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지혜'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12.21 최선의 삶을 사는 방법
  2. 2009.09.04 단순하게, 다만 삶을 살라
  3. 2009.08.24 괴로운 상황을 느긋하게 즐기라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골고 루 세상을 적셔 주듯,
우주 법계에서 내리는 법의 비도(法雨)
온누 리에 공평무사하게 내립니다.

우주 법계에서 내리는 법우를
우주 법계의 에너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고,
법 신 부처님의 힘이라고도 할 수 있고,
충만한 성령이나 영성 이라 할 수도 있을 테고,
우주의 힘이라고 할 수도 있 을 것 같습니다.

말이야 무어라고 해도 상관없 지요.
그것에 인격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하느님, 부처님이라 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이러한 우주 법계의 에너지는
아무런 분별도 없고, 시공의 차별도 없습니다.
그저 그냥 충만하게 있을 뿐입니다.

시간이라는 개념도 사실은
우리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개념에 불과하지요.
'지금 이 순 간' 과거 현재 미래가 고스란히 있는 것입니다.
공간이 라는 개념 또한
사실은 나와 너, 자연과 우주 이 모두가
'지금 여기'에서 함께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 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 법계 의 에너지도
'지금 여기'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지,
과거나 미래 혹은 다른 장소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닙 니다.

우주 법계의 에너지는,
법 신 부처님의 힘이며, 성령의 강림은,
오직 '지금 여기'에서 만 온전하게 빛을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 금 이 순간 깨어있을 수 있다면,
즉 온전히 지금 이 순간 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아무런 결정이나 고 민이나 분별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끊임없이 순간 순간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순간 속에서
자성부처님이 그 삶을 진리로 이 끌어 갈 것이고,
가장 온전한 길로 안내할 것입니 다.

미래의 결정 때문에 고민할 일 이 있더라도
그것은 지금 여기의 문제이며,
과거의 일들 때문에 걸 림이 있더라도
그것은 지금 여기에서 걸리는 일인 것입니다.
오직 지 금 여기에서 집중함으로써
과거와 미래의 모든 문제를 풀어 갈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 깨어있으면
모 든 법계의 힘이며 에너지가 전부 주어집니다.
그럴 때 정 확히 필요한 순간에
정확히 필요한 것이 진리에 걸맞게 나 투어 지는 것입니다.


원할 것도, 바랄 것도 없고
오직 깨어있 으면 법계에서 다 알아서 해 나갑니다.
오직 지금을 살아가면서
나머 지 것들은 그저 믿고 맡기기만 할 뿐
다른 아무것도 할 일이 없습니 다.
[법구경]의 말씀에서 처럼
오직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 최선의 길인 것 입니다.

지나간 과거에 매달리지도 말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기다리지도 말라.  
오직 현재의 한 생각만을 굳게 지켜보아라.  
그리하여 지금 할 일을 다음으로 미루지 말라.  
참되게 굳은 관찰로 현재를 살아가는 것,  
그것이 순간 순간을 살아가는 최선의 길이다.  
[법구경(法句經)]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것입 니다.
이 순간 깨어있을 때
우주는 나에게 무량한 힘 을 보태어 줍니다.
이 힘은 유위의 힘이 아닌 무위의 함 이 없는 힘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문제라도
명확하게 해결할 수 있는 모든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의 근본은
바로 법계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나는
법계의, 이 우 주의 모든 것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외롭다고 혼자라 고 느끼는 순간에 조차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 다.

내가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다면
우주 법계로부터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가져다 쓸 수 있습니다.
아니 가져다 쓴다는 말도 모 자랍니다.
만약 지금 이 순간
온전한 지금 여기에서의 나일 수 있다면
그 순간의 나는 그대로 법계와 하나가 됩니 다.

그랬을 때
좋고 나쁘고도 없고,
긍정 부정도 없는
무분별의 함이 없는 행이 이어지 며,
고스란히 진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 다.

아무런 분별이 없는 진리의 삶 이기 때문에
다른 결과를 초래할 것도 없고,
과보를 받거나 현실 을 만들어 낼 것도 없이
순간 순간이 그대로 진여의 나툼 일 뿐인 것입니다.

이 순간에는 앞뒤가 딱 떨어 져
과거며 미래를 만들지 않는 것이고,
업을 짓는 일도, 업보를 받는 일도 딱 끊어지는 것입니다.

