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입산 첫 날의 풍경 - 안나푸르나 명상순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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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말라야 명상순례

안나푸르나 입산 첫 날의 풍경 - 안나푸르나 명상순례(2)

목탁 소리 2012. 5. 6.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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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산길을 걷는 신성함

홀로 바쁠 것도 없이 홀연한 가벼움을 짊어지고 맑게 비운 가슴으로 소담한 마을 나야풀을 지난다. 오후의 햇살 아래 마을에서는 막 산에서 내려 온 듯한 짐꾼 나귀들이 줄지어 짐을 풀어놓은 채 지친 피로를 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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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걷는 이 텅 빈 호젓함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산길을 너무 많은 인원이 함께 가게 되면 자신의 페이스와 호흡과 즐거움 보다는 상대방에게 맞춰야 하다 보니 산행이 자유로운 순간이 되기보다는 또 다른 산 아래 직장이나 관계 속에서와 똑같은 인간관계의 연장으로 전락하게 되는 수가 있다. 그래서 산행은 혼자면 가장 좋고, 아주 좋은 영혼의 깊이를 자연의 깊이처럼 서로 나눌 수 있는 그런 벗이 있다면 그것은 그 다음으로 쳐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초의 스님은 『다신전(茶神傳)』의 차 마시는 법에서 ‘혼자 마시는 차는 신성함(神)이요, 둘이 마시는 차는 뛰어남(勝)이지만 대여섯 명이 마시는 것은 그저 보통(泛)’이라 했고, 중국의 차에 대한 기록인 『다록(茶錄)』에서도 ‘혼자서 차 마시는 것을 이속(離俗)이라 하여 속세를 떠나는 즐거움이 있는 것이며, 둘이서 마시는 차를 한적(閑寂)이라 하여 고요한 것이라 했지만 대여섯이 마시는 차는 저속(低俗)이라 하여 속되다’고 했는데, 산길을 오르는 것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혼자서 산길을 걷는 것은 신성함이요 속세를 떠나는 이속과 다르지 않고, 정겨운 도반과 함께 산길을 걷는 것은 한적하고 고요하며 뛰어난 즐거움이 있지만 너무 많은 무리를 지어 산길을 걷는 것은 보통이거나 오히려 그 대자연의 출세간적 아름다움을 속되게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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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는 오르고 내리는데 2주 이상이 소요되다보니 어쩔 수 없이 포터나 가이드를 고용해야 하고, 또 나라에서도 엄격히 고용하도록 제한하고 있지만, 이 곳 안나푸르나는 베이스 캠프까지 다녀오는데 일주일 안쪽의 짧은 날들이 소요되고, 또 5,000 고지 아래의 다소 낮은 곳까지의 트레킹이다보니 애써 포터를 고용하지 않아도 좋다. 오히려 이런 곳이 고요히 홀로 산행의 즐거움을 만끽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 아닐까 싶다.

나 또한 처음에는 초행길에 포터 없이 걸으면 길을 잊어버리지는 않을까 걱정도 있었지만, 그저 나의 다르마에 내맡긴 채 걸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길을 잃게 되면 그 또한 하나의 에피소드요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사실 안나푸르나는 그리 힘들지도 않을뿐더러 곳곳에 산장과 식당들이 있어 길 잃을 염려도 없고, 꼭 포터가 있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홀로 이 산중의 고요함을 느껴보는데 공연한 불편함만 들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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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P Office를 지나며

아주 작은 시골 마을 나야풀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은 트레커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곳이니 만큼 작은 가게, 과일가게, 약국, 트레킹 용품점, 옷집, 식당들이 길 좌우로 줄지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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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을이지만 본격적인 트레킹 시즌이 시작되는 9월말이라 그런지 나야풀 거리는 활기차 보인다. 언뜻 보면 한국의 시골마을의 풍경을 연상케 하는 정겨운 또 눈에 익은 그런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다.

