쿰부롯지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데

롯지의 인터넷방 주인인 듯한 젊은 여자분이

내가 한국 사람인 것을 알고는 말을 걸어온다.

 

 

 

 

미리 한국 사람을 보면 물어보려고 준비한 듯한 메모지를 가져와서는

몇몇 기초적인 영어 인사말을 한국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를

영어 발음으로 적어 달라고 한다.

 

“잘 지내고 있나요?”,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따위의 대충 짐작 갈 만한 사연의 글들.

그러면서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남자친구가 한국사람이라고 한다.

어쩌다 한번씩 전화 통화를 하는데 한국말로 안부를 묻고 싶었단다.

 

그녀의 얼굴에 그리움이 묻어난다.

 

 

그가 희말라야를 찾았을 때 잠시 만났는데 대번에 둘은 서로에게 반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도 짧았고 그리움은 너무도 길다.

그를 본지가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만날 수 있기는 한 것인지,

우리의 사랑이 계속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기는 한 것인지 그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녀는 비행기의 착륙 때마다 혹시나 있을 한국인을 찾았고,

한국인을 보자마자 반가움과 애락(哀樂)의 마음으로

그와 연결될 수 있는 연문(戀文)의 언어를 묻고 싶었던 것이다.

 

사랑은 이토록 애잔하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그녀의 머릿결과 낯빛에서

만남과 이별의 아름다운 이야기 하나가 바람처럼 구름처럼 흘러가는 듯하다.

이 세상에 사랑처럼 아름다우면서도 또 늘 삶 속에서 경험하는 것이면서도,

그 실전에서는 늘 어눌하고 서툴며 올바른 방법을 모르고 헤매는 것이 또 있을까?

 

내가 만나왔던 많은 이들이 사랑으로 인해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는지,

또 더불어 성숙해 졌는지를 헤아리자면 끝도 없다.

한 젊은 친구는 헤어짐의 아픔 때문에 자살을 하기도 했고,

또 어떤 친구는 군 생활 중에 탈영을 하기도 했으며,

또 어떤 친구는 오랜 정신적 후유증을 겪다가 정신이상이 온 경우도 보아 왔다.

 

이처럼 때때로 서툰 사랑,

충분히 그 깊이를 헤아리지 못한

중독적이고 집착적인 사랑의 끝은 상상 그 이상이다.

 

많은 이들이 사랑과 소유를 동격으로 여기는 듯하다.

사랑하면 당연히 ‘내 여자’ ‘내 남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이 세상 그 어떤 대상이 영원한 ‘내 것’일 수 있는가.

나 자신도 내가 아닐진데,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

어찌 영속적인 내 소유가 될 수 있겠는가.

 

집착과 소유를 동반한 사랑은

그 끝이 언제나 고통과 슬픔일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집착과 소유는 언젠가 반드시 사라지고야 마는

무상(無常)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되 집착하지 말라.

사랑은 ‘내 것’으로 만들려는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라

아집(我執)을 놓아버린 순수한 이타적인 마음 그 자체다.

진정한 사랑에는 ‘나’라는 에고며 아상(我相)이 개입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그가 또 다른 사람이 생겨 나를 떠나간다고 했을 때조차

그가 그 사람과 함께 함으로써 나와 함께 있을 때보다 더 행복할 수 있다면

그를 위해 마땅히 보내줄 수 있는 것이 본래적인 사랑의 속성이 아니겠나.

마음이 벌써 떠났는데도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마음은

지독한 아집이 만들어 내는 강박증이요, 정신이상에 가깝다.

 

그러나 과연 어떻게 집착 없는 사랑이 가능할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하다.

아니 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의 사랑, 붓다가 말씀하신 동체적인 사랑으로 가는 길이다.

그런 투명하고 흔적 없는, 사랑 그 자체의 사랑을 했을 때

사랑은 그 세속적인 의미를 너머 명상으로 들어서는 올찬 깨달음의 길로 변모한다.

