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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2.11 농사문제, 먹는문제를 생각한다
  2. 2007.12.11 대자연의 성품을 잊고 산다



바람이 좋다.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숲을 지나 뺨까지 스치는 바람을
그대로 맞고 있으면 나는 행복을 느낀 다.

매일 매일
공양 때 마다 밥상위로 올라오는
아직은 어린 상추, 케일, 근대, 쑥갓들 하 며,
지난 주 보살님께서 담아주신 물김치들로
요즘은 밥 때가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내 손으로 직접 지은 채소,
비료, 농약, 제초제를 뿌리지 않은 온연한 채소들을 보 고 있으면
자식 키우는 재미가 이런게 아닐까 싶 다.

하기야 자식들이야 키우는 재미는 있다지만
하도 말썽을 피고
다 커서는 부모 속을 얼마나 썩이 나.
이 녀석들은 별 속도 안 썩이면서
하루에 세 번 거스르지 않고 효도를 하니 얼마나 고마운 지...

비료를 안 뿌리니까
이렇게 더디고 실하지 않다면서,
농약을 안 뿌리니까
이렇게 잎이 벌레를 먹었다면서
제초제를 안 뿌리니까
채소에게 갈 양분이 잡초들에게 다 간다면서
이러면 안된다고 고집하시던 마을 분들도
이젠 법당 채소에 탐을 내는 분위 기.

그런데
직접 농사를 지어 보니까
농부들의 마음 백번 이해가 간다.

비료 조금만 뿌리면
열 개 달릴 꺼 스무게 삼십게는 달릴 것이 고,
비실비실 작은 상추잎도 더 커지겠고,
농약 조금만 뿌리면
벌레 안 먹은 보기 좋고 윤기있는 채소를 재배할 테 니...

그 유혹을 그래도 이겨내려면
밝은 지혜, 온전한 앎이 있어야 할 것 같 다.

비료 주어서, 농약 뿌려서 열매가 더 열리면
그만큼 열매의 생명력은 떨어지게 마련이 다.
인간의 손길로 잔뜩 영양제 뿌려주고
외부로부터의, 벌레로부터의 재해를 막아주니
열매는 몸집만 크고 열매가 많아질 지언정
그 내적으로 실하지 못하고 생명력이 떨어지지 않겠 는가.

사람도 고난과 힘겨움을 당해 보고
그 속에서 내면의 힘도 생기는 것이 고,
아프고 고달파 봄으로써
더 튼튼한 건강을 챙기게 되는 것이 며,
외부로부터의 경쟁상대가 있어야
내적으로 더 똘똘뭉치고 실해지지 않는 가.

그러니 그런 생명력 없는 음식 아무리 많이 먹어도
입에는 달고 보기에는 좋을지언정
우리 몸을 그만큼 약화시키고
생명력을 감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 같 다.

요즘이야
채식도 온통 사람들 손으로 생명력을 떨어뜨린
나약하고 겉만 뻔지르르한 채식이고,
육식도 사람들 먹기 위해 억지로 먹이고 길러서
살만 잔뜩 찌워 잡아 죽인 육식이니
뭐 하나 마음 놓고 먹을 만한 것이 없 다.

그것이 다 사람들 욕심에서 나온 어리석은 결과 다.
사람들은 사실 최소한의 보조역할만 하면
채소도 다 우리 먹을 만큼 자라 줄 것이 고,
동물들이야 우리 사람들의 보조도 필요없이
잘 자라게 되어 있을 것이다.

대자연 우주는 그렇게 본래부터
다 갖추고 있는 온전한 하나의 생명체 다.
사람들 욕심만 갖다 붙이지 않으면
그들은 절대 부족할 것 없이 충분히 사람도 먹여 살리고
온 우주 법계가 서로 서로를 먹여 살리도록 되어 있 다.
그것이 법계의 온전한 본래 모습.

