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리분지에서 민박집 어르신이 일어주신 산마을 식당에 들러
울릉도에서 난 산채들로만 만들었다는 산채비빔밥을 시켰다.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산채들이 풍성하게 한 그릇 가득이다.

주인 아주머님 인심은 또 얼마나 좋은지,
밥이며 산채며 반찬들이 전통 한정식 저리가라 하고 많이 나오는데다
민박집 어르신 얘기를 했더니
이 곳의 자생인 천궁, 호박, 더덕 등으로 직접 만들었다는
씨앗주라는 곡차도 한 사발 내어 주셨다.

늦은 점심을 먹고는 터벅터벅 바닷가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고갯길을 오르니 나리분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1시간 남짓 고개를 넘어 내리막길을 걷다보니
시원스런 바다와 거친 파도가 가슴을 뻥 뚫어준다.
그리고 바닷길 쪽으로 눈길을 돌리니
산에서 바다 쪽을 향해 약간 기울어 진 듯 보이는
육중한 바위산 하나가 시선을 잡아끈다.
성인봉의 한줄기 산봉우리가
송곳처럼 뽀족하게 생겼다고 해서 송곳산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송곳산 때문에 이 인근 마을도 송곳산의 한자명인
‘송곤 추(錐), 메 산(山)’자를 써서 추산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높이가 430m라고 하니 육중한 바위산이라고 말했던 규모가 짐작이 가려나.

그리고 송곳산에서 바다 쪽으로 눈을 돌리면
일명 코끼리 바위라고 불리는 공암이 바다 위에 떠 있다.
바위 모양이 코끼리가 물 속에 코를 담그고 물을 마시는 형상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바다로 난 길을 따라 잠시 걸으니
저 멀리로 죽암이 보인다.



죽암과 삼선암을 들렀다가 서면 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북면 쪽에서 너무 시간을 오래 끌다 보면
내일 떠나야 하는 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겠나 싶어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여행을 다니며 구경을 하는 것도 아쉬운 듯 한 것이 좋고,
모조리 다 감상을 하겠다는 것 보다는 욕심을 좀 덜 내는 것이 좋다는 것을
몇 몇 만행길에서 터득한 바다.

바닷길을 따라 걷고 또 걷는다.
인적은 드물다.
그래도 작은 어촌 마을인데 사람이 살고 있기는 한 건가 싶을 정도로
여간해서 사람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바람은 점점 거세진다.
때때로 파도의 잔영들이 뺨을 스치운다.
한참을 걷다보니 바닷길 위에까지 파도가 흩뿌려져 겉옷이 축축하다.

걷다가 걷다가 길가 간이 의자에 앉았다가 이내 드러누웠다.
가만히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하늘을 보며 온 몸으로 간간이 뛰어드는 파도를 맞아가며
점점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의 찬기를 느끼면서
아무도 없는 외딴 섬 길 위에 버려진 듯 철저한 고독의 소리를 듣는다.

산 위에서 그랬듯이 길 위에도 인적은 없다.
이따금씩 지나치는 차량만이
이 땅이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을 증명해 줄 뿐이다.

나중에 알아봤더니 요즘, 늦가을부터 겨울까지는
거의 관광객들도 없고, 일들도 많이 줄어드는 시기라고 한다.
요즘 같으면 배가 들어왔어도 나가지 못하는 날이 더 많은 연유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차라리 한 몇 일 이 곳에 갇히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센 바닷가 한 켠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 쪽으로 시선을 고정시키고 마음도 고정시켜 본다.
외로운 느낌을 가만히 살펴본다.
이럴 때, 외로운 느낌이 존재를 뒤덮으려 할 때,
바로 그 때가 수행자에게는 가장 좋은 구도의 때다.

가만히 그 느낌을 주시하고 있다보면
이내 느낌도 생각도 어느덧 사라지는 것을 본다.
다만 파도가 칠 뿐.



바다도 산처럼 사람의 생각을 잠재우고
감성을 일깨우는 그 어떤 힘을 가졌다.
이런 외딴 섬에서의 외로운 거센 파도는 내 삶에서도 드문 경우다.
더구나 이런 철저히 외딴 곳에서의 거친 풍경은 더욱 드문 일이다.
이런 생경한 경험들이 지진하던 내 속 뜰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바다와 하늘, 구름의 경계선이 사라진다.
온몸은 거센 바닷바람을 따라 춤을 춘다.
또 다시 길을 따라 걷고 또 걷는다.
걷다가 지치면 멈추고 눕다가 또 다시 길을 나선다.

