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고지, 양떼들의 존재감

MBC를 지나 ABC로 가는 길은 이번 트레킹 중에서도 최고의 클라이막스다. 절정이란 말은 이럴 때 하는 것! 이 길은 사람의 길이 아닌 대자연의 길이요, 이 지구가 아니 어쩌면 우주 저 끝의 알 수 없는 근원에서부터 잉태된 태초부터의 선물일런지 모르겠다. 대 장엄의 서사시요,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소름끼치는 하모니가 지금 내 앞에서 이렇게 연주되고 있다.

지구상에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타박타박 발걸음을 옮기다 말고 몇 걸음 못 가 이내 걸음을 멈추고 서서 '아!' '아!' 하는 탄성을, 내가 지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이 모든 것을 느끼는 어떤 존재가 내 입을 빌려 마구마구 쏟아내고 있는 듯 하다.

ABC가 가까워지도록 바람이 약간 서늘할 뿐, 예상했던 것처럼 그리 차지는 않다. 저 멀리 ABC 너머 강가츌리와 안나푸르나 사우스의 차디찬 설봉을 스치고 왔을 바람치고는 춥다기 보다 청량감에 가깝다.

바람 맛이 아주 달다. 때때로 거세게 몰아치는 돌풍이 온몸을 적시는 느낌이 청청하다.

'휘~익', '슈~웅'

바람을 좋아하는 내게 이 산정의 바람은 안나푸르나가 나를 반기는 인사 같기도 하고 고마운 선물 같기도 하다. 황막한 좌우의 거친 산봉우리 중턱까지 양떼가 풀을 뜯으러 올라갔다.

이 4,000고지의 황량한 땅에서 그나마 졸졸 흐르는 계곡 좌우로 땅에 다닥다닥 붙어난 가난한 풀을 뜯는 양떼들이라니! 아! 이 풍경이 상상이나 되려나?! 직접 보지 않고는 그 어떤 뛰어난 시인의 묘사나 화가의 작품, 심지어 사진이나 HD 동영상으로 담을지라도 어찌 지금의 이 느낌을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훌륭한 시인이라도 양떼의 울음소리 하나 또렷이 담을 수 없고, 아무리 뛰어난 화가일지라도 저 황막한 산빛과 냇물의 투명한 빛을 담아낼 수는 없으며, 뛰어난 사진작가일지라도 이 청량한 바람 소리를 담지 못한다. 지금 이 순간, 이 느낌! 이 소리! 이 촉감, 이 빛깔과 향기를 어찌 인위적인 기계가 담아낼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이 순간, 이 대자연은 오직 지금 여기에서 다만 순간 순간 찰나찰나 느껴볼 수 있을 뿐! 이 느낌, 이 신과 나 사이의 직접적인 접촉, 대화, 이 느낌은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는 그 무엇이다.

인도와 히말라야에 오기 전에 만난 TV 브라운관 속의 설산과 안나푸르나는 지금 내가 온 몸으로, 온 존재로 만나고 있는 이 만남과는 달라도 크게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의 길과 자연의 길이 조화롭게 펼쳐진다. 억지스럽지 않고 소담한, 길에서 길로의 자연스런 이어짐. 이 곳에서는 인간도 하나의 자연일 수밖에 없다. 이 장대한 자연 앞에 어찌 인위적인 폭력이 끼어들 수 있단 말인가.

 

계획변경, 베이스캠프에서의 하룻밤

ABC에 도착한 시간이 아직 점심 전이다. 점심 즈음이 되면 구름이 낀다고 일찍 가야 ABC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을 거라던 앞선 여행자의 조언이 딱 맞아 떨어졌다.

MBC에서 ABC 중간 까지만 해도 청량하던 하늘에 갑자기 먹물을 빨아들인 것 같은 구름이 들어차기 시작하더니 ABC에 도착할 즈음에는 멀리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캠프의 롯지는 구름 속에 갇혔다.

ABC를 보고 내려가려던 계획이었지만, 어찌 이 풍경을 그저 힐끗 보고 정신 없이 바쁜 사람처럼, 혹은 오직 정상에 오르는 것만이 목적인 사람처럼 곧바로 발길을 돌릴 수 있단 말인가. 더욱이 예상하지 못했던 MBC와 ABC의 장쾌한 풍경은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들고 말았다. 그런데다가 꽉 들어찬 구름이 ABC의 풍경이 어떤지를 도무지 알 수 없게 만들어 놓았으니 오늘은 이곳에서 하루 묵기로 계획을 변경하기로 한다.

오후 내내 어둡고 무거운 구름들이 롯지 주변으로 배회를 하느라 때때로, 아주 때때로 구름 사이로 작은 창을 하나씩 만들어 거짓말처럼 저 멀리 설산의 속살을 애간장 태우듯 간간이 비춰주곤 한다.

