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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04 두 가지 마음, 어떤 마음을 쓸 것인가



우리네 중생들의 마음은
두 가지 종류로 나누어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 첫째는 『상황 따라 변하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항상 짊어지고 다니는 겉으로 드러난
마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환경, 조건, 경계에 따라 변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면 왜 이 마음을
상황 따라 변하는 마음이라고 했겠습니까?
우리들 마음이 상황 따라
하루에 열 두 번도 넘게 변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직장에서 남편이 승진을 하였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빨리 가족들, 친척들에게 알리고
친구들과 축하 술도 한 잔 하고...
이것이 바로 극락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남편이 기쁜 마음에 술을 한 잔 하고
집으로 오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죽을 고비를 맞았다면 어떻겠습니까.
승진이고 뭐고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 마음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사실 우리들 마음의 모습은 이와 같습니다.
수 십 년을 살아도 이처럼 행복·불행,
괴로움·즐거움이란 극단적인 두 갈래 길 속에서
희비가 엇갈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순간 순간의 상황에 따라
우리의 마음은 너무도 쉽게 쉽게 움직입니다.
금방 좋았다가도 금방 괴로울 수 있는 경우는
너무도 많습니다.
아니 우리의 삶 그 자체가
고통과 행복의 무한한 반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엇갈리는 이유는
바로 상황이 변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상황, 환경은 반드시 변하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상황이 변함에 따라
우리들의 마음도 반드시 변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어떤 기쁘고 괴로운 상황이라도
언젠가는 변한다는 것을 안다면
그 무상(無常)한 상황에 노예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항상하지 않는 상황에
지금껏 노예가 되어 상황에 이끌리며 살아왔습니다.
왜 내 인생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상황'이란 것에 노예가 되어 살아야겠습니까.

이처럼 상황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한 가지 소중한 것을 잊고 살아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잠재된 능력입니다.
우리 내면에 숨쉬고 있는 또 다른 마음입니다.
바로 『본래의 청정한 마음』,
즉 존재의 참생명 "불성(佛性)"인 것입니다.
이 마음은 어떤 상황에서도 꿈쩍하지 않는
바위와도 같은 당당한 내면의 본래모습입니다.

그 참생명의 마음은
너무도 떳떳하며 당당합니다.
그 어떤 괴롭고, 외롭고, 답답한 상황에도
놀아나는 법이 없습니다.
언제나 내 안에 당당히 버티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의 어리석은 마음이
그 마음을 외면해 버리기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입니다.

너무도 힘들고 답답한 상황에 처했을 때
내 안에 법신 부처님의 참생명을
조용히 불러 봅시다.
때로는 절절히 불러 봅시다.
그래도 너무 힘들때는 소리치면 불러 봅시다.
"나.. 무.. 아.. 미.. 타.. 불.. "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이 여섯 마디면 충분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이 속에 그 어떤 상황도
그 어떤 마음도
사르르 녹아내릴 것입니다.

그 마음은 그 어떤 쇠라도 녹일 수 있는
용광로와도 같기에
우리 안에 일어나는 그 어떤 오염된 마음이라도
녹여 줄 수 있습니다.

까짓
상대방이 욕 하고 화내는 것?,
여자친구가 멀어지는 것?
돈, 명예, 권력에 울고 웃고 하는 우리네의 약한 마음쯤은
단 한번의 칼날 같은 마음으로 녹여버리십시오.
그 어떤 괴로운 상황에도 약해져서는 안됩니다.
그 상황은 반드시 바뀌기 때문입니다.

자살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지금 이 마음이 항상할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이 그 바탕이 됩니다.
당장 지금 괴로우니 평생 괴로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금의 상황이 언제나 계속될 것으로 생각하기에
그런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입니다.

나/ 무/ 아/ 미/ 타/ 불/
자신감 있고 당당한 마음으로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십시오.
본래 내 안에는 바위와 같고 산과 같아
그 어떤 거센 외부의 바람, 폭풍우에도 끄떡하지 않는
당당히 밝게 빛나는 마음,
부처님 참생명 주인공이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그 밝은 염불 속에 모두 다 갖추고 있습니다.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