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침묵 속의 새벽길

 

드디어 오늘부터는 모든 고산에의 적응을 마쳤다고 보고

한없이 원 없이 오르는 날들이 남아있을 뿐이다.

안나푸르나도 다녀왔고,

물론 그 전에 인도 북부의 라다크, 판공초에서 5,000고지를 몇 번 넘어도 봤고,

또 이렇게 지금껏 일주일 동안 5,000고지 이상을 오르기 위한

느릿느릿 고산적응 산행을 계속 해 온 터다. 

 

이제 본격적으로 고도를 올리며

내가 가야 할 바로 그 곳들을 두 발로 휘적휘적 걸어올라 줄 차례다.

첫 새벽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이른 청신(淸晨)의 길을 나선다.

 

 

 

어제 출발하던 바로 그 언덕길을 걸어올라 이제 새로운 길로 들어선다.

어제처럼 오늘도 타보체피크, 촐라체, 아라캄체,

니제카 피크, 로부체피크 등의 봉우리들이

내가 가야 할 방향 앞으로 병암(屛巖)처럼

그 우뚝 선 백발의 봉우리들을 한껏 드높이며 장중하게 버티고 서 있다.

 

찬 새벽 공기를 가르며 겨울옷과 장갑, 모자까지

단단히 몸에 붙여 메고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차분하고도 초엄한 솜씨로 한발 한발 나아간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은 이미 수목한계선을 넘은 지 오래라

초원이요, 벌판이며, 흙먼지길이거나 소설(素雪)의 해쓱해쓱한 설산이 전부다.

이런 낯선 황량함이 왠지 모르게 고향처럼 따뜻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 웅려하고도 시린 풍경 앞에서

내 눈은 찬란히 부셔오고 감각은 새록새록 깨어나며

발걸음 하나조차,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나

설산 너머 어디쯤에선가 들려오는 침묵이 무너지는 소리조차

다 들려오는 듯 민예하게 활짝 열려 있다.

 

 

‘이것이 정작 현실이란 말이냐.’

마치 꿈속을 거니는 듯,

아늑한 영겁 전에 이미 이 길을 뒤 뜰 처럼 거닐었던 듯

새로우면서도 익숙하고, 시리면서도 따스하며,

외로우면서도 꽉 차 있는 느낌!

철저한 고독감 속에 그러나 온 존재와 함께 하고 있는 듯한 이 느낌! 느낌!

 

이런 선연한 길 위를 내 존재를 이끌고 이렇듯 두 발로

그것도 아무도 없는 이 적막의 새벽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비요, 경이에 가까운 체험이 아닌가.

 

걸으며 모든 생각을 잊는다.

모든 기억과 기대, 바람과 희망도 내가 알 바가 아니다.

과거와 미래 따위는 더 이상 입에 담을 흔적조차 없다.

모든 사고의 기초가 붕괴된 듯, 텅 빈 대지 위, 텅 빈 하늘 아래,

텅 빈 한 존재가 다만 미끄러지듯 나아가고 있을 뿐!

 

걷다보니 햇살이 발길을 비추고, 하나 둘씩 짐꾼들이 스쳐간다.

제 몸보다 더 크고 높고 무거운 짐을 이마에 짊어지고

몸을 최대한 앞으로 낮게 기울인 채 목에 힘을 딱 주고

시선은 오직 땅에 고정,

때때로 그 힘겨운 눈을 치켜뜨며 몇 미터 앞 길을 주시하며 묵묵히 나아간다.

 

 

 

 

그 노련한 시선과 여행자의 눈길이 마주칠 때

그들은 어김없이 미소 짓는다.

그 힘들고 고된 짐의 무게에 짓눌려 마음도 무거울 거라는 생각은

단지 여행자들의 상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듯

이 설산에서 만난 대부분의 포터나 짐꾼들은

그 순수한 눈빛에 수줍은 미소를 품고 있다.

 

때때로 짐꾼들의 풍경은

이 히말라야 속의 또 다른 설산이요 산맥처럼

이미 이 풍경 속의 한 자락을 형성하는 또 다른 살아있는 자연 그 자체다.

 

 

 

검은 새들의 불규칙한 움직임처럼,

저 아무렇게나 흩뿌려진 고산 야생화들의 생명력처럼,

저 설산 주위로 붙었다 떨어지고 사라졌다 생겨나기를 반복하는

감감 도는 구름의 출몰처럼,

저들 셀파 족들의 걸음 걸음 속에는

또 다른 히말라야가 맥박처럼 흐르고 있다.

 

사람이면서 인위적이기를 거부하고

자연 그대로의 삶을 택한, 말하자면 자연주의자,

그러나 그것 또한 듣기 거북한 하나의 거추장스런 수식일 수밖에 없는

‘그저 거기,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곳,

그곳이 바로 히말라야다.

 

한 무리의 트레커들이 내려오고 있다.

안나푸르나에서는 줄로 홀로, 혹은 둘이서 오는 여행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는데 반해

이 곳 에베레스트 지역에서는

주로 이처럼 팀을 이루어 찾아 오는 사람들이 많다.

 

 

 

 

4,800 고지를 흐르는 생명수

 

두사(Duda, 4503m) 마을을 지난다.

마을이라고 해야 집 두어 채가 전부인데다

그곳조차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기는 한 건지, 전혀 인기척이 없다.

아마도 그저 목장 주인이 때때로 야크를 데리고 풀 뜯으러 올 때나 잠시 들러

바람을 피해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두사에서 약 30분 쯤 더 걸으니

산산한 작은 계곡을 감돌아 토클라(Thokla, 일명 Dughla, 4620m)가 나온다.

 

 

토클라 또한 롯지 두세 곳이 모여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를테면 딩보체나 페리체에서 로부체로 가기 위해

잠시 쉬어 차나 한 잔 마시고 가는 간이역인 셈이다.

 

 

 

토클라 롯지 앞 빈 의자에 잠시 앉는다.

몇몇 여행자와 포터, 그리고 짐꾼들이 야외 식당에 잠시 걸터앉아

풍연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롯지 뒤로는 바로 설산이 휘몰아쳐 있다.

바람에 펄럭이는 룽다 조차 잠시 쉬어가는 곳,

새들만 바삐 먹이를 찾느라 롯지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너무 오래 지체할 수는 없다.

잠시 호흡을 고르며 배낭도 풀지 않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출발!

이십 여 미터를 오르다

고개를 돌려 다시금 토글라를 바라본다.

 

 

이제부터는 다소 가파른 오르막 하나를 넘어야 한다.

숨을 고르고는 이제 다시 출발! 4,600 이상의 고도에서

오르막길을 오른다는 건 아무래도 호흡에 벅찬 일이다.

단숨에 200미터를 올라 4,800고지를 밟아주겠다던 야무진 계획이

호흡에서 턱턱 막힌다.

 

한두 걸음 걷고 잠시 멈춰 서서 호흡을 고르고,

몇 걸음 걷고 거친 숨을 헉헉거리며 쏟아내면서

느린, 아주 느린 발걸음을 꼬무작거리며 꾸준히 옮긴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그야말로 단숨에 뛰어 올랐을

평범한 언덕 정도인데 보는 것처럼 만만하진 않다.

 

 

 

포터 지텐은 벌써 저 멀리 달아났다.

지텐은 언제부턴가 출발하고 나면

으레 알아서 다음 코스에 먼저 가서 쉬면서 기다리고 있다.

고지로 올라갈수록 현지인들과의 호흡 차이가 금방 드러난다.

그야말로 체력 차이라기보다는 호흡 차이가 아닌가 싶다.

저들은 이 숨쉬기 힘든 고지에서 아주 헐하게 산을 오른다.

 

가파른 비탈길을 도드밟아 꼭대기에 올라서니

초르텐들이 줄지어 서 있고,

룽다가 여기저기에서 외로운 진혼곡을 부르듯 처연하게 흩날린다.

 

 

이들 초르텐은 이 쿰부지역 설봉을 오르다가 명을 달리 한

세계 각국의 히말라야 등반 대원들을 위한

추모와 명복을 비는 개개인의 무덤 내지는 묘탑이다.

 

 

 

 

 

 

잠시 숙연해진다.

내 마음만 숙연해 지는 것이 아니라

공기도, 룽다도, 바람도, 흙과 바위도,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숙엄하게만 느껴진다.

 

로부체 방향으로 백여 미터 더 걸으니

장쾌한 시야가 터지며 또 다른 호장한 풍경을 빚어낸다.

 

 

 

좌우 설산을 배경으로 계곡이 흐르고

이제부터는 계곡 옆길을 따라 걷는다.

햇빛에 반짝이는 계곡물이 완전히 살아있는 그 어떤 생명력을 연출해 낸다.

 

 

흐르는 물을 바라보면 그 안에서 어떤 생명을 본다.

그것은 단순한 하나의 물이 아니라

무언가 모를 생동하는 깊은 존재의 숨결 같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

흐르는 물이 다 그렇지만 유독 이곳에서 만난 계곡물에서는

더없이 강렬한 생명의 연주를 감지한다.

어찌 안 그럴 수 있겠는가.

4,800고지 이 높은 곳을 흐르는 생명의 물이 아닌가.

 

나는 때때로 흐르는 물 앞에 서곤 한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내 안의 아주 내밀하고 깊은 무언가를 보는 것처럼

일상적이지 않은 그 어떤 새로운 박동이 느껴진다.

완전히 살아 생동하는 그 어떤 우주적 흐름과도 같은,

혹은 내 안에서 흐르고 있는 수대(水大)의 여린 움직임의 감각과도 같은.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히말라야의 맑고도 시린 호흡소리가 귓전에 들려오는 듯하다.

내 호흡과 히말라야의 호흡이 일치를 보는 듯,

이 생기어린 주변 환경과 걸음과 호흡이 마치 하나가 된 듯,

걷는다는 사실도 잊고 걷는다.

 

모든 것이 조화롭고 순화롭다.

유장한 침묵이 흐른다.

이 묵연한 선정을 따라 내 존재도

자연스레 본래의 커다란 침묵과 공명을 이룬다.

평소 같았으면 끊임없이 솟구쳐 오르며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을

생각이라는 목소리들이 이 고요한 풍경 앞에 넋을 잃었는지

끼어 들 틈을 잃었다.

 

저 산 아래에서는 매일같이 내 존재를 복잡하게 휘어잡던 온갖 것들이

제자리를 찾고 질서를 찾아가는 듯하다.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다.

있어야 할 바로 그 자리에서 모두가 충분히 제 몫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나 또한 이 길 위를 걷고 있음으로써

내 몫의 삶을 표연히 살아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 이 순간 내 존재의 몫은 길 위를 그저 걷는 것에 있다.

그것이야말로 지금 여기에서 100% 순수하게 현존하는 것이다.

 

내가 그 어떤 엄청난 성취를 할 때나,

대단한 일을 이루어냈을 때보다도

그저 지금 이렇게 걷고 있음으로써

오히려 완전히 삶을 연소하고 있다는 생생한 존재감이 깃든다.

단순히 걷는다는 행위 속에서

이렇게 충장하고 꽉 찬 삶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배운다.

 

우리 삶에 있어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떤’ 행위를 하느냐보다

그 행위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데 있지 않나 싶다.

 

행위 자체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아무리 성스러운 행위일지라도 그 행위 하는 자의 마음속에

삿된 생각이 끼어들어 있다면

그것은 먼저 우주에서 알고 그 행위를 성스러움에서 배제시키겠지만,

아무리 사소한 행위를 하고 있을지라도,

심지어 겉으로 보기에는 악행을 저지르는 것으로 보일지라도

그 행위자가 온전히 깨어있음으로써 그 행위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모든 진리에서의 방식과 일치하는 것이다.

