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의 옷 - 법구경 9,10게송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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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과 마음공부

수행자의 옷 - 법구경 9,10게송

목탁 소리 2009. 7. 22.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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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마음에 번뇌가 많아 청정하지 못하고
무모한 욕심으로 자기를 다스리지도 못하면서
노란색 가사를 입으려는 자여,
그대는 수행자의 가사를 입을 자격이 없다.

10.
번뇌에서 벗어나 마음이 청정하고
계율을 지켜 절제됨이 있으며
감관을 잘 다스려 진실을 말하는 사람,
그대야말로 수행자의 노란색 가사가 어울리는 자다.



수행자의 옷, 가사는 일반인들이 보기에 아주 매력적이고도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게 한다. 가사와 장삼을 수하고, 파르라니 머리를 깎고 앉아 있는 스님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 마음 속에 존경과 혹은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회색 두루마기를 걸치고 걸망 하나 메고 만행을 떠나는 스님들의 뒷모습은 자유로움과 평화로움을 찾는 이들의 대명사처럼 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사람들은 흔히들 외부적으로 비치는 모습에 속기 쉽다. 어떤 것이든 유니폼은 사람들에게 편견을 심어준다. 군복, 의사복, 경찰복, 승복, 수녀복 등 다양한 종류의 유니폼은 그것을 입은 사람이 어떤 사람일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그들을 만나게 한다. 하물며 그 가운데 불교 수행자의 옷과 삭발한 머리는 단연 독특하고 눈에 띈다.

그러나 거기에 속지 말라. 수행자의 옷 속에 수행자는 없다. 수행자의 가사와 장삼 혹은 삭발한 머리모양이 불교의 수행자를 대변해줄 수는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껍데기에 불과하다. 만약 당신이 스님을 그 어떤 편견을 가지고 ‘스님들은 이래야 해’라는 편견을 가지고 다가선다면 그 스님의 참모습을 볼 수 없다.

아주 쉬운 것이 외모이고, 옷이며, 겉모습이지만, 더 깊고 중요한 것은 보여지는 모습을 넘어서 있다.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느니 차라리 그윽한 눈빛 속에서, 혹은 깊은 말투 속에서, 또 때로는 침묵 속에서 그의 내밀한 속뜻을 살펴보는 게 낫다.

수행자는 그 모든 바깥에서 오는 치장과 허식과 꾸밈을 내던진 사람이다. 요즘의 사회를 보면 속은 텅 비었어도 밖은 끊임없이 꾸미고 치장하고 고치며 외부로 비추어 지는데 모든 것을 투자하는 어리석은 단면을 본다. 그렇게 바깥으로 바깥으로 치달아 나갈수록 내면의 뜰은 사유와 평온을 잃고 해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수행자는 수더분하고 신경 쓸 필요 없는 누더기 옷 조각을 기워 입는다. 그것이 수행자의 옷, 가사에 담긴 의미다.

그것은 옷 그 자체에 어떤 권위를 담기 위함이 아니다. 수행자의 위엄과 권위와 차별성을 선입견처럼 사람들에게 심어줌으로써 ‘너와는 다른 차별된 나’라는 아상을 높이는 수단으로 입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외부로 치닫는 모든 관심과 치장과 꾸밈으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한다. 모든 바깥으로 치닫는 산란한 마음을 내 안 깊은 곳으로 되돌려 귀의토록 하기 위한 하나의 상징이요 약속에 불과하다. 그것이 바로 수행자의 옷이 있는 이유다.

그러니 아무리 수행자의 옷을 입고 있더라도 마음이 바깥으로 치닫고 온갖 욕심과 번뇌에 휩쓸리며 자기 자신을 다스리지도 못한다면 그에게 수행자의 노란색 가사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수행자의 옷을 입었다고 다 수행자가 아니며, 세속의 옷을 입었다고 다 수행자가 아닌 것도 아니다. 핵심은 옷에 있는 것이 아니다. 보여지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참된 진실은 그 너머에 있다. 보여지지 않는 내밀한 속 뜻은 저마다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수행자의 옷을 입고 살면서도 지극히 세속적인 사람이 있는 반면에 세속적인 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수행자의 행을 행하는 이가 있다. 이 문중에서는 전자보다는 후자의 모습을 더욱 아름다운 수행자의 모습으로 기억한다.

부처님 당시에 왕사성에 머물던 데바닷다에게 한 재가신자가 비싼 고급 천으로 가사를 만들어 보시를 한 적이 있다. 고급스런 가사를 선물 받은 데바닷다는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은근히 돌아다니며 다른 스님들께 뽐내곤 했다. 이를 전해들은 부처님께서는 데바닷다가 전생 이야기를 하셨다.

전생에 데바닷다는 코끼리 사냥꾼이었는데 코끼리가 가사를 입은 수행자에게는 경계를 풀고 공손히 대하는 장면을 보고는 가사를 입고 코끼리를 유인하여 접근하는 코끼리를 사냥하곤 했다. 이를 본 코끼리왕이 데바닷다를 잡았지만 가사를 입고 있는 것을 보고는 살려준 적이 있는데 그 때 코끼리왕이 지금의 부처님이다.

데바닷다는 이처럼 전생에도 수행자의 옷을 입고 삿된 행동을 하였는바, 이렇게 수행자가 된 연유에도 자신에게 걸맞지 않는 가사를 입고도 부끄러워하기 보다는 오히려 뽐내고 자랑스레 여기는 것을 보고 부처님께서는 위의 게송을 설하신 것이다.

아무리 수행자의 노란색 가사를 입었다고 하더라도 마음에 번뇌가 많고 욕심이 많아 자신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그는 수행자의 옷을 입을 자격이 없다. 수행자의 본면목은 입은 옷이나 치장한 장식이나, 혹은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명예나 지위나 이름이나 심지어 법랍(法臘)과 무슨 학위 같은 것으로도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참된 수행자는 번뇌에서 벗어나 마음이 청정하고 계율을 잘 지켜 절제됨이 있으며 눈귀코혀몸뜻의 여섯 가지 감관을 잘 다스리는 데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이다.

재가자이든 출가 수행자이든 스스로 날마다 지켜보라. 나에게 과연 수행자의 옷이 어울리는가, 나는 과연 수행자의 옷을 입을 자격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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