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화합'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12.24 스님,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2. 2009.12.14 부처님과 하느님, 누구를 믿어도 좋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누구나 그렇듯
들뜨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작년 크리스마스가 생각납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교회에서 예배와 축제가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알찬 공연이었지요.

꽃집에 가서
화려하지 않은 단아한 난을 골라
목사님께 안겨 드렸더니
환한 웃음으로 이심전심 미소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는 교회에서
예배도 하고
재미있는 공연도 보았습니다.

목사님께서도
형제님들께서도
제가 온 것을 많이 반기는 눈치였습니다.
그 날 저도 형제가 된 것이었지요.
감동적이었습니다.

한동안 어린이 촌극을 지켜보다가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꿈꾸며
하늘을 보고 싶어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하늘에서
하이얀 눈님이 오시는 겁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얼마나 설레이던지요...
세상이 온통 하얀 그림이었습니다.

누군가 나즈막히 탄성을 지릅니다.
'눈이다...!!'
그리고는 공연 도중에
모두가 창을 열고
박수를 치며 야단이었습니다.

혼자 밖에 있던 저는
얼떨결에 수많은 박수를 받으며
흐뭇해 했던 기억...
그 아름다운 기억이 있습니다.

이번 크리스마스도
눈이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맞아
법당 앞에 현수막을 하나 걸어 놓았습니다.

'거룩하신 아기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비구니 스님과 수녀님께서 무슨 대화를 하실까... 흐믓한 풍경입니다. 선암사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거룩하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부처님과 우리 모든 부처님 가족들이
활짝 마음열어 예수님의 탄생을 함께 축하드립시다."

모든 종교의 본질은 사랑과 자비에 있습니다.
용어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사랑과 자비가 모든 종교를 종교일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됨은 변함 없는 진리가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종교는 결국에
동일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반목과 대립이 있다면
이는 스스로 종교임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서로 화합하고 서로를 향해 밝게 마음을 열어주는 것에서
참된 종교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절대성이 부여된 종교는 대립과 반목이 생기기 쉽습니다.
고정되고 절대적인 진리는 너무 강합니다.
외길로 강하기만 하다면
그것은 많은 것을 포용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참된 진리는 고집함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어디에도 '착(着)'을 둠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고집함이 없기에 밝게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불자들은 이야기 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이 좋아서 불교를 믿는 것이니
행여 부처님 법보다 더 훌륭한 법이 있다면
당연히 그 종교를 믿을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부처님 법에 조차 집착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이런 마음이 참 불자의 마음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 마저도 그 문구에 집착을 하면
삿된 법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깨달음을 방해하는 수많은 장애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바로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이라고 하는데
부처님의 말씀에 집착을 하게 되면 그 또한 소지장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소지장이란 '아는 바의 장애'란 뜻으로 알음알이가 많으면
그것이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종교는
갈등하고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화합하고 따뜻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종교의 본질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친척을 어떻게 교화해야 하느냐고
그렇게 물어 오십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도록
항상 밝게 마음 내어주고 이야기 해 주라고 말씀드립니다.

조금의 싫은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내 문제인 것입니다.
내 마음에 싫은 마음은 내 닦을 꺼리인 것이지
상대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다만 지극하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되
안으로 안으로 믿을 수 있도록 그렇게 말씀드리라고 합니다.
몇 몇 목사님들이나 신학자들의 이야기에서도
요즘 교회 다니는 신자들의 가장 큰 맹점이
하나님을 밖에서 찾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너무 밖으로만 치닫게 되면
정작 내면에 힘이 붙지 못하게 됩니다.
의지하는 마음이 자꾸 연습되어 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참된 믿음이 아니며 참된 영적 성숙과는 요원한 일이 됩니다.

안으로 안으로 돌리고 또 돌려
그 깊은 곳에 있는 참된 하나님이며 부처님과 만나야 합니다.

성탄절을 하루 앞둔 이 즈음에...
활짝 열린 밝은 마음...
그것이 모든 종교의 본래심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모든 법우님들, 형제님들의 따뜻한 마음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성탄절을 맞이해서
우리 법우님들께서도
활짝 열린 밝은 마음으로 함께 축하해 줍시다.

저 또한 이웃 교회에
예쁘고 단아한 '난(蘭)' 하나 사 들고
예배에 참석하러 갑니다.
함께 기도하고 노래하고 그렇게 축하해 줄 것입니다.

'거룩하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하고 현수막도 하나 내 걸었습니다.

법우님들...
메리 크리스마스









Posted by 법상


부처님과
하느님이 둘이 아니십니다.

불교 신자와
천주교 신자와
기독교 신자가
참으로 둘이 아닙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실천과
하느님 가르침의 실천이 둘이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신 자성부처님
굳게 믿어
일체 모든 것을 맡기고 놓고 가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실천입니다.

마찬가지로
내 안에 계신 하느님을
굳게 믿어
일체 모든 것을 맡기고 놓고 가는 것이
삼위일체 하느님 가르침의 실천인 것이지요.