 

어스레한 그녀의 애화(哀話) 한 자락에 축복을 보내며,

이 사랑이 이루어지고 말고를 넘어서

이 이야기 속에서 하나의 성숙과 깨침을 이루기를.

이 사랑이라는 생생하고 진한 삶의 현장이 가져다 주는 더 깊은 목적의 의미를 깨쳐 보기를.

 

***

 

멈칫 멈칫 내 눈치를 보던 한 청년의 눈빛이 내 눈과 투명하게 마주친다.

앞으로 나와 2주 이상을 함께 걸을 쿰부의 도반, 나의 포터 지텐이다.

첫 인상이라는 잠깐의 순간에 직관적으로 상대의 상당부분을 알게 된다고 하더니,

우리의 이 첫 눈빛의 마주침이 서로의 마음에 진한 심상을 남긴다.

 

아직은 어려 보이는 순한 얼굴에 선한 눈웃음,

수줍은 듯 다소 긴장한 듯한 표정에서 순간 믿음 같은 것이 피어올랐다.

환한 웃음과 악수로 간단한 대면을 마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 출발에 앞서 이야기꽃을 피워본다.

 

나이는 20살, 이름은 지텐라이, 포터 3년 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포기한 채 포터를 시작했다.

가족은 11명,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5명의 남형제와 3명의 여자 동생이 있고

그 중 지텐은 이 모든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장남이다.

막내 여동생은 이제 겨우 2살,

2살에서 20살인 지텐까지 2~3년 차이로 형제 자매가 주루룩 아홉이나 되는 것이다.

 

 

 

 

지텐은 장남이기도 하지만 유일하게 돈벌이를 하는 자식이고

그 밑으로 8명의 동생들은 모두 학생이거나 아기이다.

부모님들도 농사를 워낙 소규모로 지으시다 보니

11명의 가족 먹을 것을 빼면 돈벌이로는 궁핍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니 이 대가족의 생계가 20살 지텐의 어께에 무겁게 매달려 있는 것이다.

 

한 번의 포터 일정이 끝나면

지텐은 맛있는 과자들을 사가지고 가서

동생들 나누어 주는 재미를 좋아한다.

물론 할아버지와 두 분의 부모님 용돈과 생활비도 드려야 하고,

동생들 학교 생활에 필요한 학용품도 사 주어야 한다.

듣고만 있어도 내 어깨가 이렇게 무거워질 정도인데, 지텐은 이 일이 그리 행복하단다.

그리고 이 정도의 수입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자부심을 느낄 정도라고 하네.

 

그야말로 환한 얼굴빛에서 행복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것이 진정 어떤 기준을 가진 것인지,

과연 기준이란 게 있기는 한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드디어 출발.

루클라 작은 마을길을 통과하는데

길옆의 빵집이며 트레킹용품점, 여행사, 항공사의 사무실 등에는

이제 막 트레킹을 마치고 내려온 이들과

이제 막 트레킹을 시작하려 분주히 준비하는 이들의 이야기꽃으로 장사진을 이룬다.

 

사람만 그런게 아니다.

잔뜩 짐을 싣고 먼먼 길을 오르기 시작하는 야크들과

홀가분한 몸으로 내려오는 야크들이 교차하며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루클라 마을을 통과하니 이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그저 흔한 우리나라의 여름 산길을 연상케하는

소박한 오솔길 위를 다소 설레는 마음으로 걷기 시작한다.

 

 

 

 

걷다 보니 여행자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의외로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도 많다.

그 오래고 모딘 몸을 쿵쿵 거리며 장하게

산을 하산하는 분들 표정에 무언가를 해 냈다는 자신감이 스며 있다.

 

 

 

 

곳곳에 길 끊어지는 곳마다

철로 만든 다리를 만들어 놓아

여행자들이나 짐꾼이나 야크들이 쉽게 갈 수 있도록 만들어 두었다.

그런데 다리가 너무 비좁아

저쪽 편에서 짐실은 야크들이 뒤뚱거리며 걸어올때면

그들이 다 건너올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건너야 하는

일방통행 시스템이다.

