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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2.11 마하 반야
 

마하 반야


 경전(經典)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경의 제목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경의 제목에는 그 경이 설하고자 하는 중심 사상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이라는 경의 제목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하(摩訶)

 ‘마하’는 범어로 ‘Maha’라고 쓰는데, 이는 발음만 그대로 따온 것일 뿐, 한자로는 특별한 뜻이 없습니다. ‘마하’의 뜻은, ‘크다, 많다, 뛰어나다’는 의미로서, 우리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의미의 크고 많다는 개념을 훨씬 초월하는 절대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 세계의 분별심으로부터 과감히 벗어나야 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누군가를 보고 ‘저 사람은 키가 크다’고 했을 때, 우리들의 생각은 어느 정도의 키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170, 180, 혹은 190정도를 키가 크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딱히 어느 정도를 큰 키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옛날 못 먹고 크던 때 큰 키와 지금 큰 키의 기준도 달라졌을뿐더러, 같은 180cm의 키라고 해도 일반적으로는 크다고 느끼겠지만 농구선수들 사이에서는 작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크다, 작다’라고 했을 때 이것은 단지 상대적인 분별심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크다, 작다' 혹은 '많다, 적다', '지혜롭다, 어리석다'라고 느끼는 등의 모든 분별은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고정된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인연 따라 짧을 수도 길수도 있을 뿐,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무엇을 보고 크다, 작다고 하겠습니까? 이처럼 고정된 것이 없기에 인식의 극단을 벗어나라고 가르치는 것이 바로 중도(中道)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분별은 단지 주위의 환경[인연]이 어떠한가에 따라 달라지는 개념일 뿐인 것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나 혼자 무인도에 살았다면, ‘내가 크다・작다, 잘났다・못났다, 똑똑하다・어리석다’분별도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즉, 큰 사람이 있으니 그에 비교되는 작은 사람도 있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가르침을 다른 말로 연기법(緣起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닌 연(緣)하여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사는 이 법계는 바로 상대적인 세계, 연기의 세계입니다. 이처럼 일체가 상대적으로 돌아가는 상대의 세계에서, 이 경의 제목에는 재미있게도 ‘마하’라는 절대 개념이 붙어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마하’는, ‘절대적으로 크고 많고 뛰어남’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어떤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것이 아니고, 절대적으로 큰 것, 즉 일체를 초월하는 절대적으로 큰 것입니다. 이것은 시간적으로 영원하고, 공간적으로 무한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면, 절대적으로 크고, 많고, 뛰어나다는 것은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것은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기에 일체의 모든 상대 개념을 초월합니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일체의 모든 상대적인 것과 둘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둘이 아니므로 대비할 상대가 없는 것입니다. 상대가 바로 나이고, 내가 바로 상대이기 때문에 절대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마하’라는 수식어가 경의 앞에 붙어 있는 것은 단순한 문자의 표현이 아니라, ‘최고의 경지, 부처님의 깨달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하’라는 말이 뜻하는 바를 좀 더 자세하게 세 가지 의미로 나누어 정리해 보겠습니다. 그 첫째는 ‘크다(大)’의 의미로 이는 우주, 허공, 삼천 대천 세계, 수미산 등을 부를 때 쓰여지는 공간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으며, 둘째는 ‘많다(多)’로 팔만 사천, 항하사(恒河沙), 미진수(微塵數) 라는 불교 용어에서 지극히 많음을 표현하는 수식어로 양적인 개념으로 쓰여지고 셋째는 ‘초월하다, 뛰어나다, 탁월하다’의 뜻으로 불변, 진실, 수승(殊勝)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이처럼, ‘마하’의 의미는, 감히 우리 범부의 눈으로 자로 재듯이 재어 볼 수 있는 경지가 아닙니다. 처음 중국에 불경이 전해질 때, 그 뜻을 번역할 단어가 마땅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단어로 번역하면 의미가 변질될 것을 우려해 ‘마하’라는 말을 발음 그대로 옮기게 된 것입니다. 괜히 기존에 있던 어설픈 단어로 사용했다가는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으로 인해 의미가 한정되어질 수 있음을 경계한 까닭입니다


