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10.27 사성제와 십이연기(2) - 반야심경 강의
  2. 2009.07.22 사성제와 십이연기(1)

반야심경 강해 -11강-

사성제와 십이연기(2)

 

 

1) 무명(無明)

 

말 그대로, ‘밝음이 없는 상태’를 이르는 것입니다. 지혜가 밝음이라면 밝음이 없는 상태인 어둠은 바로 ‘무지하여 어리석은 상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자세히 말하면, 연기의 진리를 모르기에 실재하지 않는[無我] 일시적[無常]인 존재에 대해 실재한다고 상을 짓고, 거기에 얽매여 집착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일체제법의 일시적인 형체를 ‘나다’, ‘너다’ 라고 집착하여 괴로워하는 상태가 바로 무명입니다. 한 마디로 ‘진리에 대한 어리석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명은 번뇌를 낳는 근본 원인이며, 이로 인해 갖은 악업을 짓고, 그로 인해 괴로움의 업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행(行)

 

이상과 같은 근본무명으로 인해, 그것을 연하여 ‘행(行)’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무명에 의해 집착된 대상을 실재화(實在化) 하려는 작용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행은, ‘행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것은 또한 업(業)이라고도 합니다. 업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신업(身業), 구업(口業), 의업(意業)이 바로 그것입니다. 다시 말해 나날이 우리가 하는 생각, 말, 행위 하나 하나가 모두 그저 흘러가서 없어지는 행위가 아니라, 나를 형성하는 힘이 되어 나 자신에게 뿐 아니라 모두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파불교에서는, 이 연기설에 업(業) 사상을 결합하여, 삼세양중인과설을 제시하고, 업감연기설(業感緣起說)을 전개하였습니다. 업감연기설에 의해서 보면, 무명(無明)과 행(行)은 과거세의 원인이라고 합니다. 즉, 과거에 어리석은 마음[無明]으로 인해 행(行)을 지어, 그 행위, 업력에 의해 이번 생에 윤회를 하여 몸을 받아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3) 식(識)

 

행을 조건으로 해서 식이 있습니다. 식은 인식작용으로서,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의 여섯 가지 식(識)이 있습니다. 눈, 귀, 코, 혀, 몸, 뜻으로 제각각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을 느끼고, 촉감하고, 생각하는 것에 따라 인식이 일어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예전에 맛있는 음식을 먹어 본 경험, 행위(行)로 인해 지금 그 음식을 보면 그 음식에 대한 각종의 인식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즉, 전에 보고[眼], 먹고[舌], 냄새 맡았던[鼻] 행이 아직도 잠재의식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지금 그 음식을 보면 예전에 보았던 것에 대해 인식(眼識)하며, 냄새 맡았던 식[鼻識], 먹어보고 느낀 식[舌識]을 떠올려, 식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을 조건으로 해서 식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를, 부파불교의 업감연기의 해석으로 살펴봅시다. 앞에서 과거세의 무명과 행으로 인해 이번 생에 몸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행위에 의해 개체(個體), 즉 우리의 몸이 형성되면 그곳에 식(識)이 발생합니다. 이것은 ‘식별’, ‘인식’이라고 해석됩니다. 몸이 형성되자 우리는 무의식적인 습(習)으로 그곳에 ‘나다’ 하는 아상(我相)을 짓고, 따라서 ‘나다’ 라는 생각으로 인해 거기에 분별하는 인식작용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업감연기의 설에서 보면, 인간이 이 생에서 몸을 받자마자 그 업력으로 인하여 인간의 몸에 여섯 가지 기관[六根]이 생기고, 그 기관에서 제각각의 식별[六識]을 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하여, 안, 이, 비, 설, 신, 의식의 여섯 가지 식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이러한 여섯 가지 식이 성립하기 위해서, 우리 몸에 인식할 수 있는 감각기관과,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이 있어야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안근, 이근, 비근, 설근, 신근, 의근의 육근(六根)과, 색, 성, 향, 미, 촉, 법의 육경(六境)이며, 이것을 표현한 것이 십이연기의 네 번째인 명색[육경]과 다섯 번째의 육입[육근]인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식, 명색, 육입은 따로 따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세 항목은 시간적으로 선후 관계가 아닌 동시적인 것입니다.

