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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08 행복해지기 명상
  2. 2009.07.22 원력, 묵언, 불성 - 법상스님 즉문즉답

날마다 새롭게 일어나라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법상 (무한,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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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착한 일은
드러내 주고
허물은 숨겨 주라.

남의 부끄 러운 점은
감추어 주고
중요한 이야기는
발설하지 말라.

작은 은혜라도
반드시 갚을 것을 생각하 고,
자기를 원망하더라도
항상 착한 마음을 가져라.

자기를 원망하는 자와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똑같 이 괴로워하거든
먼저
원망하는 자를 구원하라.

[우바새계경]의 말씀입니다.

상대방의 허물이며
부끄 러운 점
또한 약점이 되는 점 등은
결코 숨겨 줄 일입니다.

상대방의 잘못을 드러내게 되면
상대의 업 을
자칫 내가 받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덮어두면 없어질 것도
나의 입으로 천하에 드러냄으로써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커진 업의 보는
온전히 나의 몫으로 남을 것입니다.

행여
나를 원망 하는 이가 있다면
이 사람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나를 원망하고 욕 해 줌으로써
나의 업을 갚아주니 말입니다.
나에게 진 업으로 인해
상대는 지독한 과보를 받을 것이니,
가장 먼저
구원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생활 속에서
상대의 허물을 숨겨주고,
나를 미워하는 이를 구원하는 마음이
생활수행자 의 '착한 마음'인 것입니다.




모든 재앙은
입으로부터 비롯됩니다.

법구경에
입은 몸을 치는 도끼요,
몸을 찌르는
날카로운 칼날이라 하였습니다.

입을 조심할 일입니다.
입을 관하세요.

말하기 전에
올라오는 마음을
한 번 관하고 말하시는 겁니다.

마음에서 한 번 거르고
내뱉어야 합니다.

걸러지지 않은 말은
재앙이 되기 쉽습니다.

묵언을 즐길 일입니다.
묵언하고 묵언하고
묵언 속에 걸러 진
내면의 참말, '진언'을 내뱉을 일입니다.





남에게
충고하고자 할 때에는
다음의 다섯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충고할 만한 때를
가려서 말할 것이요,
그렇지 못할 때는 묵언을 지킨다.

진심에서 충고하고
거짓 되게 하지 않는다.

부드러운 말씨로 이야기하고,
거친 말을 쓰지 않는다.

의미있는 일에 대해서만 말하고,
무의미한 일은 말하지 않는다.

인자한 마음으로 이야기 하고,
성난 마음으로는 말하지 않는 다.

[증지부경전]의 말씀입니다.

보통 상대방의 잘못된 점을 보면
충고를 해야 할까
그대 로 두어야 할까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첫째로,
무조건 충고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니
그 때를 알아 야 한다는 말입니다.
울그락 불그락 하는
친구 앞에서 충고를 한다면
되려 화를 키우게 될 수도 있습니다.

둘째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은 좋지만
너무 조심스런 나머지
진실을 외면한 채
적당히 거짓을 섞게 되면
진실로 상대를 위한 충고가 되지 못합니다.

세번째로,
충고는 어떤 경우일 지라도
부드러운 말씨라야 합니다.
말은 마음을 전달하는 매개입니다.
마음이 부드러우면
말도 함께 부드러워 질 것입니다.

넷째 로,
말을 아낄 일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무의미한 말를 반복하기 보다는,
내면에서 깊게 걸러진
참으 로 의미있는 일에 대해서만
어렵게 충고 할 일입니다.

다섯째,
제 화를 못이겨
성난 마음으로 내뱉으면 안 됩니 다.
그것은 조언이 아닌
상대에게 업을 짓는 일입니다.
충고의 근본은
상대방에 대한 자비로운 마음입니다.

바른 충고는
스스로 복 짓는 일이며
상대를 밝게 변화시키는 일이지만,
자칫 잘못된 충고는
도리 어 스스로 구업을 짓고
상대를 어둠으로 몰고 갈 것입니다.

내면에서 걸러진
맑은 조언은
상대를 변화시키고
법계 를 감동시킬 것입니다.




이따금
불평 불만이 많을 때,
힘겹고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생각 돌이켜 보면
도리어 그 불평이
행복을 근원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차가 없 어
매일 걸어 다녀야 한다고 불평한다면
그것은 내 다리가 건강하다는
행복을 누리고 있음이며,

사 람들 앞에서 말을 못하는 것이
단점이라 늘 불평이었다면,
그것은 벙어리가 아니라는
엄청난 행복을 누리고 있 음이고,

자식들이 말을 안 들어 고민이라면
자식 없는 이들에 비하면
너무도 고마운 일이 될 것입니다.

수행이 안 되어 괴롭다면
수행 인연도 짓지 못한
수많은 이들에 비하면
참으로 행복한 수행자일 것이고,

서 울 살면서 공기가 좋지 않아
숨 쉬기가 어렵다고 불평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숨을 쉴 수 있으니
살아 있다는 행복을 누리고 있음입니다.

살아가면서
그 어떤 혹독한 괴로움에 떨고 있다면
그 사람은
죽지 않고 살아있다 는
가장 큰 행복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

괴로워 하고 계시는
그 어떤 분이라도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다는 것은
장님이나, 글조차 읽지 못하는
세계의 수많은 문맹들에 비한다면
너무나도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 다.