 

 

 

 

 

 

 

 

 

 

 

길을 걸을 때는

차를 타고 다닐때와는 달리

주변의 작고 사소한 것들의 생기로운 움직임을 다 살펴볼 수 있고,

내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떤 생명들이 다양하게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

평소에는 그다지 자세히 살펴보지 못하던 것들을

유심히 지켜보는 새로운 눈이 열린다.

 

그것이야말로 걷는 즐거움, 산책의 즐거움이며

산길을 걷는 즐거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작은 꽃들, 나무들, 새들과 계곡의 크고 작은 변화들을

예민하게 내 온 몸의 감각이 고스란히 느끼게 되고,

그런 주변 자연에 대한 관찰과 감각은 우리 존재를 깨어나게 하고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려있게 한다.

 

검은 새 한 마리가 휘휘 날아와서는 지붕 위 끝자락에 앉았다.

가만히 무엇을 하나 살펴보다가 사진 한 장 담아 보려고

찰칵 하는 순간에 날라가 버리는데,

위로 날아 오르는게 아니라

계곡 위 아슬하게 지어진 집 아래로 수직 하강을 하면서

계곡 저 아래까지 순식간에 날라가 버린다.

 

 

 

   

 

걷는 내내 길옆으로 펼쳐진 논밭의 초록 물결과 그 사이사이에 박혀 있는 집들

그리고 무심한 나무들에게 시선이 머문다.

    

 

 

 

 

 

  

허름한 시골 농가 한 채,

그 곁에 딸린 밭뙈기 조금,

이 정도면 한 평생 대장부의 살림살이 그럭저럭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루클라에서 출발하는 초입에서부터

야크 한 떼와 계속 함께 걷고 있다.

시간도 여유가 있거니와,

주변도 돌아보며 사진도 찍고

천천히 걷다보니 야크가 걷는 속도로 나 또한 걷게 된다.

 

 

 

 

두런두런 지텐과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벌써 점심때다.

지텐이 잘 아는 식당에서 라라누들스프를 시켜 먹는다.

쉽게 말해 우리나라 라면 반개 정도 하는 분량의 작은 양념 안 된 라면에

자체 조미료로 간을 낸 라면이다.

라면을 먹고 나서 따뜻한 홍차 한 잔을 마시며 여유롭게 주위를 돌아본다.

 

날씨가 너무 좋다.

하늘은 진하게 푸르고, 햇살은 그 어느 때보다 따사롭고,

온도도 걷기에 딱 좋은 우리나라 가을 날씨에

살랑거리는 바람은 더없이 걷는 이를 청량하게 씻어준다.

 

루클라 초입에서부터 걸음을 더해갈수록

쿰부의 풍경은 여행자를 압도한다.

평화로운 들녘과 오밀조밀한 집들, 마을길들,

투명하고 푸른 하늘과 쨍하게 부서지는 햇살,

이 모든 풍경이 안나푸르나의 그것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아무래도 티벳과 가까운 지역이라 그런지,

티벳불교의 영향력 아래에서 문화를 이루고 있는 셀파족들의 생활상이

이 산과 들녘과 마을 곳곳에,

그리고 그들의 생활양식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 듯 보인다.

 

저 에베레스트, 눕체, 쿰부체, 푸모리, 로체 등

설산 영봉의 뒤쪽 능사면은 지금은 중국땅이 된 티벳의 영역이다.

그러니 안나푸르나와는 달리

티벳의 문화가 고스란히 내려앉아 녹아든 것이 당연한 일.

 

산자락 중턱에 자리한 작은 곰파들, 스투파(탑)들,

곳곳에 자리잡은 마니차와 바윗돌에 섭새겨진 마니스톤, 흩날리는 룽다,

이 모든 것이 흡사 라다크에서 익숙하게 보아왔던 것들과 닮아있지만

다른 어딘가 모를 이곳만의 특색이 또한 아로새겨져 있다.