한 15분 정도 시원스런 계곡을 왼쪽으로 끼고 걷다 보면 그 계곡을 건너는 작은 다리가 하나 나오고 바로 그 다리를 건너면 좌우로 두 갈래 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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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바로 트레킹의 본격 출발지인 셈이다. 이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면 안나푸르나의 영봉들을 장쾌하게 전망할 수 있는 푼힐(Poon Hill, 3,210m) 전망대와 푼힐의 베이스 캠프 격인 고라빠니(Ghorapani, 2,860m)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길을 틀면 바로 나의 여행 목적지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가 나온다. 그리고 바로 이 갈림길의 중앙에 입산허가증 격인 퍼밋(Pemit)과 트레킹 허가증인 팀스(Tims)를 확인하는 ACAP(Annapurna Conversation Area Project) Office라는 작은 사무소가 마련되어 있다. 다리를 통과해 산에 오르는 모든 트레커들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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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만 해도 반정부 시위단체인 마오이스트(Maoist)들이 강제로 트레커들에게 돈을 걷었다고 하는데, 오랜 왕정을 철폐시키고 왕을 하야시키며 선거를 통해 당당히 대통령을 만들어낸 마오이스트들이 이제는 엄연한 정부의 주인이 되었으니 이곳 또한 합법적인 사무소가 된 것이다. 마오이스트는 중국 마오쩌뚱의 사상을 이어받아 그 정신을 사회에 구현하고자 하는 네팔식 공산당이라고 볼 수 있는데, 처음에는 정부에 대한 무장투쟁을 전개해 나가다가 결국에는 나라의 주인이 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마오이스트가 정권을 잡고 나서 부쩍 중국인 방문객과 트레커들이 늘었다고 한다. 실제로 동양 트레커다 싶으면 거의 중국 사람이 많이 눈에 띈다. 몇 년 전에만 해도 네팔에서 볼 수 있는 동양 외국인들은 거의가 한국 아니면 일본인이었다고 하는데, 마오이스트 집권이후에 중국인 트레커들이 대대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최악의 개미 누들 수프

퍼밋을 보여 주고 신원을 적은 뒤 한 시간 여를 걷다보니 점심식사를 하지 못한 생각이 났다. 배시계는 꼬륵꼬륵 자명종을 울려댄다. 가만 생각해 보니 오다가 만났던 몇 곳의 식당을 그냥 지나쳤던 것이 기억난다. 걷다 보면 또 나타나겠지 하고 계속 걷다보니 더 이상 식당은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걷다보니 식당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그야말로 간이 식당이나 될지 포장마차라고 불러야 할지 부르기도 애매한 그런 작은 간이 식당이 보여 요기를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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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메뉴랄 것도 별로 없지만 그래도 이 허름하고 지저분한 식당에서 특별한 것을 주문할 생각도 없고 또 시간도 없고 해서 그저 간단히 라면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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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을 구경하러 들어갔더니 눈에 들어오는 풍경, 설거지도 하지 않은 아마도 이전 사람에게 음식을 해 주던 것 같은 냄비에 그대로 물을 붓고 끓이기 시작한다. 순간 황당한 마음이 일어났지만 인도에서 그랬듯 이 정도야 그냥 지켜봐주며 웃어넘기기로 한다. 여기는 네팔이 아닌가. 인도에서 어떤 여행자가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인도에서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게 될 것”이라고 했던. 이곳 역시 내 마음 속의 상상 그 이하의 방식으로 라면을 끓이고 있다. 라면을 넣고 스프를 넣는 것이 아니라 무슨 카레 향기의 조미료와 미원을 넣는다. 거기까지도 그냥 너머가 준다. 그런데 그 곁에 있던 전에 쓰던 씻지 않은 국자, 개미들이 다닥다닥 붙어 음식찌꺼기를 먹고 있는 것이 눈에 훤히 보이는, 설마 설마 했던 그 국자가 곁에서 “잠깐!” 하고 소리 지를 틈도 없이 그냥 냄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 즈음에서 아예 포기를 하고 차라리 보지를 말자는 심정으로 제 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휴~~ 그래 여기는 네팔이니까”

