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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22 진로문제, 현실과 이상사이 갈등

[질문]

 

안녕하세요^^ 삶의 갈림길에 서 있는 학생입니다.

삶에 있어서 어떤 가치를 중시해야 하는지 스님께 조언을 구하고자 메일을 드립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저는 불교신자는 아닙니다. 다만 우연한 기회에 목탁소리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게 되었고

그곳에서 스님의 설법, 여러가지 글을 보면서 삶을 성찰해 보게 되었습니다.

고민이 매듭을 지을 줄 모르는 지금 저는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조언을 구합니다.

 

저의 고민은 이것입니다.

"현실인가 이상인가"

막연하기만 한 질문이라고 하실 것 같습니다.

 

저는 법학을 전공하고 현재 대학원에서 법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학부시절 사법시험을 준비했습니다.

2차시험을 두 번 치렀는데 근소한 차이로 불합격하고 이제는 제 목소리를 내며 살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저에게 사법시험이란, 고등학생이 대학가기 위해 봐야하는 수능처럼,

대학생이 사법연수원에 가기 위해 봐야하는 그런 시험의 일종일 뿐이었습니다.

친구들에게 '지기 싫어서' 시험을 준비한 것이었고,

수험기간 내내, 이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다가는 '언제 어디서든 대체가능한 한 사람'이 되고 말 뿐이라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그랬기에 결과도 이렇게 나타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랬기에 시험결과에 대한 미련은 전혀 없었습니다. 진심으로 후련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공부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닌, 진정한 지성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공부를요.

일반대학원에 진학해 이제 한달여 시간이 흘렀습니다. 대학원 세미나는 재미있습니다.

물론 한없이 부족하기만 한 저를 보는것은 힘들지만 제가 깨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하루하루가 새롭습니다.

 

그런데 저의 고민이 자꾸만 요동칩니다. 선후배, 친구들 너나 할 것 없이 변호사 자격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자격 없이 법조계에서 학자라는 이름만으로 평생을 살 수 있는가.

친구들이 부모님께 용돈 드릴 때 나는 부모님께 용돈을 달라고 해야 하는데 그걸 견딜 수 있는가.

아주 현실적인 문제들입니다. 넓게 보면 별 일 아닌 문제일지라도 지금은 크게 느껴집니다.

 

공부를 해서 세상을 바꾸고 싶습니다. 당장 눈앞의 소송에서 승소하는 것보다,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이념, 지적 체계를 흔들어 놓고 싶습니다. 인권 관련 분야에 힘을 싣고 싶습니다.

저의 이상이자 꿈입니다. 제가 세상에 태어나 어떤 흔적을 남긴다면, 이런 형태의 것이었으면 합니다.

 

이상을 추구하자니 현실적으로 대책없는 제가 초라하게 느껴지고

현실에 급급해 하며 살자니 그러다가 정말 '살기만 하다가' 삶이 끝날 것 같습니다.

그저 편하게 살고 싶진 않습니다. 변화를 주고 싶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제가 꿈만 꾸는 것일까요? 이상을 향한 용기가 한 모금 부족한 것일까요?

 

장문의 글이 되어버렸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님의 조언이 저에게 아주 크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답변]

 

안녕하세요. 

법상입니다. 

답변을 늦게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아주 중요한 부분에 대해 물으셨네요.

현실이냐, 이상이냐, 중요한 문제지요.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실을 선택하기 때문에

이상을 가진 사람에게는 더 어렵게 느껴지는 문제입니다.

 

물론 현실적인 것이 더 중요하다거나,

이상적인 것이 더 중요하다거나,

어느 한 쪽이 다른 쪽보다 더 옳다거나 그른 것은 아닙니다.