이렇게 조용하게 그 어떤 훼방 없이 걸을 수 있는 곳은 아마도 처음이지 싶다.
길 위의 고요를 이제껏 본 적이 없다.
언제나 길은 시끄럽다.
차량이 줄을 잇고, 엔진의 소음이 그칠 줄 모른다.
차의 길은 차의 소음으로 시끄럽고
사람의 길은 사람들의 재잘거림으로 시끄럽다.
물론 벗과 함께 걷는 길에는 사람들의 소리들까지도 정겹지만
홀로 속 뜨락을 거닐을 때는 때때로 조용한 길이 그리워지기도 하는 법이다.

이 곳 울릉도의 길이 바로 그런 길이다.
이 길은 차 만을 위한 길이 아니다.
길 위에서 사람도 자유롭게 걸을 수 있고
바다도 파도도 그리고 깊은 침묵 또한 길 위를 걷는다.

차량의 행렬이 멈춘 도로는 낯설다.
그 낯섬이 길을 걷는 여행자에게는 반가운 도반이다.

저 섬 반대편까지 가야 일몰을 볼 수 있으리란
민박집 어르신의 말씀이 문뜩 떠올라
지나치는 차를 향해 손을 들었다.

이곳의 차량은 언제나 사람을 태울 준비가 되어 있는 듯 하다.
차량 향해 손만 들으면 어떤 차도 어떤 사람을
당연히 태우고 갈 준비가 되어있지 싶다.
차도 섬을 닮아 가슴이 따뜻한가.

거의 반나절을 걷고 걸어 되돌아 보면 한 뼘이더니
이 섬의 차는 순식간에 내 수고를 덜어
훌쩍 섬 반대편 태하의 성하신당에서 나를 떨구어 주었다.

역시 차를 타고 오다보니 놓치는 것이 많다.
눈을 초롱 초롱 뜨고 산과 바다를 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것들을 향해
깊은 시선을 던지긴 했어도 보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하나를 얻으면 역시 하나를 잃게 마련이다.

문명의 이기는 이렇듯 볼 수 있는 것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기능도 한다.
빠르면 빠를수록 놓치는 것이 많아진다.
차창 밖에 보여지는 사물들만 놓치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 하나의 풍경들이 담고 있는 내 안의 의미도 놓치고
그들이 내게 던져주는 화두 같은 것도 놓치게 된다.

삶의 속도도 매한가지다.
인생의 속도가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더 빨리 얻는 것은 죽음을 맞이하는 시간이다.
삶의 참된 의미는
봄 꽃이 피어나는 듯 느린 가운데에서 꽃피어난다.

태하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도 완전히 태풍에 강타를 당했다.
물론 이 곳 또한 물길 작업이 한창이고,
바닷가 쪽은 방파제 작업으로 분주하다.
거대한 굉음과 장비들의 소음이
이 아름다운 풍경의 정서를 반감시키고 있다.

태양은 이제 저 바다 너머로 뛰어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어둑 어둑한 뭉개구름들 사이로 투명한 빛이 바다를 향해 쏟아진다.



빛의 향연. 아직 빛은 투명하다.
이제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빛은 더욱 따뜻한 노을빛으로 바뀔 것이다.



저 건너편 풍경이 이채롭다.
늘상 바라는 바지만 저 언덕 위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조그만 텃밭을 일구며 매일같이 바닷가로 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사는 것을 그려보게 된다.



시끄러운 소음과 정신없는 공사 때문에
이 곳에서 일몰을 맞으려던 생각을 바꾸었다.
태하 마을을 걸어 나오는데
울릉도 곳곳에서 자주 목격하던 오징어 말리는 풍경이 이젠 익숙하다.



아직 일몰까지는 시간 여유가 있다.
또 한 번 차를 얻어 탔다.


통구미 거북바위 일출을 바라보며(통구미 도착, 16:00)

사자바위 쪽에서 일몰을 볼까 하다가
아무래도 도동 가까운 곳이 좋겠다 싶어 단숨에 통구미까지 내달렸다.
거북이가 마을을 향해 기어가는 듯한 모양을 보고
거북이가 들어가는 통과 같다고 하여 통구미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이 곳은 향나무 자생지로도 유명한데 천연기념물 48호로 지정된 곳이라 한다.
포구 앞의 바위는 거북이를 닮았다고 하여 거북바위라 부른다.

