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 아무리 맛이 있더라도
제 양을 초과하여 먹어서는 안된다.
오직 기력을 도와
몸을 이롭게 하는 데에서 그칠 줄 알아야 한다.

[대아미타경]

수행자는 음식을 탐닉해서는 안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부여된 음식의 양과 수명이 있다.
그러므로 자기의 몫이 아닌 음식과 수명을 탐내서는 안된다.
탐한다고 해서 자기의 몫이 아닌 것이 더 오지는 않는다.

[정법안장]

음식을 탐하면 수명이 짧아진다.
제 몫의 음식복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음식에 대한 탐심을 많이 내어
이번 생 자신의 식복을 넘어서면
현생에 더 먹을 복이 없어지기 때문에
수명이 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식을 하면 복력 또한 소멸한다.
과식을 하는데도 오래산다면 그 사람은 삶이 불행해지기 쉽다.
식복은 없는데 많이 먹으니
다른 복력들이 식복으로 대치되어
복력이 줄어들다 보니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현대과학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미국 노화연구소에서는
소식을 꾸준히 실천할 경우 자연수명을 40% 연장시켜
170세까지 살 수도 있다고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음식물 섭취를 줄이면 삶의 진행과정을 늦출 수 있고,
금욕으로 신체의 번식 전략을 생존전략으로 전환시키면
장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다른 코넬 대학연구팀에서도
음식물섭취를 줄이면 2배에서 4배까지 수명이 증가한다고 발표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과식은 수행자에게 여러모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식은 정신을 혼란하게 만들며
온갖 욕구와 번뇌를 불러일으키고,
고요한 선정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

소식을 하면 몸도 마음도 경쾌하고 가벼워
쉽게 선정과 지혜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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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법상




[사진 : 법주사]

내 것이라고 집착하는 마음이
갖가지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이 된다.
온갖 것에 대해 취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훗날 마음이 편안하여 마침내 근심이 없어진다.

[화엄경]

자기 마음에 드는 것에
집착하지 않아야 할 것이니
이것은 탐심을 끊어버리기 위함이다.

자기 마음에 거슬리는 것에
성내지 않아야 할 것이니
이것은 진심을 없애기 위함이다.

어리석은 말에
집착하지 않아야 할 것이니
이것은 치심을 끊기 위함이다.

수행은 집착하지 않고
동요하지 않는 지혜의 연마이다.

[잡아함경]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세 가지 독이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것이다.

이는 모두 ‘나’에 대한 집착에서 오는 것이니,
내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
탐욕을 끊는 공부이고,
내 생각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성냄을 끊는 공부이며,
실체적인 어떤 ‘나’가 있다는 생각을 비우는 것이
어리석음을 끊는 공부가 되는 것이다.

이같은 탐진치(貪瞋痴)의 뿌리는
한마디로 아상(我相), 아집(我執)에 있다.
‘나’라는 상에 집착하기 때문에
‘내 것이다’라는 소유욕이 일어나고,
나의 소유물이 없으면 곧 나도 없다는 착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처럼 내가 마음에 드는 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는 집착과 소유욕을 버리는 것이
탐심의 뿌리를 뽑는 첫 번째 수행이다.

두 번째로 ‘내가 옳다’는 생각에 집착하므로
내 생각과 어긋나는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는
화를 내게 된다.

내가 옳다는 것은 너는 틀리다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모든 다툼과 성냄의 씨앗이다.
사실 그 어떤 생각도 전적으로 옳거나 그를 수 없다.
다만 서로 다를 뿐이지 옳고 그른 것이 아니다.

마음에 거슬리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이 내 생각과 다르다고 화를 낼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주는 것
이것이 진심의 뿌리를 뽑는 두 번째 수행이다.