대자연 우주 법계 보다
사람이 더 잘난줄 아는 것이 병통이 다.
사람이 더 잘났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대자연의 이치는 덮어두고 사람의 생각대로 행한 다.
그러나 절실히 필요한 자각 하나.
사람의 지식이 더 올바른 것이 아니라
대자연 우주 법계의 지혜가 더 근원적이라는 사 실.

그런데 농업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대량 생산, 대량 축적, 대량 소비라는 허울만 좋 은,
사실은 엄청난 어리석음과 욕심을 동반한
농업혁명이 아닌 농업폐망의 길로 들어서고 있음을 알지 못한 다.

더 많이, 더 큰 것을 더 빨리 얻으려는 욕심으로
대자연 우주를 마구 훼손하여 그 속에서
질소, 인산, 칼리라는 비료의 3요소를 뽑아내어
비료를 만들어 놓았고,

채소, 농작물과 공존하면서
그들의 생명력을 강화시켜주고 상생하고 있는 소중한 해 충들을
아주 몰살시켜 채소만 멀쩡하게 잘 자랄 수 있게
농약들을 개발시켰으며,

땅심을 좋게 하고, 황폐화되고 산성화된 흙을 비옥하게 바꾸어 주는
소중한 야생의 풀들을 잡초라고 몰아붙여
청산가리 1만배가 넘는 독극물인 제초재를 개발시켜 놓고 말았다.

이것이 다 어리석음에서 나오는
법계 전체를 보지 못하고
당장의 욕심만을 추구하고자 하는 탐심과 치심에서 나온 것이다.

본래 좋고 나쁨이 없기 때문에,
좋은 것이 있으면 나쁜 것이 있어야 하 고,
나쁜 것이 있음으로 인해 좋게 될 수 있다는 공존의 원 리
연기의 원리를 모르는 어리석음이 그 바탕이 된 것이 다.

산업혁명, 농업혁명이 사실은
그 근본이 어리석음인 줄 누가 알고나 있겠는 가.

해충이 있어야 익충도 있는 법이고,
잡초가 있어야 채소도 있는 법이다.
좋고 나쁨을 나누어 놓고
그 가운데 좋은 것만을 선택하려고 하면
그것은 벌써 분별심, 어리석음의 결과인 것입니 다.

좋고 나쁨이 나뉘지 않은
법계 전체의 여법한 모습을 보지 않는데서 오는
어리석음인 것이다.

이 어마어마하게 인류가 병든 결과는
결국 인간의 욕심과 어리석음에 기인하는 것이 다.

인간이 욕심으로 축적하려는 욕심 때문에
더 많이 더 크게 대량으로 생산하게 되는 것이 고,
결국 대량생산은 전체 농업을 파괴하고 말았 다.

그렇게 세상이 혼탁해 지니
자연스럽게 육신도 혼탁해 지는 것이고,
따라서 마음도 함께 혼탁해져 가는 것이 다.

이렇게 세상이 다 오염되어 가는
오탁악세의 세상...

그래도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은 있다.
우리 마음 안에...

마음 하나 바르게 쓸 수 있다면
생명력 떨어진 채소도
중생의 육신을 뜯어먹는 육식도
우리 마음으로 다 정화시킬 수 있 고,
그런 음식들의 폐해에서 벗어날 수도 있는 것이 다.

기쁜 마음으로,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우주 법계의 은혜로움에 보은하는 마음으로
기분 좋고, 맛있게 먹는 것.

기왕에 먹을 거라면
몸에 좋지 않은 것이라도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먹는 것.

그것이 보다 근원적인 마음씀이 될 수 있 다.

될 수 있다면
육식 보다는 채식을 해야 하겠고,
술도 될 수 있다면 자재를 하고,
담배도 될 수 있다면 끊어야 하고,
오신채도 될 수 있다면 적게 먹으면 좋 고,
인스턴트 식품, 탄산음료 등도 줄여 나가는 것이 좋은 일이 지만,

꼭 먹어야 한다면
꼭 먹어야 할 때가 생긴다면
이 우주 법계에 감사하는 마음으 로,
그 음식도 나와 둘이 아닌 마음으로
고기들 천도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먹어야 하겠 다.