 

이상적인 것이 더 옳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스스로 더 옳다고 생각하고,

남들은 현실을 선택했으니

내가 저들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 있다면

차라리 현실을 택하는 편이 더 나았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 말은,

이상을 선택하든,

현실을 선택하든,

그것은 더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어느 쪽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로 접근하면

내가 옳은 것을 택하게 되었을 때,

상대방이 틀렸다고 폄하하게 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현실이냐, 이상이냐,

그것은 단지 나의 선택일 뿐입니다.

나의 삶에 대한 나 자신의 선택일 뿐입니다.

나다운 나의 삶의 방식인 것이지요.

 

여기에서 우리는 현실을 선택할 수도 있고,

이상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법우님 같은 경우에,

현실을 선택한다면 마음 한 켠에 이상에 대한 그리움이 남을 것이고,

이상을 선택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남게 될 수도 있고,

그렇다고 이상을 선택하자니

현실적인,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고,

또 남들의 질타가 두렵기도 하단 말입니다.

 

그러면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요?

어느 쪽이 옳은 선택일까요?

그것은 옳고 그른 선택이 아닙니다.

 

그저 내가 나다운 삶의 길을

어느 쪽으로 선택할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선택한대로의 삶을 살게 되고,

나라는 존재를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법우님이 만약 이상을 선택하게 되었다면,

그로인한 현실적 어려움은

당연히 감내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또 만약 현실을 선택했다면

마찬가지로 이상을 선택하지 못한 어려움을 감당해야 하겠지요.

 

이 두 갈래길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법우님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생각이나 판단에 귀를 기울이지 마세요.

생각과 판단, 분별과 미래에 대한 온갖 계획, 구상들은

법우님을 당연히 현실적인 선택으로 데려가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생각으로의 선택이 아닌,

생각을 놓아버린 텅 빈 내면에서 올라오는

진정성입니다.

 

즉 법우님의 가슴이,

깊은 내면이

정말 무엇을 원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상을 선택했다면,

마땅히 현실적인 어려움은 감당하겠다는 용기와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수많은 이상을 선택한 사람들을 보세요.

그들은 모두(대부분) 가난했거나,

사회적인 명성을 못 얻었거나,

남들이 대단하다고 평가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내면의 고요와 평화를 유지하며 살고 있습니다.

 

법우님의 삶에서는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돈, 명예, 권력, 유명세, 남들의 칭찬...

이런 것이 중요한가요?

아니면 그보다 더 깊은 또 다른 차원의 덕목들이 중요한가요?

그것을 선택하는 것도 법우님이고,

그 선택에 대해 용기 있게 지혜롭게 밀고 나가는 것도 법우님입니다.

 

이상을 선택하겠다고 결심했다면,

그것을 선택하는데서 오는

얻지 못할 것들에 대해 집착을 버리고, 미련을 버리고,

마음을 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중심을 잡을 수 있어야 되요.

남들의 말에, 평가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이상을 선택했을지라도

현실을 선택한 사람들을 나쁘게 생각하거나,

나보다 정신적으로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요,

현실을 선택하지 않고

이상을 선택함으로써,

집착과 욕망들을 놓아버리고

매 순간 순간 현실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게 되었을 때,

오히려 현실적인 문제도 해결이 되어갈 것입니다.

 

이상을 선택할지라도

현실을 무시하지 않는다면,

현실을 선택한 사람들을 폄하하지 않고

칭찬, 찬탄하고 존중해 준다면,

법우님께는

이상을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 또한 함께 따라 오게 될 것이란 말입니다.

 

과도하게 이상에만 치우쳐

극단적인 이상론자가 되게 되면,

현실주의자를 폄하하게도 되지만,

현실론자를 폄하함으로써

현실적인 가치가 나에게서 멀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상을 선택하되,

현실도 무시하지 않으면,

이상과 현실이 함께 딸려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론 그 둘을 다 잡겠다는

그런 엄청난 집착을 가지고,

이 일을 벌이시면 안 되겠지요.

 

다 놓아야

다 잡힌다는 말이 있습니다.

 

비웠을 때

채워지는 법입니다.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