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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18 지식으로 살지 말고 지혜로 살라



[문경 김용사, '이뭣고' 하는 글자가 인상적입니다.]

우리 앞에 어떤 문제가 생겨났을 때
보통 사람들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온갖 지식과 알음알이를 총 동원합니다.

지금까지 과거로부터 들어왔고 배워왔으며 익혀 온 온갖 방법을 다 써 보
고,
그것도 모자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묻거나 책을 찾아보고
요즘 같으면 인터넷을 뒤져보면서 온갖 지식들을 총 동원하여
그 지식들을 잘 분석하고 판단하며 분별하여 결론을 도출해 냅니다.

그래서 머릿 속에 많은 지식들이 들어 있는 사람은
책을 찾아보거나, 사람들에게 묻거나 할 일들이 그만큼 줄어들고,
많이 아는 만큼 남들이 그 사람에게 많이 묻곤 하겠지요.
아마 요즘 사회에서는 그런 사람을 똑똑한 지식인이라고 부를 겁니다.
아는 것이 많아야 사는데 그만큼 편리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요즈음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강요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지식들을 넓혀 나가고 소위 식견을 넓히는 일일 것입니다.
이런 삶의 방식은
누구에게나 아주 익숙하고 당연한 문제해결 방법이며
삶을 살아가는 기본적인 방법이지요.

그런데...
잠깐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지식이 많을수록
우리 머릿 속은 더 복잡해 지고 번거롭습니다.

우리들의 통념에서야
아는 것이 많고, 지식이 많으면 더 편리하고 더 행복하고
사회에서 더 많이 인정받을 수 있지요.
그렇지만 사회적인 통념이 그렇다고 다 그렇게 믿지는 말기 바랍니다.

우리들이 그동안 너무 사회적인 관념에 얽매여 살았어요.
그러다 보니 우리 자신의 순수성이며 독창성을 잃고
모든 사람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바대로 나아가려 한단 말입니다.

우린 누구 누구처럼 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며 살고 있습니까.
누구처럼 똑똑하고 공부 잘하려고,
누구처럼 돈 잘버는 사업가가 되려고,
누구처럼 리더쉽을 키워 정치가가 되려고,
누구처럼, 누구처럼 우린 얼마나 남들을 닮으려고 애써 왔어요.

그러다 보니 ‘나 자신’이 되질 못하고
끊임없이 내 밖의 어떤 사람을 닮아가려고 애만 쓰고 산단 말입니다.
이제 사회적인 관념들을 다 놓아버리고 한번 시작해 보도록 합시다.

앞에서 아는 것, 지식이 많으면 번거롭다고 했어요.
사실 우리는 아는 것이 머릿 속을 꽉 채우고 있지 않아도
다 잘 살아 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몸이 그럴 수 있도록 다 짜여있고 질서 잡혀 있는 것입니다.

내적인 삶의 질서는 언제나 한결같이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어요.
내 안에 밝고 원만한 지혜가, 본래 자리에서 나오는 밝은 깨침의 소리가
항상 울려 퍼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린 그 소리를 듣지 못해요.
내적인 삶의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가질 못한단 말입니다.

왜 그렇겠어요.
아는 것이 많아서, 그 알음알이들이 그 소리를 가로막고 있어요.
내 안에서 울려나오는 지혜의 목소리를 지식이 가로막고 있단 말입니다.
지식이 지혜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서점에 가면 책들이 무수히 많지만
대부분의 서적들은 우리들에게 온갖 지식을 충족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나 내 안에 지식을 쌓아주기는 하지만
내 안을 맑게 비워주는 책들은 그리 많지 않아요.
쌓는 것은 지식이고, 비우는 것은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꾸 쌓기만 하면 우린 그 쌓여있는 것들로 인해
내 안에 본래 충만한 지혜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거예요.
비우면 비울수록 더 충만하고 더 지혜로워 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몸에 병이 들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몸에 병이 들어 아프면 우리는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요?
지금까지 배워오고 익혀왔던 온갖 지식들을 동원하게 마련이지요.

감기 몸살로 아플 때는 밀가루 음식은 먹으면 안 된다더라,
아플 때 일수록 밥을 많이 먹어야 정신을 차린다더라,
어떤 음식은 먹으면 안되고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한다더라,
이 뿐 아니라 책에서 듣고 사람들에게서 들어 온 온갖 지식들을 총 동원하

우린 몸의 병을 치료 하려고 애를 씁니다.