통구미와 거북바위의 일몰도 유명하다고 했는데
차에서 내리니 ‘잘못 온 게 아닌가’ 싶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아무것도 없다.
그야말로 바위 하나 달랑 있고
도로 곁에 그 흔한 슈퍼나 식당 조차 없다.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관광지의 유명 명소는
호텔과 휴양시설이며 온갖 식당가와 관광물품판매점에, 심지어 유흥업소까지
얼마나 정신 없는 시설들로 꽉 들어 차 있는가.
그런데 지금까지 울릉도를 걸으며 느낀 공통점이 바로
울릉도의 명소는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곳에 통구미라는 지명까지 만들어졌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일몰을 구경 온 관광객도 없고,
관광객들을 위한 그 흔한 일몰 전망대 같은 것도 없다.
그냥 길가에 앉으면 그곳이 전망대도 되고 휴게실도 된다.

이렇게 개발되고 발전되지 않아 호젓한
이런 곳이 참으로 소중한 줄 알아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그 텅 빈 가운데 꽉 찬 무언가가 있다.
너저분한 것들이 없어야 정말 보아야 할 그 하나에 집중할 수 있는 법이다.

길을 벗어나 바다 쪽으로 바위가 하나 있어 그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태양도 이제 많이 내려왔다.
이제 조금 있으면 저 수평선 바다가
저 위의 붉은 생명을 단숨에 품어 안을 것이다.



여러모로 이번 여행은 의미가 남다르다.
가는 곳곳마다 사람들로 넘쳐나고,
문명의 이기로 넘쳐나는 그런 여행지 풍경 속에서는
나 자신에 집중하기도, 여행지 풍경에 집중하기도 어렵지 않은가.

그러나 이 곳에선 호젓한 가운데, 아무런 걸림 없이, 아무런 방해 없이
두 눈의 시선은 오직 저 붉은 태양에 고정되고 있다.



태양 빛을 받아 반짝이는 바다의 살결도 찬연하지만
그 위에서 휴식을 취하듯 소박한 바위 위에 앉아 있는 갈매기들의 모습에서도
더없는 평화로움과 삶의 여유를 읽을 수 있다.



노을이 내려앉은 바다 물결이 곱다.
용광로 같은 태양 아래
바위 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갈매기가
빛을 받아 더욱 반짝인다.

잠잠히 앉아서 일몰을 기다리던 갈매기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하루를 마감하는 일몰의 축제에 빠져든 듯
노을진 하늘을 배경으로 떼지어 날아올라 황홀경에 빠져들고 있다.



거북바위가 지는 태양의 곁에서 묵묵히 일몰을 지켜주고 있다보니
함께 곁에서 지켜보는 여행자의 가슴도 따뜻해진다.



시간과 함께
태양은 뜨거운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한 30분 남짓의 시간동안 서서히 아주 조금씩
태양과 바다의 간격이 좁혀지더니
이네 푸른 선과 붉은 원이 감격의 재회를 맞으며 하나 된다.



둘이 만남을 이루고 나면
태양은 빠른 속도로 바다 속을 파고들며 자신을 소멸시킨다.

이내 태양은 보이지 않고 수평선만 외로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태양이 사라져도 여운은 남는다.
아직도 하늘과 바다 그리고 땅은 태양의 여운으로 은은하다.



또 다시 바다 곁을 따라 난 길을 걸으며 녹록한 태양의 여흥을 느껴본다.
짙어지는 어둠 속에서 호올로 길 위를 걷는 느낌은 적막 혹은 적멸이다.
첫 느낌은 적막하기 그지없는 휑하고 허한 느낌이지만
그 느낌을 깊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휑한 적막감은 이내 깊은 고요와 평화를 간직한 적멸의 자리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걷다보면 길 위에서 적멸의 벗을 만나게 될 것도 같다.

한참을 걷다 또 한 차례 차를 얻어 타고 도동으로 내달렸다.
저녁 공양을 하고 잠시 도동의 밤거리를 거닐었다.
피곤이 몰려온다.