행위 자체보다 행위의 바탕을 이루는 마음의 의도가 중요한 것이다.

 

 

 

계획은 언제든 변경될 수 있다

 

물길을 따라 한두 시간 걸었나 싶더니

거짓말처럼 이 처연한 땅 위에 계곡 옆으로 작지만 빼어난 풍경의 마을,

로부체가 나타난다.

 

 

 

 

6,000미터 로부체 피크를 비롯해

7,000, 8,000미터의 거대한 지붕들을

마치 뒷산 거느리듯 연꽃처럼 옴팡진 곳 꽃술자리 한 가운데

로부체 마을이 꽃처럼 피어나 있다.

 

이 마을이 바로 오늘 하루를 신세질 곳인데,

서너 곳 있는 롯지는 이미 이른 아침에 다 차서 방이 없단다.

사정을 알고 봤더니 요즘 같은 성수기 빅시즌에는

단체 트레커들이 자신의 포터를 전날이나 당일 새벽부터 로부체 마을에 먼저 보내

방들을 전부 잡아 놓는다고 한다.

 

더구나 로부체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와 칼라파타르를 오르기 위한

전진기지와 같은 곳이라

다양한 루트로 올라 온 사람들이

거의 전부 이곳에서는 꼭 하룻밤을 묵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보니

더욱 방 잡기가 힘든 곳이다.

 

그런 사정이다 보니 이 곳 로부체뿐만 아니라,

고락샵, 종라, 고쿄 등 정상 부근 사람들이 붐비는 전초기지로서의 마을들은

항상 방 잡는 일이 전쟁과도 같다고 한다.

 

 

 

 

마침 우리 지텐이 잠시 기다려 보라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더니

로부체 위로 두세 시간 거리, 내일 하루 묵기로 계획된 고락샵에

마침 도미토리 침대 딱 한 자리가 남았다고 그곳이라도 가겠느냐고 묻는다.

 

그마저도 누가 고산병으로 부랴부랴 내려가는 바람에

조금 전에 취소된 자리라고 한다.

당연히 따지고 생각할 겨를 없이 고락샵에 가서 묵기로 한다.

 

조금 힘들긴 하겠지만,

어제 5,000고지의 낭카르창 피크를 다녀왔으니

고산 염려는 안 해도 될 거라는 지텐의 말을 듣고

조금 더 힘을 내기로 했다.

 

사실 고락샵까지 안 가고 오늘 하루 로부체에서 자고

내일 고락샵에서 자기로 계획한 이유는

거리가 멀거나, 힘들어서가 아니라 고산 적응을 위한 계획이었다.

 

지금부터의 높이에서는

고산병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 대부분 여행자들의 조언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렇게 된 바에야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고,

법계에 맡기고 그저 인연 따라 갈 수밖에.

 

어쩌면 이것이 더 깊은 차원의 나와 연결된 우주 법계의 지성이

나를 위해 준비한 본연의 계획이었을지 모른다.

언제나 나의 생각, 인간의 판단과 계획보다는

보이지 않는 더 깊은 차원의 세계에서

준비한 더 깊은 계획에 맡기고 산다는 것이야말로

내 삶의 중요한 방식이기도 하다.

 

그저 믿고 맡기며 자연스러운 우주의 이치대로 흐르는 것이다.

종교적으로 표현한다면

‘너의 일과를 하느님께 맡기라’고 했던 성경의 가르침이나,

‘부처님께 모든 것을 맡기라’ 혹은

‘아상을 버리고 집착을 버리라’는 가르침,

노자가 말했던 ‘무위자연’의 이치 또한 바로 그것이다.

 

내가 계획했던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잠재적인 가안(假案)의 계획일 뿐,

‘절대’ 바꿀 수 없는 계획은 없다.

언제든 그 계획은 바뀔 수 있다.

유연하고도 활짝 열려 있는 마음으로

미리 잡아 놓은 계획에 집착하지 않는다.

 

여행의 일정도 그렇고, 삶의 여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내일, 아니 당장에 다음 순간 벌어질 일에 대해

내가 무엇을 결정적으로 정할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혹은 이 계획대로 되야만 한다’고 고집하게 되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때 괴롭다.

 

그러나 계획은 있되 그 계획에 집착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이치에 나를 맡기다 보면 괴로울 일이 없다.

아니 오히려 내 앞에 펼쳐질 수많은 가능성에 대해

활짝 마음을 열어 둠으로써

전혀 새로운 차원의 삶과 마주할 투명한 기회를 만들 수 있다.

 

보통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정해 놓으면 스스로 정한 그 틀에 갇혀

새로운 가능성으로 눈을 돌리지 못한 채,

그 틀 안에서의 비좁은 삶만을 반복적으로 되풀이하게 될 뿐이다.

 

그런 사람에게 삶은 진부하고 반복적인

그냥 그런 통속적인 것일 뿐이다.

그러나 어떤 정해진 방식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내 앞에 펼쳐질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삶에 나를 활짝 열어두고,

그 어떤 것이 오더라도 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매 순간 순간의 삶이 새롭고 창조적이며

나아가 영적인 차원과 접촉할 수 있는

깨어남의 세계로 발을 내딛는 것이기도 하다.

 

계획이 변경되었지만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혹시 고산병이 걸리더라도 그 또한 새로운 하나의 가능성이자,

새로운 체험의 하나로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있다면,

그래서 최종적인 목적지의 하나였던

칼라파타르에 오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지라도

그리 좌절할 바는 아닌 것이다.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의 성공이다.

사실 우리의 삶은 매 순간순간 성공만이 있을 뿐이지 실패란 없다.

더 깊이 들어간다면 실패도 성공도 없고

다만 우리 생각이 성공이라고 혹은 실패라고 해석하고 판단하는 것일 뿐이다.

 

판단과 해석을 놓아버리면

모든 것이 아름답고 모든 것이 성공적이다.

사실 모든 실패는 실패했다는 생각일 뿐이지 실패가 아니다.

 

이 고지대에서도

봄처럼

아름다운 노오란 꽃이

생명력을 뽐내고 있다.

[히말라야, 내가 작아지는 즐거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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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법상




8월 28일 오후 6시

인천공항

 

출국수속을 마치고

인천공항의 거의 끝자락에 위치한

인도행 비행기 탑승 게이트에 앉아

깊은 감회에 빠진다.

 

 

 

 

아,

드디어 떠나는구나.

 

저 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오고 가는 비행기들과

비행기 너머로

붉게 떨어지고 있는 노을도

내 마음을 아는지

뜨겁게 그러나 엄숙하게 대지를 비추고 있다.

 

 

28일 오후 늦게 출발하여

현지 시각으로 같은 날 밤 11시 50분에 델리 도착.

 

많은 인도 여행 가이드북이나 여행기

그리고 인터넷에서 찾아 본 자료를 종합해 보면

대부분의 여행자에게,

주로 밤 늦게 인도 델리 공항에 도착하면

공항 밖이 많이 위험하니

공항에서 밤을 보내고 다음날 새벽에 출발하라고 하는

간곡한 권고가 천편일률적으로 나와 있다.

 

나 또한 그 권유를 따르기로 하고

공항 안의 의자 한 켠에 자리를 잡고 눕니다.

그런데 이상하다.

나만 여기 이렇게 자리를 깔고 누웠지

그 많던 여행객들이 모두들 썰물 빠지듯 공항 밖으로 밀려 나가고 있다.

 

가만 보았더니 대부분의 배낭여행객들이

첫 날 밤에 도착하다보니

미리 픽업서비스를 요청하였거나,

미리 숙소를 마련해 두어 숙소의 차량이 나와서

데리고 가던 것.

 

초보 배낭여행객들에게는 성경과도 같은

가이드북의 고구정녕한 말씀에 따르지 않고

저들은 어디에서 저런 방법을 익혀 온 건가

하는 상념에 빠지다가

침낭 속의 다소 불편한 온기에 의지해

어느덧 잠에 든다.

 

첫 여행지에서의 하룻밤이라 그런지,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위에

달랑 얇은 침낭 하나 펴고 잠을 자서 그런 건지

밤새 뒤척이다가 이른 새벽에 일어나

공항 화장실에서 대충 세수를 하고 공항을 빠져나간다.

 

별 생각 없이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공항 문을 박차고 나가다가

두 발자국 걷자마자

자동 반사적으로 뒤돌아 공항 안으로 휙 들어온다.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수십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뭐라고 뭐라고 말다툼을 벌이며

나를 놓고 서로 차지하겠다고 싸우는 통에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어 되돌아 들어왔다가

숨 호흡을 크게 한 번 한다.

 

모두들 자기 택시를 타라고,

손님을 끄는 호객행위인 셈이다.

 

다시 나가려다가

언뜻 가이드북에서 보았던

정액제 프리페이드 택시가 생각나

미리 돈을 주고 프리페이드 택시 바우쳐를 받아서

바우쳐에 적혀 있는 택시번호를 찾아 간다.

 

한바탕 쫒아오는 호객 택시기사들에게

바우쳐를 치켜들었더니

이제야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포기를 하고,

바우쳐 번호의 택시에 배낭을 싣고

일단 ISBT 라고 하는 카슈미르게이트, 즉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한다.

 

델리에서 며칠 머물 계획이 아니라

오늘 중에 시외버스를 타고

맥그로드 간즈라는 달라이라마가 머물고 계신 곳으로

갈 계획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이드북 하나 달랑 들고 왔고,

대충 어디 어디를 가겠다고 생각만 하고 온 터라

가이드북에 써 있는데로

카슈미르 게이트에 가서 맥간가는 버스를 탈 요량이었다.

 

그런데 카슈미르 게이트를 몇 바퀴 빙빙 돌며

버스표를 끊으려고 아무리 묻고 찾고 해도

맥그로드 간즈행 버스표를 살 곳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일단 시외버스표는 포기하고

오고 가는 여행자에게 다른 방법도 묻고,

델리라도 조금 더 보자 싶어

올드델리 시내를 배회하며 걷는다. 

 

 

 

 

오전 한나절을 올드델리와 찬드니촉, 붉은성 주변을 걸으며

인도, 인도, 인도가 이런 곳이구나 하는 것을 대번에 감지한다.

 

델리 첫 날!

이토록 긴 하루가 있었던가.

완전히 낯선 세계, 낯선 곳에 나뒹구는 낙엽처럼

정처없이 떨어져 한 나절을 보낸다.

 

아, 인도, 이것이 인도구나.

하루 사이 인도 델리는

내게 그 속살들을 거침없이

심지어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동시에 너무도 많은 것을 내보여 주는 듯 하다.

 

인도를 오래도록

그것도 몇 번씩이나 여행했거나,

혹은 인도에서 삶을 사는 사람이 들으면

콧방귀를 뀔 소리이겠지만,

내게는 그만큼 단 하루의 마주침이

특별하고도 매우 진하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한나절을 정처없이 걷는데

인도인들은 잠시도 나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택시나 릭샤를 타라고 행선지를 묻는 사람,

'코리아!'를 연발하며 그저 호기심으로 불러보는 사람,

그저 곁에 따라와 연실 웃으며 이것 저것 묻는 사람,

물건을 팔려고 계속해서 쫒아오는 사람,

묻지도 않았는데 도와줄 것 없느냐며 달려와 말을 거는 사람,

행선지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무작정 내 앞으로 걷는 사람,

어린 아이 젖을 먹이며 구걸하는 사람,

손을 내밀며 한 푼 달라고 애절한 눈빛을 보내는 장애인,

아무 의미 없이 다가와 툭툭 치듯 쫒아오는 사람,

 

도저히 내 생각으로는 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가만히 걷는 사람을 걷지 못하게 만들면서까지

계속해서 내게 다가오는지

다 짐작해 낼 수 없을 지경이다.