 

4) 명색(名色)

 

색은 물질적인 것을 가리키고, 명은 비물질적인 것을 가리킵니다. 인식의 대상은 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정신적인 것도 포함합니다. 명색이란 우리의 주관적인 감각기관인 육근의 대상으로 색, 성, 향, 미, 촉, 법의 육경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육경 중 정신적인 것이라 함은, 여섯 번째 의식의 대상인 법경(法境)을 말하는 것인데, 의식의 대상인 정신적인 생각 등을 말합니다. 그러나 경전에서는 명색을 오온이라 설명하기도 합니다. 즉 색은 물질적인 것이고 수상행식은 정신적인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이연기에서는, 오히려 오온보다는 육경을 명색으로 정의하는 것이 세 번째 식(識)과 다섯 번째 육입(六入)과 연관지어 설명할 때 더 타당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5) 육입(六入)

 

육입은 육처(六處)라고도 하며, 눈, 귀, 코, 혀, 몸, 뜻의 여섯 가지 인간의 주관적 감각기관을 말합니다. 앞의 장에서 일체의 구성을 십팔계로 살펴보았습니다. 앞의 식, 명색, 육입은 바로 이 십팔계(十八界)를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일체의 구성요소인 십팔계는, 어느 것이 먼저이고 나중이라고 할 것 없이, 인간의 주관인 감관[육근 = 육입]과, 그 감관에 대응하는 대상[육경 = 명색], 그리고 그 두 가지가 만날 때 필연적으로 생기는 인식작용[식]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6) 촉(觸)

 

육입을 연하여 촉이 있게 되는데, 이 촉(觸)은 ‘접촉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촉은, 여섯 감각 기관인 안이비설신의의 육근과, 그 대상인 색성향미촉법의 육경이 만나는 것이지만, 단순히 육입이 육경과 접촉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접촉으로 인해 육식이 일어나는 것까지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식, 명색, 육입이 서로 화합하는 작용을 바로 촉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성유경』에서는 “근(根), 경(境), 식(識)의 세 가지 요소가 모여서 촉(触)을 만든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를 삼화성촉(三和成觸)이라고 합니다.

 

7) 수(受)

 

수는 감수작용(感受作用)으로, 달리 말해 ‘느낌’을 말합니다. 식, 명색, 육입이 서로 만나게[觸] 되면, 그 다음으로 느낌[受]이 발생하게 됩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느낌이 있으니, 첫째는, 고수(苦受)라고 하여 대상과의 접촉을 통해 느끼는 괴로운 느낌이고, 둘째로, 낙수(樂受)라고 하여 즐거운 느낌을 말하며, 셋째로, 사수(捨受), 혹은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라고 하여 괴로움과 즐거움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 그저 그런 느낌을 말합니다.

이쯤에서, 부파불교의 삼세양중 업감연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앞에서, 무명과 행이 과거세의 두 가지 원인이 되었음을 말했는데, 그러면, 그 과거세의 두 가지 인의 결과는 무엇일까? 바로, 현재세의 결과로, 식, 명색, 육입, 촉이 그것입니다. 다시 말해, 과거세에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해 업[行]을 지었고, 그로 인해 현세에 인간의 감각기관이 생기고[六入], 그에 따른 대상이 생기며[名色], 그 두 가지가 만나 인식작용[識]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합쳐지는 작용을 촉(觸)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네 가지는 현재세의 결과라고 합니다. 이를 시간적으로 따져 본다면, 식(識)이란, 처음으로 어머니의 태 속에 들어가는 단계이며, 명색(名色)은 아이가 어머니 태속에 있을 때 심신(心身)이 점차로 발육하기는 해도 아직 오관이 갖추어지지 못한 상태와 같은 것이고, 육입(六入)은 심신이 완전해서 감각기관인 안이비설신의 여섯 가지가 모두 갖추진 상태를 말한다는 것입니다. 촉(觸)은 어린 아기가 출생한 후 외계에 접촉함을 말한다고 합니다. 생후 두세 살까지는, 육근으로 육경과 접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후 현생을 살아가며, 죽기 전까지는 항상 식, 명색, 육입, 촉의 작용이 동시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므로, 위에서의 동시적이란 설명과 함께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8) 애(愛)

 