4,200고지, 이 청량감 넘치는 고산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 마쉰다. 롯지를 한 바퀴 돌아본다. 이 높은 곳에서 이런 휴식의 장소가 있다는 것이 새삼 신기할 정도다. 지리산이나 설악산 산장에서도 보지 못했던 맛있는 음식들까지, 게다가 혼자 잠을 청하고 쉴 수 있는 독실까지 준비되어 있는 롯지가 새삼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진다.

안나푸르나가 토해 낸 맑은 숨이 내 안으로 들어오고 나간다. 코를 통해 저 아래 깊은 곳까지 아마도 온 몸의 맥과 혈을 타고 세포 하나 하나에 이르도록 몸 전체를 타고 흐른다. 가만히 가만히 바람을 느껴보면 그것이 호흡이라는 이름으로 바뀌면서 온몸에 감전되듯 전해져 나가는 그 흐름을 잡을 수 있을 것도 같다.

몸 안에 물줄기가 흐른다. 생명의 줄기를 타고 존재의 빈 공간 구석구석까지 사랑의 에너지를 입맞추듯 불어넣어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 이렇게 앉고 걷는 이 자리가 안나푸르나의 중심이요, 세상의 중심 자리가 아닌가 하는, 그리하여 내 존재가 그 중심에 우뚝 서서 이 장대한 우주길을 소요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온 존재를 활짝 열어두고 이 대자연에 모든 것을 맡긴다.

 

일몰, 마차푸차레와 빛의 장엄한 연주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시간이 멈춰버린 사이에 문득 서쪽 마차푸차레 봉우리가 구름 사이로 우뚝 솟아나더니 이내 황홀한 황금빛으로 물드는 것이 아닌가. 아무 소리 없이, 무슨 홍보나 귀뜸도 없이 홀연히 저홀로 저토록 찬연한 공연의 막을 올리고 있다.

자연이란 늘 이런 식으로 침묵 속에서 찾아온다. 인간의 방식과는 완전히 대조적이지 않은가. 사람들이야 무슨 조악한 것을 벌이면서도 그것을 홍보하랴 티내랴 자랑하랴 열을 올리지 않는가. 내가 무언가 대단한 것을 하고 나면 입이 근질근질해 참지를 못한다. 인간의 방식은 늘 과장과 과시와 어떻게든 자기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보라. 저 대자연의 방식은 언제나 침묵 속에서 이루어진다. 저토록 장엄한 연극의 막을 올리면서도 그 누구에게 귀뜸조차 하지 않고, 아무일도 아니라는듯, 그저 소담히 표연히 무위로써 제 할 일을 해 나갈 뿐이다.

마차푸차레와 태양빛이 합주해내는 연주는 그리 길지 않다. 한 5분에서 10분 여의 시간 동안 홀연히 시작되다가 앵콜도 없이 그저 자연스레 막을 내리는 것이다. 금빛 햇살이 봉우리를 따스히 감싸안더니 이내 흩뿌렸던 하늘의 빛조차 모두를 거두어간다.

대지는 다시 묵직한 어둠에 잠긴다. 산맥 산맥의 거칠 것 없던 힘줄도 햇살과 함께 종적을 감춘다. 큰 빛이 세상 모든 것을 거둬가면서 인간세상의 작은 빛들이 롯지 곳곳에 힘없이 피어나더니 그 또한 이른 시간에 꺼져간다.

산의 밤은 그래서 길다. 8시, 늦어도 9시면 모든 이들이 잠에 들곤 한다. 그러나 또 다른 빛의 향연을 그리워하는 몇몇 사람의 발걸음이 늦은 9시 롯지 곳곳에서 또 다른 탄성을 만들어낸다.

별이다. 은하수와 별과 그 빛에 잠시 숨었던 육중한 몸을 아스라이 보여주는 저 히말라야의 설빛, 또 다른 세상, 또 다른 우주, 또 다른 차원이 하나 뚝 떨어진 것 처럼.

낯선 아름다움, 타임머신을 타고 우주가 시작되던, 혹은 공룡들이 이 지구 행성 위를 소요하던 그 태초의 원시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제법 찬 바람이 저간의 틀에 박힌 정신과 일상에 성성한 죽비를 후려치듯 차디찬 경책이 영혼을 일깨운다.

오늘 밤은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눈을 감아도 정신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쟁쟁하다. 한참을 그렇게 누워서 창밖의 별을 헤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잠에 들었던 모양이다.

자다가 무슨 소리를 듣고 깨었는데, 이 적막강산에 표연히 거센 소리 하나가 산중을 덮친다. 저 머얼리 머얼리서 빙하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 와! 겉옷 하나를 껴 입고 뛰쳐나가 잠깐 사이에 들려 온 빙하 소리의 자취를 더듬어 보지만 더 이상 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거대한 설산, 거대한 침묵 속에 거대한 소리 하나가 보태지면서 잠자던 내 안에 거대한 파문 하나를 보탠다.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