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오블리스 노블리제 - 법구경 24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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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과 마음공부

우리시대 오블리스 노블리제 - 법구경 24게송

목탁 소리 2009. 9. 4.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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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축서사]

24.
누구든 마음을 모아 깨어있음을 실천하고
그 행동이 순수하고 진중하며
자신을 잘 다스려 법다운 생활을 하면
그의 이름은 빛나고 축복과 존경은 늘어갈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명예와 권력과 지위를 탐하고, 자신에게 축복과 존경이 늘어가기를 원하고 있는가. 우린 누구나 사회적으로 인정받기를 원하며,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기를 원하고, 축복스런 일들이 내게 많이 일어나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노력하고 애쓴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노력하고 애를 쓰는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존경받기 위해 우리는 더 나를 드러내야 하고, 더 돈을 많이 벌어야 하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할만한 자리에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높은 지위나 권력, 그리고 부와 명성은 그대로 우리를 실질적으로 높은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준다고 착각하고 있다. 높은 자리가 곧 높은 인격과 높은 존경과 높은 축복의 상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완전히 핵심을 벗어난 것이다. 어떤 높은 자리가 그 사람을 높게 만드는 것이 아니며, 어떤 명성이 그 사람을 드높이는 것이 아니고, 많은 부귀영화가 그 사람을 축복해 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재산과 명성과 부와 권력을 쥐게 되면 그로인해 우리 마음은 더 많은 욕심과 우월감과 자기가 잘났다는 아상(我相)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그리고 그런 아상과 아집은 결국 내면의 정신적인 타락을 가져온다.

핵심은 외부적인 것에 있지 않다. 내가 높은 자리에 오름으로써 나 자신도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더 많은 욕구를 채우고,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자리에 올랐다고 해서 그것이 나라는 존재 자체를 존귀하게 드높여 주는 것이 아니다. 물론 겉모습은 그럴싸해 보인다. 남들도 나를 칭찬하며, 나에게 잘 보이고자 애를 쓰기도 한다. 점점 더 나라는 존재는 타인들과는 다른 월등한 높은 존재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판단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진짜 자신의 본 모습과 겉에 드러난 모습 사이의 거리감이 생겨나고, 그 간격만큼 정신은 중심을 못 잡은 채 이리저리 휘둘리게 된다.

참된 존경과 축복은 그런 껍데기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존경 받을만한 자리에 올라가야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존경 받을만한 행동을 함으로써 존경을 받게 되는 것이다. 존경은 그 행동에서 나오지, 어떤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참된 축복 또한 축복받을 만한 위치에 올라갔을 때 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과 생활이 축복받을 만 할 때 따라온다. ]

누구든 그 행동이 순수하고 진중하며 자신을 잘 다스려 법다운 생활을 하면 그것이야말로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을만하다. 누구든 마음을 모아 깨어있음을 실천함으로써 매 순간순간의 행동이 법다워 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축복된 삶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행동과 삶에 있지 어떤 자리나 위치나 상황에 있지 않다. 부처님께서는 ‘행위에 의해 도둑이 되고, 행위에 의해 무사가 되며, 행위에 의해 신하가 되고, 행위에 의해 왕이 된다. 현자는 이와 같이 행위를 있는 그대로 본다. 세상은 행위에 의해 존재하며, 사람들도 행위에 의해서 존재한다. 수레바퀴가 축에 매여 있듯 세상 모든 것은 행위에 매여 있다.’고 하심으로써, 우리 삶에서 나를 규정짓는 것은 그 ‘자리’나 ‘지위’가 아니라 그 사람의 ‘행위’라고 하셨다.

어떤 행위를 통해 어떤 업을 짓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펼쳐진다. 도둑질하는 행위와 남의 것을 탐내는 마음은 곧 우리를 도둑으로 만들고, 수행자다운 행위와 생각은 곧 우리를 거룩한 수행자로 만든다. 몸과 말과 생각으로 한 행위야말로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

인간으로써 행할 수 있는 가장 성스럽고 법다운 행위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깨어있는 행위다. 순간순간 몸과 마음을 관찰하고, 몸과 말과 뜻의 삼업이 어떤 행위를 이어가는지를 온전히 관찰하는 것만이 우리의 행을 축복되게 만든다. 깨어있는 행위에는 이처럼 축복이 깃들며, 세상 사람들의 존경이 뒤따른다. 마음을 모아 깨어있는 이의 행동은 가볍지 않아 진중하고, 이해타산과 높고 낮은 차별을 따지지 않아 순수하다. 깨어있는 마음 관찰로써 매 순간 자신을 잘 다스리는 법다운 생활이야말로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최고의 성스러운 행위요 축복의 행위다. 우리의 평범한 행위가 비범해질 수 있고, 밥 한 끼 먹는 행위조차도 성스러워질 수 있고, 일상적인 말 한마디에도 축복과 진중함이 담기며, 삶 자체가 법다워질 수 있는 그 실천수행의 정점에 ‘깨어있는 마음관찰’이 있다.