수(受)를 연하여, 애(愛)가 발생합니다. 애(愛)란, 앞서 수(受)에서의 좋고 싫다는 느낌이 더욱 깊어진 상태로, 좋은 것을 취하려 하고, 싫은 것은 멀리하려는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즐거움의 대상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려는 욕심이므로 욕망, 갈애(渴愛)라고도 말합니다. 그런데 좋아하는 것에 대한 애착심 뿐 아니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증오심도 애(愛)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전에서는 “욕심의 욕망, 빛깔의 욕망, 빛깔이 없는 욕망”라고 하여 세 가지의 욕망을 이야기합니다. 그 첫째는, 욕심의 욕망[욕계(欲界)의 욕망]으로, 이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모든 욕심을 다 충족시키려는 것이고, 둘째로, 빛깔의 욕망[색계(色界)의 욕망]이란 물질을 한없이 갖고 싶고, 이성을 한없이 사랑하고 싶은 욕망으로,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해 취착(取着)하고자 하는 욕망이며, 셋째로, 빛깔이 없는 욕망[무색계(無色界)의 욕망]이란 물질도 갖고 싶지 않고, 이성도 사랑하고 싶지 않은 욕망으로 눈에 보이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이러한 욕망 중에는, 죽을 때 본능적으로 나타나는 세 가지 애착심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체애(自體愛)라 해서, 자신의 몸뚱이에 대한 애착을 나타내는 것이고, 둘째로, 경계애(境界愛)라 하여, 사랑하는 사람, 자식, 부모, 재산, 명예 등 내 주위 경계에 대해서 애착을 나타내는 것이며, 셋째로, 당생애(當生愛)라 하여, 다음 생에 좋은 세상에 좋은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바라는 애착심입니다.

 

9) 취(取)

 

애(愛)를 연하여 취(取)가 일어나는데, 이는 취하고자 하는 행동으로, 욕망에 의해 추구된 대상을 완전히 자기 소유화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취착(取着)’이라고 하여, 취하여 집착하는, 올바르지 못한 집착을 말합니다. 앞의 욕망이 커지면서 발생하는, 강렬한 애착심을 말합니다. 즉, 내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감각 작용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바로 아상(我相)이 극대화되는 것이지요.

취에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욕취(欲取)로서, 다섯 가지 욕망, 즉, 재물욕, 성욕, 음식욕, 명예욕, 수면욕과, 색, 성, 향, 미, 촉의 다섯 가지 대상에 대하여 집착하여 갖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이로 인해, ‘내 것이다’ 라고 하는 소유욕의 아상이 생기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견취(見取)로, 그릇된 의견, 사상, 학설에 얽매여 고집하고 집착하는 것입니다. 편견과 고정관념에 쌓여 자기 주장만을 옳다고 내세우고 취하려는 욕망입니다. 이로 인해, ‘내가 옳다’ 라는 아상이 생기는 것입니다. 셋째는, 계금취(戒禁取)로, 사람들의 그릇된 행동을 청정하고 올바른 행위라고 생각하여 그들을 따르려는 것으로서, 올바른 계율을 범하려고 하는 욕구를 말합니다. 이것은 몸뚱이에 대한 착으로 인해 몸뚱이를 편하게 하고자 하는 욕구를 말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아어취(我語取)로, 내 견해, 내 말만 옳다고 집착하고 고집하는 것입니다. 총체적인 아상을 이르는 것이지요.

 

10) 유(有)

 

취를 연하여 유(有)가 있습니다. 유(有)라는 말은 생사하는 존재 그 자체가 형성되는 것으로, 이 또한 ‘업(業)’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집착하여 취하려 하므로 그에 따른 행위, 즉 업이 있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지분에서 나온 행(行)도 업이라고 했으니, 이 둘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행은 그 원인이 무명으로, 어리석음으로 인해 생기는 보다 근본적이고 소극적인 업이라고 한다면, 이 유(有)는 애(愛)와 취(取)를 조건으로 해서 생기는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행은 태초에 처음 무명으로 인한 한 생각이 일으킨 근본 업(業)이며, 유(有)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보편적인 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파불교의 삼세양중 업감연기에서는, 앞의 세 가지 애(愛), 취(取), 유(有)가 현재생의 세 가지 원인으로 작용하며, 이 결과로 미래의 두 가지 결과인 생(生), 노사(老死)를 초래한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현재 살아가면서 애착하고 취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에 따른 업(有)을 낳고, 그 업력으로 인해 다음 생(生)을 받게 되며, 자연히 노병사(老病死)의 괴로움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11) 생(生)

 

유(有)에 연하여 생(生)이 발생하는데, 생은 말 그대로 태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유를 업이라고 했으니 그 업력에 의하여 생(生)을 받는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앞에서 고(苦)를 설명할 때 노병사의 근본 원인이 바로 생에 있음을 언급하였습니다. 이처럼 생이 바로 노병사의 시발점인 것입니다.