그 때 '행하는 나'도 없고, '행하는 것'도 없이,
오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일체를 놓고 가는 것이며,
놓았다는 생각 조차 다 놓고 가는 것 입니다.

바로 그 때
법신 보신 화신 이며,
성자와 성부와 성령 그 자체가 되는 것입니 다.
그야말로 법대로, 여법(如法)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신명을 다 하고, 마음을 다해 살아가십시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그것을 하고 있느 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벽암록(碧巖錄) ]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이 다.  
내 삶 에서 절정의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이다.  
내 생 애에서 가장 귀중한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 ‘지금 여기’이다.  
어제 는 지나간 오늘이요, 내일은 다가오는 오늘이다.  
그러므 로 오늘 하루를 이 삶의 전부로 느끼며 살아야 한다.









Posted by 법상






단순하게 살라.
단순하게 사는 것이 좋다.
단순한 것이 삶을 가장 분명하고 명료하게 해 준다.

우리 삶이 단순하지 못한 이유는 생각이 많기 때문이다.
생각은 끊임없이 뿜어져 나온다.
언제 어느 때고 상관없이 쉴 사이 없이 올라온다.

그런데 이 생각이란 것이 솟아나오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다 보면
언제나 과거나 미래의 것들과 연관지어 일어난다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의 현재에 집중하고 있을 때
생각은 맥을 못 추고 사라지곤 한다.
그러나 과거를 들추어 내거나, 미래를 상상할 때
생각은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다니면서
우리 내면을 복잡하고 정신없이 쏘 다니곤 한다.

그렇게 과거나 미래를 들추어 내어
온갖 생각의 밭에 양분을 듬뿍 뿌려 주고 나면
이제부터 우리의 마음은 정신 없이 바쁘고 복잡해 지게 마련이다.
생각하는 것들이 그대로 짐이 되고, 일이 된다.
이처럼 생각의 틀에 갇힘으로써 우리의 삶은 더없이 무겁고 버거우며
중독적으로 일에 집착하고, 짐을 버리지 못하게 된다.

언제나 해야 할 일들로 넘쳐난다.
그것도 온갖 경우의 수를 다 헤아리면서
내가 생각한 바 대로 세상을 이끌고 나가려는 욕심과 집착까지
함께 가세를 하여 우리의 삶은 단순함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만다.

생각이 많으면
정신이 복잡해지고 곧 삶도 함께 복잡해진다.
복잡하고 정신 없는 삶은 곧 내면에 틈새를 만들어낸다.

작은 틈 하나가 점점 더 커져 큰 둑을 터지게 하듯이
그 틈새를 비집고 욕망과 집착 그리고 온갖 소유욕들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오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의 삶은 복잡성이 그 밑바탕을 이루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복잡하고 정신없으며 바쁘게 살다 보니
이제 그렇게 사는 것이 정상인이고
단순하고 명료하며 느리게 사는 사람은
무능하고 시대적 감각에 뒤쳐지는 못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언제나 진리의 편에는
단순성과 명료성이 그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인류의 수많은 성인의 삶에는 단순함과 그로인한 명료한 지혜가 반짝이고 있다.



단순함과 명료함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오직 찰나 찰나로 순간만을 사는 것이다.
지금 내 앞에 펼쳐져 있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바로 이 현실,
지금 여기의 이 삶만을 살아 나가는 것이다.

다른 시간을 다른 공간을 살 필요도 이유도 없지 않은가.
왜 지금 여기라는 생생하고 직접적인 삶을 놔두고
다른 과거나 미래의 다른 공간의 삶을 피상적으로 뒤척이고 있는가.

물론 때로는 과거를 뒤척이는 것이 위안을 줄 때도 있고,
따뜻한 미소를 머금게 할 때도 있으며,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삶을 더욱 열심히 살게 해 주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과거나 미래에 속게 되는 것이다.
분명 그것은 속임수에 불과하다.
꿈이 가져다 주는 속임수.

간밤에 단꿈을 꾸었다면 우리는 그 꿈으로 인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꿈이요 환상에 불과한 것일 뿐이지 않은가.
왜 우리가 직접적이고 생생한 깨어있는 현실을 놔두고
꿈에 얽매이고, 꿈의 달콤함에 젖어 현실의 삶을 덜 살아가야 하는가.



