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고 싶은가? 자유롭고 싶은가? 성격을 바꿔보고 싶은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깨달음을 얻고 싶은가? 그 무엇이라도 좋다. 무언가를 얻고 싶거나 되고 싶다면 그 답이 여기에 있다.

 

그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사실은 지금 이 순간, 당신 앞에 펼쳐져있는 삶 그 자체가 이미, 그 모든 답을 주기 위해 거기에 그런 모습으로 있는 것이다.

 

당신에게 주어진 현실이야말로 그 모든 것의 답이며, 실상이며, 진실이다. 그것이 이 세계를 법계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 곳은 법의 세계, 진리가 펼쳐진 세계다. 이미 당신 자체가, 당신의 삶 자체가, 있는 그대로의 진실 그 자체다.

 

다만 당신은 매 순간 펼쳐져있는 있는 그대로의 진리의 현실을 머릿 속으로 해석하고, 판단하고, 좋아하면서 더 붙잡지 못해 안달하거나, 싫어하면서 거부하고 도망치려 애쓰기 때문에 그 진리의 삶을 세속적인 고통의 삶으로 변질시켰을 뿐이다.

바로 그러한 당신의 망상과 생각만 없다면 세상은 있는 그대로 진실하다. 생각과 망상으로 해석하기 이전에, 있는 그대로 그저 그렇게 있는 그저 '그러할 뿐'인 이 세상과 삶을 그저 그렇게 내버려둔다면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온전할 뿐이다.

 

당신의 아들이 A라는 대학을 갔다면 그것은 그저 ‘그러할 뿐’이지 좋거나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 대학을 간 것을 영광으로 알고 기뻐할 것이고, 다른 사람은 그 정도의 대학 밖에 못 간 것에 대해 괴로워 할 것이다. 사람에 따라 이처럼 분별하고 살지만, 사실 근원에서 본다면 그것은 기쁘거나 괴로워할 일이 아니라, 그저 그럴 뿐인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이 이와 같다. 심지어 아들의 다리가 부러졌을지라도 그것은 그저 그럴 뿐이지 우리 생각처럼 좋거나 나쁜일은 아니다. 다리가 부러진 덕분에 전쟁 때 다른 사람은 모두 징집되어 끌려갔지만 아들은 살 수 있어서 기뻐했다는 세옹지마의 비유도 이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사실 그것은 고민거리가 아니라 그저 그럴 뿐인 중립적인 경계일 뿐이다. 그것이 정말 나쁜 일인지 아닌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 모든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모두가 참된 실상이며, 우리를 돕기 위해, 깨닫게 해 주기 위해 나타난 원만실상이라는 것이다. 나빠 보이는 일이 일어날 수는 있을지언정 근원에서는 언제나 우리를 돕기 위한 일들만 일어난다는 뜻이다.

 

무언가가 되고 싶거나, 원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무언가 되어야 하거나, 얻어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그 마음만 없다면 당신은 이 자리에서 그 모든 것이 되어 있다. 우리가 이 생에서 해야 할 것은 오직 이것 뿐이다.

 

여기에 무슨 수행이 필요하고, 무슨 노력이 필요하며, 무슨 방법이 필요한가? 그 어떤 인위적인 노력이나 애씀도 없이 그저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기만 하면 될 뿐이다. 그저 지금 이대로를 받아들이면 될 뿐이다. 그저 망상만 일으키지 않으면 되고, 좋다거니 나쁘다거니 하는 판단만 그치면 된다.

 

이 공부는 이처럼 너무나도 쉽다. 너무 쉬워서 어렵게 느낄 뿐이다. 그동안 분별 망상으로 수도 없이 허망한 관념과 세계와 욕망과 집착을 복잡하게 만들어 놓았다보니, 그것을 내려놓기 어려울 뿐이다.

 

그러나 이 공부는 다시 내려놓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그냥 그 모든 인위적인 노력을 그치면 될 뿐이다. 지금까지 해 오던 그 모든 허튼 망상들을, 그저 하지 않으면 된다.

 

이토록 깨달음은 쉽다. 그래서 옛 선사는 깨닫는 것은 세수하다가 코 만지는 것처럼 쉽다고 했다.

 

너무 쉬워서 어렵게 느끼는 것이 바로 이 공부의 특성이다. 지금까지 해 오던 온갖 망상을 쌓아 올리던 쓸데없는 노력을 그저 단순하게 그치기만 하면 된다.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월~금, 07:50~08:00)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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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