 

12) 노사(老死)

 

생이 있으므로, 노(老), 사(死), 우(憂), 비(悲), 고(苦), 뇌(惱)가 있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의 커다란 ‘고온(苦蘊)의 집(集)’이 있게 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는 인생이 괴로움임을 여실히 보시고, 그 원인을 하나 하나 살펴보신 것입니다. 그 결과 궁극의 괴로움의 원인은 무명(無明)임을 아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태초에 근본무명으로 인해 한 생각 잘못 일으킨 어리석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근본을 끊으려면 밝은 지혜를 닦아야 합니다. 그러나 무명이 괴로움의 근본 원인이라고는 하지만 나머지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 모두가 생로병사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십이연기의 지분 중에서 괴로움의 가장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은 애(愛), 취(取), 유(有)입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번뇌(煩惱)’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번뇌의 종류는 108 가지나 된다고 하지만, 그 근본원인은 무명에 있는 것임을 올바로 일러주는 교설이 바로 ‘십이연기설’의 교설인 것입니다.









Posted by 법상

반야심경 강해 -10강-

사성제와 십이연기(1)

 

 

부정의 논리에 대하여

 

반야심경에서는, 앞서 근본불교의 중요한 교설인 오온과 십이처, 그리고 십팔계를 부정하여 공 사상을 천명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반야심경에서의, 부정을 통해 공을 드러내는 논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이어 근본불교에서 부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교설을 차례로 모두 부정하고 있습니다. 바로, 십이연기와 사성제를 부정하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일체 현상계의 구조인 오온과 십이처, 십팔계를 부정하고, 이어 현상계의 법칙인 연기법을 통해 현상계의 괴로움의 근본 원인을 차례로 섭렵하는 내용인 십이연기를 부정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근본불교의 모든 교설을 포섭하고 있는 가르침인 사성제를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논리의 구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부처님께서는 오직 현상계의 올바른 중도적 관찰[조견]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으신 분이십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교설은 모두가 현상계, 일체, 제법, 현실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앞에서 ‘조견’을 설명할 때 살펴본 바를 참고하시면 될 것입니다. 이 반야심경에서 오온과 십이처, 십팔계를 우선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즉, 부처님께서 현상계 일체제법의 법칙[연기]과 속성[삼법인], 존재방식[업과 윤회], 그리고 이 모든 교설의 총설인 사성제를 설명하기에 앞서, 당장 현상계, 일체, 제법이 무엇인가를 관찰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즉, 현실의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아는 것이 우선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토대로 하여, 그러한 구조로 이루어진 현상계에 대한 여타의 관찰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반야심경에서는 우선적으로 현상계의 구조인 오온, 십이처, 십팔계를 먼저 부정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다른 모든 교설에 대해 각각을 부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야심경에서는 십이연기, 사성제만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십이연기를 먼저 다룬 것은 사성제를 이해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즉, 사성제의 두 번째 성스러운 진리이며, 괴로움을 벗어나기 위한 원인의 진리인 집성제를 알기 위해서는, 십이연기를 알아야 하기에 우선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일체의 구조에 대한 관찰을 하고, 십이연기의 교설을 통해 기초 작업이 끝나면 본론격인 진리, 즉 사성제에 대한 부정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관 고리를 염두에 두고, 사성제와 십이연기의 부정을 통한 참 진리의 드러냄에 대하여 살펴보아야할 것입니다.

여기서 또 하나, 염두에 두고 지나갈 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반야심경에 나온 부정은, 부정을 위한 부정이 아니며, 근본불교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언급하신 교설로의 진정한 회귀를 위하여 방편상 부정의 논리를 이용하고 있는 것임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임은 물론입니다.