반야(般若)

 ‘반야(般若)’라는 말은 범어로 ‘프라즈냐(Prajna)’ 라고 하며, 팔리어로는 ‘판냐(panna)’라고 합니다. 반야는 바로 팔리어 ‘판냐’의 음역어로서, 마하와 같이 그 발음만 따서 옮긴 또 다른 예입니다. 이 또한 ‘마하’에서와 같이 그 의미가 퇴색됨을 우려해 따로 번역하지 않고 ‘반야’라고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야’ 또한 우리 범부의 사량(思量)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단어일 것입니다.

 반야를 굳이 번역한다면 ‘지혜(智慧)’라고 옮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지혜가 아니라, ‘최고의 지혜, 즉 깨달음에 이르신 부처님의 밝은 지혜’를 의미합니다. 그러니, 부처가 아닌 범부중생으로서 어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단어이겠습니까? ‘지혜’와 비슷한 단어로, ‘지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식’은 ‘지혜’와는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계산하고, 암기하고, 생각하고, 분별하는 능력이 극대화된 것이 ‘지식’이라 한다면, ‘지혜’는 이러한 범부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반야의 지혜는 머리를 굴려 생각하고 분별하는 일련의 행위에 대해서 오히려 버리고 비울 것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선지식들이 ‘머리 굴리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지혜’라고 하면,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관조반야(觀照般若)’인데, 이것은 일체의 현상계를 있는 그대로 정견(正見)하는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제법(諸法)의 실상, 즉 있는 그대로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편견 없이 고정된 바 없이 비춰 보는 지혜를 말합니다. 부처님께서 오직 현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비추어 보아 현실 세계의 모습을 여실히 깨달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실상반야(實相般若)’로 이는 제법의 실상 그 자체,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 세계의 모습 그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보는 자와 보여지는 세계가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보는 자가 보이는 현실 세계, 우주와 하나가 되어 버릴 때 이것이 바로 실상반야인 것입니다. 이러한 실상반야를 우리가 올바로 깨달아 바르게 비추어 보게 되면, 이것이 바로 관조반야(觀照般若)인 것입니다. 셋째는 ‘방편반야(方便般若)’로 이것은 문자반야(文字般若)라고도 불리는 것으로서, 이상의 실상반야와 관조반야의 내용을 담고 있는 일체의 모든 경전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직접적으로 반야는 아니지만, 반야지혜를 이끌어 내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방편이 되는 것이므로 반야라고 합니다.

 이상 삼종의 반야는 부처님의 지혜인 깨달음의 실상반야에 이르기 위한 세 가지 단계라고도 할 수 있는데, 흔히 우리가 부처님의 지혜라고 일컫는 것은 진리의 당체(當體)인 실상반야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실상반야에 이르기 위해서, 실상반야를 체득하기 위해서 우리는 단계를 밟아가야 합니다. 우선 우리는 부처님의 말씀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경전을 읽고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방편반야, 즉 문자반야입니다. 이렇게 방편반야로 공부를 한 뒤에는 반드시 실천이 뒤따라야 합니다. 그 실천이 바로 관조반야입니다. 관조반야란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편견, 고정관념 없이 있는 그대로 비추어 보는 실천 수행법입니다. 이렇게 방편반야로 부처님의 법을 이해하고, 그 후 관조반야를 실천했을 때 나타나는 진리의 실상이 바로 실상반야인 것입니다.

 ‘반야’의 힘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그 힘은 평등, 절대, 무념(無念), 무분별(無分別), 비움의 경지일 뿐 아니라, 반드시 상대의 차별 현상을 관조(觀照)하여 중생을 교화하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단순히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의 현명함이나 지식이 높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참모습에 대한 ‘눈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반야’의 성취는 인생과 우주의 참다운 실상을 깨닫는 일이며,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며, 행복을 성취하는 길이고, 사회의 제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이며, 해탈을 성취하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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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