다음날 새벽, 행남등대와 해안산책로 일출(도동항 출발, 05:50)

애초 아침 일찍 독도를 다녀오려고 했는데
마침 오늘이 독도편 배가 출항하지 않는 날이라
독도를 다녀오는 계획은 언제인지 알 수 없는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대신에 행남등대와 해안산책로를 돌아보기로 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 도동항에서 해안산책로가 아닌
산길을 따라 행남등대까지 가는 길을 택했다.

아직 도동은 한밤중이다.
도동항 마을에서 가파른 계단을 따라 얕은 산 위로 올라가니
도동의 밤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손전등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탓에
어두운 산길을 두 눈 부릅뜨고 직감에 의지해 걸어야 한다.

어둠 속에서 낯선 산길을 걷는 건 또 다른 생경함이다.
어둠은 짙고 세상은 조용하다.
터벅 터벅 길이 난 곳만을 향해 계속해서 걷는다.
이른 새벽 숲 길의 청명함이 온 몸으로 느껴진다.
방에서 나올 때만해도 바람이 차다고 느꼈는데
한참 걷다보니 안에서부터 땀이 주르륵 흘러 내린다.

금방 도착하지 않겠나 싶었는데
밤길이라 그랬는지 1시간을 조금 넘게 걸은 것 같다.
오르락 내리락 하며
또 둘로 난 길에서는 그냥 대충 직감을 따라 길을 선택했다.
우측으로 가면 바다에 다다를 것이고
너무 좌측으로 가면 저동에 다다를 것 같고
중간 즈음의 길을 따라 계속 걷다보니 길 끝에 집이 한 채 보이고
갈라진 길 앞의 간이 이정표에 ‘행남등대’ ‘저동’이란 푯말이 보였다.

행남등대에 잠시 올랐다가 일출을 보기에는 바다쪽이 낫겠다 싶어
다시 해안산책로 쪽으로 내려왔다.
빠른 걸음으로 해안산책로에 다다르니 이제 막 일출이 시작되고 있다.



어제 새벽 저동의 일출과는 또 다른 느낌의 태양이 떠오른다.
뭐랄까 조금 더 부드럽고 따뜻하며 차분한 느낌.
어제의 일출이 강렬했다면 오늘의 일출은 포근하고 따스하다.

때때로 고기잡이 어선이 하나 둘씩 지나간다.



갈대 사이로 솟아오른 태양이 지극히 순박하다.

갈대도 태양을 향해
합장을 하듯 이 아침의 일광보살을 맞이한다.



산책로 사이로 피어난 왕해국이 대견하게 느껴진다.



바위틈 사이 그 척박한 곳에 왕해국 작은 꽃무지도
그 곳이 제 집이라고 뿌리를 박고 피어올랐다.



바위틈에서 자란 건 왕해국만이 아니다.
그 곁에서 산부추도 계절감을 잊고 바위틈에서
바닷바람을 피해가며 호젓하게 서 있다.



바위 위에 앉아 떠오르는 태양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갈매기 한 마리가 내 외로움을 달래준다.



그 하늘 위로 뭉개구름 몇 송이 평화롭게 떠 다닌다.
한참동안 발을 떼지 못 하고 바다쪽을 향해 서 있다.



아! 이 뜨거운 하늘, 바다, 태양 그리고 섬...
이 한 편의 장면이 그대로 동화 속 풍경처럼 선명하게 그려진다.



예상했던 것 보다 해안산책로의 절경은 더없이 특별하다.
어제까지의 풍경들이 평범한 가운데 평화와 순박의 경이가 담겨있었다면
오늘 아침 해안산책로의 그것은 경희(驚喜) 그 자체다.



이런 풍경은 도무지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다.
이런 풍경을 대할 때마다
대자연의 무위의 예술성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어찌 이런 절경을 만들어 낼 수 있단 말인가.

더욱이 기암괴석의 하늘신이 빗어놓은 듯한 천상의 산책로 위로
새벽 태양빛이 하늘에서 금싸라기를 흩어 뿌리는 듯 난연히 비춰주는
이 해안의 풍경은 도무지 언어로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그 어떤 언어로 이 대자연의 하늘 연주를 담아낼 수 있단 말인가.



깍아 지른 듯한 기암괴석 아래로
금새라도 떨어질 듯한 아슬아슬한 스릴을 느끼면서 걷는다.