그러면, 십이연기, 사성제가 부정되는 반야심경의 경구를 살펴보기에 앞서, 근본불교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십이연기, 사성제의 이치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성제와 십이연기

 

부처님의 교설을 체계화시키고, 그 실천법에 대하여 설해놓은 교설이 바로 사성제와 팔정도의 교설입니다. 경전에서는,

비구들아, 모든 동물의 발자국은 다 코끼리의 발자국 안에 들어온다. 그와 같이 모든 법은 다 네 가지 진리에 포섭된다. 그 네 가지란 무엇인가?

괴로움이라는 진리,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진리,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진리이다.

 

“마라가야, 어떤 사람이 독화살을 맞았다고 하자. 그때 이웃들은 급히 의사를 불러 왔다.

그런데, 그는, ‘나를 쏜 자는 누구일까? 나를 쏜 활은 어떤 활일까? 또 그 활은 어떤 모양일까?’

이런 것을 알기 전에는 화살을 뽑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는 어떻게 되겠는가?

마라가야, 그는 알기도 전에 죽고 말 것이다.

마라가야, 세계는 유한한가, 무한한가?

영혼과 육체는 같은가, 다른가?

인간은 죽은 다음에도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이런 문제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인생의 괴로움은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는 현재의 삶 속에서 괴로움을 소멸시켜야 한다.

마라가야, 내가 설하지 않은 것은 설하지 않은 대로, 설한 것은 설한대로 받아들여라.

그러면 내가 설한 것은 무엇인가?

‘이것이 괴로움이다’ 라고 나는 설했다.

‘이것이 괴로움의 원인이다’ 라고 나는 설했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라고 나는 설했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 라고 나는 설했다.

왜 나는 그것을 설했는가? 그것은 열반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성제와 팔정도의 교설은, 마치 코끼리의 발자국이 다른 모든 동물의 발자국을 포용하듯이, 불교의 다른 모든 가르침을 포괄하는 가르침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불교의 모든 교설은 이 사성제와 팔정도의 가르침에 포함되며, 이 가르침이야말로 부처님의 교설을 가장 체계적으로 정리, 포괄할 수 있는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후, 다섯 사람의 수행자에게 처음 가르침을 펴신 초전법륜(初傳法輪)에서 처음으로 설하신 진리가 바로 사성제와 팔정도의 교설입니다. 이 가르침은, 진리를 설함에 있어, 상당히 논리적이며, 실천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성제의 구체적 내용은, 고성제,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입니다. 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는 연기(緣起)의 이치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 중에도 십이연기의 가르침을 통해 괴로움의 원인인 집성제와, 괴로움의 소멸인 멸성제를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있으므로, 사성제는 곧 십이연기를 실천적으로 제조직한 교설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음 장에서 부터는 사성제와 십이연기의 교설을 함께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고성제 - 괴로움에 대한 진리

 

불교는 지극히 현실적인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의 총설이라고 할 수 있는 사성제(四聖諦) 교설의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는, 현실, 현상 세계에 대한 관찰과, 그 관찰을 토대로 한 현실의 판단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가만히 관찰해 보고는, ‘괴롭다’ 라는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이렇게 현상의 세계를 ‘괴롭다’ 라고 하니, 혹자는, 불교는 허무주의에 빠져 있다고 극단적인 결론을 내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로 사성제의 첫 번째 진리인 고성제(苦聖諦)는,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을,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관찰해서 얻어낸 결론인 것입니다.

다른 것은 제치고라도, 죽음의 고통을 봅시다. 우리는 마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우리들 모두는 반드시 죽게 마련입니다. 이 죽음의 문제는, 나의 주위에서 겪어 보지 않고서는, 절실히 느끼기가 힘듭니다.

내 부모님, 자식, 친구, 친지의 죽음을 직접 겪어 본 사람은, 죽음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죽음은 당연히 괴로움이라고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을 가정해보면, 죽음을 눈앞에 두고 괴로워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죽음을 당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시한부 인생들인 것입니다. 이렇듯, 죽음이라는 한가지 절대불변의 현실만을 관찰하더라도, 우리의 현실은 결국 괴로움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죽음만을 놓고 보더라도, 우리의 인생은 괴로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괴로움은 죽음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태어나고, 늙고, 병드는 것도 괴로움입니다. 좋아하는 대상을 마주하지 못하는 것, 싫어하는 대상과 만나야 하는 것, 구하고자 하지만 얻지 못하는 것, ‘나다’ 하는 상에서 오는 것, 즉, 오온이 치성한데서 오는 괴로움 등이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괴로움을 사고팔고(四苦八苦)라고 합니다. 이러한 괴로움에 대해서는 이미 ‘도일체고액’을 살펴보면서 자세히 언급하였으므로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아도 좋을 것입니다.