 

 

 

  

 

 

라다크에서는 곰파에 가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

이 곳에서는 마을 곳곳에 그저 불교문화가 그들 삶의 한 부분이 된 양

흩어져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마을 입구에 경전 문구를 새겨 넣은 마니스톤이

마을을 지켜주는 신상처럼이나 당당하게 서 있고,

 

 

 

 

길가 곳곳에 마니차가 서 있어

길을 걸으면서 경전을 읊듯 길을 걸으며 마니차를 돌릴 수 있게 되어 있다.

 

 

 

 

또한 집과 집의 지붕 사이에 타르초를 걸어 놓아

진리가 마음껏 바람을 타고 온누리에 퍼져나갈 수 있도록 해 놓았고,

타르초와 마니스톤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룽다가 우뚝 선 기상으로 흩날리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을 느끼며 바쁠 것 없이 여유작작하게 걷는다.

한발 한발 에움길을 돌고돌아 구름이 흐르듯 발길도 흘러간다.

이 한발 한발이 얼마나 생기로운지.

걸음 걸음마다 생명력이 물씬 피어오름을 느낀다.

 

길은 가파르지도 힘겹지도 않은 잔잔한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장이다.

이 예스러운 마을길을 아그작거리며 걷는다는 이 평범함이

내가 살아오며 내달려온 그 어떤 성취의 순간보다도

더 깊은 순간으로 진하게 다가온다.

 

아! 야생의 대자연이 살아 숨쉬는,

때묻지 않은 순박한 사람 풍경 속을 거닌다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 소박하고 작은 것들 속에서 위대함과 거룩함을 본다.

 

사실 인간계의 모든 위대함은 작은 것에서부터 나온다.

지금 이 순간의 작고 소박한 일상을

얼마나 깨어있는 순간으로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바로 얼마나 거룩해지고 위대해질 수 있는가를 결정한다.

그 어떤 위대한 눈에 보이는 성취일지라도

한 순간의 깨어있는 호흡과 현존에 미치지 못한다.

 

***

 

두 세시간 산책하듯 걸어 팍딩에 도착한다.

 

 

 

 

초입에 이르니 두 자녀 머리를 깎아 주는 어머님의 손길,

어릴적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나도 어릴적에는 이발소나 미용실 한 번 안 가보고

늘 집에서 어머님께서 머리를 깎아 주시곤 하셨다.

 

 

 

 

사실 지지난 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와 푼힐을 갔다가 내려올 때,

오른쪽 무릎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었다.

산행 후 약 일주일 동안 쉬면서도 통증이 사그라들지 않아 이번 순례를 걱정해왔는데

그럭저럭 버틸 만해서 무리일거라는 주위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쿰부 산행길에 오른 것이었다.

 

이번이 아니면 두 번 다시 오기 힘들거라는 생각이 크게 작용을 했던 것도 있고,

천천히 오르는데까지 올라 보고 정 안되겠다 싶으면

그 때 내려가면 되겠지 하는 편한 마음으로 길을 나섰는데,

그래도 아직까지는 다리를 조금 절룩거릴 뿐,

그럭저럭 버틸 만하다.

 

오히려 카투만두에서 쉬고 있을 때보다

다시 길을 걸으니 더 나은 것도 같다.

계속 걷다보면 통증도 잊게 된다.

Posted by 법상

에베레스트의 관문, 루클라

- 에베레스트 고쿄(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 + 촐라패스 + 고쿄 교코리) 라운딩 1일차 (1) - 

 

 

 

 

 

 

 

드디어 그토록 기다려오던 날이 밝았다.

그냥 쉬엄쉬엄 기다린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간절히 이번 생에 꼭 하나 끝내고 가야 하는 그 어떤 숙제라도 되는 양

결연히도 기다려 왔다.

그러나 막상 그 기다림이 현실이 되는 순간, 의연히도 무덤덤하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삼 일 쯤 전에 루클라행 비행기에 올랐어야 한다.

