 마음이 머무르지 않으며
바로 놓아버릴 수 있습니다.

경계에 닦쳐
욱! 하고 올라오는 마음은 같지만,
그 감정에 머무르느냐
빨리 놓아버리느냐가 다른 것입니다.

바로 관하면
쉽게 놓아버릴 수 있습니다.
빨리 놓아버리면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됩니다.




사람들은 절에 오며
좋은 일만 있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나 쁜 일들은 부처님께서 다 거두어 주시고
늘 즐거운 일만 있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그건 아닙니다.

부처님 앞에서 당당해 져야 합니다.
떳떳해 져야 합니다.
'내가 지은 것 모두 내가 받겠습니다.'
하는 마음이 진실된 수행자의 마음입니다.
즐거움도 괴로움도 모두
받아들이는 것이 수행자의 자세입니다.

내 앞에 펼쳐진
일 체의 모든 경계는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다 이유가 있기에, 원인이 있기에 나온 것입니다.
짓지 않은 것은 절대 나올 수가 없습니다.

안팎의 일체 모든 경계를
다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수행심입니다.

불교 교리 의 핵심을 연기법, 인과법이라 말합니다.
대승불교에서는 '공'이라 말합니다.
큰스님네들은 연기와 공을 실천키 위해
'마음 을 비워라'
'놓아라' 고 이야기 합니다.

어떻게 해야 연기, 공을 실천할 수 있고
어찌 해야 비울 수 있 습니까.

모두를 버리고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이 진정 비우는 것인가요?

비운다는 것은
공을 실 천한다는 것은
연기를 실천한다는 것은

내 앞에 펼쳐진 일체 모든 경계를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여야 함을 의미합 니다.

지을 때는 선도 악도 모두 닦치는대로 지어놓고
받을 때 되어선 좋은 것만 받겠다고 하니
중생심이란 얼마나 교활 합니까.
괴로움은 받기 싫은데
지어 놓았으니 지은대로 자꾸 나오게 되고
그걸 받지 않으려고 하니 괴로운 것입니다.

내 앞에서 당당해 지세요.
있는 그대로 모두를 받아 들이세요.

나는 수행했으니
나는 기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괴로움이 비켜갈 것이란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는 않으셨나요.
진정한 수행자라면
괴로움, 즐거움 이 모두를
다 받아들일 준 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당당히 싸워 몽땅 녹일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 수행 많이 한다고
괴로움이 비켜가 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수행심으로 괴로움에 걸리지 않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괴로움 없는 이가 아니라
괴로움에 얽매 이지 않는 이라고 하지 않던가요.

괴로움의 과보가 왔을 때
싫다고 비켜가면 그만인 듯 하지만
도리어 더 큰 과보가 되어 언젠가 내 앞을 가로막을 것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 법계의 이치입니다.

그렇기에
다 받아들이고
그 모든 경계를 다 녹여 내셔야 합니다.
내 안에서 다 녹여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용광로라 고 하지 않던가요.
그 어떤 경계일지라도 나의 참생명 주인공 속에
몰록 놓고 나면 다 녹아들게 되어 있습니다.

까 짓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그 어떤 경계가 두려움을 몰고 온다 해도,
묵묵히 관찰하고
다 놓고
다 비우고
다 받아들 이세요

나의 참생명은
무엇이든 다 녹일 수 있는 부처님 이십니다.



Posted by 법상

        때때로 홀로 존재하고 싶은 깊은 속 뜰의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언젠가 나 홀로 떠나 그림자와 함께 여행하던 그 바닷가 외로운 포구, 혹은 저 홀로 울울창창 소리치며 그 깊은 산 우뚝 솟아 있던 한 그루의 소나무가 지독하게 보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럴 때는 한 며칠 일도 다 때려 치고 내 행동 범위도 최소한의 것으로 한정시킨다. 사람들을 만나거나 아니면 핸드폰, 전화 벨 소리에 귀 기울이거나 행여 TV를 켜거나 신문 보는 것조차 번거로워 잠시 접어 둔다. 될 수 있다면 먹는 음식도 소박하면 좋겠고, 군것질도 끊고 나면 속이 비어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야말로 입에는 말이 적고, 마음에는 일이 적고, 뱃속에는 밥이 적을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배려한다.

