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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14 스님! 시어머니와 관계가 좋지 않아요
  2. 2009.08.27 드러냄, 참된 관계의 시작

시어머니와 13년 동안 잘 지내다가 최근에 관계가 너무 안좋아졌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너무나 화가 나서 말도 하기 싫고 얼굴 보기도 싫으시다며 식사도 제가 출근후에 혼자서 따로 하십니다. 밥도 먹기 힘들고 잠도 잘 못자고 직장에서도 일을 하기가 힘드네요.

 마음에서 문제가 완전히 풀리고 나면 현상 세계는 발맞추어 함께 따라 풀려집니다. 이 세상은 언제나 마음이 투영되어 나오는 곳이기 때문에, 내 안에서 문제가 해결되면 나와 연결되어 있는 세상의 문제도 해결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잘 들여다 보세요. 내 안에 어떤 원인이, 혹은 어떤 생각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는가! 하고.

그러나 도대체 어머님과 왜 이렇게 틀어지게 되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다면, 그래도 상관 없습니다. 어쨌든 그 모든 원인은 나에게 있다고 인정하고 들어가세요. 사실은 그 모든 것이 내 안의 문제거든요. 그러니 사실은 이 모든 것이 내 안의 문제고, 나 때문에 벌어진 문제라고 인정하고 참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힘겨운 바깥 경계를 만나게 한 내 내면의 무언가에 대해 참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님 앞에 섰을 때 매 순간 깨어있으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져요. 그러나 어머님을 향한 참회와 자비의 마음으로 그 앞에서 깨어있게 되면 법우님의 깨어있음의 힘이 어머님의 마음을 녹일 것이고, 법우님의 마음 또한 평화롭게 해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실마리를 제공해 줄 것입니다. 어머님 때문에 일도 잘 안 잡히고, 불편한 그 마음도 잘 관찰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자신과의 약속을 매번 어깁니다. 특히 새벽기도 해야지 하는 결심만 할 뿐 제대로 실천을 못 합니다. 왜 저는 매번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기만 할까요. 이젠 저에게 화가 납니다.

 수행은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새벽기도를 해야겠다 싶으면 알람을 켜 놓고 일어나면 되고, 만약 도저히 못 일어나겠었다면 조금 더 노력해 보거나 아니면 그냥 자면 됩니다. 단순하게 사세요. 그냥 잤다고 해서 알람이 울렸는데 그냥 잤다는 그 단순한 상황에, '내가 졌다'고 하는 상을 만들어 놓고, 연이어 두번째 세번재 화살을 맞느라고 '나는 끈기가 부족하다'거나, '나는 왜 이렇게 못난 사람이지'라거나 하고 연이어 생각으로 전투를 이어가지 말라는 말입니다. 생각이 많으면 그것이 중생이고, 생각을 놓아가면서 단순하게 살면 그것이 바로 수행인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하는 것도 물론 좋습니다. 해 보는데까지 해 보세요. 다만 정 못하겠다 한다면 왜 새벽만을 고집해요. 낮에 하면 되고, 저녁때도 하면 됩니다. 새벽이라는 어떤 때에 어떤 실체적인 '수행 잘 하는 때'라는 고정된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저마다의 자리에서 자신이 행할 수 있는 최선을 닦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수행과의 투쟁에서 승자가 되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보세요.


어디에서 보니 '남에게서 보는 것은 내안에도 있다'는 말이 있데요. 모든 경계가 나의 과보로서 온것이라고 생각하면 '내 업의 나툼'이라고 하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만, 그런 경계를 내안에도 가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잘 이해가 가지를 않습니다.

 바깥 경계에서 나타나는 모든 것이 내 안에 비춰져서 내 안에 비춰진 바깥 경계를 우리는 인식하거든요. 그러니 사실은 바깥 경계를 인식하는게 아니라 내 안에 비춰진 경계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바깥 경계는 좋거나 나쁘거나 하지 않지만 우린 그 경계를 가지고 좋다고 나쁘다고 분별하잖아요. 그 자체가 바깥 경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 내면에 비춰진 바깥 경계를 보고 있는 것이다, 즉 그게 바로 내 내면을 보고 있는 것이란 뜻입니다.