과거나 미래를 살아갈 시간에
현재라는 순간을 더 깊이 있게 진하게 사는 것이
모든 명상과 수행의 핵심이다.

우리가 현재에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면서
과거나 미래로 끊임없이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바로 생각이다.
우린 누구나 생각의 배를 타고 끊임없이 과거나 미래로 휩쓸리고 있다.

생각의 활동무대는 주로 과거 아니면 미래와 연관되어 있다.
그렇기에 오직 ‘지금 이 순간’에 깨어있는 정신으로 주의집중하게 되면
과거나 미래를 휘젓고 다니던 생각은 곧 사라지게 된다.

일 주일 후에 있을 레포트 발표와
한 달 후에 있을 중요한 고객과의 미팅과
일 년 후에 있을 시험이며 진급 발표며
몇 십 년 후에나 있을 안락한 노후준비를 위해
왜 지금 이 순간을 허비하며 정신없이 살아야 하는가.

훗날 있을 그 모든 일들을
왜 지금부터 끌어안아 고민하고 걱정하며 온갖 그로인한 생각들로 휩싸여야 하는가.
그렇기에 우리의 삶이 복잡하고 정신 없으며 항상 일이 많은 것이다.
실제 삶을 가만히 살펴보면 ‘지금 여기’라는 현실은 별로 일이 없다.
그다지 할 일이 많지 않다.

다만 내 앞에 주어진 일을 하면 될 뿐이다.
현실에서 주어진 그것을 그냥 하면 된다.
거기에 무슨 많은 생각이 필요한가.

우리의 생각이 온갖 마음의 일을 만들어 내고 있을 뿐이다.
생각은 늘 과거나 미래를 쏘다니며 온갖 일들을 붙잡고 온다.
그 중에 거의 대부분은 쓸데 없고, 필요 없는 짐인 경우가 많다.

꿈이 그렇듯, 과거나 미래가 그렇듯
생각은 환상이며, 신기루와 같은 것이다.
생각이 나라고 착각하는 것이 생각의 실체성에 힘을 실어 주곤 한다.



생각은 내가 아니다.
판단이나 견해도 내가 아니다.
그것은 다만 수많은 파편들 중 하나 일 뿐이다.
그 수많은 편린들 중에 하나를 선택하기로 마음 먹어 놓고는
그 생각이 바로 나라고, 그 생각이 옳은 것이라고 착각하고 집착하는 것일 뿐이다.

내가 어떤 생각을 했다고, 그 생각이 ‘내 생각’으로 고정되는 것은 아니다.
인연따라 상황따라 언제나 생각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다만 인연의 조화에 따른 생각일 뿐이지
그것이 곧 ‘내 생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일어나는 생각들을 잘 지켜보고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상황에 대해 ‘좋다’ 혹은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은 생각의 장난일 뿐,
그 상황 자체는 좋거나 나쁜 어떤 것이 아니다.

과거나 미래의 허한 양분을 빨아들여
나를 지배하려고 애쓰는 생각의 감옥에 갇히지 말라.
생각으로 모든 것을 정리할 수 있다거나,
생각으로 모든 일을 해 낼 수 있다고 믿지 말라.

생각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생각은 우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정신없는 사람으로 만든다.
명료한 삶의 지혜를 놓치게 한다.

사람들은 생각 하나를 가지고
천상으로 지옥으로 얼마나 자주 왕래를 하곤 하는가.
스스로 만들어 낸 생각의 감옥에 갇혀
꼼짝 달싹 못하며 생각 속의 지옥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우리는 내 눈 앞의 현실을 놓치게 된다.
깨어있음이라는 ‘지금 여기’의 빛을 놓치게 된다.

그렇다고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미워할 필요는 없다.
다만 생각에 얽매이고 생각의 감옥에 갇히지 않으면 된다.
생각이 일어나면 다만 그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라.
생각을 없애려고 애쓰지 말고 그대로 두고 다만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라.



보통 사람들은 어떤 일을 처리할 때
온갖 지식들을 총 동원하고,
과거의 기억과 경험들 그리고 미래의 가능성 등을
생각이라는 도구로 이리저리 끼워맞추고 조합함으로써
가장 명확한 일 처리를 할 수 있다고 믿는 듯 하다.

