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9.11 행복해지는 두 가지 방법
  2. 2007.12.12 새벽에 깨어있는 사람




행복에 이르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욕망을 가득 채웠을 때 오는 행복과
또 하나는
욕망을 비웠을 때 오는 행복이 그것입니다.

욕망을 가득 채워야 행복한데
그냥 욕망 그 자체를 놓아버리면
더이상 채울 것이 없으니
그대로 만족하게 되는 것이지요.

전자의 행복은
또 다른 욕망을 불러오고
잠깐 동안의 평온을 가져다 주며,
유한하기에 헛헛한 행복이지만,

후자의 행복은
아무것도 바랄 것 없이
그대로 평화로운
무한하고 고요한 행복입니다.

모든 성자들이
'마음을 비워라'
'그 마음을 놓아라'
하는 이유는
바로 욕망을 비웠을 때 오는 행복이
지고한 참된 행복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엇에 욕망을 가지고 있는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충족되었을 때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가장 되고 싶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가만히 마음을 비추어 보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 놈이
지금 이 자리에서 비워야 할 것들입니다.

비운다는 것은
하지 않음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걸리지 않음, 집착하지 않음을 이르는 것입니다.
언제라도 포기할 수 있고,
결과에 연연해 하지 않을 수 있음을 말입니다.

마음 비우기의 참 큰 매력은
비우고서 했을 때
그 때 정말 큰 성취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이룬 성취는
이미 나를 들뜨게 하지 않는 평온한 성취입니다.
또한 설령 성취하지 못하였더라도
내 마음 비웠기에
아무런 괴로울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채우는 행복
비우는 행복

자!
어떤 행복을 만드시겠어요?






그 어떤 경계가 닥치더라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세요.
인정하지 못할 때, 받아들이지 못할 때
괴로움은 옵니다.

경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무언가 경계에 대한 분별을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대상에 대한 집착이 생깁니다.
경계를 두 가지 극단의 분별로 몰아갑니다.

음식을 먹을 때
맛이 있고 없고를 분별하기 전에
음식 그 자체로써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인정했을 때 음식 은 그저 음식일 뿐입니다.
맛있는 음식이거나 맛없는 음식이 아닙니다.

온전히 인정하지 않으면
음식이란 대상에 대해 맛 이 있고 없고 등의
온갖 분별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며
그 분별은 음식에 대한 집착으로 비롯되는 것입니다.

맛이 없 다는 것은
이 음식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받아들이지 못하면 내 마음이 괴롭습니다.
그러나 음식을 받아들인 다는 것은
인연따라 온 음식을 분별없이 그냥 먹는다는 말입니다.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있기 때문 입니다.
내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기 때문입니다.

내가 없어질 때
우리는 일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 다.

인정하지 못할 때
분별과 집착 그리고 괴로움은 시작되지만,
일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의 마음 은 대상에 상관없이 평온해 지는 것입니다.

괴로움의 실체는 ‘인정하지 못함’입니다.
인정하는 순간 괴로움은 사라집니 다.

대장부 수행자는
다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건 받아들이고 저건 못 받아들인다면
그건 졸부의 못난 마음입니 다.

수행자는
내 앞에 펼쳐지는 그 어떤 경계라도
다 받아들이고 다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받아들이는 일이 바로 녹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수행의 가장 큰 적은
게으름과 편해지려는 마음입니다.

아상 은 끊임없이
내 몸뚱이 편해지는 쪽으로 움직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모든 행동의 근본은 편해지려는 마음입니 다.

사실 모든 행동은
편해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돈을 버는 것도 편해지려고 하는 것이고,
사람을 만나 는 일, 무언가를 추구하는 일에서
사랑하는 일이며 잠을 자는 일 조차
편해지기 위한 일들입니다.

수행이라는 것은
바 로 이 편해지려는 마음을 닦는 것입니다.
편해지려는 그 하나의 목적으로 일을 하고자 하고
편해지지 않는 일들은 하지 않으려 고 애를 씁니다.

하기 싫은 일이라는 것은
우리 마음을 편하지 않게 하는 일들입니다.
하기 싫은 일을 할 때 우리 마음 은 편치 않습니다.
수행이 편해지려는 마음을 닦는 것이라 할 때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큰 수행이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수행은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수행하지 못한
어리석은 중생의 마음이란
‘절대 하기 싫은 것 하 지 않는’ 마음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고
우리 몸 편하게 하는 일만 하고 산다면
우리의 삶 은 온갖 번뇌에 휩싸여
내 안의 맑음과는 자꾸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게을러서 일찍 일어나기 싫고,
아침에 일어나 108 배 하기 싫고,
화를 내는 상대방을 따뜻하게 품어주기 싫고,
맛없는 음식은 먹기 싫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기 싫고,
그야말로 하기 싫은 일은 하기 싫은 것입니다.

생활 수행자라고 한다면
그런 하기 싫은 일을 찾아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수행이기 때문입니다.