  그럴 때면 이른 새벽 뒷산 깊숙이까지 들어가 호젓하게 자연 속에서 그저 홀로 존재하는 시간을 가져 보기도 한다. 후덥지근하던 열대야 더위에서나, 온몸을 달달 떨어야 하는 한겨울 추위에서는 느끼지 못할 그런 청정한 산기운이 길을 걷는 한 사람의 속 뜰을 비춰줄 수 있는 그런 날. 그런 날, 바로 오늘 같은 날에 삶의 무게를 무색하게 만드는 외로움의 소리 없는 소리를 듣곤 하는 것이다.

 

 

  모처럼 찾아오는 이런 외로움의 때를 예전 같으면 무기력이나 우울증쯤으로 여기며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겠지만, 가만히 그 느낌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건 우울한 때가 아닌 오히려 신선한 삶의 활력이 되는 때임을 깨닫게 된다. 이럴 때가 있다는 것이 많이 고맙고 감사하다. 이런 때가 있다는 것은 우리의 내면이 모처럼만에 성숙할 수 있을 기회를 맞이한다는 것. 외로움의 깊이만큼 내 삶의 깊이도 한층 깊어진다는 것. 그런 것이다.

  사실 외로움이란 근원적인 문제다. 그 깊은 외로움을 통해서 잊고 있었던 참된 자아와 만나는 통로가 연결되어 있으며, 그 홀로 된 외로움을 통해서 전체와 하나로 만날 수 있는 길을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홀로 존재한다는 것은 그냥 그 자체만으로도 한없이 충만한 것이다. 쉽게 생각해 보면 헛헛하고 외로워 보일지 모르지만 텅 빈 가운데 성성하게 깨어 있는 속 뜰은 마구잡이로 채워 넣는 소유의 정신에 비할 바가 아니다.

  혼자 있을 때, 외로울 때 비로소 내가 나의 친구가 되어줄 수 있다. 일상에서는 내가 나의 존재를 잊고 내 바깥 존재며 일들에만 관심을 가지고 살지 나 자신에게 고개를 돌리지 못하지만, 외로울 때, 나 홀로 고독의 한 가운데 딱 내 버려져 있을 때 그 때 비로소 내 안에 숨어 있던 참된 친구, 어진 벗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홀로 있으면 외롭고, 외로움은 싫은 것이라고.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음으로써 그 외로움에서 벗어나고자 애를 쓴다. 물론 누구나 그렇게 느끼고 실제로 함께 함으로써 조금 덜 외로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 깊이 비추어 보면 함께 하고 있음이 우리의 외로움을 덜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함께 해도 우린 여전히 외롭다. 가족과 함께 할 때도 우린 외롭고, 친구와 함께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도, 번잡한 군중 속을 거닐 때에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을 때라도, 그 어느 때라도, 그 누구와 함께 있을 때라도 우린 여전히 외롭다. 함께 있음으로써 외로움을 달랠 수 있다고 할 때 우린 세상에 속고 있는 것이다. 외로움을 떨쳐낸 것이 아니라 잠시 덮어두고 있을 뿐, 언제까지 그 외로움을 덮어둘 수 있을까. 덮어두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속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린 내 안의 참된 고독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저 홀로 외로움을 맞이했을 때 그 때 우리는 외롭지 않다. 아니 어쩌면 너무 외로워서 외롭지 않다. 우린 누구나 그러한 외로운 때를 가져야 한다. 철저하게 저 홀로 고독해져야 한다. 외로움이 싫다고 자꾸 벗어나려 하면 안 된다.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더욱 외로움의 그림자는 짙게 드리울 뿐. 그럴 바에야 두 눈 똑바로 쳐다보고 외로움을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에 관심을 바라지 않고, 누군가와 함께 하지 않고, 철저히 혼자가 될 수 있을 때, 그럴 때 우린 비로소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나 자신과 마주하기를 꺼려하고, 자꾸 바깥 세상에 기대를 버리지 않기 때문에 나 자신을 만나질 못한다. 나 자신과의 만남을 이루려거든 먼저 바깥의 관심이며 기대를 다 포기해 버려야 한다. 바깥으로 치닫는 그 어떤 마음도 다 놓아버리고 철저한 고독과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 나 홀로 그 고독 앞에 우뚝 설 수 있어야 한다. 이 길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고, 그 누구도 함께 갈 수 없는 길,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하는 길일뿐이다.