그러나 가장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방법은
오히려 생각을 놓아버리고
다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에크하르트 톨레는 ‘고요함의 지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혜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존재의 심연에는 이미 지혜가 있다.
그것을 끌어다 쓰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그저 앞에 있는 사람이나 사물에 전념(專念)하면 된다.
전념은 원초적 지혜이며 순수의식 그 자체이다.”

우리 내면의 깊은 심연에서 나오는 고요함의 지혜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지금 여기’라는 현재에 깨어있는 주의집중을 통해서 나온다.
전념이란 오로지 지금 이 순간에 마음을 주의집중하여 알아차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직 내 눈 앞에 있는 현실을 살게 될 때
그저 현실만을 살아가면 된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온갖 지식들과 생각들을 동원하는 것은
오히려 삶을 번거롭고 정신 없게 만들 뿐이다.

다만 내 앞에 있는 그것만을 하라.
내일 일을 미리부터 걱정하지 말라.
이미 지나 간 일을 끄집어 내어 생각하지 말라.

물론 꼭 생각을 써야 할 때가 있다면 생각을 사용할 수 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고 멍하니 살라는 말이 아니다.
아니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생각에 얽매이거나 집착하지 말고
그 생각을 ‘나’라고 착각하지 말라는 말이다.
여기에서도 ‘응무소주 이생기심’의 원칙이 통한다.
마땅히 생각을 일으키되 그 생각에 머물거나 집착함이 없이 생각을 일으키란 말이다.

오직 지금 이 순간을 살라.
생각으로 살지 말고 온 존재로써 살라.
온 존재가 그대로 직접 삶과 부딪치라.
내 앞의 현실만을 직접적으로 생생하게 살게 될 때
우리 내면에 숨겨져 있던
단순함과 명료함의 지혜는 비로소 깨어나게 된다.

우리의 삶이 한없이 단순해 진다.
단순해 지면서 또렷해 진다.
삶을 사는 것 그 자체가 그대로 지혜의 움직임이 된다.

맑고 쾌청한 가을 하늘처럼
삶을 다만 살기만 하라.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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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언제나 불확실하다.
내 삶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늘 불안정하고, 불안하며,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삶은 아름답다.

삶이 안전하고 확실하게 정해져 있고,
안정적인 분명한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면
그 삶은 얼마나 생기를 잃고 말 것인가.
그런 삶은 언뜻 보기에는 안정되어 보이고 행복해 보이겠지만
그런 삶을 사는 자는 나약하고 속박되어 있으며 틀에 박혀 있고 생기가 없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고, 그것도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다면
거기에 나만의 자유의지를 펼칠 공간이 없다.
확실한 삶에 틀어박히고 구속된 채 자유를 잃고 해맬 수 밖에 없다.
그런 삶은 얼마나 희뿌옇고 재미가 없는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지, 한달 뒤, 일년 뒤, 십년 뒤 머언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면
그것처럼 따분하고 기계적인 밍숭맹숭한 삶이 또 있을까.
그것은 삶이 아니다. 그저 기계의 움직임일 뿐.

그것이 아무리 부유한 미래일지라도 그것은 구속이요 속박이다.
돈과 재물로 가득 찬 부유한 노후라고 할지라도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그런 삶에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런 삶에 지쳐 미쳐버릴 지도 모른다.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고, 노후를 준비하려 들지 말라.
내 삶의 미래며 노후는 불확실하고 불안정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가장 분명하고 알찬 미래며 노후준비는
오직 지금 이 순간에 주어진 삶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살아내는 일이다.
노후자금을 은행에 넣어두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의 깨어있는 삶으로써 시공의 법계에 무량한 공덕을 저축하는 일이다.

삶은 불확실하기 때문에, 불안정하기 때문에 아름답다.
단 한 순간의 미래도 보장되어 있지 않고 언제나 변하기 때문에 경이롭다.
우리는 그 불확실한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그 흐름에 나를 얹어 놓은 채 다만 따라 흐를 수 있을 뿐이다.

물론 불확실하고 정해진 바가 없다면 불안할 수는 있다.
그러나 불안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 삶에서 때때로 마주하게 될 혼란과 위험을 거부하지 말라.