아! 지금 이 순간
내 영혼도 저 갈매기처럼
청량한 하늘 위를 날고 싶다.



내 안에서는 또 다시 침묵의 선율이 흐른다.
모든 티끌들이 말끔히 사라지고
청연청아한 텅 빈 공간이 내 안의 뜰에 맑은 비질을 한다.
이 선연한 하늘의 연주와 선율을 알아들었기라도 했다는 듯
하늘 위로 갈매기 떼의 발랄한 날개짓이 춤을 춘다.

천천히 경행하듯 옮긴 발걸음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어느덧 도동항에 다다랐다.
도동항 마을도 아침 햇살을 받아 투명하게 반짝인다.



해도 이제 제법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날씨가 좋아 배는 당연히 뜬다고 했다.
육지로, 일상으로 다시 되돌아 가는 배에 몸을 싣고 잠시 눈을 붙였다.
꿈결 속에서 울릉도를 다시 그려본다.



설레임 가득한 일탈의 만행을 만들어 준 울릉도,
언제 다시 오게 될 지 모르겠지만 그 때까지 안녕.







Posted by 법상

설악산의 단풍을 기다리며
지난 한 달 동안 세 번을 올랐지만
지난 주 순례 때 까지는
완연한 오색의 가을 단풍을 보기 힘들었다.

오늘은 공룡능선의 봉우리들 아래로
단풍옷이 곱게 물들어 있을 것을 기대하며
새벽 5시 40분 오색 출발.

손전등을 들고 한 30여 분 오르다보니
날이 밝아온다.
아직은 산 아래라 눈부신 단풍까지는 아니지만
날이 밝아오면서 조금씩 조금씩 물들어가는
나무들에 마음이 설레여 온다.


평일의 이른 새벽이지만
간간이 발길을 재촉하는 등산객들이 보인다.

날이 점차 밝아오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더니
어느덧 달과 별님은 보이지 않고
밝아진 하늘을 배경으로 단풍나무가 조금씩 조금씩
물들어 가고 있는 선연한 풍경이 발걸음을 더욱 재촉한다.

오색 구간은 수해복구 공사가 많이 진척되어
눈에 띄게 나무와 돌계단이 늘었다.

철 계단이 늘어날 때의 풍경이
자연과 조화를 깨는 듯 다소 차가왔다면
그래도 나무와 나무 사이에 흙이나 돌을 끼워 맞춰 만들어 놓은 계단은
나름대로의 운치를 자아내게 한다.

다양한 모양의 나무돌계단이
언뜻 보기에도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깔끔한 모습으로 오르는 내내 계속된다.

대청봉 바로 아래까지 오르니
아니나 다를까 이 이른 아침부터 나무와 돌을 깨고 맞춰가며
계단공사를 하는 인부들이 이마에 땀을 흘리고 있다.

9시 즈음 드디어 대청봉 도착.

대청봉은 안개가 자욱하여 앞이 보이지 않는다.
속초나 동해바다는 커녕 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가
새벽 일출때부터 기다리고 있는 듯 보이는 사진사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계속된다.

중청산장에 내려 와 간단히 준비한 아침을 먹고
발걸음을 떼려는데 저기 희운각 산장 쪽 아래부분이
순간 구름이 걷히면서 잔잔히 보이기 시작한다.
공룡능선이나 다른 부분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아주 좋은 소식이다.

 
오늘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는데,
어제 밤 늦게 기상청 예보를 유심히 보았더니
오전 한 때 비가 오다가 오후부터는 갤 것이라고 하여 올랐더니
그래도 예감이 적중한 것일까.

하늘이 열릴 듯 말듯, 구름이 거칠 듯 말듯
길을 걷는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중청봉 아래 봉정암이 내려다 보이는 곳까지 가니
와~~ 하는 탄성이 저절로 쏟아져 나오는 풍경...

 
잠깐 사이에 백담계곡과 봉정암 적멸보궁 사리탑,
용아장성과 공룡능선이 특 트인 시야에 들어온다.

 

 
한동안 멍 하니 생기로운 마음으로 주저앉아 바라보는데
이제는 따스한 아침햇살까지 내 머리 위로 다가와 앉는다.

 
산과 구름의 향연.
산과 구름이 서로 밀고 당기며
이 설악의 당찬 풍광을 열어재끼고 있다.

