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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상스님의 목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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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방한담 산사하루

짧은 글 긴 여운

목탁 소리 2010. 7. 25.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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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과도하게 중요한 것이 없도록 하라. 무엇이든 너무 중요해지면 집착과 욕망을 가져온다. 과도한 욕망은 오히려 그것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중요도를 낮추되 순수한 최선을 다하라. 집착없이 행하고, 욕망없이 원하라.

반드시, 결단코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모든 것은 그렇게 될 수도 있고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욕망하지 말고 단지 원하라. 욕망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내포하지만 순수한 바람은 단순한 의도일 뿐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람도, 상황도 그것 자체는 완전한 무분별이다. 완전 중립이다. 다만 그 사람에 대한, 그 상황에 대한 해석이 모든 문제를 가져올 뿐이다. 모든 차별과 선택을 버리라. 그 어느 쪽도 선택하지 말고, 다만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만 하라.

입사시험에 낙방했다는 것은 두 가지 사실을 내포한다. 하나는 그 회사를 다닐 수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회사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괴로울 때는 괴로워하되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 평상심으로 되돌아오라. 괴로울 때도 괴로워하고 괴로움이 지나가도 여전히 괴로워할 것은 없지 않은가.

주어진 삶의 조건을 고스란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내가 처한 독특한 상황, 자신이란 특별한 존재 그것이야말로 나에게 주어진 삶의 목적을 최적으로 완수할 수 있는 완벽한 조건임을 받아들이라.

괴롭다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자기 자신을 신뢰하라. 고통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는 나 자신이 가장 잘 안다. 우리 안에는 고통에 대한 자기만의 면역체계가 있다. 자기만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해답은 언제나 내 안에 있다. 자연스러운 자기만의 방식을 따르려면 내면을 잘 지켜봐야 한다. 고통의 감정을 잘 지켜봐야 한다. 거부하지 말고, 충분히 인정해 주며, 다만 붙잡지 말고 지켜보라. 내 안에서 그 고통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흥미롭게 지켜보기만 하라. 이것이 바로 내 안의 붓다께, 내면의 신성에 의지하는 방법.

화는 안으로 돌리면 홧병이 되고, 밖으로 돌리면 상대방을 다치게 한다. 다만 화를 내려 놓기만 하라. 그러려면 화가 일어남을 전체적으로 통찰해야 하고, 그 화와 함께 잠시 머물러야 한다. 거부하지 말고, 잠시 함께 있고, 충분히 바라봐 주라.

아프다는 생각을 놓아야 병이 사라진다. 그렇다고 아프다는 생각을 억지로 없애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억압하면 병은 더욱 커진다. 핵심적인 치유의 두 가지 방법은 첫째, 병을 관찰하고 통찰하며 거부함 없이 충분히 느끼고 마주하는 것이고, 둘째는 아프다는 생각에 갇히기 보다 그 아픈 것 또한 나를 돕기 위한 법계의 배려이며, 업장소멸이고, 더 깊은 신의 뜻이라고 수용함으로써, 아프다는 생각을 대 긍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관찰과 긍정이 병을 낫게한다.

병 때문에 고민하지 말라. 아프다는 생각에 빠져 있는 한 병은 계속된다. 병을 거부하면 병이 지속된다. 육체적으로 아프다면 다만 아픔을 관찰할 뿐 아프다고 생각지는 말라. 아픈 증상을 잊어라. 병은 과거일 뿐, 지금은 전혀 새로운 순간이다. 현재는 언제나 건강하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곧 나 자신의 내면이 외부로 투영된 결과다. 나에게 주어진 삶의 상황 또한 내 마음의 외적 그림자다. 내 밖의 외부 세계, 그것은 곧 내 안의 실상과 정확히 일치한다. 나에게 처한 상황, 내가 만나는 사람, 그것이 바로 나다.

삶 속에서 만나는 그 모든 사람들은 분명히 그때 나와 꼭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다. 모든 일은 다 내 깊은 영혼의 선택이요, 대긍정을 위해, 진리와의 합일을 위해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이를 완전히 수용하고 의혹없이 받아드릴때 경이로운 삶의 신비에 눈뜨게 될 것이다.