삶이라는 것은 우리 생각처럼 그렇게 좋은 일만 일어나는 곳은 아니다.
내가 원하는 일만 일어나는 곳이 아니다.
원하는 대로 다 하며 살 수 있는 사람도 없고 그런 삶도 없다.
좋은 일만 일어나며, 원하는 대로 다 하고 살 수 있는 인생이 있다면
그 인생처럼 따분하고 심심하며 불행한 삶은 없을 것이다.
그런 삶에는 생기가 없고 지혜가 없으며 자유가 없다.

삶은 누구에게나 때로는 힘겹고 때로는 눈물겹다.
삶의 모퉁이에서 역경을, 위험을, 좌절을 만나게 된다면
호흡을 가다듬고 반짝이는 눈으로 눈부시게 지켜보라.
혼란스런 삶도 깊이 바라보면 눈부시게 빛난다.
또 때로는 극단적인 좌절과 혼란이
도리어 저 반대편의 극적인 기쁨이 되는 수도 있다.

최악의 상황에서 인생을 포기하려고 하던 사람들의
기도를 본 적이, 들은 적이 있는가.
인생의 최저의 나락에 빠져 있는 이들일수록
그것에서 빠져나오려는 에너지는 최고조에 달한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단번에 그 상황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

극과 극은 언제나 가깝다.
그 둘은 서로 다른 극단이 아니라 다만 에너지의 다른 흐름일 뿐이다.
에너지의 흐름만 살짝 바꾸어 놓는 순간 그 삶은 경이로운 반전이 시작된다.
그렇기에 최악의 괴로운 삶은 곧 최고의 행복과 가깝다.
그 둘은 극단의 먼 발치가 아니라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길벗이다.
살짝 고개만 돌리면 언제나 눈빛을 나눌 수 있다.

사랑을 시작했다면 그 이면에 증오를 또한 시작하고 있는 것이며,
크게 성공할수록 크게 실패할 가능성도 안고 있는 것이고,
삶에 대한 욕구가 클수록 죽음에 대한 고통 또한 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을 놓아버릴 때 증오 또한 놓여지며,
성공에 대한 욕구를 놓아버릴 때 실패의 두려움도 사라지고,
삶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릴 때 죽음에 대한 괴로움도 사라지는 것과 같다.
이처럼 극과 극은 언제나 함께 길을 걷고 있다.

인생이 자꾸만 꼬이고, 괴롭고, 답답하다고?
인생에서 지금이 최악의 순간이라고?
괴로운 일들이 몇 가지고 겹쳐서 나를 미치게 한다고?
잘 되었다. 지금이 바로 삶의 경이로운 반전이 시작될 시점이다.
내 생에 가장 큰 공부가 곧 시작될 것이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의 깊게 삶을 지켜보라.

‘이럴 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고민하지 말고
주의깊게 마음을 지켜보기만 하라.
지켜보는 관조가 예민해지고 깊어지는 순간
마음의 메시지를 들을 수도 있을 것이고,
혹은 불현듯 어떤 생각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기도를 하고 싶을 수도 있고, 절을 하고 싶을 수도 있고,
아니면 무언가를 저질러 볼까 하는 생각이 일어 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만 그것을 하라.
주의깊게 지켜보면서 다만 그것을 해 보라.
운이 좋다면 삶의 엄청난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알아챌 수도 있다.

언제나 그렇듯 기적은 아주 사소하게 우리 삶에 등장한다.
진리도 그렇고, 변화도 그렇고, 깨달음도 그렇고,
언제나 정점을 지나는 일은 놀라울 만큼 조용하고 차분하고 미세하게 다가온다.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 우리 삶에 엄청난 진리가, 부처가, 신이
봄 바람이 불듯 그렇게 살며시 왔다가 살며시 몇 번이고 우리 존재를 스쳤을 터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깊은 관찰로 삶을 지켜보아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이처럼 삶의 역경과 혼란을 타고 진리는 온다.
삶이 비탈진 내리막에서 뒤집혀 막 내동댕이 쳐 지고 있을 때
도리어 삶의 획기적인 변화가 소리 없이 찾아온다.

이처럼 불안과 혼란과 위험과 역경은 모두
우리를 더욱 더 내면 깊은 곳에 뿌리내리게 하고,
존재의 깊은 심연에 이르게 해 주는 영적인 동반자요 도반 같은 것이다.
그것들이 없다면, 그래서 세상일들이 원하는 대로 순탄하게만 펼쳐진다면
그 때부터 우리의 삶은 중심을 잃고 헤매게 될 것이다.
역경이 없고 순경만 있는 삶이란 그것이 곧 가장 큰 역경이다.