수행을 하긴 해야겠는데 하지 못하는 이유는
수행이 몸뚱이 편 하게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꾸만 편한 수행을 찾는 것은
수행과 멀어지는 일이기만 합니다.

옛 스님들은 수 행의 어려움을
‘도를 구할 때 뼈를 부수어 골수를 뽑아내듯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꾸 쉽게 쉽게만 하려는 우 리 몸뚱이 착심을
잘 지적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수행이 잘 되는 날 수행 잘 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며 그리 큰 공덕이 되지 못하지만,
수행 하기 싫고 수행이 안 된다 싶을 때
그 때 ‘싫은 마음’ 조복 받고 정진하는 것이
그것 이 참된 수행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날마다 새롭게 일어나라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법상 (무한,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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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법상
새벽 예불을 모시고
대웅전 계단 앞에 섰더니
오늘따라
짙은 안개가 이 작은 산사를 한껏 감싸고 있습니다.



저 작은 텃밭도
새벽 짙은 안개 속에서
더없는 싱그러움이 느껴집니다.



새벽 이슬을 머금고
이른 아침부터 싱그럽게 깨어있는
여린 채소들을 보고 있노라면,
새벽녘에도 잠들어 있는 게으른 수행자를 경책해 주는
엄한 스승님을 만난 것 같은 고마운 행복을 느끼기도 합니다.



터벅 터벅 걷는데
이 이른 새벽부터 밭에 나가
일을 하시는 아주머님들 손길이 바쁩니다.



이른 새벽에 밭에 나가 일을 하시는 분들을 뵈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서 미소가 띄어지고
그 분의 생기어린 하루를 위해 기도를 하게 됩니다.



밭에 나가 일하는 것 뿐 아니더라도
이른 새벽에 깨어나 명징한 하루를 시작하시는
모든 분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런데요.
새벽 이 청청한 기운을
가만히 느끼며 걷다 보면
그 어느 때 보다 더없이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새벽!
말만 들어도 기운이 나고
생기가 돌고 싱그러움이 가득한 단어입니다.

새벽엔
길을 걸으세요.
새벽에 걷는 숲길은
생각만 해도 더없이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새벽 숲길을 걷다 보면
만물이 막 생동하며 깨어나는
마치 어린 찻잎 같은 생기로움이 느껴집니다.



주위에 숲이 있다면
마음을 맑게 비우고
새벽에 일어나 그 숲을
터벅 터벅 거닐어 보시길...

물론 숲길이 아니더라도
새벽에 마음을 비우고
천천히 걸을 수 있는 사람은
그 마음이 얼마나 한가하며 여유롭겠나 싶습니다.

새벽이 참 좋습니다.

한쪽에선 어둠이 막 걷히면서
또 다른 한 쪽에서는 여린 빛이 세상을 수 놓는
그 가운데
길을 걷고 있노라면 난 행복을 느낍니다.

조금 더 걷다 보면
저 산 너머에서부터
붉은 해가 불쑥 솟아오르는데
바로 그 대자연의 클라이막스를 두 눈으로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에도 환한 빛 한 줄기 수 놓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세상에는
새벽에 잠을 자는 사람과
새벽에 깨어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새벽에 습관적으로 잠에 골아 떨어져 있는 사람과
일찍 일어나 맑고 청정한 정신으로
몸도 마음도 맑은 휴식을 취하며
새로운 하루를 준비할 수 있는 사람.

새벽에 잠을 자 두는 것만이 휴식일 수는 없어요.
오히려 제 생각에는
조금 피곤하더라도 새벽에 맑게 깨인 정신으로 일어나는 편이
더없는 영혼의 휴식을 가져다 줄 것 같습니다.

물론 저 또한
새벽 예불이 끝나고
새벽에 잠에 떨어지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날은
왠지 컨디션이 그냥 저냥 합니다.

새벽에 맑게 깨어있으면서
좌선에 들거나
산길을 거닐거나
텃밭에서 일을 하거나,
그도 아니면 창문 활짝 열어 두고
째잘거리는 새소리 들으며 좋은 책을 읽거나,
그런 날은
하루 종일 상쾌하고 거뜬하지요.

잠도 버릇이고 습관이데요.
처음에는 새벽에 일어나기 힘들어도
한 몇 일 큰 맘 먹고 일어나
그 밝은 기운에 몸을 맡기고
대자연과 함께 일어나면
우리 몸도 마음도 대자연과 하나되어 흐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또한 대자연의 일부이듯
대자연이 깨어날 때
우리도 함께 깨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대지와 함께 일어나 호흡하고 움직이며
온전히 법계와 하나되는
또 하루의 삶을 시작할 수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대자연이 새로운 하루를 맞이했는데
아직까지도 이불 속에서 잠에 골아 떨어져 있다면
우리의 영혼도 함께 잠에 들어
맑은 깨어있음을 방해하고
삶의 빛을 잃어 버리게 될 것 같습니다.

새벽에
잠을 자는 사람이 되지 말고
새벽에
깨어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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