Posted by 법상




오후가 되더니
갑자기 하늘 이 맑게 어두워지고
이내 후두둑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 진다.

마침
다실 문을 활짝 열고
차를 한 잔 마시고 있던 중이었다.
이럴 때 갑자기 귀 속을 씻어주는 빗방울 소리는
이 얕은 산사에선 얼 마나 좋은 다반(茶伴)인지 모른다.

낮은 산 밑 작은 도량
이 6 월 청청한 산방에서
빈 속에 맑은 차 한 잔
그리고 갑 작스레 떨어지는 빗소리 좋은 도반...
생각이 되시는 가.

덕분에 어제 밤은
늦은 녘 까지 방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오랜만에 떨어지는 빗소리 를 보고 있자니
조촐한 도량의 풍경하며
이 산사 를 은은히 비추고 있는 외로운 가로등 하며
가슴 속 깊 이 파고드는 그 어떤 떨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빗방울이 좋고,
그 떨어지 는 빗방울에
묵은 때 벗어내는 이 자연이 좋 다.

우리들 또한 이 속에서 함께 숨쉬는
대자연의 숨결 그대로였을 터인데...
비가오면 비를 맞 고
눈이오면 눈 속을 걸어야 하는
그런 나그네였을 것이 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나그 네 성품, 대자연의 성품을
많이 잊고 지내고 산 다.

내가 그렇고,
우리 모두가 그러하며,
이 세상이 이 법계와 하나이기를 거부하게 된 것은 아닌가.

이 어둠 속에
이 비를 느끼 면서
문득 미친 생각 하나 스쳤었다.
발가벗고 이 산 속 에서
나무들과 함께 비 흠뻑 맞으며
첨벙첨벙 뛰어 놀고 싶다 는 생각.
물론 실천은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부디 자유롭 게 실천할 수 있기를 법계에 빌어 볼 뿐...

사실은 그렇게 살았어야 하는 우리일 터인데...

그러고 보면
우리도 그렇 고, 우리 아이들도 그렇고
참 딱한 처지다.

그 흔한 흙한 번 맨발로 밟아 보지 못하고,
떨어지는 빗속을 맨몸으로 흠뻑 맞아 볼 생각조차 하지 못 하고,
저 나무를 두 팔 벌려 껴안고는 그 숨결을 느껴보지 못하며,
풀벌레와 친구가 되지 못한다.

구두를 신고 딱딱한 아스팔트 를 밟아야 하고,
고급 우산으로 떨어지는 비를 막아야 하 며,
모처럼 방에 들어온 풀벌레를 홈키파로 죽여야 한 다.

하기야 요즈음의 시대가
빗 물을 맨 몸으로 맞을 수 없게 되었고,
풀벌레나 꽃가 루 같은 것들에게 조차
무슨 전염을 옮기고, 무슨 무 슨 알레르기를 조심해야 할 정도로
우리도 나약해 졌고, 자연 도 오염을 시켜 버렸으니 어쩔 도리는 없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이 대 자연과 하나가 됨을 의미하고,
우주 법계의 큰 흐름 에 온전히 나를 맡기고
그것과 함께 흘러 가는 것을 의미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처럼
그리 거창하거나 요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대자연의 섭리 는 그대로 우리의 삶이요 진리인 것이다.

그저 이 우주 법계 대자연의 순일한 흐름처럼
아무런 분별 없이
턱 맡기고 흐 르면 그만이다.
그것이 수행이고 그것이 부처의 삶인 것이다.

요즈음 들어
사람들과 함 께 하고 싶은 마음 보다
이네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 이 더 간절하다.

이 맑은 법신 부처님의 숨결 과...

비가 오니 자연도 씻길 때가 되었나 보다.
자연도 이제 목이 말랐는가.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