 
봉정암 쪽인지, 소청산장 쪽인지
연신 헬기가 무언가를 백담사 쪽으로 실어나르고 있다.

 

 
옷맵시로 보아서는 젊은 사람 같은 멋쟁이 할아버님께서
사진기로 이 아름다운 풍경을 담고 계시고,
방금 전 희운각 쪽에서 올라온 한 무리의 등산객들도
탄성을 지르며 연신 카메라를 터트리고 있다.

 
나도 이렇게 높은 산까지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데,
처음에는 별 관심 없던 카메라가
이제는 여행의 길동무가 되고 있다.
오히려 때때로 사진이 감상보다 우선일 때가 있으니
자칫 잘못하다가는 이 작은 장비에 산에 오르는 목적이
전도되지는 않을까 싶은 우려아닌 우려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핑계를 대자면,
어차피 글을 쓰고, 글로써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글을 조금 더 생생하고 살아있게 해 주고,
글보다도 사진에서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분들도 계실 정도니
이것도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아주 좋은 도구요 방편이겠다 싶기도 하다.

풍경이 아름답다고 언제까지고 바라보기만 할 수 없어
희운각 산장쪽 가파른 길로 발길을 옮긴다.

 

 

 
비로소 천불동 계곡 쪽과 공룡능선이 구름옷을 모두 벗고
그 거대한 풍광을 열어보이고 있다.

 
희운각 산장에 들러
잔치국수를 시켜 먹고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오늘은 하루 일정이라 버너, 코펠 등을 준비해 오지 못한 관계로
산장에서 군것질이나 하고 가자 싶었다가,
마침 잔치국수가 있다는 뜻하지 않았던 메뉴에
이 먼 산에서 해 주는 국수가 맛있기야 하겠냐 싶었는데,
그야말로 잊을 수 없는 꿀맛이다.

산 위에서 먹는 잔치국수.
국수를 말아 내어주시는 아주머님의 푸근함이
고스란히 국수에 전해지는 듯 하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공룡능선으로 향한다.
설악산을 많이 와 보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공룡능선은 한 번도 가 보지를 못했다.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누군가가 공룡능선은 너무 험해 혼자서는 가면 안 된다고 했던
오래 전 말들이 오래도록 귓전에 맴 돈 탓이 크다.

 
그래도 오랫동안 벼르고 벼른 터라
설마 못 내려오기야 하겠느냐는 생각에
이번 만큼은 꼭 공룡능선을 타야겠다고 다짐하고 온 터다.

희운각 산장을 출발해 조금 걷다 보면
왼쪽으로는 마등령, 오른쪽으로는 소공원이란 표지판이 보이는데
왼쪽의 마등령 구간이 곧 설악의 꽃이라는 공룡능선이다.

 
첫 오르막 길을 암벽등산 하듯
새로 만들어 놓은 줄을 타고 오르며
한 2~30분 정도 오르니,
장쾌하게 펼쳐지는 대한민국 최고의 풍경이
나를 완전하게 압도한다.

 
아! 나는 여지껏 한국 땅에서
이런 풍경을 본 적이 없다.

 

한국의 산하가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이 가까운 곳에서 이 두 눈으로 확인한 것 같은
뜨거움이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오른다.

 


 


빨리 가야 공룡능선을 타고 설악동까지
늦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거란
희운각 산장 아주머님의 말씀도 잊은 채,
한동안 나를 잊고, 길을 가는 것도 잊은 채,
그러고 한동안 이 소름끼치도록 경이로운 풍경 앞에서
숨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이 아름다운 능선을 이 두 발로, 이 온 몸으로 마주하며
걸을 수 있다는 것은
도무지 선택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경험인 것 처럼 느껴졌다.

아~ 나는 오늘 이렇게 설악의 또 다른 진면목을 보고,
이 대자연의 신비로움에 진한 연모를 느낀다.
이 능선 때문에라도 내 발길이
좀 더 자주 설악의 하늘 아래 서는 일이 많아질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

 
지난 번 신문기사에서 오늘부터 이번 주말까지가
공룡능선까지 단풍이 내려오는 절정기라고 한 기사가 생각났다.
이번 주말 즈음이면 더욱 진하고 풍성한 단풍이 되겠지만
오히려 초록과 노오란 나뭇잎의 공존이 두 계절의 느낌을 일깨운다.