하느님을 내밖에 그 어떤
동떨어진 대상으로 설정해 놓고
밖을 향해 믿음을 일으키지만 않으면
하느님과 부처님은 이름만 다를 뿐 '하나'가 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 하느님을 믿고 일체를 당신께 맡기고 가야 합니다.

내 안에 충만한 성령이
그대로가 성부이며 성자인 것이지
그 셋을 어찌 서로 다르다 할 수 있겠어요.

성부와 성자 또한
성령으로써 내 안에 항상 충만한 것이며,
이 우주 법계에 아니 계신 곳 없이
모든 생명 모든 사람에게 항상 빛을 놓고 계십니다.

법신과 보신과 화신 삼신 부처님 또한
서로 다른 부처님이 아닌
내 안의 자성부처님으로서 '하나'인 것입니다.

'참 나'의 이름을
부처님이라고 부르면 어떻고,
또 하느님이라고 부르면 어떠할 것이며,
알라신이라고 부른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결국
부처님 하느님 알라신이란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진리의 몸(法身)인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인데
현자들은 여러 가지로 말한다'고 합니다.
다만 여러 가지로 말할 뿐
근본이 흔들리는 법은 없는 것이지요.

현자들이 여러 가지로 말한 것을 가지고
어리석은 우리들의 좁은 소견으로
분별하고 나누어 놓아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러니
니 종교니 내 종교니 하면서
싸울 것도 없고,
내 가르침이 더 깊이가 있다고 고집할 것도 없으며,
내 가르침만이 나를 천당으로 가게 할 수 있고,
내 가르침만이 진리라고 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진리란
고집하지 않음입니다.
어느 한 쪽을 고집하게 되면
벌써 진리에서 한참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는
좋고 싫고, 옳고 그르다는 등의
일체 분별을 다 여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종교를 믿는 이유가
'불교이기 때문에'
'천주교, 기독교 이기 때문에'
믿는다고 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진리이기 때문에' 믿어야지요.

그 말은
불교를 믿고 있지만,
천주교를 기독교를 믿고 있지만,
또 다른 참진리를 만난다면
당연히 그 참진리 또한 버려서는 안 된 다는 것을 의미하고,
나아가 더 밝은 진리를 만난다면
기존 종교에 대한 모든 집착을 버리고
새로운 밝은 진리를 따를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래야 참 진리를 찾는 구도자이며,
수행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만 고집이 아닌 맑은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종교만이 옳다'는 고집을 가지고
'참된 믿음'이라 착각을 하지는 마세요.

참된 믿음이란
억척스러운 고집이 아니라
텅 비어 어느 것이라도 담을 수 있는
맑고 향기로운 열린 믿음일 것입니다.

마음이 어느 한 쪽에 머물러 고집스레 집착을 하게 되면,
다른 그 어떤 가르침도 들어오지를 못합니다.
진리란 어떤 방법으로든 설해질 수 있다는 것을
왜 알지 못하는 것인지요.

활짝 열린 탁 트인 마음이
모든 수행자의, 모든 구도자의 참마음일 것입니다.
수도자란 모름지기 그래야 합니다.

텅 비어 있기에 도리어 꽉 찬 그런 훤칠하게 트인 길로 가야지,
좁은 한 길만 고집하는 옹졸한 마음으로
어찌 만중생을, 숯한 어린 양들을 구할 것입니까.

불교 신자, 수행자 법우님들과,
기독교 천주교 신자, 수도자 형제 자매님들
참으로 우리 모두는 둘이 아닌 '하나'입니다.
우리 모두는 참 진리의 길을 걷는 '좋은 도반'입니다.

세계일화
세계는 한 송이 꽃으로 언제나 맑고 향기롭습니다.

'내 종교'라는 울타리에 갖혀
불교다, 기독교다, 천주교다 하고 금긋고 살았지만,
실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인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같은 진리의 길을 걷는 도반이었음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이제
'나'도 놓아버리고,
'내 종교'도 놓아버리고,
'내 알음알이 진리'도 놓아 버리고,

대신
그 자리에
본래자리 밝으신 '자성부처님' '한마음 부처님'을 모시고,
그 자리에
내면의 참된 '삼위일체 하느님'을 모실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리석은 중생으로,
어린 양으로 살아갈 것이 아니라
'자성부처님'께 모든 것을 믿고 맡기면서,
'삼위일체 하느님'께 모든 것을 믿고 맡기면서
당당하고 시원스레 살아갑시다.

부처님으로 살아가고,
하느님으로 살아갑시다.

내가 산다고 생각지 마세요.
자꾸 아상을 키우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나'라는 아상 대신에,
'자성부처님'께서,
그리고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살아가시도록 온전히 믿고 맡기시면 됩니다.

그렇게만 되면
세상 모든 이가 부처님이고 하느님이십니다.
그 믿음에서 '자비'가 나오고 '사랑'이 나오는 것이지요.

그 믿음 안에서
부처님의 자비와 하느님의 사랑은
세계일화의 맑고 향기로운 빛을 놓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의 자비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우린 모두 '하나'이며 '참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