 


수도 없이 사람들이 몰려오고

하릴 없이 몰려 간다.

 

어디 그 뿐인가.

거리의 버스며, 승용차며, 택시, 오토릭샤, 사이클 릭샤,

오토바이 등이 경쟁하듯 혹은 싸우듯

귀를 찢는 경적소리를 울리며 귓전으로 질주하며 혼을 빼 놓는다.

 

그런가 하면

올드델리의 찬드니 촉이며

골목 골목까지 자동차와 온갖 탈것들

그리고 가축과 사람들이 합창으로 만들어내는

뿌연 먼지와 분진, 매연들은

눈과 코 그리고 온 몸에 찰싹 찰싹 달라붙듯

본드처럼 와 박힌다.

 

그뿐이 아니다.

오늘 저녁 곧장 맥간으로 떠나려다 보니

어느 숙소에 무거운 배낭을 맡길 수조차 없어

하루 종일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업과 욕심의 무게를 감당하며 걷다 보니

온몸에서 땀은 비오듯 쏟아지고

쏟아지는 땀줄기를 타고 먼지 먹은 땟국물이 줄줄 흐른다.

 

몸을 조금 쉬자 싶어 붉은 성 광장 나무 아래

잠시 배낭을 내려 놓고 앉는다.

쉼.

잠시 쉬어야 겠다는 생각.

 

 

 

 

광장 한 켠에 앉아 있자니

오고 가는 사람들의 행렬이 줄을 잇는다.

성 안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고 간다.

 

 

 

 

 

그 와중에도 꼬마 아이들이며 학생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주위를 맴돌며

쿡쿡 찔러 본다.

나 참.

동물원 원숭이가 된 느낌이랄까...

 

 

 

 

모든 것이

인도에서는 처음이라

배는 고픈데,

밥도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모르겠고,

길가에서 파는 구운 옥수수를 하나 물어 뜯으며 다시 걷는다.

 

 

 

 

켁켁!

목이 메여 온다.

그러고 보니 한 바가지 땀을 흘리면서도

물 한 방울 먹지를 못했다.

어디에서 물을 사야할지 도무지 보이지를 않는다.

 

마침 길건너에 현대식 빵집이 있고,

유리창 너머로 물과 음료가 진열되어 있어서

그 집으로 들어간다.

먼저 생수를 하나 시켜 단번에 생수 한 통을 먹어치운다.

빵도 하나 시켜서 먹고.

 

잠시 화장실에 가 있는데,

밖에서 한국말이 환청처럼 들려온다.

'참 벌써 환청이 들리는거야!'

밖으로 나갔더니 진짜 한국인 여행자를 처음 만나다니.

 

이들에게 물었더니

누가 공영버스를 타고 가느냐고

여행자들은 모두 여행사의 사설버스를 타고 간다네.

 

그럼 그렇지.

 

오토릭샤를 타고

바로 빠하르간지로 향한다.

 

 

 

 

기차역을 지나

 

 

 

 

빠하르간지의 사설여행사에서

맥그로드 간즈행 버스표를 구입한다.

 

에어컨 나오는 최신식 리무진 버스라며

600루피면 아주 싼 가격이라고 해서 산 뒤,

3시 30분까지 오라는 말을 듣고,

빠하르간지를 돌다 정확한 시간에 도착.

 

이게 웬말인가.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는 차.

결국 6시가 되어 출발한 것도 모자라

에어컨은 아예 고장이 났고

버스는 너무 오래된 구닥다리 버스.

 

어디 그 뿐인가.

나는 600루피를 주고 버스표를 끊었는데,

다른 여행자들은 대부분 400루피~500루피 정도를 주었다.

그도 사람마다 다르고

어느 여행사에서 끊었느냐에 따라 다 다르게 값을 치른 것이다.

첫 새내기 여행자 티를 내가 그렇게 내었었나 보다.

 

400루피를 내고 표를 산 사람도

표를 살 때는 에어컨 나오는 최신 리무진 버스라고

똑같이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모든 상황,

버스가 2시간 이상 늦게 오고,

최신식 시설을 갖춘 버스도 아니고,

에어컨도 나온다고 했는데 전혀 안 나오고,

이런 모든 상황 속에서도

이상하게 버스 안의 모든 여행자들은

불평 하나 없이 당연하다는 듯 평화로와 보였다.

 

아무도 그런 것들에 대해 따져 묻지 않는다.

이럴수가!

누구 하나

'왜 에어컨이 나온다고 해 놓고 나오지 않느냐?' 거나

'처음 말 한 것과 다르지 않느냐?'거나,

'왜 이렇게 차가 늦게 온 거냐?' 혹은

'왜 나만 이렇게 버스비를 비싸게 받은거야?'

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

아무런 동요 없이

모두들 평화롭게 버스 안에 앉아 있다.

 

 

 

 

한 한국인 여행자에게

이런 상황이 참 대단하구나 싶다고,

이래서 인도에 오는 것이구나 싶다고,

이런 것을 배우는 것이구나 싶다고 말했더니,

인도를 먼저 여행한 선배로써

해 주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단다.

 

"인도에서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게 될 것이다!"

 

이런 외부적인 상황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

그것부터를 배우는 것이

인도의 첫 날이 내게 준 직접적인 교훈이다.

 

모든 것은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쩌란 말인가.

 

한국에서 같았으면

모두들 노발대발 난리를 치며,

버스회사가 사기를 쳤다느니

돈을 환불해 달라느니 난리가 났을 상황이지만,

이 외부적인 상황이

인도에서는 전혀 문제시되지 않는다.

 

아니 그게 바로 인도인 것이다.

 

버스는

해가 저무는

노을지는 창밖으로

델리를 떠나보내며

조금씩 어둠 속으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떠밀려 가고 있다.

 

달라이라마의 고장

맥그로드 간즈로









Posted by 법상

이틀 머문 남체에 벌써 정이 든 것인지,

발걸음을 떼려니 꽁대와 남체바자의 풍광이 시선을 잡아 끈다.

 

 

 


 

 

매 순간 순간의 현실에 나를 활짝 열어 둔다.

진정 열려있음이란 어떤 것인지를 비로소 진하게 느낀다.

이 대자연의 모든 것이 그 어떤 걸러짐도 없이 파도치듯 안으로 밀려들어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그것들을 받아들여 충분히 느끼는 것 뿐이다.

 

남체에서 텡보체(Tengboche, 3860m)까지의 첫 번째 구간은

어제 에베레스트 뷰 호텔에서 보았던 바로 그 길로

두세 시간 동안 계속해서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웅대한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아! 이것은 자연이 만들어 내는 장엄한 예술작품이요

엄중한 오케스트라이고 설산의 대서사시다.

 

발걸음과 호흡과 눈에 비친 대자연이 투명한 조화를 이루며 하나가 되어 걷는다.

아! 그렇다. 이것은 걷는다기 보다는 그렇게 하나가 되는 과정이 아닌가.

 

 



 

 

설산을 배경으로

하얀 설산과도 같은 스투파(탑)가 우뚝 서 있다.

 

 

 

 

여행자는 길을 걷다

스투파 앞에서 예를 올린다.

 

이 장엄한 스투파 앞에서 모든 종교는 하나다.

종교의 틀이라는 것조차 조잡한 하나의 형식이 아닐까 하는,

그리하여 모든 진리는 하나로 통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장대하고 너른 사유가 희말라야에서는 저절로 피어오른다.

 

아마다블람과 스투파의 미묘한 조화.

 

 

 

 

왼편으로는 에베레스트를

오른편으로는 탐세쿠, 아마다블람, 눕체 등의 영봉을

함께 걷는 구도의 도반처럼 곁에 두고 푸르른 하늘길을 걷는다.

 

 

 

 

 

한 두 시간 쉬엄 쉬엄 걸으면 사나사가 나오고,

두어 채의 롯지와 기념품 판매하는 곳에 이른다.

잠시 롯지 마당에 앉아 휴식을 취하면서 롯지의 툭 트인 전망을 바라본다.

 

 

 

 

 

이 곳까지 함께 걸어 온 많은 여행자들이

이 곳 사나사에서부터 고쿄로 가는 팀과 에베레스트 방면의 팀으로 나뉜다.

 

사나사를 지나다 보면 좌측 오르막길로 쿰중 가는 길이 보이고,

조금 더 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이 삼거리에서 고쿄와 에베레스트의 두 갈래 길이 나온다는 것을 안내하는

반가운 이정표를 만날 수 있다.

 

 

 

 

희말라야를 다니면서 어지간 해서는 갈림길이라도 이정표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을 생각해 보면

이런 이정표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갈림길임을 대번에 알 수가 있다.

위쪽 산 중턱을 가로지르는 오르막이 고쿄로 가는 길이고,

아래쪽 숲길이 에베레스트와 칼라파타르로 가는 길이다.

 

남체에서부터 사나사를 지나 점심을 먹을 곳인 푼키텡가(Phunki Tenga, 3250m)까지는

평탄하거나 완만한 내리막이다.

가벼운 발걸음이 마음까지 경쾌하게 만든다.

설산 봉우리 중에도 단연 눈에 띄는 아마다블람을 가까이 곁에 두고 함께 걷는다.

 

 

 

 

 

아! 비로소 나는 지금 이 길 위에 아무런 기대도 없이, 아무런 바람도 없이

그저 그저 걷고 있을 뿐이다.

 

과거와 미래의 모든 것들이 놓여지고

지금 이 순간 내 앞에는

바로 다음의 발걸음과 한 호흡의 들숨과

눈앞에 펼쳐진 하이얀 산맥의 현존만이 강물처럼 흐른다.

 

 



 

 

아! 이 느낌!

이 현존,

모처럼 잊혀졌던 그 무언가들이 다시금 새록새록 존재 위를 흐른다.

 

푼키텡가 조금 못 미처 타싱가(Thasinga, 3600m)를 지나니

동네 아이들이 숲속을 놀이터로,

꺾어진 나뭇가지를 시소삼아 올라 타고 노느라 정신이 없다.

 

 

 

 

 

마을길을 지나 설산 초오유에서 발원한 두드코시를 지나는 다리를 건넌다.

두드코시는 우유란 뜻의 두드와 강이란 뜻의 코시가 합쳐진

우유빛을 띄는 빙하 녹은 물로

빙하물은 미세한 광물입자들을 함유하고 있어 빛과의 산란작용에 의해

우유빛 바탕에 푸른 에머럴드 색을 동시에 띈다고 한다.

 

 

 

 

이 두드코시가 언뜻 보기에는 그저 작은 산골의 골짜기 같지만,

이 강이 흘러 흘러 인도인의 영혼의 고향, 갠지즈강으로 뻗어나가고

최종적으로 인도양까지 흘러들게 되는 장대한 역사를 만들어내는 발원지인 셈이다.

 

 

 

 

 

두드코시를 건너 푼키텡가에서 점심을 먹으려는데

자리가 꽉 찬 터라 저쪽 구석자리에 홀로 앉아 계시는 지긋한 어르신께

옆 자리 함석을 여쭙는다.

 

그런데 지금까지 산에서 한 번도 보아오지 못했던 한국분이 아닌가!

“한국 분 아니세요?”

