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7.22 이와 같이 정진하라 - 법구경 7,8게송
  2. 2007.12.12 새벽에 깨어있는 사람




7.
쾌락만을 추구하고
다섯 가지 감각의 욕망을 다스리지 않으며
음식의 때와 양에 절제가 없고
게을러 정진하지 않는다면
온갖 삿된 마장에 휘둘려 마침내 쓰러진다.
바람이 연약한 나무를 쓰러뜨리듯이.

8.
쾌락을 추구하지 않고
다섯 가지 감각의 욕망을 잘 다스리며
음식의 때와 양에 절제가 있고
굳은 믿음으로 힘써 정진하면
그 어떤 삿된 마장에도 휘둘리지 않는다.
큰 바위산을 바람이 휘두를 수 없듯이.



수행자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여기 모든 수행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정진의 덕목이 있다. 먼저 이 게송이 나오게 된 연유를 살펴보자.

부처님 당시에 두 형제가 있었다. 형은 수행자다운 위의와 신념과 정진이 투철했지만 동생은 성실히 수행하기는커녕 오히려 형을 속세로 환속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뒤따라 출가를 했다. 그러다보니 동생은 끊임없이 육체적인 쾌락과 물질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며 음식에도 절제가 없고, 수행 정진은 뒤로한 채 게으름만 피우다가 하루는 속가의 가족이 부처님과 제자들을 초청하여 공양을 올리는데 따라갔다가 결국 출가 전 아내의 권유에 못 이겨 그 길로 속세로 돌아가고 말았다.

반면에 형은 수행자다운 위의와 신념으로 마음집중 수행을 성실히 행하여 결국 삼법인을 깨닫고 아라한과를 성취하게 되었다. 후에 형 또한 출가 전 아내가 부처님과 제자들을 초청하여 공양을 올리려고 하자 많은 제자들이 동생처럼 형 또한 다시 환속하게 될 것을 염려하고 있을 때 부처님께서는 형은 환속한 동생과는 같지 않음을 말하시면서 다음의 게송을 설하셨다.

“쾌락만을 추구하고 다섯 가지 감각의 욕망을 다스리지 않으며 음식의 때와 양에 절제가 없고 게을러 정진하지 않는다면 온갖 삿된 마장에 휘둘려 마침내 쓰러진다. 바람이 연약한 나무를 쓰러뜨리듯이. 그러나 쾌락을 추구하지 않고 다섯 가지 감각의 욕망을 잘 다스리며 음식의 때와 양에 절제가 있고 굳은 믿음으로 힘써 정진하면 그 어떤 삿된 마장에도 휘둘리지 않는다. 큰 바위산을 바람이 휘두를 수 없듯이.”

이것은 출가한 수행자 뿐 아니라 모든 진리를 찾고 참된 삶을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 있어 중요한 수행의 덕목이요 삶의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지혜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있어 가장 조심하고 절제해야 할 부분이 육체적인 쾌락의 탐닉과 감각적인 욕망을 다스리는 일이다. 육체적인 쾌락을 탐닉하는 것이야말로 수행, 진리, 법과는 정 반대의 길이다. 수행자란 몸과 말과 뜻으로 청정행을 닦는 이를 말하는데, 육체적인 쾌락이야말로 순결한 청정행을 더럽히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육체적인 쾌락은 곧 정신적인 쇄락을 가져오고 우리 몸도 마음도 녹슬게 만들어 청정한 수행자의 정신을 빼앗아간다.

