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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08 지혜의 정상에 오르라 - 법구경 28게송




[봄이 오고 있는데,
사진은 벌써 가을 단풍이네요...]

28.
깨어있는 명상으로써 마음을 관하는 수행자는
방일과 근심에서 벗어나 지혜의 정상에 올라
어리석은 중생을 내려다본다.
마치 정상에 오른 자가 산 아래 사람을 내려다보듯이



어느 날 삡팔리 동굴에서 수행을 하던 마하가섭이 아침에 탁발을 하고 돌아와 공양을 드시고 자리에 앉아 천안으로 사람과 짐승들을 포함한 일체 중생들이 어떻게 업에 따라 나고 죽는지를 살펴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어느 정도 마음을 닦아 밝아졌는지, 또 어떤 사람은 얼마나 나태하고 산만한 마음으로 생을 허비하고 있는지에서부터, 어떤 사람은 어떤 인연으로 이번 생에 이렇게 부유하게 태어났으며, 또 어떤 사람은 어떤 과거생의 인연으로 이렇게 가난하게 사는지, 또 이 사람과 저 사람의 인연과 업은 어떤 과거생의 수많은 인연으로 얽혀있었는지 등에 대해 모든 중생들의 일체 모든 업연을 환히 보고자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그러한 가섭을 관찰하시고는 가섭 앞에 모습을 나타내시어 말씀하신다.

“가섭이여, 일체 중생들이 각자의 업에 따라 어떻게 태어나고 죽는지를 환히 깨달아 아는 것은 오직 붓다의 지혜에만 한계가 없다. 다른 이의 지혜로서는 중생들이 여기 저기에서 업에 따라 부모를 만나며 나고 죽는지를 다 알 수 없다. 그것을 완전히 아는 것은 네 능력 밖이다. 붓다만이 이 모든 진실을 완전히 알 수 있느니라.”

물론 가섭 또한 아라한이기 때문에 전생과 업에 대해 볼 수는 있을지라도 일체 모든 중생들의 심지어 축생들과 곤충들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중생들의 일체 모든 업을 다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과연 어떤 업 때문에 저 두 사람이 원수 지간이 되었는지, 어떤 업 때문에 저 아이들이 한 부모 아래에서 태어나게 되었는지, 또 어떤 업 때문에 저들은 이생에 서로 사랑하게 되었거나, 이별하게 되었는지, 또 어떤 인연이기에 이번 생에 함께 결혼하게 되었는지, 또 스승과 제자가 되었으며, 주인과 하인이 되었는지 일체 모든 중생의 일체 모든 업연을 하나 하나 낱낱이 환히 알 수 있는 분은 오직 부처님인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보더라도 업과 인과를 어느 정도 볼 수 있는 스승들은 무수히 많이 있었지만 부처님처럼 일체 모든 중생들의 일체 모든 업과 윤회의 사실을 분명하고도 환히 알고 보는 분은 없었다. 또한 수많은 인류의 스승들이 제자들을 깨달음으로 이끌어 주었지만 부처님처럼 그 무수히 많은 출재가의 재자들에게 그것도 분명한 대기설법을 통해 때로는 말 한마디로, 때로는 지속적인 수행의 주제를 내어 주고 법을 설해 줌으로써 아라한으로 이끈 이는 없었다.

경전을 보면 부처님 당시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과거 전생의 수많은 인과와 윤회 이야기가 무수히 등장한다. 어떤 하나의 사실만을 가지고도 그것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인과 이야기를 부처님께서는 설하고 계시는 것을 본다. 또한 믿기 힘들 정도로 부처님 당시에는 부처님의 설법 하나만을 가지고 수많은 이들이 때로는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과를 증득하거나 또 어떤 경우는 아라한과를 증득하고, 심지어는 수십, 수백명이 동시에 아라한과를 증득하기도 하는 것을 본다.

이러한 능력은 인류 역사 속의 그 어떤 위대한 영적인 스승일지라도 가능하지 못한 영역이었다. 물론 인류 역사 속에는 수많은 스승이 등장하고, 성자가 등장하고 그들의 능력은 우리의 생각 차원을 훌쩍 넘어선다. 그러나 부처님 같은 이런 능력은 그 어떤 이에게도 없었다.

바로 이 가섭에게 한 설법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다. 가섭이 어떤 제자인가. 마하가섭이라는 칭호에서도 볼 수 있듯이 부처님의 상수 제자 가운데에서도 단연 으뜸인 제자요, 선에서는 부처님의 법을 물려받은 제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 가섭의 지혜 조차 부처님의 지혜에 미치지 못한다. 아마도 가섭 정도의 지혜라면 인류의 수많은 성자와 영적 스승들 가운데에서도 단연 으뜸인 지혜의 정상에 오른 분 가운데 한 분이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섭의 지혜 조차 부처님의 지혜에는 이토록 미치지 못하는 것이니, 부처님의 지혜야말로 얼마나 헤아릴 수 없고 무한한 것인가.

그러한 부처님의 지혜를 이렇게 가까이서 직접 접하고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것은 전생부터의 선근 공덕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공부해 가다 보면 언젠가는 부처님이 계신 국토에 태어나 우리도 부처님 당시의 제자들처럼 부처님의 법문 한 자락 끝에 저마다 깨달음을 얻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끊임없이 선근 공덕을 지어야 하고, 바로 그 선근이란 것이 깨어있는 마음 관찰 수행에 다름 아니다.

방일함이 없이 깨어있는 관찰의 수행을 닦는 수행자는 언젠가 지혜의 정상에 올라 어리석은 중생들을 내려다 볼 것이다. 어리석은 중생을 내려다 본다는 것은 한 단계 아래로 깔본다거나, 무시한다는 뜻이 아니다. 마치 정상에 오른 자가 산 아래의 대지와 사람들을 한눈에 내려다보듯이 지혜의 정상에 오른 붓다는 모든 중생들의 인과와 업과 근기 등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것이다.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근기와 업 등을 총체적으로 살펴보고 그에 걸맞는 수행재료를 줄 수도 있고, 저마다의 근기에 따라 깨달음으로 이끌어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인류 역사 속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처님만 유독 수많은 중생들을 하나같이 깨달음에 이르게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 바로 깨어있는 명상이라는 마음 관찰의 수행이 있는 것이다.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