하는 물음이 얼마나 반갑던지.

춘추가 60이 넘으셨는데 이렇게 정년 퇴직 후에 산으로 산으로 떠도신다고 한다.

 

퇴직 후 지난 몇 년간 세계 도처를 여행하시다

요즘은 네팔의 설산에 반해 안나푸르나, 랑탕에 이어 이렇게 에베레스트까지 오시게 되었다고.

희끗희끗한 연세에 홀로 저렇게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물론 그만한 경제적 여유도 있어야 하니

특별한 소수 특권층이나 가능한 것이라고 혀를 차는 사람들도 주위에 있다고 하던데,

이 어르신의 대답은

“물론 그것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돈이 있어도 못 오는 사람도 많고,

또 조금만 절약하면 인도나 네팔 같은 나라는 한국에서 지내도 그 정도의 돈은 쓸 정도”

라고 항변하신다.

 

아내나 자식들과 함께 오고 싶어 아무리 설득을 해도

 “그 험한 산에 힘들게 왜 가느냐?”고 한다네.

 

그런 거 보면 모든 것은 제 마음이 동해야 하지

아무리 좋은 것도 저 싫다면 그만이다.

 

 

 

 

그래서 때때로 삶을 힘겨워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저런 방법 같은 것을 알려줘도 그것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

자기 자신만의 관점과 견해와 좋고 싫은 어떤 견고한 틀이 있어서 그렇다.

 

그래서 진정으로 길을 찾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비우고 활짝 열 수 있어야 한다.

가슴의 창이 닫겨 있으면

그 창으로 지혜도, 행복도, 풍요로움도 들어갈 수 없다.

 

닫혀진 마음에는

늘 자신의 기존 관점이나 색안경으로 걸러진 선택적인 것들만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승을 찾아갈 때는

언제나 빈 마음이어야 하고,

자신을 완전히 내려 놓고

‘내가 옳다’고 여겨 온 모든 울타리를 걷어 치우고 친견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 자기 고집, 아상과 아견을 꽁꽁 움켜쥔 채 찾아간다면

붓다나 예수를 만날지라도 거기에 소통과 참된 이해는 깃들지 않는다.

그 때 우주는 당신을 도울 수 없다.

늘 충만한 우주의 도움을 당신은 스스로 닫음으로써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붓다께서는 “인연 없는 중생은 붓다고 구제하기 어렵다”고 했다.

 

잠시의 대화를 뒤로한 채

점심을 마치신 어르신은 포터와 가이드를 영솔하며 먼저 길을 나서신다.

점심을 먹고 이 곳 롯지에서 파는 상점을 잠시 돌아 보며 숨을 돌린다.

 

 

 

 

 

이 곳 푼키텡가부터 텡보체까지는

무려 고도 600미터를 단숨에 올라야 하는 가파른 오르막 구간이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오른 무릎의 통증은 여전하다.

오르막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 오르며

오른 무릎으로 주의력을 옮긴다.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찌릿찌릿한 느낌이 그곳에서 감지된다.

그것을 탓하지 않고, 걱정하지 않고, 빨리 나으라고 재촉하지 않고

다만 그 작은 통증을 가만히 지켜보며 걷는다.

 

지켜보는 동안 그 통증은 사실 ‘통증’이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저 단순한 어떤 느낌일 뿐이다.

공연히 그 하나의 생생한 느낌에 ‘통증’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기로 한다.

 

그렇게 걷다보면 그것은 싫은 어떤 느낌이 아니라

그저 그것이 거기에 있을 뿐이다.

오히려 지켜보는 가운데 생기로운 생명력 같은 무엇을 느끼게도 되고,

그것을 통해 내면으로 들어가는 통로 같은 것을 느끼게도 된다.

그 하나의 통증이 오히려 명상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Posted by 법상

 

 

이제 본격적으로 설산의 초대를 받는 것인가 싶어
마음을 다시한번 추스르며
삼보일배를 올리는 마음으로 한 발 한 발 조붓한 발걸음을 옮긴다.

탐세쿠, 캉테가(kangtega) 영봉들이 연이어 마중을 나오고
설산의 빙하가 녹아 흘렀을 남빛 계곡물이 길벗이 되어 흐르며,
이 믿기 힘든 풍경 위로 그림 같은 아름다운 계곡마을이 펼쳐진다.

아! 이것은 한 폭의 그림,
어찌 이 속에 애살스럽고 어루꾀는 천박한 사람들이 살 수 있겠는가.
그를 애워싸고 있는 둘레 환경은
곧 자기의 분신처럼 업의 투영으로 그곳에 있는 것이다.

내 주변에 사기꾼이 많다면
그것은 곧 내 마음에 사기의 업이 있는 것이고,
내 주변에 나를 돕는 이들이 많다면
나의 마음 한 켠에 이타심이 춤추기 때문이다.

내가 살면서 만날 수 있는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상황도, 그 어떤 문제도, 그 어떤 환경도
사실은 모두 내가 만들어 낸 것이다.
그 모든 것은 내 마음이 외적으로 투영된 것일 뿐이다.

내 안에 없는 것들은 내 앞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똑같은 환경 속에서, 똑같은 일터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 사람일지라도
어떤 사람에게 그곳은 지옥일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 그곳은 천국일 수도 있다.
마음이 세상을 만들어내기 때문.

똑같은 조건, 똑같은 세상 속에서
어떤 이는 지옥을 경험하고 어떤 이는 자유를 경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 하나가 바뀌면 세상이 변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마음이 바뀌면서 세상 자체가
그 어떤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개벽을 이룬다는 말이 아니라,
내 마음에 비친 세상이 바뀜을 의미한다.

똑같은 물을 독사가 먹으면 독이 되지만
젖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는 것처럼.
마음이 바뀌면 독이 우유로 바뀌고 불행스럽던 현실이 행복으로 바뀐다.

한 발 더 나아간다면,
주변 환경은 그 속의 사람을 바꾸고,
사람은 그 주변 환경을 바꾼다.
모든 것은 상의상관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아름다운 사람이 사는 곳은 그 풍경도 아름다워지고,
아름다운 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 풍경 덕분에 마음이 아름다워진다.
그것이 바로 신토불이의 소식!

큰 산이 큰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만
반대로 큰 사람이 그 산을 위대한 산으로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큰 산, 명산, 명당 자리에서 위인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 산에 위대한 영혼이 깃들어 있다면 그 산이 거꾸로 성스러워지는 것.

이 아름답고 성스러운 쿰부 계곡 자락에
어찌 마구잡이로 시류에 휩쓸린 사람들이 깃들 수 있겠는가.
물론 이 와중에도 희말라야의 성스러운 품어줌과 길들임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에고와 아집의 길에서 길을 잃은 영혼들이야 어쩔 수 없는 일.
세상 어디에나 돌연변이는 있게 마련이니까.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이 가지는 또 다른 역설이요,
어쩌면 그 또한 꼭 필요한 더 깊은 차원의 다양성이고
삶이라는 연극을 위한 필수적인 신의 장치인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밴커(Bankar)와 몬조(Monjo) 마을을 연이어 지난다.



마을을 정확히 관통하는 마을길을 따라 걷자니
아기자기한 집들과 지붕 위에 흩날리는 룽다,
그리고 집집마다 작은 돌담을 쌓아올려 밭농사를 짓는 모습들이
새삼스런 진풍경으로 다가온다.

 



아침 햇빛에 반짝이며 빛나는 배추잎사귀며
흡사 상추나 쑥갓을 같은 소담한 초록빛 채소들이
어쩌면 저렇게 싱그러울 수 있는지,
저 평범한 채소들조차 이 희말라야 대자연의 품 속에서
그 기운을 먹고 자란 것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자
저들에게서 마구마구 생명력이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다.

 

 



나른한 아침 햇살을 맞으며
집 앞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지나치는 여행자들을 보며
저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아침밥을 짓는 것인지
집집마다 하얀 연기를 뿜어올리며
여행자의 가슴에 고향의 정감을 선사하고 있다.
머얼리 하얀 구름 테를 두른 캉테가가 올려다 보이는
몬조 마을의 풍경이 선명하다.
그림 같은 마을 풍경들이 계속된다.

 



몬조 마을을 지나서 조금 더 걸으니
조르살레를 조금 못 미쳐
퍼밋과 팀스를 체크하는 조르살레 체크포스트가 나온다.



팀스(TIMS, 트레커 정보운영 시스템)는
카투만두에서 미리 준비 해 와야 하고
퍼밋(Permit, 입장허가서)은 이 곳에서 직접 발급을 받을 수 있다.
잠시 팀스와 퍼밋을 체크하고 숨을 돌린 뒤에 곧장 조르살레로 향한다.



이른 점심을 조르살래의 빛이 잘 드는 식당에서 가볍게 먹고
오후의 여유를 즐긴다.
부서지는 햇살이 온 세상을, 순례자의 얼굴을,
한 포기 이름 모를 풀을 향해 축복을 내린다.
이 투명한 여유와 평화로움을 시끌시끌한 식당 앞 뜨락에서 가만히 누려본다.

지텐이 너무 이른 식사라 조금 더 가다가 점심을 먹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내 말에
앞으로는 남체까지 전혀 밥 먹을 수 있는 마을이 없다고 하더니
역시 점심 이후에는 그동안의 나지막한 계곡이 완만함을 뛰어올라
폭포 같은 거친 가파름으로 바뀌더니
인간의 길 또한 가파른 오르막으로 바뀌고 있다.

 



호흡에 발걸음을 일치시키며
한 숨 한 숨 지켜보는 걸음걸이로 오르막을 오른다.

이 높은 계곡 중턱에 아찔한 출렁다리 위로
사람도 건너고 야크도 건너고 룽다와 산골 시린 바람도 함께 건넌다.

 



그 오금이 저려오는 절벽 위 출렁다리를 중간 쯤 걸어갔나 싶은데
저 쪽 반대편 끝에서 야크의 육중한 행렬이 이어지는게 아닌가.
이 비좁은 흔들다리 위에서 야크와 마주치는 운명이라니.
다리 위로 펄럭이는 룽다가 점점 거세진다.



계곡의 바람치고는 너무 거칠다.
아슬아슬 다리를 건넜는데 이번엔 이쪽 야크 떼와
조금 더 규모가 큰 저쪽 야크떼가
내 바로 앞에서 비좁은 길을 앞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일단 나부터 살고 보자 싶어
그 가파른 산자락을 숨도 안 쉬고 아슬이 야크떼를 피해 뛰어오른다.

 






그리고 이윽고 계속되는 오르막길.



천천히 천천히 오르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한 발 한 발만을 숨과 함께 내딛다 보니
어느덧 남체의 그림 같은 마을이 눈앞에 펼쳐진다.

 



하이얀 설산으로 둘러싸인 옴팍하게 부채꼴을 이루며
마치 야외 콘서트장을 연상케 하는
쿰부지역 제일의 마을이자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의 전초기지,
바로 남체바자다.

마을의 입구에는 티벳과 가까운 마을임을 알려주듯
티벳불교의 스투파와 스투파 주위를 감싸며 휘날리는 룽다와 타르초가
여행자를 반기듯 맞아 준다.

가려고 했던 시설 좋고 값도 싸고 음식 맛도 좋다던 유명한 롯지는
오전에 이미 꽉 차고,
조금 허름하고 오래되었지만
지텐의 친구가 운영한다는 롯지가 있어 그리로 방을 정한다.