한참을 앉았다가 발걸음을 옮긴다.
이 강렬한 봉우리 봉우리들을 이 두 발로 걸어
저 멀리 봉우리 너머로 보이는 마등령까지 간다는 사실에
설레임과 행복감이 밀려온다.

 
아마도 우리나라에 설악이 없고 공룡능선이 없었다면
자연이 만들어내는, 산이 만들어내는 솜씨가
이 정도일 수 있을거란 것을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 같다.
어떻게 이런 웅장하고 장대한 풍광을 만들어낼 수 있단 말인가.
자연의 조화로운 솜씨를 그 어떤 예술가며 조각가가 따라갈 수 있단 말인가.

 
걸으며 걸으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감동스럽다.
생각은 언제나 감동을 헤아릴 수 없음이 증명되는 순간.

 
산이 좋아 산에 온 사람들이
이 봉우리 저 봉우리 위에서 행복을 만끽하듯 산을 만끽하고 있다.

 

 

 

 

 
행복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만끽하는 것이듯,
산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느끼고 만끽하는 것이다.

햇살이 1275 봉우리와 나한봉을 지날 때 까지
어딘가에서 나타난 짙은 구름 뒤로 숨었다가
마등령 가까이 도착할 때 즈음 다시 나타났다.

 
봉우리 봉우리를 하나 하나 지날 때 마다
신선이 노니는 무릉도원 곳곳을
산책하듯 거니는 선인이 된 듯한 착각을 일으키며
아찔한 현기증을 느낀다.

 
마등령을 한 구간 남기고
짠한 햇살이 다시 내리쬐면서
하늘을 꽉 메우고 있던 구름이 흩어지기 시작한다.
이제 서로서로 각자의 길로 여행을 떠나려는가.

 
해는 이제 서쪽으로 기울고
부서지는 햇살이 더욱 부드럽고 찬란해졌다.

 
봉우리와 계곡들 사이로
산그림자가 어깨동무를 한다.

 
산빛도 햇살을 받아 아름답게 부서지며
하늘도 지는 햇살을 아쉬워하듯 눈부시게 푸르다.

 

 
내려가는 길에 조금 어둠이 깔릴지라도
지는 해의 아쉬움이 이 산하에 뿌려내는
곱디고운 빛깔을 놓치기 싫어
이 마지막 봉우리에서 한없이 시간을 보내며 앉아 있다.

 
마음에 비친 산과의 대화,
지는 햇살과의 대화,
그리고 내 안의 나와의 대화가 시작되는 성스러운 시간.


아침 산 위에서 일출이 시작되면서부터 두세 시간,
그리고 이렇게 일몰 되기 직전 두세 시간,
사실 나는 이 소중한 시간을 진하게 느끼기 위해 산을 찾곤 한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하루에 완주해도 좋은 구간도
이틀, 삼일씩 산에서 밤을 보내는 계획으로 바꾸는 이유도
아마 그 연유 때문일 것이다.

이 시간들이야말로
내 안에 있는 광명의 태양을,
자연의 솜씨를, 야생의 경이로움을,
이 우주가 만들어내는 장엄한 연주를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느껴볼 수 있는 소중한 때다.

 
이 시간의 존재를 아는 사람과 만나고 싶다.
이러한 시간의 기쁨을 함께 느낄 좋은 도반,
그 도반은 흡사 오래도록 선방 좌복 위에서 만난 도반의
그것과 뿌리를 같이 할 것이다.

해질 무렵,
하늘과 산과 햇살과 산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이 장엄한 연주를 들어보라.

이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무거운 침묵과 진한 외로움의 향기가
진리처럼 피어오른다.

 
흡사 부처님의 법신을, 하느님의 신성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종교적인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듯
나는 이 산 봉우리 위에 서서
내 안의 붓다를 내 안의 예수를 만날 채비를 하고 있다.

 
저 위 파아란 하늘이 더욱 푸른 물감을 풀어내고 있다.
파란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사라진다.

 
저 멀리 봉우리 옆으로
속초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이제 내려갈 시간.
햇살이 비친 숲길을 걸어 아래로 아래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저녁 햇살을 머금은 단풍잎의 빛깔이 한층 생기롭다.