외부경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면의 거름망, 내면의 색안경으로 걸러 왜곡해서 받아들인다는 말을 이해하시겠지요? 남이 한 하나의 행동을 가지고, 그게 좋으니 나쁘니 판단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무엇이 하는 것이지, 그 사람 자체나 행동 자체는 아무런 분별도 없어요. 그래서 동일한 어떤 사람의 행위가 어떤 사람에게는 호의적으로 다가오고, 어떤 이에게는 나쁜 행위로 다가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나에게 '키가 작고 못생겼다'고 했다면 우리는 키가 작다고 욕을 하는군! 괘씸한 녀석! 너는 나보다 더 못생겨놓고! 정말 내가 그렇게 못 생겼나? 아이 짜증나! 수술을 해 볼까! 저 녀석 손좀 봐 줄까 하면서 온갖 생각, 분별, 시비, 판단 등을 만들어 냄으로써 그것을 나쁘게 받아들이겠지만, 부처님께 누가 '키가 작고 못생겼다'고 했다면 부처님은 그저 아주 단순한 하나의 말로써 키가 작으니 작다고 했구나, 저 사람 기준(색안경)으로 내가 못생겨 보였구나 하고 아주 단순하게 받아들이고는 그것으로 끝이란 말입니다.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그러니 어때요? 어떤 경계든 우리는 그 경계가 아닌 내 안에 있는 것을 받아들일 뿐입니다. 그러니 똑같은 경계를 부처님은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우리는 차별, 분별, 성냄 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Posted by 법상




대인관계의 핵심,
그것은 바로 나를 활짝 열어 보이는 데 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가.
그렇다면 깊은 관계는 시작될 수 있지만,
여전히 나를 숨기려 하고, 치장하려 하고,
모든 것을 보여 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대의 모든 관계는 피상적일 수 밖에 없다.

피상적인 관계를 맺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은
즐거움이 아닌 부담이고 괴로움이다.
그 사람 앞에서는 끊임없이 연극을 해야 한다.
연극에서 실수는 용납될 수 없다.
실수하지 않으려면 계속해서 힘을 주고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그런 관계는 자연스럽지 못하다.
억지스럽고 에너지만 끊임없이 낭비 될 뿐이다.
겉으로는 웃고 있을 지 몰라도
그 깊은 속에서는 웃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린 언제나 습관처럼 세상을 향해 웃고는 있지만
과연 그 웃음이 진정성을 띈 것인가.
존재 깊은 곳에서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자연스레 웃는 것인가.

자연스러운 관계란
모든 것을 다 드러낼 수 있는 관계다.
내 모든 것을 드러내,
하나도 감추지 않았을 때 비로소 자유롭다.
상대도 나도 마치 혼자 있는 것 처럼 편안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런 깊은 관계를 맺기를 의도적으로 원하지 않는다.
피상적이고, 즉흥적이며,
치고 빠지기 식의 표면적인 만남만이 있을 뿐,
자비와 사랑이 바탕 된 깊은 관계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그 연유는 바로 아상 때문이다.
'나다'하는 상이 있으면
나를 좀 더 그럴싸하게 포장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고,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나쁜 부분을 감춰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이기 보다는
잘 치장된, 잘 포장된 나를 보여야만 인정받기 쉽다.

그런 온갖 종류의 화려한 가면을 쓴 사람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오고
가면과 가면이 마주보며
표피적인 대화와 가벼운 농담,
혹은 때때로 육체적이고 욕망적인 만남으로
외로움을 달래는 흔들리는 사회, 희뿌연 거리,
텅 빈 존재감과 관계들을 우린 얼마나 자주 목격하게 되는가.

자신이 부족한 존재임을,
많은 문제를 가진 사람임을
겸손한 마음으로 세상에 드러내라.
그렇게 나를 발가벗기고 상대 앞에 투명하게 서 보라.

꽉꽉 동여매고, 잔뜩 껴입고 있을 때
우린 세상을 향해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과 다름 없다.
사기꾼은 늘 불안하고 초조하고 걱정스럽다.
행각이 탈로날까 늘 노심초사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늘 평안하지를 못하고
근심걱정에 시달리는 것은 아닌가.

좀 더 깊이 들어가
조금 더 투명하게 다가서라.
드러내고 나면 모든 관계는 옹달샘처럼 투명해질 것이다.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