이 산중에서 하룻밤 싱글룸이 200루피,
지텐 친구라고 특별히 할인하여 150루피에 얻었다.
약 2,000원 남짓하는 돈이니 시설은 허름하지만 가격대비 재법 만족스럽다.
이렇게 거의 모든 롯지가 방값은 200~300루피를 오르내리지만
한 끼 밥값도 똑같이 200~300루피를 심심치 않게 넘어선다.
그도 그럴 것이 방에는 침대 하나 달랑, 희미한 형광등 하나가 전부다.
난방이며 전기 충전시설, 화장실이나 욕조는 꿈도 꾸지 마시라.

물론 500~600루피를 생각한다면
몇몇 고급 롯지에서 묵으며 욕실 겸 화장실이 딸린 방에서
마음껏 전기 충전도 하며 호화롭게 묵을 수도 있다.
하기야 그래 봐야 우리 돈으로 7,000~8,000원 정도의 돈이지만
이 곳 네팔에서는 손을 덜덜 떨며 쓰기 어려운 돈에 속하다 보니
길 위의 여행자에게도 마찬가지의 큰 돈이 되고 있다.

작은 방에 짐을 풀어 놓고 잠시 남체바자의 시내를 돌아본다.
이 산중에서 지금까지 보아 온 마을하고는 차원을 달리하는 제법 큰 마을이다.
어떻게 이 많은 건물들과 상점들과 다양한 물건들을 도로도 없는 곳에서
그것도 3440고지나 되는 고산 마을에 이렇게 지어다 날랐을까를 생각해 보면
인간의 능력과 의지가 신비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길 없는 곳에, 그것도 걸어서 이틀을 꼬박 걸어 와야 하는,
그것도 루클라에 공항이 없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카투만두에서 버스로 이삼일을 달려 와야 루클라에 도착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더욱 기적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남체바자에는 그야말로 없는 것 없이 다 있다.
주로 트레킹 관련 장비를 팔거나 대여해 주는 상점들이 많고,
여행자들이 많다 보니 여행자를 위한 편의시설들도 제법 있다.
제과점이나 빵집, 에스프레소 커피 카페에, 인터넷방,
국제전화가 가능한 인터넷 전화방, 책방, 편의점 같은 마트도 있고,
여행자들에게 현지의 티벳 전통 물품들을 파는 기념품 가게나 옷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점과 마트가 즐비하게 늘어 서 있다.



잠시 마을길을 따라 언덕 위쪽으로 조금 올라가니
남체바자의 전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건물들이 주로 롯지며 게스트하우스인데,
현대식으로 또 유럽풍으로 아름답게 지어 놓은,
그것도 최근에 지었을 법한 최신식 건물들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의 색색의 롯지들이 선명하고도 아름답다.
이런 풍경은 사실은 매우 낯선 풍경이어야 하는데
내 눈에는 낯설다기 보다는 오히려 고향에 온 것 같은
아주 친숙하고도 설레는 친근한 마을풍경으로 다가온다.




 



산그림자가 일찌감치 슬금슬금 기어오더니 금방 마을을 뒤덮는다.
어둑어둑한 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니
얕은 집 지붕 위로 야크똥과 함께
바로 그 곁에서 무슨 야채인지 나물인지를 말리는 풍경이 한눈에 잡힌다.
먹거리 바로 옆에 야크똥을 함께 말리고 있는 풍경이 낯설지만
인도와 네팔을 한두달 다니다 온 나로서는 제법 익숙하게 느껴진다.

 


다시 마을로 내려오니 어둠이 완전히 내린 작은 시내 상점들이
모두들 흐릿한 불빛을 켜 놓고 막바지 여행객들을 호객하며
여전히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

여행자들도 모처럼 큰 마을의 시내구경에
흥미로운 눈빛으로 거닐며
이런 저런 필요한 것들을 구입도 하고, 산책도 하고,
트레킹에 필요한 물품들을 빌리기도 하는 듯 밤풍경이 제법 활기차다.

 

 

 

 

 

 

 

 

 

다시 롯지로 돌아오니 롯지 식당이 여행자들로 꽉 차 만원을 이룬다.
그야말로 한 명 끼어 앉을 자리가 없다.
이럴 때는 지텐의 친구가 경영하는 롯지로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텐의 친구인 20대 초반의 롯지 사장이
지텐 친구면 자신에게도 친구라며 의외로 후한 대접을 해 준다.

자신의 안방을 내어주면서
그곳에서 저녁밥을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해 준다.
카메라 밧데리 충전비용이 한 시간에 200루피인데
모든 밧데리와 핸드폰, 전기기구를 몇 시간이든 마음껏 사용해도 좋다는
특별 대접도 받는다.

그 뿐 아니라 내 작은 침낭을 보더니
두툼한 이불을 두 개나 가져다 주면서 따뜻하게 자야 한다고 말해 주는데
이 작은 관심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고맙고 포근하게 느껴진다.
모처럼 따뜻한 방에서 맛있는 저녁 공양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뛰어든다.




Posted by 법상
지리산
주소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922-8
설명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이며 가장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산악형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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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많은 비가 내렸다.
쏟아지는 비소리,
또 빗방울이 숲 위로 내려 앉는 소리가
다소 거칠어 몇 번을 잠에서 깨어났다.

하기야 산사에서 살다보면
이따금 한밤 중 잠에서 깰 때가 있다.

주로 늦은 녘 울려오는 둔탁한 전화 소리이거나
아기 울음 소리 비슷한 도둑고양이 소리인데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똑같이 잠에서 깨더라도
혹 그로 인해 잠을 조금 설치더라도
기분 좋게 두 눈 뜨고 일어나
잠시나마 맑은 정신으로 앉아 있을 때가 있다.

바로 그날 새벽녘처럼
조금 거칠더라도 시원스런 빗소리가
이 청청한 산사를 맑게 씻어내리는 바로 이런 때.
한밤중 빗소리에 눈을 뜨고 일어나면
내 안의 뜨락에도 맑은 비가 내리는 듯 하다.



한 밤 중
비 소리에 잠을 깨고
일어나 앉아 보셨는지...
그 웅숭깊은 도량의 한밤중 맑은 정취를 느껴보셨는지.



특히나 그날 밤에는 활짝 열어 둔 빗소리가
얼마나 청청하였던지 밤새 몇 번을 잠에서 깨어났는지 모른다.
이렇게 거친 숨을 몰아쉬며 쏟아붓는 비는 참 오랜만이다.

그치지 않고 몇 날을 계속해서 퍼 붓다 보니
처음엔 그리도 좋고 낭만적이던 빗줄기가
조금씩 찝찝함과 습한 여운을 주며
뽀송뽀송한 빨래 감촉이 그리울 때 즈음...
길을 나섰다.

한참 장마비가
온산하 대지를 흠뻑 적시울 그 때,
따뜻한 햇살을 그리다 그리다
한생각 돌이켜 보니
이 극성스럽고 그치지 않는 빗줄기 조차
정진하는 도반처럼 포근하게 느껴져
그래 이렇게 되었으니 한바탕 하나되어 춤이라도 춰 보자 싶어
쏟아지는 빗줄기를 길벗삼아 걸망을 꾸렸다.

사실은 작년 가을 지리산에 오를 때
비오는 지리산을 가슴 깊이 그리워 했던 그 인연이
이제사 마음 속에서 꽃망울을 틔우게 했던 것일 게다.

갑작스런 길 나섬이다 보니 아무런 준비가 없었고,
되려 그런 무성의가 이번 만행엔 알싸한 스릴이랄까,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턱 내맡기고 저지를 수 있도록,
그저 마음 내키는대로 거닐을 수 있도록
내 여행을 자유롭게 해 주었다.

별 생각 없이
빗 속에 내려진 결정이었고,
빗줄기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었기에
당연히 산을 택했고, 지리산으로 발길이 옮겨져갔다.

역시나 탁 저지를 땐
물 흐르듯 다 되어지지만은 않는 법.
하기야 방하착 하고 턱 놓아버렸을 때
턱 놓으니까 다 되겠지 하고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그건 법계가 아직 내 속의 작은 번뇌를 보지 못함이 아니겠는가.

철도 파업 기간이라고 해서
지리산으로 가는 기차가 발이 묶였다.
덕분에 오랜만에 툴툴거리는 버스를 타고
아래로 아래로 남원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화엄사 아랫동네까지 발길이 머물러졌다.

도착하니 벌써 날이 어둡다.
눅눅한 민박집에 여장을 풀고
새벽 빗길을 여유있게 걸으리란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눈은 감고 있는데
마음은 두 눈을 똑똑히 뜨고 있다.
하기야 이 설레는 마음에 잠이 오겠는가.

또하나, 방에 들어오고부터
기다렸다는 듯 더 세게 몰아치는 빗줄기의 기세가
영 예사롭지 않은 것이
이 밤
길 떠날 한 외로운 여행자의 가슴을 후벼판다.

아. 이런 밤
이렇게 가슴 깊은 곳까지
울울적적 창연한 여울이 넘쳐날 때면
난 외로운 시인이 되고 고독한 명상가가 된다.
상상해 보라.
어느 누구인들 가슴을 차분히 가라앉힐 수 있겠는가.

아마도 밤새 비가 내렸나 보다.
이 새벽, 창밖으로 들어오는 논밭의 풍경이며
그 위로 지리산의 위용이
마을까지 내려온 하이얀 비구름 안개와 어우러져
한 폭의 청청한 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화엄사 계곡도 이만하면 꾀나 불었을테고
정상과 능선 쪽에는 바람까지 거칠게 불어올거고,
행여나 나처럼 반쯤 정신나간 빗속의 입산자들도
공원관리사무소 사람들 안내를 받아
다시금 내려오고 있을 터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조금씩 잣아지는 빗줄기를 핑계삼아
화엄사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니나 다를까 내 행세를 보고는
지나가던 승용차 한 대가 멈춰 서서는
“오늘 산행은 안 됩니다. 화엄사 가 봐야 못 올라가요”

화엄사로 오르려던 일정에 약간의 차질은 생겼지만
뭐 애초부터 어떻게 하겠다고 구체적으로 계획 한 바가 없던 터라
실망할 것도 없고, 답답할 것도 없이
왠지 모르게 저 산속을 걸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그 하나에 기대어 6시 성삼재행 버스를 기다렸다.

물론 버스는 왔다.
어지간 해서는 버스는 올라간다는
어젯밤 민박집 보살님 말씀을 귀담아 들은 것이 맞아떨어진 것.
버스 기사님께서
“성삼재까지, 그리고 걸어서 노고단산장까지는 가도
그 이상 종주는 불가능할겁니다.”
하시는 말씀이 오히려 왠지모를 희망을 품게 했다.

또 하나,
나같은 이상한 사람이 몇몇 더 있었다는데
왠지 모를 위안 같은 것을 느꼈다.
그런 마음을 바라보면서
저 산을 나홀로 고독하게 걸으리란 그 마음이
어쩌면 그 이면에 일정부분 두려움과
또 면면에 누군가 산친구가 있겠지 하는 기대를 품고 있었음을
훤히 보게 해 주는 계기가 되면서
이번 산행의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풀풀거리면서 버스기사 아저씨의 능숙한 솜씨로
곡예를 하듯 비바람 속을 뚫고 잠시 후 성삼재에 다다랐다.
맨 먼저 훌륭한 준비로
아무리 거친 빗길이라도 문제 없을 것처럼 보이는,
덩치만큼이나 큰 등산가방을 둘러 메고
30대 후반 쯤 되어 보이는 한 남자분께서 버스를 내렸다.

