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이 살 때가 좋던 시절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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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방한담 산사하루

없이 살 때가 좋던 시절

목탁 소리 2009. 8. 29.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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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 년 전 여름이었나?
우리 목탁소리 법우님들과 함께
한 몇 일 남쪽지방으로 만행을 떠났었다.
그 때의 기억들이
사진을 보니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왼쪽부터, 두하, 성연법우(지금 무상스님), 서원 법우(지금 인하스님), 법기스님,
법상스님, 원광스님, 심연, 여여, 진석법우]


오늘 아침은
추위가 한창이다.

얼마 전
군에 온 지 6년이 되었다고
기념으로 국방부에서 얻어 입게 된
겨울철 누비 두루마기를 꺼내 입고
그 기쁨에
오전 내내 도량 주위를 서성였다.

누비 두루마기를 입고 낙엽을 쓸다보니
지치지도 않고
쓰는 일이 그렇게도 홀가분했다.

오늘은
조금 춥긴 해도
날씨 또한 끝내주게 좋은 날이었거든.

작년 겨울 법기스님이
거사님께서 사 주신 누비두루마기를 입고
이거 하나 있으니까 얼마나 든든한 지 모른다고
그 얘기 했을 때
그러냐고 했지만 속으로 내심 얼마나 부러웠는지...^^

그때는 그 누비 두루마기 하나가
얼마나 좋아 보이던지...
지금 생각하면 어린애처럼 부러워했네.

이제 소원 성취했으니
이제 빨리 겨울이 왔으면 하고 기다려진다.
많이 추워야 오늘 아침처럼
이렇게 입고 휘적 휘적 걸을 수 있지 않겠나.

누비 두루마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가만 생각해 보면
난 처음 출가하던 때부터
든든한 누비두루마기가 그렇게 갖고 싶었다.

처음에는
형편이 넉넉치 못해 사 입지 못하다가
이제와서는
문득 깨달은 게 있어 사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문득 이 참에
하나 얻어 입고 보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이 작은 천조각 하나에
몸을 의지하면서
이렇게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이
어찌 생각해 보면 참 우습기도 하고
또 달리 생각해 보면 이것도 집착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소박한 일에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음도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그동안 그 누비 두루마기를
사지 못할 형편인 것은 아니었다.
물론 사려면 까짓 그거 하나 못 사 입었겠나.

그런데 일부러 사 입지를 않았다.
사고 싶다고 그 때 그 때 휙 사 버리면
그다지 감사하지도 않고
그렇게 행복감을 느끼지도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고 싶은 것이야 왜 없겠나.
이래 저래 필요한 것들도 있고
또 정 사려면 충분히 사 쓸 수 있고 사 먹을 수도 있다.

그런데 사고 싶을 때
금새 휙 사 버리고 났더니
그것이 그리 풋풋하고 애정어리지가 않다는 것을
요즘들어 새삼스레 더욱 느끼게 된다.

특히 책을 살 때 많이 그랬는데
마음 쉬 일어난다고
이 책 저 책 꾸역꾸역 사다가 책장에 꽃아 놓으면
잠시는 흐뭇하고 기뻐도
그 책을 읽는 마음은 그렇게 썩 배 부르지가 못하다.

그래서 이제는 꼭 사고 싶은 책이 있어도
바로 사지 않고
한 번 서점에 가서 뒤척여 보고
그 다음에 또 한 번 서점에 가서 뒤척여 보고
그래도 정 사야겠다 싶을 때
그 때가서 꼭 한 권만 골라 나오기로 했다.

예전 같았으면
쉽게 들어온 돈이 있으면
그냥 몇 권씩 골라서 돌아오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거기에 별 재미를 보지 못했거든.

그래서 요즘은
서점에 두어번 가면
그 때 한 권 정도 사가지고 나온다.
한꺼번에 두 권이상을 사게 되면
그게 행복이 아니라 욕심이었음을 경험을 통해 배웠다.

그래서 요즘은 될 수 있다면
정말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될 수 있으면 안 사려고 하고,
불편하게 지내는 법을 익혀보려고 한다.