 

 

  이처럼 홀로 있을 때 우리는 참으로 함께 할 수 있고, 작은 나의 허울을 벗고 전체와 함께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몸뚱이만 그저 덩그러니 혼자 있다고 해서 다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혼자 있으려면 번거로운 우리의 소유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잔뜩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 많으면 우린 호젓하게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소유물로부터 소유를 당하며 소유물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휘둘리고 있는 소유란 물질적인 것들이 물론 포함되지만 돈, 명예, 권력, 지위, 배경, 학벌, 등등의 것들까지를 말하는 것이다. 참으로 혼자 있는 법을 배우면 이런 것들이 있건 없건, 높건 낮건 우린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자 존재하면서도 충만할 수 있는 법을 익히지 못했기 때문에 외부적인 것들이 많이 채워져야 충만하고 행복하다고 여긴다. 돈이며 명예 권력 지위 학벌이며 온갖 소유물들이 넘쳐나야 행복하지 그런 것들이 없어지고 나 홀로 덩그러니 남으면 내 존재의 뿌리를 잃어버린 것 마냥 외로워하고 괴로워한다.

 

 

  또한 이러한 유형무형의 소유물로부터, 온갖 물질로부터 자유로워 졌다고 하더라도 아직 온전한 홀로 있음을 실천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가장 중요한 홀로 있음의 실천 요소가 남았다. 그것은 바로 정신의 홀로 있음이다. 아무리 깊은 산 속에 들어가 살더라도, 온갖 소유의 울타리로부터 자유롭게 살더라도 우리 머릿속이 온갖 번뇌와 탐진치 삼독심貪瞋癡 三毒心으로 또 잡다한 지식 같은 것들로 꽉 채워져 있다면 우린 참으로 홀로 존재한다고 할 수 없다. 물질로부터 자유로워지듯, 우리 정신 또한 온갖 번뇌며 수많은 생각들로부터 자유로워 져야 한다. 머릿속이 맑게 비워져 있어야 그 때 우린 참으로 몸도 마음도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이 세상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넘쳐나는 소유물 속에서 또 온갖 지식과 정보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리고 그것들로 인한 터질 것 같은 번뇌와 잡념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래도 우린 누구나 이따금씩이라도 홀로 존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자주 가짐으로써, 채움으로 삶의 목적을 삼아 왔던 우리의 삶의 방식을 조금씩 비움으로, 놓아감으로 바꾸어 갈 수 있다.

  우린 어차피 혼자서 잠시 이 지구로의 여행을 온 것이고, 이 여행을 마치고 되돌아 갈 때, 또 다른 삶의 여행을 떠날 때 또다시 우린 혼자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때 그동안 쌓아 놓았던 모든 것들을, 인연이며, 소유물들을 한꺼번에 버리고 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미리 미리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버리는 연습을 해 나갈 수 있다.