그리고 셋째로 이 모든 뿌리에 있는 생각인
‘내가 있다’고 하는 착각이 바로 어리석음 곧 치심이다.
나는 실체적인 것이 아니라
인연 따라 생겨난 비실체적이고 연기적인 존재임을 바로 알고
나에게 집착하지 않는 것이
치심의 뿌리를 뽑는 세 번째 수행이다.

수행이란 이렇듯
‘나’에 집착하지 않고 동요하지 않는 지혜를 연마하여
탐진치 삼독심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일이다.
Posted by 법상



[법주사의 금강문과 천왕문]


집착하는 까닭에 탐욕이 생기고,
탐욕이 생기는 까닭에 얽매이게 되며,
얽매이는 까닭에
생로병사와 근심, 슬픔, 괴로움과 같은
갖가지 번뇌가 뒤따르는 것이다.
[열반경]




집착과 탐욕이 모든 괴로움의 원인이다.
집착을 놓아버리고, 탐욕을 놓아버리면 괴로움은 저절로 없어진다.

우리 삶의 목적이
무언가를 자꾸 집착하고 탐욕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지혜로운 자의 삶의 목적은
내 안에 바라는 바, 집착하는 바를
어떻게 하면 놓아버리고 비워버려
홀가분하고 고요하게 살아가느냐에 있다.

놓고 비우면 괴로움은 없다.
지금 괴로운 것이 있는가.
그것은 탐욕 하는 것, 집착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 원인을 놓아버리면 괴로움은 사라진다.

극단적으로 몸뚱이 집착심을 놓고,
살고자 하는 욕망과 집착을 놓아버리면
지금 이 순간 죽음이 오더라도 괴로울 것이 없다.

끝에 가서는 삶에 대한 집착까지도 놓아버렸을 때
잘 죽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하물며 살아있으면서 온갖 집착을 가지겠는가.

물질적인 소유에의 집착,
자식이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집착,
내 생각이 옳다고 고집하는 생각에 대한 집착,
이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면 거리낄 것이 없고,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집착과 탐욕을 놓아버릴 것인가.
온전히 놓고 비울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관찰하는 것이다.
분명하게 관찰할 수 있어야
나를 괴롭히는 원인이 집착과 탐욕임을 알 수 있고,
바로 알고 바로 보았을 때
집착과 탐욕은 소멸된다.

내 삶의 모든 문제를 종식시키고 싶은가.
그렇다면 내 삶의 모든 문제를 만들어 낸 원인인
집착과 탐욕을 관하여 놓고 비우라.

탐욕을 채움으로써
완전한 행복과 평화에 이른 사람은 없다.
탐욕을 관하여 놓아버림으로써만
지고의 행복과 평화는 찾아온다.
Posted by 법상



[사진 : 범어사]
* 범어사를 참배하고 일주문을 내려오는데
하마비 옆에서 엿을 파는 엿장수 처사님이
지나가는 신도님들과 관광객들을 붙잡아 놓고서는
새들이 손바닥에 올라와 모이를 먹는 모습을
흥겹게 보여주고 계셨다.
모두들 신기해 하고 즐거워하는 모습.
처사님이 오랫동안 모이를 주다보니
이제는 새들도 해치지 않을 것이란 걸 알아챈 것이다.
인간과 자연이 해침 없이 공존하는 순간의 고마움!!



마음이 탐욕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중생들이 무거운 짐을 지게 된다.
탐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한
무거운 짐을 벗을 수는 없다.
짐을 지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병이요,
짐을 벗어버리는 것은 최상의 즐거움이니
무거운 짐을 버릴지언정 새 짐을 만들지 말라.

[증일아함경]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가장 무거운 짐이
탐욕의 짐이다.

탐욕의 짐은 짊어지는 만큼 병이 되고,
벗어버리는 만큼 즐거움이 된다.