이 한마디로 한국에서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던 너무도 많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용납이 되고 받아들여진다. 결국 내 앞에 배달된 네팔 라면 한 그릇에는 포크를 들 때마다 면발 사이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숨바꼭질하듯 작은 개미들의 시신이 입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오~ 관세음보살”

“아, 신이시여”

해외 여행길에서 배우는 것이 어쩌면 이런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견고하게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다른 나라에 가면 꼭 그렇지 만은 않을 수 있다는 것들을 깨닫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당연한 상식조차 어떤 나라에서는 전혀 상식이 아닐 수도 있다. 아니 때로는 그 상식이 완전히 무시되기도 한다. 우리에게는 경악할 만한 어떤 일들이 그들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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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vs 한국, 누가 더 더러워?

‘이 사람들 참 더러워 죽겠네’라고 할 만하지만 이 사람들은 반대로 한국 사람을 보고 더럽고 비위생적인 사람이라고 경악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 사람들은 밥과 반찬과 국, 즉 커리와 달밧을 수저 없이 그저 손으로 버무려 먹는다. 그렇다고 내가 보기에 손을 썩 잘 씻는 것 같지도 않다. 처음 여기 적응해 보겠다고 따라 해 보았을 때는 그렇게 찝찝하게 느껴지더니 그것도 몇 번 해 보니 나름 나쁘지 않은 방식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이런 음식 먹는 습관이나 조금 전 부엌의 상황과 같은 이런 더러운 모습에 놀라지만 네팔인들은 한국인들이 달밧 하나를 시키고 또 무슨 국이나 수프를 시키고 또 볶음면 같은 프라이드 누들 등을 시켜 각각 자기 것을 자기가 먹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펼쳐 놓고 다같이 먹는데서 기절을 한다. 대여섯 사람의 수저가 각자 입에 들어갔다 나와서 달밧으로 국으로 수프로 국수로 그리고 또 입으로 연신 오락가락하는 모습이 상상을 초월하는 더러움처럼 느끼지는 것이다. 자기가 시킨 것을 자기가 먹으면 되지 왜 저렇게 다 다른 것을 시켜서 더럽게 나누어 먹는지가 도통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더럽다거나 깨끗하다는 관념도 다 제 생각하기 나름이 아닌가 싶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불구부정(不垢不淨) 아닌가. 더럽고 깨끗하다는 관념이 결국 자신이 만들어낸 틀일 뿐이지 본래적으로 본다면 깨끗하고 더럽다는 분별이 있지 않다.

여기 사람들처럼 애고 어른이고 매일 숲에서 들에서 일하고 흙을 만지다가 그 손으로 밥을 먹는 것이 더 더러운가, 아니면 깨끗하게 하겠다고 손에 온갖 크림을 바르고, 지하철, 버스, 공중화장실, 곳곳의 위생적인 현대 시설과 현대적 기계와 자동차, 매연, 가스, 분진 등을 수북히 덮어 쓴 손이 더 더러운가.

이 즈음에서 세상의 옳고 그름이라는 것의 경계가 불분명해진다. 우리에게서 옳은 것이 반드시 저들에게도 옳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면서 여행을 통해 서로 다른 것이 꼭 옳고 그름을 의미하거나, 더 좋고 나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서로 다른 차이점이 있을 뿐임을 겸허히 수용하게 되는 넓은 가슴과 열린 사고 그리고 나뉨 없는 무차별의 이치 같은 것을 깨닫게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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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낭만 소나기

