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와 13년 동안 잘 지내다가 최근에 관계가 너무 안좋아졌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너무나 화가 나서 말도 하기 싫고 얼굴 보기도 싫으시다며 식사도 제가 출근후에 혼자서 따로 하십니다. 밥도 먹기 힘들고 잠도 잘 못자고 직장에서도 일을 하기가 힘드네요.

 마음에서 문제가 완전히 풀리고 나면 현상 세계는 발맞추어 함께 따라 풀려집니다. 이 세상은 언제나 마음이 투영되어 나오는 곳이기 때문에, 내 안에서 문제가 해결되면 나와 연결되어 있는 세상의 문제도 해결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잘 들여다 보세요. 내 안에 어떤 원인이, 혹은 어떤 생각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는가! 하고.

그러나 도대체 어머님과 왜 이렇게 틀어지게 되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다면, 그래도 상관 없습니다. 어쨌든 그 모든 원인은 나에게 있다고 인정하고 들어가세요. 사실은 그 모든 것이 내 안의 문제거든요. 그러니 사실은 이 모든 것이 내 안의 문제고, 나 때문에 벌어진 문제라고 인정하고 참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힘겨운 바깥 경계를 만나게 한 내 내면의 무언가에 대해 참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님 앞에 섰을 때 매 순간 깨어있으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져요. 그러나 어머님을 향한 참회와 자비의 마음으로 그 앞에서 깨어있게 되면 법우님의 깨어있음의 힘이 어머님의 마음을 녹일 것이고, 법우님의 마음 또한 평화롭게 해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실마리를 제공해 줄 것입니다. 어머님 때문에 일도 잘 안 잡히고, 불편한 그 마음도 잘 관찰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자신과의 약속을 매번 어깁니다. 특히 새벽기도 해야지 하는 결심만 할 뿐 제대로 실천을 못 합니다. 왜 저는 매번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기만 할까요. 이젠 저에게 화가 납니다.

 수행은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새벽기도를 해야겠다 싶으면 알람을 켜 놓고 일어나면 되고, 만약 도저히 못 일어나겠었다면 조금 더 노력해 보거나 아니면 그냥 자면 됩니다. 단순하게 사세요. 그냥 잤다고 해서 알람이 울렸는데 그냥 잤다는 그 단순한 상황에, '내가 졌다'고 하는 상을 만들어 놓고, 연이어 두번째 세번재 화살을 맞느라고 '나는 끈기가 부족하다'거나, '나는 왜 이렇게 못난 사람이지'라거나 하고 연이어 생각으로 전투를 이어가지 말라는 말입니다. 생각이 많으면 그것이 중생이고, 생각을 놓아가면서 단순하게 살면 그것이 바로 수행인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하는 것도 물론 좋습니다. 해 보는데까지 해 보세요. 다만 정 못하겠다 한다면 왜 새벽만을 고집해요. 낮에 하면 되고, 저녁때도 하면 됩니다. 새벽이라는 어떤 때에 어떤 실체적인 '수행 잘 하는 때'라는 고정된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저마다의 자리에서 자신이 행할 수 있는 최선을 닦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수행과의 투쟁에서 승자가 되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보세요.


어디에서 보니 '남에게서 보는 것은 내안에도 있다'는 말이 있데요. 모든 경계가 나의 과보로서 온것이라고 생각하면 '내 업의 나툼'이라고 하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만, 그런 경계를 내안에도 가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잘 이해가 가지를 않습니다.

 바깥 경계에서 나타나는 모든 것이 내 안에 비춰져서 내 안에 비춰진 바깥 경계를 우리는 인식하거든요. 그러니 사실은 바깥 경계를 인식하는게 아니라 내 안에 비춰진 경계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바깥 경계는 좋거나 나쁘거나 하지 않지만 우린 그 경계를 가지고 좋다고 나쁘다고 분별하잖아요. 그 자체가 바깥 경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 내면에 비춰진 바깥 경계를 보고 있는 것이다, 즉 그게 바로 내 내면을 보고 있는 것이란 뜻입니다.

외부경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면의 거름망, 내면의 색안경으로 걸러 왜곡해서 받아들인다는 말을 이해하시겠지요? 남이 한 하나의 행동을 가지고, 그게 좋으니 나쁘니 판단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무엇이 하는 것이지, 그 사람 자체나 행동 자체는 아무런 분별도 없어요. 그래서 동일한 어떤 사람의 행위가 어떤 사람에게는 호의적으로 다가오고, 어떤 이에게는 나쁜 행위로 다가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나에게 '키가 작고 못생겼다'고 했다면 우리는 키가 작다고 욕을 하는군! 괘씸한 녀석! 너는 나보다 더 못생겨놓고! 정말 내가 그렇게 못 생겼나? 아이 짜증나! 수술을 해 볼까! 저 녀석 손좀 봐 줄까 하면서 온갖 생각, 분별, 시비, 판단 등을 만들어 냄으로써 그것을 나쁘게 받아들이겠지만, 부처님께 누가 '키가 작고 못생겼다'고 했다면 부처님은 그저 아주 단순한 하나의 말로써 키가 작으니 작다고 했구나, 저 사람 기준(색안경)으로 내가 못생겨 보였구나 하고 아주 단순하게 받아들이고는 그것으로 끝이란 말입니다.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그러니 어때요? 어떤 경계든 우리는 그 경계가 아닌 내 안에 있는 것을 받아들일 뿐입니다. 그러니 똑같은 경계를 부처님은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우리는 차별, 분별, 성냄 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Posted by 법상