내 일정이 조금씩 당겨진 이유도 있었고,

무엇보다 생각지 못했던 네팔인들의 명절이 계속되면서

바로 엊그제까지 모든 관공서가 문을 닫는 바람에

산행에 필요한 퍼밋(Permit, 입장허가서)이며 팀스(TIMS, 트레커 정보운영 시스템) 발급이 늦어졌고,

그 차에 전부터 알고 지내던 현지인 벗으로부터 명절 초대도 받고,

산골 마을의 인연 있는 학교에도 다녀올 겸 해서 마음 편하게 먹고 비행기표를 삼일 늦추었다.

 

덕분에 오늘 출발하게 되었는데 엊저녁 듣게 된 충격적 소식!

내가 타고 가려했던 그 날짜에 출발한 비행기가

루클라 공항의 날씨 사정과 운전자의 부주의로 인해 그만 추락을 했다는게 아닌가!

조종사 한 사람은 겨우 탈출을 했지만

독일인 17명과 오스트리아인 2명, 그리고 네팔 현지인 포터와 가이드 4명이

모두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순간 머릿속에서 독일인과 오스트리아인 사이에 ‘한국인 1명’이라는

오싹한 상상력이 스치며 소름이 끼쳐왔다.

국제 뉴스에도 연일 보도되고 있다더니 나중에 카투만두에서 이메일을 열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산에 있는 2주 동안 내 일정을 알고 있던 몇몇 지인으로부터 걱정 어린 메일이 와 있었다.

 

물론 이 또한 정확한 인연과 우주적인 질서에 따른 삶이라는 큰 계획의 일환이었겠지만,

내 계획을 바꾸지 않고 일단 루클라까지라도 가고 보겠다고 고집을 부렸더라면

내 자유의지의 선택에 의해 내 삶이 마감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 아닌가.

모르긴 해도 더 큰 인과의 법칙 속에서, 신의 계획 속에서

그들은 정확히 가야할 때가 되어 그 비행기에 오른 것일 수도 있고,

나는 아직 그 때가 아니기에 내 입장에서는 그저 단순한 에피소드로 끝났는지 모른다.

 

우주법계에서 부여하는 삶의 질서는

개개인이 자기 고집과 아상(我相)과 온갖 판단 분별로 상황을 자기식대로 해석하지 않는 이상

언제나 정확히 필요한 일들을 정확히 필요한 바로 그 때에

자비로운 목적을 가지고 펼쳐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자기 고집과 집착으로 우주의 질서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대항하고 투쟁하려 한다면

그것은 제 스스로 지옥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면 나는 그 비행기를 타지 않아서 살았고 그렇기에 그들보다 우월하거나 운이 좋고,

그들은 운이 나쁘거나 악행을 많이 했거나 잘못한 일이 많아서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들과 나에게 주어진 삶의 몫이요, 계획인 것이다.

물론 그 계획은 자기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이 죽은 자에 비해 우월한 것도, 승리자가 된 것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한 번은 죽음을 맞이해야 하며,

그것은 누구에게나 다양한 방법으로 찾아올지언정 분명히 공평하게 찾아오고야 만다.

그렇기에 죽음은 실패나 좌절이나 아픔, 이별, 슬픔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의 한 부분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의 과정이요 삶 그 자체인 것이다.

 

어쨌든 일정에 차질은 생겼지만, 그래서 계획 변경으로 인한 아쉬움도 없지 않지만

그 대신에 나는 이렇게 살아 있다.

당장에 눈앞에 드러난 현실은 일정 차질이며 계획 변경이지만,

그 뒤에는 또 다른 목적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삶을 조금 더 깊이 지켜보면

이처럼 삶의 그 뒤에 숨은 목적, 혹은 더 깊은 차원의 질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곤 한다.

 

그러니 삶에서 무슨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괴로워할 일만은 아니다.

계획된 일정에 부득이한 변경이 생겼다고 해서 아쉬워할 것은 없다.

심지어 그 변경으로 인해 큰 손실을 입었다고 할지라도 안타까워할 일이 아니다.

 

삶 속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부득이한 계획 변경과

어쩔 수 없는 사건, 사고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말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다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라.

그것은 그렇게 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 계획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더 큰 법계(法界)의 계획표에는 이미 기록되어 있던 것이다.