어디에도 전적으로 기대지 말라. 절대적으로 의지하지 말라. 잠시 머물렀다가 떠나야 할 때가 오면 바람처럼 떠나라.

우리는 언제나 삶에서 체험해야 할 바로 그것을 체험한다. 그것이 어떤 모습일지라도 지금 체험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야말로 내가 바로 그 순간 삶에서 체험하고 배워야 할 정확한 그 무엇이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우리의 영적 성숙을 돕고자 하는 목적으로 체험된다.

삶이란 사랑으로 시작해 사랑에 도착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오직 사랑만을 경험할 수 있다. 그 어디에도 사랑 아닌 것은 없으니. 삶을 사랑하라. 만나는 모든 이와 따뜻한 사랑을 나누라. 사랑할 때 더 많은 사랑이 드러난다.

교회에 절에 얼마나 많이 가는지, 기도를 얼마나 많이하고, 얼마나 높은 자리에 있는지 혹은 성직자인지 평신도인지, 이 중 어떤것도 핵심이 아니다. 골수는 어떻게 말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달렸다. 말, 생각, 행동이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규정한다.

실패, 그것은 하나의 성공의 부분이다. 실패를 긍정하고 환영하는 정도가 자신의 의식 수준과 삶의 질을 결정한다. 신은 언제나 사랑으로, 붓다는 언제나 무한 자비로써 우리를 완성과 성공으로만 이끄신다.

힘들다고 반드시 고통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 축구, 운동, 취미, 여행 등을 보라. 힘들지만 즐겁다. 고통받을것인가 말것인가는 언제나 외적환경이 아닌 나 자신에게 달렸다. 고통스런 상황 속에서도 우린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 어떤 조건, 환경 속에서도 언제나 행복을 선택하라.

실패란 불가능한 환상이다. 우리는 실패할 수 없다. 삶은 언제나 성공적이기에. 실패로 보일 수는 있어도 정말로 실패할 수는 없다. 실패라는 해석이 있을 뿐 실패한 삶은 없다.

세상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이 끝없는 우주를 여행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것의 목적은 끊임없는 여행에 있지 어느 한 곳에 정착하는데 있지 않다. 머물지 말고 끊임없이 흐르라.

점이나 사주에 의지하지 말라. 내 운명을 점쟁이에게 내맡기지 말라. 삶의 모든 해답은 내 안에 있다.

나무 한 그루의 생명력이 나를 살아있게 한다. 이 순간의 감동! 비를 맞아 검어진 가지와 초록이 더욱 진해진 잎들. 스산한 바람에 살랑거리는 이 한 그루의 현존이 둘이 아닌듯 내 안에 스며든다. 삶이란 이토록 경외한 것인가! 나무와의 사랑.

신기루같은 세상에서 꿈을 꾸듯 삶이란 연극을 이어간다. 허허롭고 자유하며 흥미로운 꿈판 위를 춤을 추듯 유우하는 어느 날!

내 삶에 실패란 없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실패도 또 다른 성공의 다른 방식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언제나 삶은 완전하며 성공적이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문제는 그것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에 대해 문제를 삼았기 때문에 일어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무언가가 필요하고 어떤 특정한 조건 속에서만 행복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완전한 환상일 뿐이다. 지금 이대로 행복하다. '행복하기 위한 특정한 조건’은 없다.

산책길 인적없는 텅빈들녘 소로길을 구름처럼 걷다 고개들어 눈길을주니 앙상한 가지조차 선정에 든다 바람은 파도처럼 밀려오고 개울물 소리는 봄을 타고 귓전을 씻어주네 하릴없는 삶이 흐른다

일체 모든 존재가 하나다. 그렇기에 상대에게 행하는 것이 곧 나에게 행하는 것이다. 그가 바로 나이기에. 남을 돕는 일이 곧 나를 돕는 일이다.

일을 하다가도 잠시 멈추고 지금 이 순간을 전체적으로 살피라. 나라는 생각에서 비켜선 채 한 발자국 떨어져 다만 바라보라.

내가 당신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나의 인연이 사랑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되 다만 인연일 뿐임을 안다면 사랑하되 실체가 아님도 알게 되고 집착할 필요가 없음도 알게 됩니다. 비로소 흔적없는 맑은 사랑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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