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 생에서 해야 하는
유일한 일은
이미 주어져 있는
놀랍고도 아름다운 삶을
그저 눈부시게 즐겁게
누리고 만끽하면서
행복하게 살아내는 일입니다.

물론 살다가 인연이 다해
떠나게 될 날이 온다면
설레는 마음으로
또 다른 생으로의 여행을
가볍게 준비하는 것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기쁨 중 하나이지요.

건강한 몸으로
여행을 떠나는 즐거움 뿐 아니라,
병약한 몸으로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것 또한
크고 넓게 본다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색다른 인간계의
체험현장이기도 합니다.

바로 지구별 인간계라는 것 자체가
고해라는 괴로움의 장치들을
삶의 연극 속에 적절히 가미시킴으로써
한 편의 드라마를 완성시켜
무언가를 배우게 하는
깨달음의 행성이기 때문입니다.

오죽 했으면 천상세계 하늘신들은
이 고해바다인 인간계로
여행을 오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기 까지 한다고 합니다.

이것을 경전에서는
맹구우목, 인신난득이라고 해서
사람으로 태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람 사는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해서 좋은 일들만 지속되는 삶은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조금 위험부담이 있어도
박진감 넘치는 삶,
그 속에 애환도 있고,
우여곡절도 있지만,
그것을 통해 지혜를 깨닫는 삶
그것이야말로 진정 
름답고 눈부신 삶이 아닐까요?

이렇게 보았을 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그 어떤 것도 나쁘거나
괴로울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은 주어진 그대로
완전하고도 완벽한
깨달음의 시나리오의
한 스토리에 불과할 뿐입니다.

깨달음의 시나리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삶입니다.
삶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구도의 장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이 말을 다르게 살펴보면,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구도의 장이 바로 삶이지만,
사실은 깨달음을 향해
나아갈 것도 없습니다.

사실은 이미 깨달아 있기 때문이지요.
이미 깨달아 있는 존재이지만,
스스로 망상분별을 하고,
둘로 나누어 높고 낮음,
좋고 나쁨을 구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착각 속에서의
괴로움이 생겨난 것일 뿐입니다.

진짜 괴로움이 아닌
망상 속에서의 괴로움이기 때문에
사실은 깨달음으로
나아간다는 표현보다는,
스스로 만든 착각과 망상 속에
스스로 빠져있다가
그 속에서 빠져나오는
정신적인 과정이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자기 스스로
더 높은 가치를 정해 놓은 뒤
‘지금은 너무 부족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지요.

나는 얼마 만큼의 연봉은 받아야 해,
나는 어느 대학 이상은 가야 해,
아들 성적이 어느 정도는 나와야 해,
남편은 어느 계급까지는 진급해야 해,
너는 나를 존중해 줘야 해,
아들은 부모 말을 따라야 해,
내 몸은 건강해야 해 등
셀 수도 없이 많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삶의 궤범을 정해 놓고
스스로 거기에 얽매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내가 스스로 규정한
그 궤범에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의외로 삶의 문제들은
쉽게 풀리기 시작합니다.

혹은 스스로 남들과 비교하면서
‘저렇게’,
‘저만큼’,
‘저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고 규정짓기도 하지요.

스스로 그렇게
남들과의 비교, 경쟁,
질투를 시작해 놓고
스스로 정한 만큼 되지 않기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대로,
이처럼,
나답게 사는 것은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사실은 바로 그런 생각,
비교분별만 없다면
세상은 있는 그대로 아름답습니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특정한 틀에 끼워 맞추려고
궤범을 만들지 마세요.

그 틀만 깨고 나올 수 있다면,
그 포승줄만 끊고 나올 수 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이미 드러나 있는
삶의 완전성과 행복을
당장에 바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