 

 
햇살을 받은 봉우리들도
이제 검은 옷을 갈아입고 잠이 들 준비를 하고 있다.

 
길을 따라 아래로 아래로
산 중턱에도 못 미쳤는데
어둠이 깔리고 있다.
마등령에서 아쉬움의 시간과
너무 오랜 데이트를 즐겼는가 보다.

 
그래도 행복하다.
이 어둠 속에서 내 안에 빛을 담고 간다.
설악의 가을이, 공룡능선의 인연이 선사 해 준
반짝 반짝 빛나는 잊혀지지 않을 추억의 빛을...




* 작년 정확히 이맘 때쯤
다녀온 공룡능선 산행기였습니다!!
이번 주말부터 시작하여, 다음주와 그 다음주 쯤,
공룡능선의 단풍은 완전한 절정에 달할 것입니다.
한 주 먼저 보시고, 올해는 더욱 아름답다고 하니,
꼭 다녀와 보시라고 조금 미리 올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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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양양군 서면 오색리 43-1 | 설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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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법상



임진강에
해가 집니다.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지는 해지 만
해는 지고 뜨고가 없습니다.

뜨는 해는 희망차고
지는 해는 아련하고...
그렇게 우리는 분별하지만
해는 언제나 처럼
그자리 그 모습일 뿐입니다.

뜨는 해가 설레이는 만큼
지는 해도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온종일 하루를 비치우고
온갖 하루의 일상을 낱낱이 짊어지고
그리고 또다른 세상을
비추기 위 해
그런 아름다움의 여운을 남기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기엔
지는 해지만
또 다른 세상이 보기엔
새 롭게 떠오르는 붉은 희망입니다.

나고 죽는
우리의 삶도 그런거지요...

여기서 보기엔
서러운 죽음일 지 몰라도,

또 다른 세상이 보기엔,
또 다른 내가 보기엔,
희망찬 새로운 시작임을...

뜨고 지 지만
뜨고 짐이 없는 햇님처럼...
나고 죽지만
생과 사가 없는 우리입니다.





겨울 바다입니다.

거센 파도가
삼킬 듯 밀려옵니다.

금방이라도
두 아이를 덮칠 것 처럼...

그래도
아이들은 관심 없이
그냥 놀기만 합니다.

성 난 파도가 덮치더라도
거샌 바람에 추위가 몰아치더라도
그저 순진한 아이들은
그냥 놀 뿐이네요...

때론
아이 들같은
천진 무심(無心)이 좋을 때가 있습니다.






가슴을 쫙 펴고
마음을 활짝 열고
넉넉하고 시원하게 살아갈 일이 다.

세상사
온갖 괴로움 들이란
한바탕 웃음으로 받아넘길 수 있는
그런 여유를 가질 일이다.

본래 훤 히 뻥 뚤려
한없이 자유로운 마음
애써 붙잡아 두려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고 살아갈 일이다.

저 망망대 해의
묵직한 고요 만큼이나
이 마음 평온을 지킬 일이다.

그냥
내버려 두면
그대로 자유롭다.





문종성 번뇌단 聞鐘聲 煩惱斷
지혜장 보리생 智慧長 菩提生
이지 옥 출삼계 離地獄 出三界
원성불 도중생 願成佛 度衆生

이 종소리 듣고...
번뇌가 끊어지이다.
지혜가 자라 깨달 음 얻어지이다.
지옥을 떠나고 삼계를 벗어나지이다.
원하옵건데
부처님 되어 일체중생 건져지이다.


부처님 의 법음은
언제나 법계를 가득 채워 줍니다.
언제 어디서나
맑은 음성으로 법을 설하십니다.

다만
우리들 귀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잣대를 가지고
선택해서 분별해서 받아들입니다.

그냥...
온전히 다 받아 들이질 못합니다.

부처님 법문을 들으면서도
받아들이고 싶은 것만,
내 기준에 맞는 것만
받아들인다는 말 입니다.

내 앞에 펼쳐진
일체 모든 세상살이 모습들은
그대로 법신 부처님이 나투신
법의 세계, 법계 (法界)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부모님의 모습으로
자식의 모습으로
미운 사람의 모습으로
온갖 설법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가만히 귀 기울여 보세요.
이 소리가 들리는지...

부처님 일승원음(一乘圓音)
범종소 리
은은히 들리는지...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