부처님 당시 한번은 라자가하에 유행병이 퍼졌다. 한 은행가의 주인도 병에 걸려 죽을 위기에 처하자 아들인 꿈바고사까에게 숨겨둔 모든 황금과 보석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고 아들을 먼 친척집으로 대피시켰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아들이 돌아와 황금과 보석을 찾았지만 갑자기 이것을 꺼내어 쓰면 사람들에게 의심도 받고 절도 혐의를 받을 것을 염려하여 우선 평범한 일꾼이 되어 성실히 일하기 시작했다. 물론 황금과 보석을 가져다가 자유롭게 쓰면서 풍족한 삶을 살 수도 있었지만 그런 삶을 포기하고 평범하고 성실한 일꾼으로 살았으며, 특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깨어있는 삶을 살았다. 또한 그는 지혜로웠으며 순수했고, 행동에 있어서도 진중하여 자신을 잘 다스려 나갔다.

어느 날 평소처럼 꿈바고사까는 큰 소리로 일꾼들을 깨워 일을 나가려고 하는데, 그 소리를 빔비사라왕이 들었다. 빔비사라왕은 목소리를 듣고 그 주인공의 운명을 알아내는 재능이 있었는데, 그 목소리는 분명 대단한 재산가여야 하는데, 저런 일꾼이라는 것이 이해되지 않아 그의 신분을 조사케 한 결과 모든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결국 꿈바고사까도 모든 것을 고백했다. 이에 왕은 지혜가 빛나며 생각이 깊고 생활 속에서 늘 깨어있음을 실천하는 주의력에 감탄하여 그의 딸을 꿈바고사까에게 시집보내기로 결정하고 부처님께 데리고 갔다.

부처님께서는 위의 게송을 설하시면서, 꿈바고사까는 많은 재산과 황금이 있었지만 거기에 얽매이거나 집착하지 않고, 성실하고도 깨어있는 삶을 통해 지혜로운 삶을 살고 있음을 설하시면서, 그 황금과 보석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거나, 큰 집을 짓거나, 그 재산을 뽐내고 누리며 사는 삶이 축복되고 존경 받을 만한 것이 아니라 성실하고 법다우며 지혜로운 깨어있음의 삶이야말로 가장 존경받을 만하고 축복스런 삶이라고 설하셨다.

불교는 부유한 재산가 자체를 부정하는 종교는 아니다. 모두가 가난을 위해 재산을 내다 버릴 필요는 없다. 또한 명예와 권력을 죄다 버리고 은둔해 살기만을 바라는 종교도 아니다. 불교는 부자와 가난, 높고 낮음, 귀함과 천함 이 모든 두 가지 분별을 다 여의는 가르침이다.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지 않는다. 그렇기에 부처님의 재가 재자들 가운데는 거지도 있었고, 불가촉천민도 있었으며, 왕도 있고, 재산가들도 많았다. 그들 모두에게 무소유를 주장함으로써 가진 재산과 권력을 다 포기하라고 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겉에 드러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위요, 마음이다.

참된 무소유는 물질적인 소유를 다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소유에 얽매이고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부자도 무소유를 실천할 수 있지만, 아무리 가난해서 소유한 것이 없는 사람도 무소유를 실천하지 못할 수도 있다. 가난한 자가 소유하지 못함을 부러워하고, 자신의 없음을 비통해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소유욕에 휘둘린 사람이다. 부유한 자가 자신의 재산에 집착하지 않고 이웃에게 나누어 주며 소유한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소유하면서도 무소유를 실천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꿈바고사까 처럼 재산을 많이 소유했더라도 그것에 의지해 자신을 재산의 노예로 만들지 않으며, 재산이 없는 것처럼 하루 하루를 성실함으로 살고, 모든 행위에 있어 깨어있는 정신이 깃들어 있다면 이런 사람에게는 우주의 축복과 사람들의 존경이 뒤따르는 것이다. 부자이되 아름다운 부자,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부자, 부자에 집착하지 않는 부자, 부자이지만 그 삶이 간소하고 청빈을 실천하는 부자, 이 부유함이 내것이 아니라 법계에서 잠시 빌려 온 것임을 알고 인연 따라 베풀 줄 아는 부자가 되어야 한다.

부유한 재산을 내 것으로 쌓아두기만 하는 사람에게는 우주적인 생명력이 정체되고 막히기 때문에 더 이상 재산이 쌓일 수가 없다. 그러나 나에게로 들어 온 재산을 꽉 붙잡아 정체시키지 않고 끊임없이 이웃에게로 회향하고 소통시키는 사람에게 이 우주의 모든 풍요로움은 찾아든다. 그런 사람에게 이 우주는 풍요로움을 세상 곳곳으로 균형 있게 나누어주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하기 위해 계속해서 풍요로운 것들을 보내주는 것이다.

나 자신을 돌이켜 보라. 나는 과연 세상의 모든 풍요로움을 소통시키고 나누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 것’만을 소유욕으로 가둠으로써 우주적인 에너지를 정체시키고 있는가. 이 한 생을 살면서 부처님을 대신해, 신을 대신해 우주법계의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이기와 아집으로 온통 꽉 막힌 소인배로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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