 

‘내 생각’, ‘내 계획’, ‘내 욕심’, ‘내 집착’, ‘내 소유’라는 아상이 강한 사람일수록

내가 만들어 놓았던 인생 계획에 작은 변동이라도 생기면

도저히 참지를 못하고 화를 내며 받아들이지 못한다.

심지어 세상을 원망하고, 사람들을 원망한다.

내 계획대로 삶이 이어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대로, 내 욕심대로 모든 것이 되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상에 갇혀있지 않은 자는 삶에 계획을 세우기는 할지언정

애초부터 ‘반드시, 절대로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하는 자기 고집을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

그 어떤 변화에도 심리적인 괴로움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

그 어떤 변화도 마땅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이렇게 되어도 좋고, 저렇게 되어도 좋다.

삶의 그 어떤 변화무쌍한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

 

어느 한 쪽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은 언제든 고통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

그는 더 큰 질서를 안다.

인생의 더 깊은 차원에서 만들어내는

신의 질서를, 법계라는 진리의 이치에 완전히 자기를 내맡긴다.

자기 고집과 아상을 버리고 더 큰 삶의 진리에 나를 고스란히 내던진다.

삶의 거대한 강줄기에서 벗어나 보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힘을 빼고 함께 따라 흐른다.

 

이러한 대수용과 무집착과 대긍정이야말로

리의 삶이 비좁은 인간의 틀에 갇히지 않고

진리의 차원, 신의 차원, 붓다의 차원으로 접근이 가능하게 만든다.

더구나 그 ‘더 큰 질서’는 언제나 더 높고 깊은 차원에서 보면 항상 나를 돕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계획대로 안 되는 것 같고,

때때로 나에게 너무도 불합리하게 느껴지며 불리하고 고통스럽게 보여지는 일일지라도

그것은 우리 생각의 틀을 뛰어넘는 더 높은 차원에서 보면 우리를 돕기 위한 대본인 것이다.

때때로 그것은 우리의 업장(業障)을 녹여주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혹은 그 사건을 통해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는 지혜를 전해 주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그 ‘더 큰 질서’ ‘더 깊은 진리’에 나를 완전히 내던지고 맡기는 삶은

모든 고통과 근심을 덜어주고 우리를 진리로, 신에게로, 깨달음으로 이끈다.

 

3일 연기된 일정의 의미를 지켜보며,

설산으로의 여행 대신 다른 삶으로의 여행을 먼저 떠난 그들의 영전에

깊은 조의와 함께 ‘티벳 사자의 서’를 한 편 독송해 바쳐 본다.

 

 

국내선 공항은 언제 사고가 있었냐는 듯 루클라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빈다.

 

 

하기야 10월~11월이 네팔 트레킹의 가장 큰 성수기에다

작년 한 해 국내 정치의 안정으로 인해 유례없는 최대의 관광객들이 네팔을 찾았다고 한다.

 

8시 출발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씨타항공, 루클라”를 외치는 말이 없어 현지인에게 물었더니

‘네팔리 타임’이라며 어제는 3시간도 넘게 지연되었었다고 귀뜸해 준다.

하기야 3년 전에 왔을 때에도 카투만두-포카라행 오전 8시 비행기를 오후가 되어서야 탓던 기억이 있다.

그 말을 듣고 오히려 편안한 마음으로 이 시간을 누려본다.

 

한 30분 쯤 더 지났을까.

왠일로 이렇게 빨리 비행기의 출발을 알리는 소리.

표를 끊고 나가 버스에 올라 비행장 한 켠에 서 있는 작은 비행기를 향한다.

 

 

 

 

네팔의 공항은 국제선과 국내선이 가까이 함께 있는데

한 나라의 수도 대표 공항답지 않게 작고 소담하다.

버스에서 내려 비행기 앞에 줄을 서니 사람과 함께 체크인 할 때 맡긴 짐들도 함께 싣고 있다. 

 

 

  

20여 명 남짓 탈 수 있는 아주 작은 비행기,

앉으면 조종사의 조종석까지 환히 보이는 미니 비행기다.