 

(2) 집성제 -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진리(십이연기의 유전문)

 

앞에서 집성제는,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그 괴로움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가르침이라고 한 바 있습니다. 다시 말해, 현실에 대한 여실한 통찰을 통해, 현실을 괴롭다고 파악했으면,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규명해 보아야 한다는 당연한 순서입니다.

앞에서, 괴로움이란 연기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항상하지 않고, 고정되지 않은 많은 원인과 조건들이 서로 모이고 쌓여 일어나기에, 한 번 생겨난 것은 반드시 멸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그처럼 연기하는 것은 괴로움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노병사의 괴로움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하여 고요히 일체의 경계를 여실히 보시고는, 그 원인이 생(生)에 있음을 아셨습니다. 태어났기에 노병사(老病死)의 괴로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의 원인은 무엇인가를 살펴보니, 욕계, 색계, 무색계라는 삼계의 생사 윤회하는 테두리인 유(有)로 말미암는 것임을 아셨고, 그 원인은 다시 어떤 대상에 집착하는 취(取)에 있음을 아셨고, 또 그 원인은 애(愛), 그리고 그 원인은 수(受) ……. 이렇게 하나 하나 그 원인을 고찰해 올라가다 보니, 결국에는 무명(無明)이 생로병사의 근본 원인임을 여실히 아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이연기이며, 십이연기의 유전문(流轉門)이라고 합니다.

집(集)이라는 말은 ‘집기(集起)’ 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이는 ‘모여서 일어난다’ 는 뜻으로, ‘연기’라는 말과 매우 가까운 개념입니다. 그러기에, 십이연기설로써 괴로움의 원인을 하나 하나 고찰해 본 것입니다.

십이연기설에서는, 무명으로 인해서 노병사의 괴로움이 생함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노병사라는 근본 괴로움의 원인을 하나씩 고찰해 들어가 보니 결국 근본 원인은 무명이라고 깨달은 바를 ‘십이연기의 유전문’이라고 부르며 이런 유전문을 관하는 것을 일어나는 대로 순차적으로 관한다고 하여 순관(順觀)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십이연기의 유전문이란 사성제의 고성제에 대한 원인을 살펴본 교설로써 고성제에 대한 원인인 집성제를 살펴보는데 사용된 교설이라 할 것입니다. 다시말해 십이연기의 유전문이 바로 사성제의 집성제의 바탕이 되는 교설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면 십이연기의 유전문[순관]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십이연기의 해석 방법은, 근본불교의 전통적인 해석법이 있으며, 부파불교로 오면 이러한 근본불교의 해석 방법에 업과 윤회 사상을 대입하여 해석한 삼세양중인과의 업감연기를 통한 해석법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우선 근본불교의 해석 방법을 경전을 토대로 하여 살펴보고, 그 뒤에 부파불교에서는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를 차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경의 설명을 보겠습니다.

그때, 세존은 우루벨라 마을 네란자라 강가의 보리수 아래서 비로소 깨달음을 성취하시고, 한 번 가부좌를 하신 채 7일 동안 삼매에 잠겨 해탈의 즐거움을 누리고 계셨다.

그러던 중, 초저녁에 연기를, 일어나는 대로, 그리고 소멸하는 대로 명료하게 사유하셨다. 무명으로 말미암아 행이 있고, 행으로 말미암아 식이 있고, 식으로 말미암아 명색이 있고, 명색으로 말미암아 육처가 있고, 육처로 말미암아 촉이 있고, 촉을 말미암아 수가 있고, 수로 말미암아 애가 있고, 애로 말미암아 취가 있고, 취로 말미암아 유가 있고, 유로 말미암아 생이 있고, 생으로 말미암아 노・사・우・비・고・뇌가 생긴다.

이리하여 모든 괴로움이 생긴다.

그러면 다음 장에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무명부터 노병사에 이르기까지의 십이연기의 유전문, 즉 순관을 구체적으로 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