개미 누들 수프를 즉석에서 극락왕생 염불을 읊조리며 맛있게 먹고는 길을 떠나 다시 걷는다. 계곡 좌우로 산 중턱마다 다랑이 논이 있고 그 사이사이로 한 채, 두 채 네팔 전통 가옥들이 자연의 일부처럼 조화롭고도 고요히 심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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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가다보니 조금씩 고도를 높이며 가파를 고갯길로의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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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갑자기 흐려진다. 9월 말이면 막 장마가 끝날 시즌이라고 들었는데 막바지 장맛비가 내리려는가! 흐린 하늘 아래 어둑어둑해지는 시골 풍경이, 그리고 시골 집들과 논밭, 그리고 시골 사람들, 꼬질꼬질한 어린 아이들의 노는 모습 조차 그저 이 자연 그대로의 일부인 것처럼 짠하게 마음을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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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손녀의 수줍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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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지붕을 올리고 있는 청년들의 능숙한 손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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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가 높아갈수록 안나푸르나의 속살 풍경은 더욱 그 깊이를 더한다. “와~” “와~” 하는 탄성이 저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얼마나 올랐을까? 하늘은 점점 더 어두워지더니 이내 한두 방울씩 막바지 장마구름을 비틀어 짜낸다. 비옷을 꺼내 입고 툭툭거리며 시비걸듯 떨어지는 빗방울에게 “나마스테”로 화답하는 여유와 체력과 설레임이 아직은 남아 있다. 아직 이 곳의 모든 것이 새롭고 흥겨우며 경이롭다.

툭툭 치듯 떨어지는 비들이 한 여행자의 화답을 보며 ‘그래 이 녀석 언제까지 여유를 부릴지 한 번 볼까’ 라고 하듯 김체 게스트 하우스를 50여 미터 남짓 남겨두고 갑자기 거센 소나기로 기세를 완전히 바꾸었다. 하늘은 더욱 거칠어지고 어두침침한 시야를 완전히 가리며 전혀 생각지 못한 거센 폭우가 득달같이 쏟아지고 있다. 시쳇말로 이건 완전 대박이다.

산이 드높다고 비바람도 산을 닮았는가! 지리산 봉우리에서 만났던 폭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순간적인 폭우를 보며 ‘그래 너도 희말라야를 닮았구나’ 하고 여전한 농으로 한 마디 내뱉으며 그러나 발걸음은 그 가파른 길 위를 안 보이듯 뛰어오른다.

잠깐 사이, 50여 미터를 뛰어올랐을 뿐인데, 가방도 온 몸도 완전히 젖어버렸다. 누가 본다면 한 몇 시간 쯤은 빗 속을 헤매였다고 볼 만큼 젖어도 푹 젖어버렸다. 날아가듯 빗속을 뚫고 도착한 곳은 고작 게스트 하우스 한 채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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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 하우스 한 채가 있을 뿐인데 이 곳도 마을이라고 김체(kimche, 1640m)라는 이름이 붙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이 곳 희말라야에서는 게스트 하우스 한 두 채만 있으면 거기에 이름이 붙어 하나의 마을이 된다. 하기야 산에서는 다른 어떤 이정표에 이름 붙일 것이 없으니 게스트 하우스가 유일한 거리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이정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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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이 나올 것만 같은, 사람이 과연 살기는 할까 싶은 귀신의 집을 방불케 하는 이 곳에 다행히 사람이 살고 있다. 그나마도 다행인 것이 비수기 때나 장마 때는 아랫마을에 있는 다른 집에 살다가 막 지난 달부터 장마가 끝나고 성수기가 시작된다고 다시 올라와 성수기 장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주인의 말에 다행스런 한숨이 나왔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 산중에 거센 빗소리를 맞으며 귀신 나올 것 같은 집 지붕 아래에서 겨우 비를 피하며 잠을 청해야 했을 것이 아닌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비닐 하우스처럼 쳐 놓은 게스트 하우스 앞의 식당 천막 아래에 서서 비오는 산 아래를 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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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 산 중턱의 작은 집들도 한 채, 두 채, 귀한 전깃불을 켜고 있다. 그 불빛들 속에서 이 산중이 전혀 낯선 어느 다른 행성이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는 생명의 터전임을 느낀다. 안심이 된다.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삶을 일구며 살고 있구나. 저 건너편 계곡 곳곳에 드문드문 불빛들이 점점 더 자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빗방울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마음은 아련한 외로움의 비로 젖어든다. 아, 이 허하거나 짠하거나 생기롭거나 고독하거나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의 바다 속에 푹 빠져 그 느낌들을 가만히 누려본다. 외로워도 좋다. 이 거대한 산중에 홀로 있다는 고독감이 그리고 그 고독감에 물을 주고 있는 이 빗방울과 거센 바람의 감촉이 그리 나쁘지 않다. 아니 감각을 더욱 깨어나게 하고 촉촉하게 해 주고 있다. 이 느낌! 이런 느낌과 하나 되어 충분히 온전히 느끼고 있는 이런 순간이 나에겐 그 어느 순간보다도 보배스러운 때다. 빗소리가 좋다. 조금 거세고 춥지만 바람도 견딜 만 하다.