아무리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그 음식이 이 병에 좋지 않더라고 하면 절대 안 먹고,
또 아무리 먹기 싫고 하기 싫은 것이더라도
몸에 좋다고 하면 기를 쓰고 먹으려 하고 하려고 한단 말입니다.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더 많아져요.
그만큼 우린 얽매이는 것이 많아지는 것이지요.
그만큼 우린 부자유한 것입니다.

또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 만큼 행동을 하려고 하지요.
어떤 사람은 지난 번 감기 때 무슨 음식을 먹고 나았다면
감기만 걸리면 그 음식을 찾게 마련이고,
또 어떤 사람은 어느 약방에서 약을 지어 먹고 나았다면
그 약국에서 꼭 그 약을 찾으려고 하고,
나름대로의 병에대한 알음알이 만큼 행동을 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과연 어떤 것이 나에게 꼭 맞는
확실한 병약이고 처방일까요?
사람이 다 다르고, 그 사람에 따라 병이 다 다른데
어떻게 똑같은 지식으로 이렇게 처방해야 한다고 정해져 있겠어요.

먹기 싫지만 병에 좋다면 억지로 먹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마음에서 원하는 것 즐거운 마음, 맛있는 마음으로 먹는 것이 좋을
지,
고정관념으로 따지지 말고 그냥 당연하게 생각해 보란 말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내가 좋아하고 먹고싶은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이
가장 좋은 약이 될 수 있는 법이지요.

내 몸에 병이 걸렸다 싶으면 그냥 받아들여 보세요.
내 몸과 마음에 그 어떤 독한 인연으로 인해 병이 왔겠구나
하고는 한 몇 일 병이 원하는 만큼 앓아주겠다 하고 말입니다.
아프면 한 몇 일 앓고 나면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어요.

괜히 약 먹는 다고 하지만 약이라는 것들이
그 병의 근본을 치유하게 해 주긴 역부족이라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다 아는 바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앓아주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 하고,
먹고 싶은 것 먹으면 그것이 가장 좋은 근원적 치료 방법인 것이지요.

우리 몸이란 다 제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깥에 의지하는 것 보다, 그 어떤 병의 지식들에 의존하는 것보다
오히려 나 자신에게 의지하여 턱 맡겨 놓는 것이
그래서 자연치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근원적인 치료방법이라는 거지
요.
그러고 나면 먹고 싶어 먹는 것이 그대로 양약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지식이라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자연치유능력과도 같은 내적인 삶의 질서를 가로막게 마련
입니다.
내 몸은 이것을 원하지만
기존의 고정관념이나 지식에서는 다른 것을 원할 때
우린 얼마나 얽매이게 되고 휘둘려 괴롭힘을 당하겠습니까.

우리 몸은 완전한 하나의 소우주이고 법계입니다.
그대로 나 자신이 온전한 부처님, 법신이란 말이지요.
애써 머리 굴리고 판단 분별하지 않아도 다 알아서 잘 살아갑니다.
배 고프면 밥을 찾고,
또 부르면 뒷간을 찾고,
졸리면 자고,
짠 음식을 많이 먹었으면 알아서 물을 찾게 마련이고,
몸에 수분이 많아지면 또 알아서 빼게 마련이라는 거지요.

물 흐르듯이 우리 몸도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법계의 이치에, 내적인 삶의 질서에 턱 맡기고 나면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밝은 지혜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왜 옛 스님들께서
‘배 고프면 밥 먹고, 부르면 똥 누는 것’이
평상심이 그대로 도라고 말씀하지 않으셨겠어요.

언젠가 지리산에 올랐을 적 일입니다.
몇 일 동안 인상적인 두 팀을 만났는데
한 팀은 등산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배웠던 분들이라
장비에서부터 걷는 법, 등산하는 기술 등
온갖 전문적 지식을 충분히 갖추신 분들이셨고,
또 한 팀은 그야말로 몇 일씩이나 있을 종주인데도 불구하고
뒷 산 오르는 기분으로 상식적인 선에서 준비를 해 오셨지요.