  혼자 있는 법을 배워야 우린 당당해 질 수 있고, 내 안에서 충만하게 우러나오는 행복감을 맛볼 수 있다. 주변 상황이나 조건의 좋고 나쁨이나, 물질의 많고 적음에 휘둘리지 않고 그저 나 혼자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이 숲도 봄이 되니 한겨울 외로운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며 홀로 우뚝 서 있던 나무들이 이제 다시금 여행을 떠나려고 재잘거리고 있다. 겨우내 나 홀로 이 추위를 맞이했던 이 나무들은 잘 안다. 누구나 한 번쯤은 홀로 존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그러고 나면 또 다시 함께 존재하는 풍성한 시간 또한 오게 된다는 것을.   법상 [부자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되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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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법상
홀로 있다는 것은 외로움이나 고독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 외로움이나 고독이란 느낌이 우리의 속 뜰을 더 생생하게 비춰 주고 우리 존재의 근원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여유와 깊이를 가져다준다.

혼자 있다는 것은 그냥 그 자체만으로도 한없이 충만한 것이다. 쉽게 생각해 보면 헛헛하고 외로워 보일지 모르지만 텅 빈 가운데 성성하게 깨어있는 속 뜰은 마구잡이로 채워 넣는 소유의 정신에 비할 바가 아니다. 홀로 있을 때 우리는 참으로 함께 할 수 있고, 작은 나의 허울을 벗고 전체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몸뚱이만 그저 덩그러니 혼자 있다고 해서 다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혼자 있으려면 번거로운 우리의 소유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잔뜩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 많으면 우린 호젓하게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소유물로부터 소유를 당하며 휘둘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휘둘리고 있는 소유란 물질적인 것들이 물론 포함되지만 돈, 명예, 권력, 지위, 배경, 학벌, 등등의 것들까지를 말하는데, 참으로 혼자 있는 법을 배우면 이런 것들이 있건 없건, 높건 낮건 우린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자 존재하면서도 충만할 수 있는 법을 익히지 못했기 때문에 외부적인 것들이 많이 채워져야 충만하고 행복하다고 여긴다. 돈이며 명예 권력 지위 학벌이며 온갖 소유물들이 넘쳐나야 행복하지, 그런 것들이 없어지고 나 홀로 덩그러니 남으면 내 존재의 뿌리를 잃어버린 것 마냥 외로워하고 괴로워한다.

또한 이러한 소유물로부터 자유로워 졌다고 하더라도 아직 온전한 홀로 있음을 실천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가장 중요한 홀로 있음의 실천 요소가 남았다. 그것은 바로 정신의 홀로 있음이다.

아무리 깊은 산 속에 들어가 살더라도, 온갖 소유의 울타리로부터 자유롭게 살더라도, 우리 머릿속이 온갖 번뇌와 탐진치 삼독심으로 또 잡다한 지식 같은 것들로 꽉 채워져 있다면 우린 참으로 홀로 존재한다고 할 수 없다.

물질로부터 자유로워지듯, 우리 정신 또한 온갖 번뇌며 숯 한 생각들로부터 자유로워 져야 한다. 머릿속이 맑게 비워져 있어야 그 때 우린 참으로 몸도 마음도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이 번잡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래도 우린 누구나 이따금씩이라도 혼자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 혼자 있는 법을 배워야 우린 당당해 질 수 있고, 내 안에서 충만하게 우러나오는 행복감을 맛볼 수 있다.

주변 상황이나 조건의 좋고 나쁨이나, 물질의 많고 적음에, 휘둘리지 않고 그저 나 혼자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이 숲도 봄이 되니 한겨울 외로운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며 홀로 우뚝 서 있던 나무들이 이제 다시금 여행을 떠나려고 재잘거리고 있다. 겨우내 나홀로 이 추위를 맞이했던 이 나무들은 잘 안다.

누구나 한 번쯤은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그러고 났을 때 또다시 함께 존재하는 풍성한 시간이 오게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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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법상



살다보면 이따금씩
제가 짊어지고 온 삶의 그림자가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고,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보이지 않는 삶의 무게로
한참을 주춤거리며
내 삶의 시계가 딱 멈춰 섰을 때가 있 다.