다섯 가지 욕망이란 우리 몸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인 눈, 귀, 코, 혀, 몸의 욕망을 말한다. 눈으로는 더 좋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어하는 욕망, 귀로는 칭찬과 좋은 말을 듣고 싶은 욕망, 코로는 더 좋은 향기를 맡고자 하고, 혀로는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자 하며, 몸으로는 더 좋은 촉감을 느끼고자 하는 욕망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 몸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이 외부를 향해 치닫는 가장 원초적인 욕망이요 욕구를 말한다. 불교에서는 이 오관을 잘 다스리는 것이야말로 모든 수행자의 핵심적인 수행법 중 하나다. 눈귀코혀몸이 대상을 향해 어떤 욕망을 일으키는지를 오관을 잘 관찰함으로써 깨닫게 되고 그 치닫는 욕망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세 번째로 수행자는 음식을 먹고 마시는 때를 가릴 줄 알아야 하고 그 양에 절제가 있어야 한다. 시도 때도 없이 입으로 먹을 것들이 들어가는 것이야말로 원초적인 욕망에 패배하는 것이다. 마음을 깨달아 우주의 주인이 되겠다는 사람이 먹고 마시는 가장 기초적이고 단순한 일에서부터 식욕이란 욕망에 쓰러지고 만다면 그는 더 이상 수행을 진전시킬 수 있는 토대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식욕이란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우리를 무너뜨리기 쉬운 욕망이다. 누구나 식욕 앞에서는 굴복당하기 쉽다. 가장 쉬운 것이 가장 높은 것이 될 수 있다. 모름지기 수행자는 내 입으로 무엇이 들어가고 있는지를 잘 살필 줄 알아야 한다.

또한 한번이 되었든, 두 번이 되었든, 세 번이 되었든 음식을 먹는 때를 정하고 될 수 있다면 그 이외의 때에는 입과 위를 모두 쉬게 해 주어야 한다. 입과 식도와 위와 장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면 마음도 고요해지기 어렵다. 삶에 질서가 잡히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먹고 자는 때에 질서가 잡혀 있어야 한다.

또한 때에 맞춰 먹는 것 못지않게 먹는 양에도 절제가 있어야 한다. 많은 양을 허겁지겁 배부르게 먹고 나서 가만히 몸과 마음을 살펴보라. 몸도 무겁고 마음도 덥수룩한 것이 오래도록 마음 집중이 되지 않는다. 몸이 무거우면 정신도 무거워진다. 때때로 많은 양을 먹고 난 뒤에 무겁고 멍한 나 자신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면 부끄럽고도 부끄럽다. 먹을 수 있는 만큼의 반만, 혹은 60~70%만 채우고 나면 식후의 잠시의 휴식과 함께 몸도 마음도 새로운 에너지로 깨어난다. 먹고 마시는데 절제가 있다면 삶에도 다른 모든 욕망에도 절제와 균형이 생긴다.

이러한 쾌락적인 즐거움과 감각적인 욕망, 그리고 먹고 마시는 일에 절제가 있게 되었다면 이제 수행의 절반은 이루었다. 그런 튼튼한 토대 위에 힘써 정진하기를 게으르지 않는다면 온갖 삿된 마장에 휘둘리는 일은 사라질 것이다. 마치 큰 바위산을 아무리 험한 바람도 휘두를 수 없듯이.

그러나 감각적인 욕망에 휩쓸리고 먹고 마시는 일에 절제가 없으며 게으르고 정진하지 않는다면 그 틈 사이로 온갖 마장이 스며들 것이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방해했던 마왕 마라의 군대가 그대를 쓰러뜨릴 것이다. 마라의 군대가 쏜 불화살이 꽃비로 변해 부처님께서 앉아 계신 보리수를 수놓았듯이, 마라의 세 딸들이 쾌락과 감각적 욕망으로 유혹할 때 부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이 마라의 유혹임을 바로 보셨듯이 쾌락과 감각적 욕망을 다스리고, 먹고 마시는데 절제가 있으며, 힘써 정진하기를 게으르지 않는다면 그 어떤 마라의 군대가 오더라도 삿된 마장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그러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그 길을 바로 보여주셨고 먼저 걸어가셨기 때문에, 뒤따라가는 우리들 또한 그 바른 수행의 길을 따라 가면 되는 것이다.


Posted by 법상
새벽 예불을 모시고
대웅전 계단 앞에 섰더니
오늘따라
짙은 안개가 이 작은 산사를 한껏 감싸고 있습니다.



저 작은 텃밭도
새벽 짙은 안개 속에서
더없는 싱그러움이 느껴집니다.



새벽 이슬을 머금고
이른 아침부터 싱그럽게 깨어있는
여린 채소들을 보고 있노라면,
새벽녘에도 잠들어 있는 게으른 수행자를 경책해 주는
엄한 스승님을 만난 것 같은 고마운 행복을 느끼기도 합니다.