우리의 삶이 역경과 순경, 편안과 불안, 긴장과 이완이 반복된다는 것은
여간 감사한 일이 아니다. 또한 여간 당연한 일이 아니다.
그것이 삶의 속성이요, 진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다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좋고 싫게 받아들이고, 집착과 미움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다만 오면 오는대로, 가면 가는대로 그저 받아들이면 된다.

그러지 않고 불안과 위험을 버리려 애쓰고,
행복과 편안과 순탄한 삶만을 바라기 위해 애쓴다면
그 때부터 삶은 그대를 외면하고 심지어 파멸시켜 버릴 것이다.
그런 사람은 삶을 온전하게 살아 낼 수가 없다.
온전한 삶이 그대를 비켜가기 때문이다.

삶을 조종하려 들지 말라.
삶을 내 방식대로 통제하려 들지 말라.
내가 원하는 삶만을 살고자 애쓰지 말라.
그런 삶은 없다.
그렇기에 그런 삶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삶은 컴컴한 어둠 속이다.

내 앞에 일어나는 삶을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들이라.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하여 선택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전체적으로 통째로 받아들이고 환영하며 감사하라.

삶을 조종하려는 자는 삶을 살 수 없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들만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자는
삶을 살 의지를 포기한 것일 뿐이다.
그런 자는 삶을 살아갈 아무 이유가 없다.

안정적이고 평탄한 삶을 추구하려는 생각이 모든 화를 부른다.
순탄한 삶만을 바라는 생각이 도리어 순탄하지 못한 삶을 만들어 낸다.
‘이런 삶’을 살아야 한다고 고정적으로 정해놓은 생각이 많을수록
‘그런 삶’과는 점점 더 멀어지고 만다.
‘이러 이러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그 모든 생각을 놓아버릴 때
삶은 저절로 삶 그 본연의 길을 걷게 된다.

편안함을 갈구할수록 더욱 불편해지고,
안정을 갈구할수록 삶은 더욱 불안해진다.
편안, 안정에 대한 욕구를 놓아버릴 때 삶은 순조롭다.

이 세상의 근본 이치는 언제나 변한다는 제행무상의 이치와
고정된 것, 확정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제법무아의 이치를 따른다.
또한 그러므로 삶이란 언제나 불안전하고 불안정하며 괴로울 수 밖에 없다는
일체개고의 이치에 기초하고 있다.
그것이 삶의 기본 원칙이며 이치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기초를 거스르려 애쓴다.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며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을 살면서,
안정적이고 확실하며 불변하는 미래를 꿈꾼다.
그러나 그런 것은 어디까지는 꿈이고 환영이며 억지일 뿐,
그런 것은 없다.
없는 것을 찾아 나서봐야 찾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삶을 전체적으로 받아들이라.
삶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인정하라.
그랬을 때 삶은 아름답다.
아니 사실은 불안하고 불안정하며 삶의 곳곳에 내재된 위험과 혼돈이 있기 때문에
삶은 경이롭고 찬연히 빛날 수 있는 것이다.

도대체 알 수 없는 삶의 복잡성과 혼란과
어느 때고 쉴 사이 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위험과 근심과 역경들,
그것들이야말로 우리 삶에 가장 필요한 요소다.
그런 도전들이 없다면 우리 삶은 얼마나 피폐하고 나약해지고 말 것인가.

삶은 언뜻 보면 혼란스러워 보일 지 모르지만
본질적인 진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 모든 혼돈은 혼돈이 아니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조화로운 인연의 화합이요, 진리의 드러남이다.
혼란스럽게 보이는 모든 삶에는, 그것이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분명한 신의 메시지, 붓다의 뜻이 담겨있다.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라.
느긋하게 삶의 혼란을 즐기라.
아수라장처럼, 난장판같이 튀어나오는 삶의 모든 위험들을
그저 한발자국 떨어져 가만히 지켜보라.
다가오는 삶을 전체적으로 느끼고 만끽하고 수용하라.
그리고 그 모든 삶에 감사하라.

이렇게 될 수도 있고, 저렇게 될 수도 있으며,
이것이 될 수도 있고, 저것이 될 수도 있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삶이란 얼마나 생기로우며 아름다운가.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