첫째날은 전자의 분들과 대화를 나누었더니
아는 것이 너무 많고 지식이 너무 많으니
대화를 나누면서도 제 마음이 많이 무거워요.
이를테면 걸을 때에도 경치 좋은 곳이 나오거나
아름다운 곳에서라면 30분도 좋고 한 시간도 좋고
산을 느끼면서 행복감에 젖어보기도 하고,
정상에 앉아 명상을 즐기기도 할 터인에
그 분들은 대충 50분을 걸으면 꼭 10분 정도를 쉬어 주어야 하더란 말입니
다.

또 저녁 때 별빛이 너무 고와 도무지 잠이 들 수 없어서
한참을 별을 바라보며 걷다가 앉았다가 흠뻑 감상에 젖어 있었더니
내일 아침 몇 시에 일어나 밥을 먹고 출발해야 하고
꽉 짜여진 일정 때문에 일찍 잠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후자에 만났던 분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참 마음이 편하고 아름답고 싱그럽더란 말입니다.
상식 선에서 3일 산에서 머물면 이정도면 되겠다 싶어
마음 가는대로 준비를 했고,
딱히 어찌 어찌 일정을 잡지 않았다 보니
경치 좋은 곳에서는 한참을 앉아 느끼기도 하고,
밤 하늘 별빛을 바라보며 여유있는 별자리 여행도 하고 말입니다.

그 뿐 아니라 산행을 하며 모든 부분에서
지식이 많으니 그 지식에 내 몸을 의지하는 일이 많아지고,
사소한 지식들이 없다보니
그저 마음 가는대로 산을 느끼고 걸을 수 있더란 말입니다.

과연 어떤 분들이
산을 더 정감있게 느끼고 산과 함께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는 것이 많고, 지식이 많으면
그 지식으로 인해 정작 보아야 할 것들을 놓치기 쉽습니다.
보기 위해 지식이 있는 것인데
오히려 산을 보고 느끼는 일보다 지식이 더 앞서기 때문이지요.

산을 오르는 이유는
정상에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발 한 발 내딛기 위해서이며,
그 순간 산과 함께 한 자리 하고 느낄 수 있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산을 느끼는데 무슨 지식이 필요하겠어요.
산을 바라보는 넓은 가슴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얼마전 사진을 찍는 어떤 법우님께서
사진을 많이 찍으러 다니다 보니
오히려 좋은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정작 내 안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눈을 잃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말씀을 하신 것을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움을 느끼고는 혼자 느끼기 아까워 사진 속에 담고자 찍을 터인데
아름다움을 느끼고 찍어야 하는 순서를 망각하고
찍는데 마음이 가 있다보면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사라지고 말 것 같습니
다.

세상 모든 일들이 이와 같겠지요.
수행하는 일도 수행에 대한 잡다한 지식과 알음알이가 많다보면
수행에 대해, 마음공부에 대해 머릿속에서 정리하기 바빠
정작 직접 실천을 하는 일은 뒷전이 되고 말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식이라는 것은
나 자신의 텅 빈 맑은 시선을 가리고 왜곡시킬 때가 많습니다.
내가 나 자신이 되지 못하는 거지요.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할 터인데
있는 그대로를 지식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니 말입니다.

불교의 핵심은 정견(正見) 즉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에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려면
온갖 알음알이며 지식들로 꽉 채워진 머릿 속을 비우고
속 뜰에서 울려나오는 내적인 삶의 질서에 온전히 맡기고 흐를 수 있어야
합니다.

바깥에서 배워오고 익혀온 온갖 알음알이며 지식들 때문에
우리 안에서 새어나오는 밝은 빛을 보지 못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온갖 지식이며 알음알이들을 다 놓아버리고,
그냥 내 안의 삶의 질서에, 내 안의 자성부처님께
일체 모든 것을 내 맡기고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내 안에서 저절로 다 알아서 살아주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애써 머리 굴리지 않아도 잘 때 되면 자라는 신호를 보내주고,
먹을 때가 되면 알아서 먹어야 한다는 신호를 보내주고,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우리가 머리 굴리고 판단 분별하면서 복잡스럽지 않게
마음을 고요히 하고 속 뜰을 비추어 보고 있으면
내 안에서 밝은 해답이 흘러 나오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바깥에서 쌓아온 온갖 알음알이들을 지식이라고 하고
내 안에서 텅 빈 가운데 우러나오는 소리를 지혜라고 하는 것이지요.
온전히 놓아버리고 내맡긴 가운데 지혜는 드러나는 것입니다.

지혜로써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삶의 질서에
일체를 내맡기고 산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이 바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사시는 것’이 되는 것이지
요.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