유령의 집 게스트 하우스

잠시 뒤 주인장 어르신께서 다락같은 이층방 열쇠 꾸러미를 통째로 던져주며 아무 방이나 들어가 짐을 풀어도 좋다고 하신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나 하나로 손님이 끝인 듯하다. 하기야 이 시간에 더욱이 이 소나기를 뚫고 여행자가 들어 올 리 만무 해 보인다. 가파른 이층 방에 오르니 그야말로 TV에서나 보았을 법한 고려시대 무슨 감방을 보는 듯도 하고, 흡사 무슨 소 사육하는 축사나 마구간 같기도 한, 그도 아니면 그야말로 금방이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것 같은 귀신의 집 같은 보기만 해도 공포감이 몰려오는 방들이 세 칸 두둥 하고 튀어나온다. 그나마 방 같은 아늑함을 찾아 세 곳을 다 돌아봤지만 어느 한 곳 실망을 주지 않는다. 그나마 가장 깨끗해 보이고 아늑해(?) 보이는 중간 방에 짐을 풀기로 한다.

방에 들어가 불을 켠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나마도 이 게스트하우스는 불이 들어온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현대식이라고 할 만 하다. 높은 곳으로 오를수록 방안에 불이 있기는 어렵고, 특히 에베레스트 지역으로 가면 방 안에 불을 켤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는 거의 없다. 불을 켰는데, 이 불성실한 집안 구조에 또 한번 놀란다.

방이 세 개라고 했는데, 가만 살펴보니 문만 세 개 달렸을 뿐, 벽채가 그저 달랑 얇은 합판 한 장으로 가까스로 서 있고, 옆방은 손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큼직한 틈으로 다 보인다. 게다가 천정의 형광등은 두 방에 걸쳐 하나가 있고 벽채로 합판이 얕게 있을 뿐이지 천정은 훤히 뚫려있다. 그야말로 다른 손님이 옆방에 있었다면 참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일이다. 잠을 잘 때에도 일어날 때에도 옆 방 사람과 협의 하에 불을 켜고 꺼야 하고, 그나마도 두 방에 모두 형광등을 켜고 끄는 단추가 있어야 하지만 중간 방에만 있으니, “불 켜주세요” “불 꺼주세요”라는 인사를 나누며 하룻밤의 패턴을 같이 해야 할 판이다.

행여 옆방에 다른 이성의 여행자가 묵게 된다면 옷 하나 갈아입기도 어려운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그럴 일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여기서 조금만 더 오르면 도착하는 큰 마을, 큰 게스트 하우스가 즐비한 간드룽을 선택할 여행자가 백이면 백 전부가 되지 않을까! 나처럼 불가피하게 늦은 시간에 갑자기 엄청난 폭우를 만나는 경우를 빼면 말이다. 그럴 일이 얼마나 자주 있겠나.

방에 대한 감상을 마치고 무거운 가방을 풀고는 방을 나서는데 하마터면 기절할 뻔 했다. 주인아저씨께서 불편한 것이 없는지 살피러 올라오셨는데 참, 공포도 가지가지다. 어둠 속에서 불쑥 솟구쳐 나오는 그 묵직한 그림자를 내가 어찌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그나마도 가격이 과하게 싸니 이 모든 것을 이해하기로 한다.

안나푸르나에서의 첫날 밤이다 보니 이 정도의 게스트 하우스가 일반적인 수준인지, 아니면 좋은 수준인지(설마?), 아니면 아주 좋지 않은 수준의 방인지를 아직 알길 없는 나로서는 일단 만반의 각오를 하고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정신 건강에도 좋을 것이다.