 

  

일행이 다 타자마자 비행기 몸체 전체를 뒤흔들며

미니 프로펠러를 움직이더니 미끄러지듯 움직인다.

잠시 뒤 구르릉 소리를 내며 그 작은 기체가 쏜살같이 달리더니

드디어 창밖으로 카투만두의 전경을 발아래로 펼쳐낸다.

 

[공항 활주로에서 출발, 하늘로 날아올라, 카투만두 시내를 펼쳐보여 준다] 

 

 

의외로 안정감 있게 그리 높지 않은 하늘을, 아니 아슬아슬하게 산 위를 날고 있다.

비행기가 뜨자마자 조종사 보조석 뒷자리에 있던 한 남자가 일어나더니

작은 쟁반에 두 종류의 사탕을 내어 온다.

작고 허름한 비행기지만 일반 항공사에서 하는 서비스를 다 하기는 하네.

 

 

 

야트막한 산 위를 사뿐 사뿐 나는 동안

산 위에 펼쳐진 네팔인들의 전형적인 산골 논밭 풍경과 올막졸막한 집들에 시선이 머문다.

 

 

푸르른 초록빛과 익어가는 노란 황금빛의 논이

꼬물 꼬물 모여 있는 마을, 집, 길, 산과 어우러져 마음까지 시원하게 씻어주는 듯하다.

 

 

잠시 뒤 비행기가 산 위를 가볍게 날아오르고

전형적인 네팔 산악 마을의 풍경인 계단식 다랑이 논이

한국이 가을 들녘처럼 누우렇게 익어가고 있다.

 

 

 

한 20여 분 쯤 떠 있은 것 같은데 비행기는 벌써 착륙을 준비중이다.

착륙직전 창밖으로 거대한 산군이 펼쳐지면서 기체가 주춤하고 흔들리더니

비행기가 눈앞에 보이는 산을 향해 정면으로 돌진을 하는게 아닌가.

순간 엊그제의 사고가 떠올랐다.

루클라 공항에 도착하기 직전 산에서 방향을 틀어야 하는데

그것을 못 해 정면의 산으로 부딪혔다는 신문기사가 오버랩되며 온몸이 순간 경직 되 옴을 느낀다.

 

‘이놈의 생각’, 생각이 공연한 공포감을 또 만들어낸 것이다.

아무 일 없이 물론 잘 도착을 했지만,

생각이란 놈은 비행기에 타는 순간부터 엊그제 있었던 사고를 끄집어냄으로써

계속해서 불안과 공포를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이다.

비행기가 조금만 주춤 거려도 '혹시나 잘못된 것이 아닐까' 싶고,

조금만 조종사가 딴짓을 해도 '저 사람이 저러다 어쩔려고' 하며

혼자서 생각으로 근심과 걱정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생각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눈앞에 나타나는 상황에

자동적으로 과거의 기억들을 끄집어내면서 온갖 망상 분별들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대부분 그렇게 마구잡이로 끄집어내는 생각들은

별로 의미 없고 쓸모없이 왔다가 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화가 날 때 보면 화가 날만한 상황이 생기면 자동 반사적으로 욱 하고 올라오듯이

생각도 마찬가지로 온갖 상황이나 조건이 생기면

무조건적으로 기억 속 흔적들을 끄집어내 연관된 것들을 막 의식의 표면으로 쏘아 올린다.

꿈처럼이나 아무런 질서도 없이 언뜻 비슷한 기억들은 죄다 끄집어내고 보는 것이다.

 

이게 바로 생각의 속성이다.

이처럼 생각은 과거의 기억을 먹고 산다.

그런데 이 때 우리가 알아야 할 아주 중요한 사실은

그렇게 과거의 생각들이 솟구치는 순간

우리는 ‘지금 여기’라는 충만한 자리를 놓치고 만다는 사실이다.

 

생각은 늘 그런 방법으로 우리 내면의 본연의 평화와 고요를 밀어내곤 한다.