터벅 터벅 걷는데
이 이른 새벽부터 밭에 나가
일을 하시는 아주머님들 손길이 바쁩니다.



이른 새벽에 밭에 나가 일을 하시는 분들을 뵈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서 미소가 띄어지고
그 분의 생기어린 하루를 위해 기도를 하게 됩니다.



밭에 나가 일하는 것 뿐 아니더라도
이른 새벽에 깨어나 명징한 하루를 시작하시는
모든 분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런데요.
새벽 이 청청한 기운을
가만히 느끼며 걷다 보면
그 어느 때 보다 더없이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새벽!
말만 들어도 기운이 나고
생기가 돌고 싱그러움이 가득한 단어입니다.

새벽엔
길을 걸으세요.
새벽에 걷는 숲길은
생각만 해도 더없이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새벽 숲길을 걷다 보면
만물이 막 생동하며 깨어나는
마치 어린 찻잎 같은 생기로움이 느껴집니다.



주위에 숲이 있다면
마음을 맑게 비우고
새벽에 일어나 그 숲을
터벅 터벅 거닐어 보시길...

물론 숲길이 아니더라도
새벽에 마음을 비우고
천천히 걸을 수 있는 사람은
그 마음이 얼마나 한가하며 여유롭겠나 싶습니다.

새벽이 참 좋습니다.

한쪽에선 어둠이 막 걷히면서
또 다른 한 쪽에서는 여린 빛이 세상을 수 놓는
그 가운데
길을 걷고 있노라면 난 행복을 느낍니다.

조금 더 걷다 보면
저 산 너머에서부터
붉은 해가 불쑥 솟아오르는데
바로 그 대자연의 클라이막스를 두 눈으로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에도 환한 빛 한 줄기 수 놓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세상에는
새벽에 잠을 자는 사람과
새벽에 깨어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새벽에 습관적으로 잠에 골아 떨어져 있는 사람과
일찍 일어나 맑고 청정한 정신으로
몸도 마음도 맑은 휴식을 취하며
새로운 하루를 준비할 수 있는 사람.

새벽에 잠을 자 두는 것만이 휴식일 수는 없어요.
오히려 제 생각에는
조금 피곤하더라도 새벽에 맑게 깨인 정신으로 일어나는 편이
더없는 영혼의 휴식을 가져다 줄 것 같습니다.

물론 저 또한
새벽 예불이 끝나고
새벽에 잠에 떨어지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날은
왠지 컨디션이 그냥 저냥 합니다.

새벽에 맑게 깨어있으면서
좌선에 들거나
산길을 거닐거나
텃밭에서 일을 하거나,
그도 아니면 창문 활짝 열어 두고
째잘거리는 새소리 들으며 좋은 책을 읽거나,
그런 날은
하루 종일 상쾌하고 거뜬하지요.

잠도 버릇이고 습관이데요.
처음에는 새벽에 일어나기 힘들어도
한 몇 일 큰 맘 먹고 일어나
그 밝은 기운에 몸을 맡기고
대자연과 함께 일어나면
우리 몸도 마음도 대자연과 하나되어 흐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또한 대자연의 일부이듯
대자연이 깨어날 때
우리도 함께 깨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대지와 함께 일어나 호흡하고 움직이며
온전히 법계와 하나되는
또 하루의 삶을 시작할 수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대자연이 새로운 하루를 맞이했는데
아직까지도 이불 속에서 잠에 골아 떨어져 있다면
우리의 영혼도 함께 잠에 들어
맑은 깨어있음을 방해하고
삶의 빛을 잃어 버리게 될 것 같습니다.

새벽에
잠을 자는 사람이 되지 말고
새벽에
깨어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길...

'산방한담 산사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운 겨울, GOP 순례  (0) 2008.01.16
눈이 내립니다  (0) 2008.01.11
새벽에 깨어있는 사람  (0) 2007.12.12
목을 베는 것과 봄바람을 베는 것  (0) 2007.12.12
목탁소리 소개 기사가 났네요  (1) 2007.12.12
사법을 버리고 정법의 길로  (0) 2007.12.11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