여행자도 외롭고 산사람도 외롭다

‘행복한 마구간’에서 나와 저녁을 주문하고 저녁 식사가 나오는 동안 천막 아래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가져온 모든 옷가지를 껴입고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산의 기세를 느껴본다. 방이야 잠만 자면 되고 지금 상태로 봐서는 눈만 감으면 바로 잠에 떨어져 내일 새벽을 맞을 테니 잠자리야 사실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는 여기 눈앞에 무거운 수묵으로 번지는 빗속의 장대한 풍경, 이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감성이 폭발할 것만 같다.

게스트 하우스 건물 앞마당을 길 삼아 오솔길이 나 있고 그 건너편에 천막이 쳐 져 있으며 그 천막 아래로 의자와 식탁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다. 그리고 그 천막의 끝자락 바로 아래는 천길 만길 낭떠러지다. 아니 낭떠러지라기보다는 저 아래로 가파른 다랑이논이 깎아지듯 절벽처럼 서 있다 보니 그렇게 느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절벽 논 깊은 아래쪽에 설산의 영봉에서 녹아내렸을 회색 계곡 물줄기가 흐르고 그 건너편에는 또 다시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절벽, 또 절벽 위에 아스라이 쌓여 있는 계단식 논과 드문 드문 민가 몇 채가 섬처럼 떠 있는 풍경.

이 자연과 인간이 함께 연주해 낸 풍경 위로 폭포수 같은 빗방울들이 오케스트라의 대 장엄을 완성한다. 따뜻한 짜이 한 잔에 몸을 녹인다. 마음씨 좋은 주인 할아버지, 할머님의 따뜻한 배려와 맛깔나게 차려주신 저녁식사의 행복함이 없었다면, 아마도 이 아름다운 풍경이 속 뜰에 짠한 공간을 만들면서 아련한 고독 속으로 깊이 깊이 빠져들었을 터다. 영어를 조금 할 줄 아시는 할아버지의 입담과 따뜻한 관심 덕분에 한 채 밖에 없는 허름한 게스트 하우스의 휑함과 녹록함이 점차 따뜻함으로 바뀌고 있다. 어쩌면 주인 할아버지 또한 나와 마찬가지 신세인 건지 모른다.

이 산에서는, 더욱이 이렇게 빗줄기가 퍼 붓는 날에는 여행자도 외롭고 산사람도 외롭기는 마찬가지다.

아들 둘에 딸 하나, 큰 아들은 며느리와 함께 김체 아래 올라오는 길목에서 작은 식당 겸 슈퍼를 차렸고, 작은 아들은 카투만두에 돈을 벌러 나갔고, 어린 딸은 아직 카투만두에서 대학 생활 중이라며 집안 가득 걸려 있는 가족 사진들을 하나 하나 보여주신다. 물론 젊었을 때 두 분의 밝고 생기어린 빛바랜 사진들도 빼놓을 수 없다.

저녁 시간 내내 할아버지의 알듯 모를 듯 독특한 영어발음의 고향 이야기는 계속된다. 저녁 식사 중의 그 많던 이야기하며 특별히 애정과 정성을 쏟아주신 저녁 식사의 풍성함을 보았을 때 아주 오랫동안 손님이 오지 않았음이 분명해 보인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그동안 손님도 없이 많이 외로웠던가 보다.

외로운 농가, 외로운 노부부의 살림살이에 외로운 여행자 하나 더 끼어 자니 이 또한 풍요롭고 충만한 즐거움이 아닌가.

이런 게스트 하우스의 투박한 정겨움과 따스함이 안나푸르나에서의 첫 날 밤을 포근하게 밝혀 주고 있다. 거센 빗소리는 한 두 시간 내로 그칠 기세가 아니다. 그동안의 오랜 우기로 인해 눅눅하고 곰팡이 냄새 가득한 이불을 뒤집어쓰고 배부른 몸을 누이니 빗소리가 더욱 처연하게 들려온다.

빗소리, 빗소리, 빗소리...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렇게 안나푸르나의 첫 밤은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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