그 뒤로 어설픈 바지 반팔셔츠 준비 덜 된 등산가방에
아래에서 아침에 구입한 1,000원짜리 하얀색 일회용 우비를 쓰고
내가 뒤따라 내렸고,

내 뒤에는 20대 초반 즈음으로 보이는
대학생들 3명이서 역시나 청바지 차람에 체크무늬 남방에
비가 금새 세어들어갈 듯 한 운동화를 신고는
정말 이 산을 종주할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준비성은 없지만
그 젊은 패기와 열정이 감격스러운 젊은 친구들이 따라 내렸다.

버스를 내리자마자
성삼재 주차장에 거칠게 휘몰아치는 비바람에
잠시 스쳐지나간 생각
‘내가 지금 뭔 짓을 하고 있나. 돌아가야 되는거 아닌가’...

3팀이 버스에서 내렸지만
이 산하의 웅장함과 오늘 상황의 비장함 때문이었는지
아무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 흔한 산길 인사말도 주고 받지 않은 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내리는 즉시 고개를 푹 떨구고 그냥 걷기만 한다.

노고단 산장에 다다랐더니
어젯밤 이 곳 산장에서 발이 묶인 사람들이
아침밥을 지어 먹고 있었는데
조금 쉬고 있자니 모두들 내려가자는 분위기...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 길을 틀어막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
위안을 받고 재빨리 발길을 재촉했다.
조금 더 있다가는 아주 걸을 수 없을지 몰랐기 때문.

드디어 본격적인 빗속의 산행이 시작되는 것.
빗속에 산길을 걷는다.



어젯밤부터 기다려 왔던 바로 이 순간...
그러나 현실은 그 낭만과 설렘이란 단어와는
사뭇 차이가 나게 마련.
그러더라도 일단 저지른 것
분별이 올라올 때 그냥 놓아버리고 걷기만 했다.

막연한 분별심이 잣아지기 시작한 것은
노고단을 지나 한 30여분 정도를 걸었을 무렵.
임걸령 지역을 지날 때
내 마음 안에서 맑은 청정수가 흘러
지친 몸과 마음을 씻어주는 듯,
산하의 맑은 기운이 나를 감싸주는 듯 했다.



그 때부터
비바람도 간간이 멈춰서고
지리산의 위용을 한껏 뽐내며
그렇게 거기 서 있음을 보았다.

아무도 없는 이 거대한 지리의 품 속에
나 홀로 비를 벗삼아 산길을 걷는다...
상상만 하더라도 이 얼마나 외롭고 무섭고 또 설레는 일인가.

외롭고 무섭다는 말은 내게 있어 참 좋은 말이다.
물론 그동안 사람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던
외롭다, 무섭다는 단어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말이다.
우린 어떤 단어에 공통적인 관념을 주입시켜 놓고
천편일률적으로 엇비슷한 해석을 해 버리는데
똑같은 단어라도 절대 같은 단어가 될 수는 없는 법.

사람마다 그 단어의 의미는 전혀 달라질 수 있고,
또 상황 마다 그 의미는 전혀 새롭게 다가올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참 좋은 단어가
어떤 사람에게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단어가 될 수도 있다.

내게 있어 ‘외롭다’는 단어는
벗어나고 싶다거나, 우울하다거나 하는 그런 ‘싫은’ 느낌의 말이 아닌,
내면의 뜰을 호올로 거닐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모처럼 ‘나 자신’이 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며,
그 안에는 ‘고독’ ‘좌절’ ‘우울’ 보다는
당당함과 자유로움 또 평화로운 깨어있음이 내포되어 있는 말이기도 하고,
우뚝 선 내 삶의 주인공으로 걷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무섭다’라는 말 또한
‘두렵고 겁난다’는 의미 보다는
그 이면에 대자연의 경외감과
그 속을 걷고 있는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는
그런 내식대로의 말풀이가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산 길.
한참을 걸어도 그 흔한
오다가다 만나는 사람 하나 찾기가 쉽지 않은
오직 바람과 비, 나무와 풀, 새들과 자연이
내 길에 벗이 되어 주는 이 외롭고 무서운 산길을 걷는다.



한참을 걷다 보니
그러면 그렇지 저 쪽 산 귀퉁이에
이 빗길을 감행한 또다른 벗들이 서 있다.
버스에서 함께 내린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내 시야에서 벗어난지 오래다.

무슨 동화의 마법사 내지는
헤리포터에나 나올 법한 큼직한 자주색 비옷을 입고는
묵묵히 길을 걷고 있는 모습이 참 듬직하다 싶었는데
연하천 산장에서 점심 즈음에 만나 보니
아버지와 아들 딸 참 다정하고 행복해 보이는 가족이다.



점심 즈음에 연하천 산장에 다다랐는데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언제 비가 오기나 했었냐는 듯
잠시 꿈이라고 꾸고 있는 듯
하늘은 더없이 높고 푸르렀으며
햇살은 쨍~ 소리를 내면서 이 산하를 찬연하게 비추고 있다.

지리산의 날씨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곤 한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 변덕이 심할 줄이야.



사람도 이 자연의 일부분이다 보니
화창한 날씨에 맞춰 내 마음도 화창하게 개어왔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그 마법사 가족과 함께 점심으로 라면을 삶았다.

마침 연하천 산장지기 거사님께서 함께 점심을 드시며
맛있는 반찬들도 꺼내 나누어 주시고
이런 저런 산에 사는 얘기들도 들을 수 있었다.
산에 살다 보니 저 아래 내려가면
일주일을 못 버티겠노라고 그러시는데
대번에 맞장구를 치면서 깊은 공감을 하면서
이런 곳에 홀홀 외로이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고동을 친다.



산에 올라 약초를 케신다고 하는데
오늘은 사람들이 없어서 특별히 내 놓으신다며
약초 다린 차를 주전자로 한 통 꺼내 주시며
흐뭇한 표정으로 조금은 노곤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어보이신다.
그 모습 속에서 산사람의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

‘산에는 꽃이피네’
한 권 가지고 온 법정스님 책을 건내드렸더니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그 어린애 같은 천진한 웃음이란...

배도 든든해 졌겠다,
예상 외로 햇살도 쨍 하고 비추어 주겠다,
더없이 행복한 마음으로
오후의 걸음 걸음을 시작한다.

난 이런 때가 참 좋다.
이렇게 걷고 있으면 그냥 걷고 있을 뿐
다른 그 무엇도 걸리적 거리는 것이 없다.

걸으면서 저 아랫동네 사람 사는 이야깃거리를
떠올리지 않아도 되고
이미 지나버린 어제나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
머릿속을 어지럽힐 필요도 없이
그냥 지금 이 순간 걷기만 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러면서
아무리 보아도 도무지 질리지 않는
이 대자연 식구들과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걷는 길이 더없이 평화롭다.



산을 걷다 보면
그냥 머릿속을 또 마음속을 비우려고 애쓰지 않아도,
애써 지금 이 순간을 관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마음의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다.

사람은 대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좀 더 순수해지고, 좀 더 맑아지고
좀 더 근원적인 지혜에 눈뜰 수 있으며,
좀 더 평화롭고 자유로운 속 뜰을 거닐을 수 있다.

대자연 이 법계의 모습이야말로
아무런 시비 분별도 없이
오직 법계의 흐름에 턱 맡기며
온 자연 법칙의 인과에 턱 맡기며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이 산을 찾는 이유는
어쩌면 그 대자연의 맑은 심성과 하나되고자 하는,
이 법계에 턱 맡기고 자유로와지길 원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동안 너무 얽매여 온 인위적인 것으로 부터,
자연을 거스르는 것으로 부터,
콘크리트, 철근의 숲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이 자연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리라.



제발 이 자연 만은
그냥 그렇게 놓아둘 수 있었음 좋겠다.
사람의 손길로,
사람들의 단편적인 지식을 가지고
이렇게 바꾸고, 저렇게 바꾸고 그러지 않았음 좋겠다.

처음 지리산을 찾겠다고 했을 때 산 사람들이 했던 말.
지리산 보려면 하루라도 빨리 가야지
한 몇 년 더 지나면 지리산의 모습을 보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고...
그러면서 지금도 예전 지리산의 모습은 많이 사라지고
온통 사람들의 어리석은 손길로 많이 파손되고 있는 중이라고 했었다.

산이야 늘 그렇게 거기에 있을 터인데
지리산을 볼 수 없을지 모른다니...
그런데 직접 지리산을 몇 번 와 보니 얼른 이해가 간다.

당장에 작년 가을 왔을 때 하고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하고
눈에 뜨일 정도로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작년에는 오르기 어렵고 험하던 곳을
바위 사이를 억지로 올랐던
그래서 오히려 바위 한 번 만져보고
흙 한 번 더 만져보고 밟아보고 그렇게 좋았던 기억들이 있는데,

바로 그런 곳들이 언제 공사를 해 놓았는지
철근으로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고
계단을 고정시키려고 흙을 파헤치고
또 그 큰 바위에 못질을 하고...

또 지난 해에 오래되었던 계단을
새로 고친다고 더 크고 튼튼하게 만들어 놓아
눈살을 찌뿌리는 일이
이 지리산 전체에서 자행되고 있다.



물론 이런 일은 지리산에서 뿐 아니라
온 국토가 그렇고, 온 산이 그렇고
국립공원이란 곳은 죄다 그렇게 버려놓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을 행하는 사람들이야
개발을 하고, 발전을 시킨다고 할 것이고,
이렇게 해 놓아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겠지만,
산을 찾는 사람들이
편한 것, 쉬운 것, 인위적인 것을 원해 산을 찾겠는가.

산을 찾는 사람들은
인위적인 것에 질려서 산을 찾는 것이고,
콘크리트만 밟고 살다가
흙한 번 밟아 보겠다고 산을 찾을 것이고,
개발과 발전에 질려서
야생스런 자연 속에 안기고 싶어 하는 것일 터인데...

모르긴 해도
몇 년이 지나고 나면
지리산을 오르기 한결 수월해 질 것 같다.
조금만 걷기 어려운 곳은
죄다 계단이며 오르기 쉽도록 사람들이 다 파헤쳐놓지 않겠는가.
사람들이 좀 더 많이 찾아오라고...

그러다 보면 저렇게 산을 두 동강 내어
만들어 놓은 노고단 아스팔트 바보길도 몇 개 더 낼 것이고,
노고단이며 천왕봉까지 가만히 앉아 갈 수 있도록
케이블카도 만든다고 할 것이고,
산에 올라도 흙을 밟아 보기는커녕
철근이나 콘크리트를 더 많이 밟게 될 지도 모른다.

하기야 얼마전 기사에 따르면
지리산 온천지구에서부터 성삼재까지 오르는
케이블카 설치하는 계획으로 떠들썩 했었으니
그 날이 머지 않아 보인다.

이렇게 자연을 다 파괴해 버리면
우리가 결국에 어디로 갈 수 있을까?
과학자들은 지구환경이 너무 많이 오염되어
사람들이 살 수 있을 제2의 지구를 찾는다고 한다.
개발이란 명목아래 지구를 다 오염시켜 놓고서
이제 우주를 오염시키려고 하는 것인지...

우리 사람들의 지식이라는 것이, 생각이라는 것이
이렇게 한심하고 당황스럽다는 것을
아직까지도 순진한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산다.

이 즈음에서 그만 해야지...
기분 좋게 지리산 얘기 하다가 잠시 흥분했다.

산을 걷다가 높은 봉우리를 만나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 제일 높은 곳으로 올라가
한참을 넋놓고 앉아 있곤 한다.
그럴 때가 참 행복하고 차분하니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구름 그림자가 이 웅장한 산위로
드문 드문 떠가고,
그 뒤쪽으로 저멀리 오늘 하룻밤을 묵을
벽소령 산장이 보인다.