불편한 즐거움을
요즘 들어 새록 새록 느껴가고 있는 중이다.

한동안 불편하다가
정 필요할 때 그 때 필요한 것을 사게 되면
그 때 느끼는 행복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갖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좀 원초적이긴 해도
그런 마음은 정말 끊임없이 올라온다.
그런데 그걸 가만히 느껴보고 바라보는 것도
참 좋은 공부꺼리가 된다.

먹을 것도
먹고 싶다고 다 사 먹게 되면
그것도 잔뜩 사다 놓고 먹게 되면
그게 영 맛이 없고 먹는 재미도 없다.

그런데 조금 참아도 보고
정 먹고 싶을 때
어렵게 그것도 부족하다 싶을 만큼만 사서
한 입 베어 물면
그 행복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어릴 적에는 수박이 왜 그리 맛있었는지.
수박 뿐 아니라
맛 없는 것이 없었으니까.

가만 생각해 보면
그게 다 부족해서 그랬던 것이지 다른 게 아닌 것 같다.

부족하면 그 안에 행복이 있다.
풍부한데 행복이 있는 게 아니라
부족한 거기에서 짠한 행복감은 밀려오는 법.

아마도 내가 어릴 때는
여름 한 철 수박 한 통 먹기가 어려웠다.
모르긴 해도 어떤 때는
한 해 여름 동안 수박 한 조각 못 먹고 난 적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지금도 생각나는 어릴 적 기억이
여름의 초입에 서서
'올 여름은 수박 한 조각 먹을 수 있으려나'
했던 생각들이 부시시 떠오를 정도니까.

그 때 수박은
그야말로 꿀맛정도가 아니었다.
아니 그 맛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겠나.

여름철 뿐 아니지 겨울은 또 어떻고.
겨울철 교실에 누군가가 귤 하나를 가져와서
몰래 까서는 친한 친구들만
한 조각씩 나누어 줄 때
그것 하나 얻어 먹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조용하던 교실에
누군가 귤 껍질 하나 까게 되면
그 감미롭고 상큼한 향기가
초등학교 온 교실을 미치도록 만들었었다.

그 때가 참 좋았다.
그건 부족해서 그랬던 거지 다른 게 아니다.
요즘은 넘쳐나니까
귤도 옛날의 그 맛이 아니고
수박도 옛날의 그 맛이 아니다.

모든 게 다 그렇다.
세상이 풍족해 지니까
마음은 점점 더 허해지기만 한다.

우리들 가슴이
넘쳐나는 것들로 인해
점점 더 헛헛해 져만 간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왜 허한지
왜 그렇게 가슴이 뻥 뚫려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가만히
자근 자근 곱씹어 볼 일이 아니겠나.

두루마기 얘기 하다가 여기까지 왔네.

어쨌거나 갑자기 추워진 날씨 덕분에
누비 두루마기를 걸쳐 입었더니
이 갑작스런 추위가 오히려 고맙게 느껴지기까지 하다.

이런 소소한 것에
이렇게 기쁨을 느끼다니...

행복은 이렇듯
욕심을 쉽게 충족시키는데서 오지 않고
불편을 스스로 선택하는데서 오기도 한다.

요즘 사회가 어렵고 경제가 어렵다고 하는데
이럴 때일수록,
아니 경제적으로 잘 풀리고
돈이 좀 생길 때일수록,
오히려 더욱 아껴쓰고
좀 덜 사고, 덜 쓰고, 덜 버리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필요할 때
바로 바로 사지 말고
그냥 불편한 대로 살아봄도 좋고,
좀 나둬 보았다가
정 필요할 때 그 때 꼭 필요한 것만
어렵게 구입하는 것도
참 좋은 일이 아니겠나 싶다.

갖고 싶어도 좀 참아보기.

어렵게 얻으면
어렵게 얻는 만큼
행복은 더없이 충만하다.

낮에 아래 사무실에
누굴 좀 만나러 가면서는
따뜻한 햇살 아래서 누비 입고 다니려니
좀 궁상맞기도 하여 피식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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