나는 얼마나 많은 종류의 행복을 안고 있는가
생각해 볼 수 있는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법상




죽기 전까지 매일 108배 수행은 꼭 해야겠다는 원을 세우고 절 수행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 염불을 하며 절을 하는데요, 입은 염불을 하는데 마음은 따로 노는 것 같습니다. 진지한 절이 안 되는 것 같고 집중도 안 되고, 하고 나면 뭔가 허전하고 성취감이나 수행을 통한 환희심 같은것도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원이 간절하지 못해 그런가요?

 

그냥 절을 할 뿐입니다. 절 하는데 이유를 달지 말고 하세요. 절하고 나면 어떠해야 한다고 하는, 절 수행을 하면 마음이 어떠해야 한다고 하는 그런 마음 그냥 다 놓아버리고 ‘오직 절 할 뿐’ 이 되도록 하세요. 절 수행은 어떠해야 한다고 하는 마음속에서의 막연한 기대감을 놓아버리세요. 절 수행을 하고 나면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고 하는 마음도 놓으세요.

절 하면서 집중이 안 되느니, 마음이 따로 논다느니, 절하는 것이 진지하지 않는다느니, 뭔가 허전하고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느니, 원이 간절하지 못해서 그렇다느니 하는 등의 그런 마음들에 사로잡히지 마십시오. 그렇게 온갖 올라오는 생각과 분별심들에 얽매이지 말고 다만 그렇게 올라오는 생각을 관하고 분명히 살펴보는 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관하는 데는 그저 관할 뿐이지, 좋고 싫은, 잘되고 안 되는 그런 분별이 붙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절 할 뿐 절 수행을 통해 무언가를 얻으려 하지 마세요. 얻고자 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얻고자 함이 없을 때 얻음도 없이 무량한 공덕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열심히 절 수행 하세요. 몸은 열심히 절 하고, 마음은 그대로 두시면 됩니다.

 

말을 많이 했다 싶은 날은 그냥 자신에게 짜증이 납니다. 핸드폰 화면에도 ‘묵언’이라 적어 놓고 많은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생활 속의 바른 묵언 수행인지, 또 그 방법도 알고 싶습니다.

 

말을 아끼는 사람은 그만큼 밖으로 빼앗기는 말의 기운을 돌이켜 내면으로 살찌울 수 있는 토대를 만들 수 있습니다. 말은 밖으로 치닫는 연습이며, 묵언은 안으로 치닫는 공부입니다. 묵언 수행만으로도 우린 내면 관찰의 힘을 한껏 높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말만 없다고 묵언이 아니라 말 이면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생각과 번뇌, 망상, 분별들을 쉬는 것이야말로 참된 묵언이라고 할 것입니다. 생각을 과거로 미래로 오락가락하지 않고, 이리저리 복잡한 생각으로 어지럽히지 않으며, 오직 ‘지금 여기’라는 순간순간에 존재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묵언입니다. 또한 참된 묵언이란 말 뿐 아니라, 몸과 뜻까지도 침묵하는 것입니다. 신구의 삼업을 함께 침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몸도 될 수 있다면 움직임을 많이 줄이고 허덕이지 않아야 하고, 쓸데없이 이리저리로 돌아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묵언은 공덕의 어머니입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복이 쌓이고 공덕이 됩니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의 묵언은 무조건 침묵을 지키는데에만 있지는 않다고 봅니다. 공허한 말, 삿된 말, 거친 말 등을 줄일 것이지 꼭 필요한 최소한의 말까지 하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요. 허언을 놓으라는 말이지 진언 까지도 놓아버리라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말을 가만히 살펴보면 ‘나’라는 아상을 높이고자 하는 말이 많습니다. 아상의 말은 주로 ‘나를 드러내는 말’이거나, ‘상대를 낮추는 말’이기 쉽습니다. 입을 관하고, 묵언하면 바로 그 아상의 토대가 되는 말들이 줄어들고, 내면은 고요해집니다.

 

사람들 각자에게는 불성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미 부처인데도 불구하고 꼭 수행정진을 해야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본래의 면목에서 본다면 아무 노력도 필요 없으며, 수행이란 것도 다 방편일 뿐입니다. 이미 그대로 부처인데 닦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냥 가만히 있으면 그게 선지식의 할 일입니다. 그러면 왜 아무것도 할 필요 없다면서 자꾸 수행 하라고 하느냐? 그건 중생이 괴로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래면목에서 본다면 괴로워하고 있는 그것이 다 환영이고 신기루며 꿈과 같은 거짓일 뿐입니다. 즉 환상 속에서 환상에 빠져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있기 때문에 그 환상을 뛰쳐나오도록 이끌어 줄 뿐인 것입니다. 환상에 빠져 있을 때는 환상으로 병을 치료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아무 문제없는 평등하고 중립적인 세상을 대상으로 끊임없이 생각과 차별, 분별과 망상을 일으켜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 만들어 낸 문제 속에 스스로 빠져 괴로워하고 있다 보니, 그것이 본래 아무 일 없던 것임을 알려주기 위해 방편이라는 환상의 약을 쓰는 것일 뿐입니다. 세상은 고요하고 적적하게 가만히 있는데 내가 그 가만있는 세상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인간의 어리석음이고, 그 어리석음에서 고통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스스로 고통을 만들었고, 거기에 빠져 있지만 사실은 이 모든 것이 자기 스스로 만들어 낸 환상일 뿐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다시 그 환상을 깨주기 위해 환상의 약 즉 방편이라는 수행을 일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염불이며 독송이며 좌선이며 화두며 끊임없이 닦으라고 하고, 그러한 방편 수행을 통해 부처를 깨닫게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월간불광] 3월호 '법상스님께 묻습니다'에서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