하늘은 더없이 푸르다.
저 척박한 바위틈 사이로 뿌리를 내린
저 높은 곳의 소나무들은
그 양분을 어디에서 받기에
저렇게 당당하게 서 있는 것인지...



햇살이 비추다 보니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신기하게도
간간이 몇몇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벽소령에 도착하고 나니
해가 가물 가물 저물어 간다.
저녁 공양을 짓고
밥은 다음날 아침에 먹을 요량으로
조금 태워 누룽지를 만들어 두었다.



산장에는 사람들도 별로 없고
차분하고 조촐한 밤.
산이 이렇게 조용하니 고즈넉한 것이 참 좋다.

빨리 잠들 수 없는 마음에
밤 늦도록 산장이 바라다 보이는 언덕 한 켠에서
별을 보고 산을 보고 숨결을 느끼며 앉아 있다.

늦은 밤.
싸늘한 날씨에 오랫동안 앉아
저만치에서 별을 바라보는 또 한 사람.
30대 중반 즈음으로 보이는 남자분.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고맙고 행복하고 좋은 일이다.

요즈음 난 혼자만의 행복에 잠겨 산다.
수행하는 기쁨, 차 마시는 기쁨,
그리고 이 대자연과 벗하는 기쁨.
이 행복을 함께 나눌 벗이 있다면
난 참 더없는 행복을 느낄 것이다.

별을 보며 대화를 나누었는데,
이분도 참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산이 좋고, 산공기가 좋고, 숲이 좋아서
병이 난 사람이다.

얼마나 좋았으면
2박 3일이면 충분할 산을
한 10일 가까이 머물면서 쉬엄 쉬엄 산을 느낀다.

나도 느끼는 것이지만
하루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 하고
몇 일 씩 산길을 걷는 것은 그 느낌이 많이 다르다.

하루 올라갔다 내려오려면
오르는 순간 벌써 올라가면 내려와야 한다는 생각이 뒤따르지만
몇 일씩 산과 함께 있을 요량이라면
벌써 산과만 함께 있지
여타 다른 생각들이나 잡념들은 벌써 저만치 피해가기 때문.

그것도 모자라 산장에 들어가 잠자기 아쉬워서
항상 바깥에서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잠이 드는 사람이다.

어젯밤에는 비오는 이 산에서
큰 바위 아래 작은 틈,
비를 겨우 피할 수 있을 만한 곳에서 잠을 잤고,
오늘도 남들 다 산장 들어가 있을 때
저 혼자 그 옆 숲 속에서 잠에 들 예정이다.

노고단에서 또 반야봉에서
또 저 천왕봉 바위 위에서 별을 보며
잠이 들었던 얘기들은
두고 두고 내 가슴에 아련한 향기를 피어오르게 했다.

저 원주민들 얘기가 떠올랐다.
서양 사람들이 원주민들에게 집을 지어 주었더니
원주민들은 방안에서 잠을 안 자고
다 밖에 나와 하늘을 별을 바라보며 잠을 잤더라고 하던...

싸늘한 밤공기가
성성하게 깨어있는 수행자의 향기처럼 느껴진다.
맑고 청정하며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은
잠이 들기 어려울 정도의 알맞은 싸늘한 밤기운...

또다시 새벽이다.
아침을 든든하게 해 먹고는 천천히 발길을 내딛는다.

새벽 숲길이
아침 햇살을 받아 더없이 신비롭다.
극락으로 가는 길이 있다면
흡사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일 수 있을까.



좋은 길을 보면 참 기분이 좋다.
길이라는 것은
참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내가 산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좋은 길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 중에도 아침 햇살을 듬뿍 머금고 있는 새벽숲길과
하루 해를 마감하며 뉘엿뉘엿 흩어지는
석양 빛을 뒤로 하는 오후의 숲길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비길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간직한다.

떠오르는 아침 해와
지는 저녁 노을을
느긋한 마음으로, 차분한 마음으로
매일 매일 바라보며
그 아름다운 그림에 취할 수 있는 사람.
난 그런 사람이 되고자 희망한다.



아침 해와 저녁 해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마음이 참 여유로울 것이고,
또 소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참으로 아는 사람이 아닐까.
이런 사람이 있다면
난 그 사람에게서 하늘의 향기를 맡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법우님이
바람에도 제 나름의 독특한 향기가 있고,
아침 이슬이나 안개 또 저 노을에도 향기가 있고,
아침에도 또 저녁에도 향기가 있으며,
저마다의 모든 존재며 순간에 그 향기를 맡게 된다고 하시던데,
정말 그런 것 같다.

하늘이고 바람이고 구름이고,
또 새벽과 아침, 나른한 오후며 석양에도
또 우리가 만나는 사람에게서도
저마다의 은은한 향기를 맡을 수 있다.



때때로 사람에게서 하늘 향기를 맡고,
바람과 구름의 또 새벽이며 석양의 향기를 맡게 될 때
난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대자연의 숨결 속에 포근하게 안기고 있음을 느낀다.



차분하고 느긋한 걸음으로
세석에서 점심 공양을 챙겨 먹고서는
어김없이 촛대봉에 올라 한참을 앉아 있다.



한 두세시간 앉아 있었던 것 같은데,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도 그 자리에서
수없이 많은 모습의 지리산을 느낄 수 있다.

난 특히 지리산에 오르면
이 곳 세석평전의 촛대봉을 좋아한다.
이 곳에만 오면 한 몇 시간이고 그렇게 앉아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대자연의 경이로운 압도하는 순간의 사진이
내 가슴 속에 콱 박혀 있다가 솔솔 풀려 나오고 있다.

세석의 그 아기자기한 아름다움하며
잠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을 때 튀어나오듯 마주하게 되는
연하봉, 제석봉, 그리고 천왕봉의 도도한 멈춤이
내 온몸의 감각을 마비시키면서 압도하고 있다.



그럴 때 난 감각을 잃는다.
그리고 그 순간 보여지는 것과 하나가 된다.
우린 이럴 때
법신(法身)을 친견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대자연 속에 또 내 안에 내재하고 있는
법신 부처님의 평화롭고 경이로운 숨결을 느끼는 것.

오후가 되면서부터
조금씩 날씨가 변덕을 부리기 시작한다.
맑은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덮치지 않나,
어디에선가 싸늘하고 축축한 바람이 불어오지 않나,
허하고 가슴 한켠이 싸하게 외로운 그런 날씨.

변덕쟁이 지리산의 날씨를
단 두어시간 안에 다 보여주는 듯 하다.
저 발아래로 세석평전이 드넓게 펼쳐지다가
어느샌가 채 1분도 안 되어서 구름이 다가와
내 주위를 한껏 감싸기도 한다.







자연의 변화가 이러하니
내 마음의 변화도 자연을 따라간다.

두어시간 앉아 있을 동안
이 앞길을 지나 천왕봉쪽으로 간 사람이
한손으로 꼽을 정도도 되지 않았으니
이렇게 조용한 지리산을 보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한참 후에 연화봉을 지나 장터목 산장에서
저녁을 지어 먹고 가만히 앉아 있는데
아무래도 날씨가 심상치 않다.

항상 붐비는 산장 장터목에
대여섯 사람만 휑한마음 얼굴에 써 가면서
그렇게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무언가 이상한 조짐을 눈치 채고 산장지기님께 여쭈었더니
오늘 밤부터 심한 비가 온다고
내일 새벽이면 산행이 통제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그렇지...
폭풍전야라고나 할까
금새라도 비가 쏟아질 것도 같고,
바람따라 오고 가던 구름들도 금새 내려앉을 것 같고,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모두들 몇 일 산에 묵을 요량으로 이렇게 있다고 하니...

내일 저녁 저 아랫마을 우리 밝은도량에서
일꺼리 하나를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지금이라도 내려가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어 보인다.
6시가 넘어서 산장을 출발해 하산.

산을 좋아하는 사람,
숲을 좋아하고
자연을 좋아하며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 더없이 그리운 날.

그런 날에
옛 길을 떠올리며...
글을 쓰고 글을 마친다.


Posted by 법상

 

 

쿰부롯지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데

롯지의 인터넷방 주인인 듯한 젊은 여자분이

내가 한국 사람인 것을 알고는 말을 걸어온다.

 

 

 

 

미리 한국 사람을 보면 물어보려고 준비한 듯한 메모지를 가져와서는

몇몇 기초적인 영어 인사말을 한국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를

영어 발음으로 적어 달라고 한다.

 

“잘 지내고 있나요?”,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따위의 대충 짐작 갈 만한 사연의 글들.

그러면서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남자친구가 한국사람이라고 한다.

어쩌다 한번씩 전화 통화를 하는데 한국말로 안부를 묻고 싶었단다.

 

그녀의 얼굴에 그리움이 묻어난다.

 

 

그가 희말라야를 찾았을 때 잠시 만났는데 대번에 둘은 서로에게 반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도 짧았고 그리움은 너무도 길다.

그를 본지가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만날 수 있기는 한 것인지,

우리의 사랑이 계속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기는 한 것인지 그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녀는 비행기의 착륙 때마다 혹시나 있을 한국인을 찾았고,

한국인을 보자마자 반가움과 애락(哀樂)의 마음으로

그와 연결될 수 있는 연문(戀文)의 언어를 묻고 싶었던 것이다.

 

사랑은 이토록 애잔하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그녀의 머릿결과 낯빛에서

만남과 이별의 아름다운 이야기 하나가 바람처럼 구름처럼 흘러가는 듯하다.

이 세상에 사랑처럼 아름다우면서도 또 늘 삶 속에서 경험하는 것이면서도,

그 실전에서는 늘 어눌하고 서툴며 올바른 방법을 모르고 헤매는 것이 또 있을까?

 

내가 만나왔던 많은 이들이 사랑으로 인해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는지,

또 더불어 성숙해 졌는지를 헤아리자면 끝도 없다.

한 젊은 친구는 헤어짐의 아픔 때문에 자살을 하기도 했고,

또 어떤 친구는 군 생활 중에 탈영을 하기도 했으며,

또 어떤 친구는 오랜 정신적 후유증을 겪다가 정신이상이 온 경우도 보아 왔다.

 

이처럼 때때로 서툰 사랑,

충분히 그 깊이를 헤아리지 못한

중독적이고 집착적인 사랑의 끝은 상상 그 이상이다.

 

많은 이들이 사랑과 소유를 동격으로 여기는 듯하다.

사랑하면 당연히 ‘내 여자’ ‘내 남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이 세상 그 어떤 대상이 영원한 ‘내 것’일 수 있는가.

나 자신도 내가 아닐진데,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

어찌 영속적인 내 소유가 될 수 있겠는가.

 

집착과 소유를 동반한 사랑은

그 끝이 언제나 고통과 슬픔일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집착과 소유는 언젠가 반드시 사라지고야 마는

무상(無常)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되 집착하지 말라.

사랑은 ‘내 것’으로 만들려는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라

아집(我執)을 놓아버린 순수한 이타적인 마음 그 자체다.

진정한 사랑에는 ‘나’라는 에고며 아상(我相)이 개입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그가 또 다른 사람이 생겨 나를 떠나간다고 했을 때조차

그가 그 사람과 함께 함으로써 나와 함께 있을 때보다 더 행복할 수 있다면

그를 위해 마땅히 보내줄 수 있는 것이 본래적인 사랑의 속성이 아니겠나.