한 번 그 늪에 빠져 버리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쏟아지는 생각의 의미 없는 혼돈 속에서 허우적대느라

현존(現存)에서 오는 충만한 삶의 에너지는 그 기운을 잃고 만다.

 

생각을 너무 신뢰하지 말라.

너무 생각이나 판단에 의존하려 하지 말라.

과거의 기억들로 오늘을 판단하거나 과거의 색안경으로 지금 이 순간을 평가하지 말라.

무심(無心)의 순간을 조금씩 늘려 나가보라.

생각이 놓여지는 순간 우리 마음은 짧은 평화를 경험한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생각이 힘을 잃고 대신 그 자리에 무심과 관조(觀照)가 빛을 비출 때

우리의 의식은 비로소 깨어나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바로 그 때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나, 기존의 관습을 넘어서는 번뜩이는 창의,

그리고 기억과 사고 너머의 깊은 존재의 심연 속에서 지혜의 가르침들이

직관적이고도 창조적인 영감의 방식으로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은 생각과 기억이라는 과거의 잔재,

또 계획과 바람과 욕망이라는 미래의 잔재가

모두 사라진 ‘지금 이 순간’이라는 현존의 순간에 깃드는 것이다.

그러니 공연한 생각으로 너무 근심 걱정할 것은 없다.

그것은 그저 생각과 기억이 만들어 내는 쓸데없는 것들일 뿐이다.

 

그래서 어니 젤린스키는 그의 책 『모르고 사는 즐거움』에서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 것,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

22%는 사소한 고민, 4%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

4%는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는 일’ 이라고 말했다.

결국 걱정은 제로라는 말.

본래부터 근심이나 걱정이 실체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만들어 놓고 거기에 빠져 공연히 근심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그렇게 올라오는 생각들을 바라보며 몸의 경직이 풀리고 있는데

곧바로 비행기는 이륙을 마쳤다.

착륙 절차도 아주 간단하고 그 시간도 매우 짧다.

쿠궁 하고 비행기가 땅으로 구른지 불과 2~3분도 안 된 것 같은데

비행기 문이 열리고 사람들은 짐을 주섬주섬 챙겨들고 바삐 내린다.

 

비행기를 나서는 순간, 루클라의 전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진한 물감을 풀어낸 듯 강한 콘트라스트의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집들이

포근히 둘러싸인 산 아래 소박하게 누워 있다.

 

 

비행장 한 켠 언덕에는 두 명의 군인이

마을을 배경으로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20여 명의 함께 내린 동행자들이 모두들

여행자거나 가이드, 포터다 보니 앞으로 이들과 꾸준히 만날 것 같은 느낌.

 

 

일반적으로 개인 여행자들은 루클라에 도착해 포터나 가이드를 구하곤 하는데,

단체 여행자들은 여행사에서 구해 준 가이드와 포터를

카투만두에서부터 그들의 비행기값까지 지불하면서 함께 오기도 한다.

물론 비행기표는 여행자들의 반값 정도로 저렴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카투만두-루클라 노선의 왕복 비행기 가격이 24만원 정도이니

10만원은 넘는 지출을 감행하면서라도 2주 이상을 함께 먹고 자며 지내고 의지해야 할 가이드와 포터를

믿을만한 여행사를 통해 데려오곤 하는 것이다.

 

공항 주변에는 포터와 가이드를 알선해 주겠다는 현지 여행사 직원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루클라 공항 밖에서는 포터와 가이드를 소개해 주겠다는 사람들이 집요하게  따라붙는다]

 

주로 포터는 미화 하루 10달러, 가이드는 15달러 전후의 가격이 책정되어 있다.

나는 다행히도 카투만두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면서 사회복지재단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오랜 벗 라케스의 도움으로 중간 소개업자나 수수료를 떼어가는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하루 600루피에 좋은 포터를 소개 받은 터라

그를 만나러 루클라 시내의 쿰부롯지로 향한다.[목탁소리(www.moktaksori.org) 법상]

 

[루클라 공항 풍경]  

 

 [루클라 공항 활주로와 루클라 마을]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