길을 걷는 나그네에게 짐이 많다면
그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인생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짐이 없어야 호젓하고 가벼운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지혜로운 이는 삶의 길 위에서
항상 무거운 짐을 버리고 버리며 살지만,
어리석은 이는 항상 새 짐을 만들고,
쌓고 또 쌓기에 여념이 없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짐을 늘리려고 애쓰며 사는 것이 사람들의 모습이다.
가진 짐이 많으면 부유하고 행복하며 자랑스럽지만
가진 짐이 없을수록 부족하고 가난하며 부끄럽다고 여긴다.

그러나 참된 공덕은 짐이 없어 가벼운 삶에 있다.
인류의 모든 성인들은 공통적으로 가난하여 짐이 없었고,
그렇기에 삶이라는 여행길에서
가볍고도 자유로운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이 세상에서 보면 짐이 많은 사람이 부자이고,
짐이 없는 사람이 가난한 것 같지만,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짐이 많은 사람이 가난하고,
짐이 없을수록 부자가 되어 떠난다.

짊어진 짐이 없을수록 부처님 땅에 가까워지고,
짊어진 짐이 많을수록 저 깊은 지하 세계의 지옥과는 가까워진다.
짐이 없어야 홀가분하게 높이 높이 천상계로 오를 수 있지,
짐이 많으면 가라앉고 또 가라앉아 저 지옥의 끝까지 가게 된다.

내 탐욕의 짐은 얼마인가.
이미 쌓아 놓은 짐과 쌓기 위해 발버둥치는 짐은 과연 얼마인가.
그 모든 짐을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가라.

Posted by 법상




[사진 : 범어사]

고통의 원인은 탐욕이다.
세상의 즐거움이란 결국 고통 아닌 것이 없다.
탐욕은 어리석은 사람이나 하는 것,
모든 고통과 근심은 바로 탐욕에서 생기는 것이다.

[화엄경]

온갖 괴로움의 원인은 바로 탐욕이다.
중생은 생각이 어리석어 탐욕을 즐거워한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탐욕이 바로 괴로움인 줄 알기 때문에 수시로 끊어버린다.
탐욕을 욕망으로 채우려고 한다면
그것은 마치 소금물을 마셔 더욱 갈증이 심해지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탐욕을 없앤다면 괴로움은 저절로 없어질 것이다.

[성실론]



탐욕은 괴로움이다.
탐욕을 채우는 데에서 오는 즐거움 또한
결국 고통이 되고 만다.
탐욕을 채우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더 탐욕은 커진다.
만족은 잠시일 뿐 이윽고 또 다른 탐욕이 생겨난다.

우리의 삶을 가만히 살펴보면
죽을 때 까지 오직 탐욕을 채우기에만 여념이 없지 않은가.
많은 이들이
탐욕을 채웠을 때 오는 잠시의 행복이
참된 행복인 줄 착각하고 산다.

탐욕을 채우기 위해
온갖 악행과 기만을 서슴지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탐욕을 채워나간다.

나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상대방을 짓누르고 밟고 일어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된다.
아니 당연한 정도가 아니라
능력 있는 사람이고 훌륭한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그래서 슬프다.
이 세상도 슬프고, 탐욕에 물든 사람들도 슬프다.
탐욕이란 사람을 눈멀게 하고,
온전한 만족에서 멀어지게 하며,
영적인 성숙과 이별하게 만든다.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탐욕이다.
탐욕이 없으면 괴로움도 없다.
그렇다고 탐욕을 끊기 위해 탐욕을 미워하고 증오할 필요는 없다.

탐욕에 대한 그 어떤 분별도 버려야 한다.
탐욕 그 자체는 좋거나 나쁜 어떤 실체적인 것이 아니라
다만 인연따라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중립적이고 비실체적인 것이다.

탐욕을 없애려고 애쓰지 말고,
좋아하거나 싫어하지도 말고,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머물렀다가
어떤 일들을 만들어내고 또 어떻게 사라지는가를
그냥 알아차리고 지켜보기만 하라.

그랬을 때 전체적인 탐욕에 대한 지혜가 생기고
지혜의 빛은 곧 탐욕을 사랑으로 불태운다.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