마음이 벌써 떠났는데도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마음은

지독한 아집이 만들어 내는 강박증이요, 정신이상에 가깝다.

 

그러나 과연 어떻게 집착 없는 사랑이 가능할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하다.

아니 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의 사랑, 붓다가 말씀하신 동체적인 사랑으로 가는 길이다.

그런 투명하고 흔적 없는, 사랑 그 자체의 사랑을 했을 때

사랑은 그 세속적인 의미를 너머 명상으로 들어서는 올찬 깨달음의 길로 변모한다.

 

어스레한 그녀의 애화(哀話) 한 자락에 축복을 보내며,

이 사랑이 이루어지고 말고를 넘어서

이 이야기 속에서 하나의 성숙과 깨침을 이루기를.

이 사랑이라는 생생하고 진한 삶의 현장이 가져다 주는 더 깊은 목적의 의미를 깨쳐 보기를.

 

***

 

멈칫 멈칫 내 눈치를 보던 한 청년의 눈빛이 내 눈과 투명하게 마주친다.

앞으로 나와 2주 이상을 함께 걸을 쿰부의 도반, 나의 포터 지텐이다.

첫 인상이라는 잠깐의 순간에 직관적으로 상대의 상당부분을 알게 된다고 하더니,

우리의 이 첫 눈빛의 마주침이 서로의 마음에 진한 심상을 남긴다.

 

아직은 어려 보이는 순한 얼굴에 선한 눈웃음,

수줍은 듯 다소 긴장한 듯한 표정에서 순간 믿음 같은 것이 피어올랐다.

환한 웃음과 악수로 간단한 대면을 마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 출발에 앞서 이야기꽃을 피워본다.

 

나이는 20살, 이름은 지텐라이, 포터 3년 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포기한 채 포터를 시작했다.

가족은 11명,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5명의 남형제와 3명의 여자 동생이 있고

그 중 지텐은 이 모든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장남이다.

막내 여동생은 이제 겨우 2살,

2살에서 20살인 지텐까지 2~3년 차이로 형제 자매가 주루룩 아홉이나 되는 것이다.

 

 

 

 

지텐은 장남이기도 하지만 유일하게 돈벌이를 하는 자식이고

그 밑으로 8명의 동생들은 모두 학생이거나 아기이다.

부모님들도 농사를 워낙 소규모로 지으시다 보니

11명의 가족 먹을 것을 빼면 돈벌이로는 궁핍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니 이 대가족의 생계가 20살 지텐의 어께에 무겁게 매달려 있는 것이다.

 

한 번의 포터 일정이 끝나면

지텐은 맛있는 과자들을 사가지고 가서

동생들 나누어 주는 재미를 좋아한다.

물론 할아버지와 두 분의 부모님 용돈과 생활비도 드려야 하고,

동생들 학교 생활에 필요한 학용품도 사 주어야 한다.

듣고만 있어도 내 어깨가 이렇게 무거워질 정도인데, 지텐은 이 일이 그리 행복하단다.

그리고 이 정도의 수입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자부심을 느낄 정도라고 하네.

 

그야말로 환한 얼굴빛에서 행복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것이 진정 어떤 기준을 가진 것인지,

과연 기준이란 게 있기는 한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드디어 출발.

루클라 작은 마을길을 통과하는데

길옆의 빵집이며 트레킹용품점, 여행사, 항공사의 사무실 등에는

이제 막 트레킹을 마치고 내려온 이들과

이제 막 트레킹을 시작하려 분주히 준비하는 이들의 이야기꽃으로 장사진을 이룬다.

 

사람만 그런게 아니다.

잔뜩 짐을 싣고 먼먼 길을 오르기 시작하는 야크들과

홀가분한 몸으로 내려오는 야크들이 교차하며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루클라 마을을 통과하니 이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그저 흔한 우리나라의 여름 산길을 연상케하는

소박한 오솔길 위를 다소 설레는 마음으로 걷기 시작한다.

 

 

 

 

걷다 보니 여행자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의외로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도 많다.

그 오래고 모딘 몸을 쿵쿵 거리며 장하게

산을 하산하는 분들 표정에 무언가를 해 냈다는 자신감이 스며 있다.

 

 

 

 

곳곳에 길 끊어지는 곳마다

철로 만든 다리를 만들어 놓아

여행자들이나 짐꾼이나 야크들이 쉽게 갈 수 있도록 만들어 두었다.

그런데 다리가 너무 비좁아

저쪽 편에서 짐실은 야크들이 뒤뚱거리며 걸어올때면

그들이 다 건너올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건너야 하는

일방통행 시스템이다.

 

 

 

 

 

 

 

 

 

 

 

길을 걸을 때는

차를 타고 다닐때와는 달리

주변의 작고 사소한 것들의 생기로운 움직임을 다 살펴볼 수 있고,

내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떤 생명들이 다양하게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

평소에는 그다지 자세히 살펴보지 못하던 것들을

유심히 지켜보는 새로운 눈이 열린다.

 

그것이야말로 걷는 즐거움, 산책의 즐거움이며

산길을 걷는 즐거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작은 꽃들, 나무들, 새들과 계곡의 크고 작은 변화들을

예민하게 내 온 몸의 감각이 고스란히 느끼게 되고,

그런 주변 자연에 대한 관찰과 감각은 우리 존재를 깨어나게 하고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려있게 한다.

 

검은 새 한 마리가 휘휘 날아와서는 지붕 위 끝자락에 앉았다.

가만히 무엇을 하나 살펴보다가 사진 한 장 담아 보려고

찰칵 하는 순간에 날라가 버리는데,

위로 날아 오르는게 아니라

계곡 위 아슬하게 지어진 집 아래로 수직 하강을 하면서

계곡 저 아래까지 순식간에 날라가 버린다.

 

 

 

   

 

걷는 내내 길옆으로 펼쳐진 논밭의 초록 물결과 그 사이사이에 박혀 있는 집들

그리고 무심한 나무들에게 시선이 머문다.

    

 

 

 

 

 

  

허름한 시골 농가 한 채,

그 곁에 딸린 밭뙈기 조금,

이 정도면 한 평생 대장부의 살림살이 그럭저럭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루클라에서 출발하는 초입에서부터

야크 한 떼와 계속 함께 걷고 있다.

시간도 여유가 있거니와,

주변도 돌아보며 사진도 찍고

천천히 걷다보니 야크가 걷는 속도로 나 또한 걷게 된다.

 

 

 

 

두런두런 지텐과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벌써 점심때다.

지텐이 잘 아는 식당에서 라라누들스프를 시켜 먹는다.

쉽게 말해 우리나라 라면 반개 정도 하는 분량의 작은 양념 안 된 라면에

자체 조미료로 간을 낸 라면이다.

라면을 먹고 나서 따뜻한 홍차 한 잔을 마시며 여유롭게 주위를 돌아본다.

 

날씨가 너무 좋다.

하늘은 진하게 푸르고, 햇살은 그 어느 때보다 따사롭고,

온도도 걷기에 딱 좋은 우리나라 가을 날씨에

살랑거리는 바람은 더없이 걷는 이를 청량하게 씻어준다.

 

루클라 초입에서부터 걸음을 더해갈수록

쿰부의 풍경은 여행자를 압도한다.

평화로운 들녘과 오밀조밀한 집들, 마을길들,

투명하고 푸른 하늘과 쨍하게 부서지는 햇살,

이 모든 풍경이 안나푸르나의 그것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아무래도 티벳과 가까운 지역이라 그런지,

티벳불교의 영향력 아래에서 문화를 이루고 있는 셀파족들의 생활상이

이 산과 들녘과 마을 곳곳에,

그리고 그들의 생활양식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 듯 보인다.

 

저 에베레스트, 눕체, 쿰부체, 푸모리, 로체 등

설산 영봉의 뒤쪽 능사면은 지금은 중국땅이 된 티벳의 영역이다.

그러니 안나푸르나와는 달리

티벳의 문화가 고스란히 내려앉아 녹아든 것이 당연한 일.

 

산자락 중턱에 자리한 작은 곰파들, 스투파(탑)들,

곳곳에 자리잡은 마니차와 바윗돌에 섭새겨진 마니스톤, 흩날리는 룽다,

이 모든 것이 흡사 라다크에서 익숙하게 보아왔던 것들과 닮아있지만

다른 어딘가 모를 이곳만의 특색이 또한 아로새겨져 있다.

 

 

 

  

 

 

라다크에서는 곰파에 가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

이 곳에서는 마을 곳곳에 그저 불교문화가 그들 삶의 한 부분이 된 양

흩어져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마을 입구에 경전 문구를 새겨 넣은 마니스톤이

마을을 지켜주는 신상처럼이나 당당하게 서 있고,

 

 

 

 

길가 곳곳에 마니차가 서 있어

길을 걸으면서 경전을 읊듯 길을 걸으며 마니차를 돌릴 수 있게 되어 있다.

 

 

 

 

또한 집과 집의 지붕 사이에 타르초를 걸어 놓아

진리가 마음껏 바람을 타고 온누리에 퍼져나갈 수 있도록 해 놓았고,

타르초와 마니스톤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룽다가 우뚝 선 기상으로 흩날리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을 느끼며 바쁠 것 없이 여유작작하게 걷는다.

한발 한발 에움길을 돌고돌아 구름이 흐르듯 발길도 흘러간다.

이 한발 한발이 얼마나 생기로운지.

걸음 걸음마다 생명력이 물씬 피어오름을 느낀다.

 

길은 가파르지도 힘겹지도 않은 잔잔한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장이다.

이 예스러운 마을길을 아그작거리며 걷는다는 이 평범함이

내가 살아오며 내달려온 그 어떤 성취의 순간보다도

더 깊은 순간으로 진하게 다가온다.

 

아! 야생의 대자연이 살아 숨쉬는,

때묻지 않은 순박한 사람 풍경 속을 거닌다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 소박하고 작은 것들 속에서 위대함과 거룩함을 본다.

 

사실 인간계의 모든 위대함은 작은 것에서부터 나온다.

지금 이 순간의 작고 소박한 일상을

얼마나 깨어있는 순간으로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바로 얼마나 거룩해지고 위대해질 수 있는가를 결정한다.

그 어떤 위대한 눈에 보이는 성취일지라도

한 순간의 깨어있는 호흡과 현존에 미치지 못한다.

 

***

 

두 세시간 산책하듯 걸어 팍딩에 도착한다.

 

 

 

 

초입에 이르니 두 자녀 머리를 깎아 주는 어머님의 손길,

어릴적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나도 어릴적에는 이발소나 미용실 한 번 안 가보고

늘 집에서 어머님께서 머리를 깎아 주시곤 하셨다.

 

 

 

 

사실 지지난 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와 푼힐을 갔다가 내려올 때,

오른쪽 무릎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었다.

산행 후 약 일주일 동안 쉬면서도 통증이 사그라들지 않아 이번 순례를 걱정해왔는데

그럭저럭 버틸 만해서 무리일거라는 주위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쿰부 산행길에 오른 것이었다.

 

이번이 아니면 두 번 다시 오기 힘들거라는 생각이 크게 작용을 했던 것도 있고,

천천히 오르는데까지 올라 보고 정 안되겠다 싶으면

그 때 내려가면 되겠지 하는 편한 마음으로 길을 나섰는데,

그래도 아직까지는 다리를 조금 절룩거릴 뿐,

그럭저럭 버틸 만하다.

 

오히려 카투만두에서 쉬고 있을 때보다

다시 길을 걸으니 더 나은 것도 같다.

계속 걷다보면 통증도 잊게 된다.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