 

 

 

어머니와 아버지의 불화는 점점 깊어가고, 그 와중에 형제 중 하나가 엇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의 갈등을 바라보는 것도 괴롭고, 형제가 잘못된 길에 들어서는 데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해 답답한 마음뿐입니다. 부모님 연세를 생각해보면 이제 와서 성격을 바꾸기는 힘들 것으로 같은데 그렇다고 이혼을 권유할 수도 없고… 온 가족이 정말 괴롭습니다.


아마도 이런 경우에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이런 생각이 깔려 있기 쉽습니다. ‘부모님과 형제는 온통 문제 덩어리야. 나는 잘 하는데 부모님과 형제들이 성격도 나쁘고 지혜롭지 못하니 이들과 함께 살기 너무 힘들어’ ‘부모님 성격만 변하면 가족이 다 행복해질텐데’ 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이 모든 문제를 ‘부모님 탓’ ‘형제 탓’으로 돌리면서 나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나에게는 별 문제가 없고, 내가 어떻게 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 부모님이 바뀌어야 풀리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불교에서 '모든 것은 내 문제다'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지금 그 상황은 겉으로 보기에는 부모님과 형제의 문제로 보이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러한 가족 속에서 태어나 살게 된 나에게도 똑같은 공유된 잘못이 있거나, 공유하고 있는 공업(共業)이 있는 것입니다. 더 큰 의미의 인과와 윤회의 틀에서 본다면 그런 가족 사이에 내가 태어나게 된 것 자체가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업(業)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내가 그 가족들과 분명 풀어야 할 업이 있다거나, 가족들의 좋지 않은 모습들이 나의 또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엄격히 말하면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이라는 인연은 고스란히 내 업을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내가 그들에 대해 미워하는 부분은 사실 내 안에도 있습니다. 아니 내 안에 있지 않은 것은 내 삶에서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모든 고통은 외부가 아니라 우리 내면이 밖으로 투영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듯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내 업의 생생한 비춤이기에 그들의 모습 속에서 나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해 상대방의 잘못이고, 상대방을 바꾸고 싶지만, 그것이 내 생각대로 잘 되지 않을 때는 다시금 되돌아 '나'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상대를 바꿀 수 있다면 물론 좋겠지요. 그러나 어지간해서는 상대방들이 잘 바뀌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바뀌지 않는 상대방을 붙잡고 늘어지기 보다 가장 쉽고 직접적인 나 자신을 붙잡고 문제를 해결 해 나가는 편이 더 빠르고 근원적입니다. 어차피 그 상황이 상대방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와 연결되어 있는 내 안의 문제이기도 하다면 문제 해결 방법은 두 가지가 아니겠어요?

하나는 상대를 바꾸는 것이고 하나는 나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자는 너무 어려울뿐더러 전자 보다는 후자 쪽이 훨씬 더 근원적이고 그 영향력이 깊습니다. 상대를 바꾸는 것이 더 빠를 것 같고, 더 직접적일 것 같지만, 나 자신을 변화시킴으로써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근원적인 해결책이며 그 어떤 무리수도 두지 않는 조화로운 방법입니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고집불통인가, 내 부모님은 왜 안 바뀌려고 하는가하고 답답해하겠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을 바꾸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내가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바로 보십시오. 세상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입니다. 내가 변해야 세상도 변합니다. 똑같은 세상일지라도 마음이 바뀌면 세상은 다르게 보입니다. 물론 그 뿐 아니라, 내가 바뀌면 상대가 바뀌고 가족이 바뀌며 사회가 바뀌고 세상이 바뀝니다.

        내가 맑아지면 그 맑은 향기가 내 주위를 감싸고 이 법계(法界)를 향기로 물들여 우리 주변까지 함께 밝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내 업이 완전히 맑고 청정해 졌다면 유유상종으로 내가 윤회를 할 때도 내 업에 상응하는 인연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문제 있는 부모를 만났다는 생각은 다시 말하면 내 안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소식입니다. 내 안에 문제가 외적인 환경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최악의 상황일지라도 상대를 바꾸려고 애쓰기보다, 먼저 나 자신부터 변화를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 형제자매를 바꾸려고 애쓰고, 바뀌지 않는 것을 보고 괴로워하기 보다는, 오히려 내가 더욱 더 맑아지고 밝아지지 못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냉철하게 비추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조금씩 바뀌어 가면 가족 또한 조금씩 바뀌어 가게 될 것입니다. 내가 진흙 속에 피는 연꽃처럼 더욱 더 향기로워져야겠다는 발원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 누가 들어주나요] 중에서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