시간은 흐르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대로 멈춰진 채
중심없이 외로이 흔들릴 때가 있는 법이 다.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예전엔 생각만 해도 설레이던 일들이
무의미해지고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어떤 사람들이 곁에 다가와도
그 어떤 흥겨운 일을 벌이더라도
한참을 짙누르는 외로운 흔적을 떨쳐 버리지 못할
그런 때가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다.

집에 들어 앉아 있어도
언젠가 나홀로 떠나 그림자와 함께 여행하던
그 바닷가 외로운 포구,
혹은 저홀로 울울창창 소리치며
그 깊은 산 우뚝 솟아 있던 소나무 한 그루가
지독하게 보고싶을 때도 있는 법이다.

그 어떤 일도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희망도
이 길에 벗이 되지 못할 때.

오직 나홀로
이 외로운 길을 걸어가야 할 때.

바로 그 때...
그 때가 있는 법이다.

그래도...
외로운건 좋은 것이다.

외로울 때
비로소 내가 나의 친구가 되어주니까.

일상에서는
내가 나의 존재를 잊고
내 바깥 존재며 일들에만 관심을 가지고 살지
나 자신에게 고개를 돌리지 못하지 만,

외로울 때
나홀로 고독의 한 가운데
딱 내 버려져 있을 때
그 때 비로소 내 안에 숨어 있던
참된 친구, 어진 벗을 만나게 되니까 말이 다.

이 어둔 밤,
도량 옆 조용한 산길을 걸어본다.

후덥지근 하던 열대야 더위에서나
온몸을 달달 떨어야 하는 한겨울 추위에서는 느끼지 못할
그런 청정한 산기운이
길을 걷는 한 사람의 속 뜰을 비춰줄 수 있는 그런 날.

그런 날,
바로 오늘 같은 날에
삶의 무게를 무색하게 만드는
내 삶의 외로움이 소리없이 찾아오는 것이 다.

그래도 다행인 건
신선한 요즈음의 밤공기며
함께 걸어줄 수 있는 숲의 식구들이 있어
그리 외롭지만은 않다는 점.

모처럼 찾아오는 이런 외로움의 때를
예전같으면 무기력이나 우울증 쯤으로 여기며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겠지만,
가만히 그 느낌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건 우울한 때가 아닌
오히려 신선한 삶의 활력이 되는 때임을 깨닫게 된 다.

이럴 때가 있다는 것이
많이 고맙고 감사하다.

사람들은 이럴 때
우울증에 시달린다고 하지만
사실 이 때가 내 삶에 있어 가장 소중한 때 다.

이런 때가 있다는 것은
우리의 내면이 모처럼만에 성숙할 수 있을 기회를 맞이한 다는 것.

외로움의 깊이 만큼
내 삶의 깊이도 한층 깊어진다는 것.

그런 것이다.

밤공기가 참 좋다.
지난주에 법당앞 단풍나무 아래
널찍한 평상을 마련해 두었더니
그냥 벌렁 누워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아무 걸림없이 그대로 세상을 마주할 수 있어서 좋 다.

저 발아래
작은 텃밭도 이제 제법
어린 싹들이 사춘기로 접어드는지
재잘거리며 세상 구경하느라 싱그럽기 그지없 다.

너희들도 이제 삶의 고된 때도 만나고
한바탕 거친 장마가 지고 나면
한순간 크게 성장하는 사춘기도 올 것이 다.

그렇게 한 번 모진 삶의 때가 지나고 나면
그 후에 햇살 쨍 하고 내려 쬘 때
아침 이슬이 너희 잎사귀에 노래하며 내려 앉을 때
그 때
이 외로움의 소리없는 소리를
너희들도 듣게 될 때가 있을 것이다.

그 때
방 앞 작은 다실에서
차 한 잔 나누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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