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심청심] 일상이 곧 휴가다
기사등록일 [2010년 02월 18일 16:01 목요일]

 

 

오후의 산책, 하늘은 화창하고, 푸르름은 너무도 높고, 몽실몽실 떠가는 구름은 신비롭고, 바다색은 짙고, 고개 들어 산을 바라보면 희끗희끗 눈덮인 산맥이 성스럽고, 그 청명한 하늘 위로 자유로이 갈매기 떼들이 떼지어 날고 있다. 아, 이 곳에서의 삶은 하루 하루가 여행이며 만행이고, 모든 걸음 걸음이 히말라야이며, 매 순간 순간이 휴가이자 휴식이다.

휴가나 여행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쉼, 설렘, 떠남, 평안 등의 일상적이지 않은 아주 특별한 선물 같은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휴가나 여행은 몸이 떠나있는 상태를 의미하기 보다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매일 매일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잠시의 ‘멈춤’으로써 휴가와 여행을 경험해 볼 수 있다.

길을 걷고 길 위의 모든 존재에 눈빛을 보내며 따뜻한 사랑을 보내며 묵연히 걷기만 할 때 이 모든 존재와 하나됨을 경험한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잠시 고개를 들어 저 멀리 솟아오른 눈덮인 설악의 산맥을 보고 있자면 그 순간 바쁘고 정신없던 일들은 사라지고 나는 지금 어느덧 히말라야 깊은 산 위를 걷게 된다. 아무리 해야 할 일로 번거롭다 할지라도 잠시 호흡에 마음을 모으고 맑고 시린 공기를 깊숙이까지 품어 안았다가 내보내는데 주의를 기울이는 순간 나는 어느덧 2500년 전 붓다의 영산회상 한 켠에 앉아있는 그 성스러운 제자들 중 한 사람이 된다. 컴퓨터 모니터를 주시하다가도 잠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 이 곳은 익숙한 일터이거나 생존경쟁의 장이 아닌 호젓한 여행자가 머무는 인도의 시골마을 고즈넉한 게스트하우스가 된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이 처해 있는 바로 그 자리를 휴식으로, 쉼으로, 여행으로, 휴가로 바꿀 수 있다.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저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구름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바삐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고개를 돌려 길 가에 앙상하게 피어난 겨울 나뭇가지를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책을 보다가도, 신문을 읽다가도 잠시 보고 읽는 것을 멈추고 호흡의 들고 남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행여 TV에 정신이 팔려 있었더라도 잠깐 TV를 끄고 그저 텅빈 빈 벽을 주시하며 내면의 아주 작고 여린 움직임을 관찰해 볼 수도 있다.

하루 중에, 하루 일과 중에, 익숙하던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 잠깐 잠깐 단 10초라도 좋다. 몸으로 말로 생각으로 행하고 있던, 바로 그 모든 행위를 잠시 비우고, 멈추고, 아주 낯선 시선으로 전혀 텅 빈 시선으로 속 뜰을 가만히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바로 그 ‘멈춤’의 순간 위대한 붓다의 사랑과 축복, 깨어있음이 깃들게 된다. 수행이라는 것이 꼭 선방에서만 피어나는 것은 아니며, 근기가 높은 특별한 사람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아주 잠깐,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참선을, 명상을 배울 수 있다. 아니 이것을 참선이나 명상이라고 애써 이름 짓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그저 텅 빈 순수 그 자체이고, 깨어남이며, 모든 성자와 현자들의 방법이었으며, 붓다의 방식이다.

다만 매 순간 순간 일상에서 자주 자주 잠시 멈추고 바라보라. 그것은 아주 단순하고 쉽지만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질 것이다. 사실은 ‘지금 여기’라는 곳이야말로 모든 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실은 나라는 존재야말로 완전하고도 충만하고 꽉 찬 더 이상 얻어야 할 또 다른 힘을 필요치 않는 무한한 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목탁소리 지도법사/ 운학사 주지 법상 스님


법보신문 1036호 [2010년 02월 18일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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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