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죽음에 이른다 - 법구경 6게송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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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과 마음공부

결국 죽음에 이른다 - 법구경 6게송

목탁 소리 2009. 7. 22.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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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결국 우리 모두는 죽음의 문턱에 이르게 된다’
는 사실을 모르고 사람들은 계속 다투고 있다.
이것을 바로 아는 이들은
더 이상 서로 다투지 않고 마음을 쉰다.



사람들 사는 세상에 다툼은 끊이지 않는다. 크고 작은 다툼으로 나라와 나라, 이웃과 이웃, 가족들 간에도 끊임없이 다툼이 일고 있다. 다투고 다투고 또 다투다가 결국 우리의 삶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결국은 한순간에 죽음의 문턱에 이르는 우리의 불안한 삶에서 다툼으로 허비하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가. 많은 사람들은 이 소중한 시간을 허망한 다툼으로 소모한다.

당장 목숨이 끊어지는 죽음을 앞두고 작은 일로 허망하게 다툴 수 있겠는가. 누구나 죽음의 순간이 오면 비본질적이고, 근원적이지 않은 모든 행은 멈추어지고 본질적이고 근원을 향하는 행으로 전환하게 된다. 과연 무엇이 근원적인 행인가. 살아있는 동안은 그것을 모른다. 아무리 부처님 말씀을 설해주더라도 그것은 머릿속으로만 이해될 뿐 본질적인 삶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죽음에 임박한 사람은 누구나 저절로 종교적이 되고, 본질적인 삶을 실천하고 드러내지 않을 수 없다. 내일 죽는다고 생각해 보라. 어떻게 사소한 일로 싸우거나, 욕심을 채우거나, 돈을 벌거나, 명예나 지위를 얻으려 애쓰거나, 내 것을 늘리려 하겠는가. 죽음을 앞둔 모든 사람은 누구나 성인의 길을 따른다. 그것은 누가 알려주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죽음에 이르러 더 이상 쌓고 벌고 늘려 나갈 일이 없음을 깨닫게 될 때 저절로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던 근원적인 지혜를 따르게 되는 것이다.

죽음에 이르렀을 때 행하는 일은 살아 있을 때 행하는 일의 정 반대다. 살아있을 때는 내 것을 늘려나가려고 애쓰지만 죽음에 이르면 그동안 늘리고 쌓아왔던 모든 것을 나누는 일에 에너지를 쏟는다. 살아있을 때는 욕심과 번뇌와 집착을 끊임없이 키우고 살지만 죽음에 이르면 그 모든 것을 놓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왜 우리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깨닫게 되는 것일까. 도대체 왜 죽음에 임박해서야 뒤늦게 그것을 깨달아야 한단 말인가. 지혜로운 이는 그것이 늦다는 것을 안다. 죽음에 이르러서는 이미 늦다. ‘결국 우리 모두는 죽음의 문턱에 이르게 된다’는 이 사실을 모르고 사람들의 다툼은 계속된다. 무의미하고 비본질적인 다툼과 어리석음과 욕망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바로 알고 바로 보는 이들은 더 이상 서로 다투지 않고 마음을 쉰다. 죽음에 이르러 마음을 쉬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에 모든 다툼을 종식시키고 평화 속으로 뛰어든다.

우리의 다툼은 얼마나 사소한 일인가.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 벌이고 있는 다툼과 증오와 미움과 원망은 얼마나 가벼운가. 우리의 다툼은 아주 작은 일부터 시작된다. 오히려 큰 다툼은 분명히 보이기 때문에 다스리기 어렵지 않지만, 작은 다툼, 작은 분열이 우리 생의 남은 시간을 허망하게 소비하도록 만든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허망한 다툼을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수행자들, 성직자들조차 사소한 다툼으로 무너진다.

부처님 당시에도 스님들 사이에 다툼이 종종 일어났다. 그런데 코삼비 마을에서는 아주 사소한 문제 하나 때문에 승가 전체의 화합이 깨지고 다툼이 일어나는 사건이 있었다.

코삼비 마을의 절에서 각각 계율과 법을 지도하는 율사(律師)와 강사(講師)스님이 화장실 사용에 대한 사소한 계율을 범한 일 때문에 크게 다투는 일이 벌어진 것. 강사스님이 화장실을 사용하고 물로 변기를 깨끗이 씻고 나와야 하는데 뒤처리가 조금 부족했던가 보다. 이 일 때문에 율사스님이 강사스님을 비난한 것이 계기가 되어 율사스님께 공부를 수학하는 스님들과 강사스님을 따르는 제자들 사이에 집단적인 다툼이 일어나고 승가의 화합이 깨어진 것이다.

이윽고 부처님께서 직접 코삼비로 와 양쪽의 비구들을 화합으로 이끌었지만 결국 부처님의 중재도 소용없게 되었고, 감정 싸움의 골은 더욱 깊어갔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깊은 숲으로 들어가셔서 홀로 석 달 동안 머무셨다. 이를 지켜본 재가 신자들은 승가의 화합이 깨어진 것에 실망하고 부처님을 뵐 수 없는 것에 실망하여 승단에 모든 보시와 공양을 금지했고,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국왕도 화합하지 않고 부처님의 말씀도 거역한 스님들을 성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결국 양쪽의 스님들은 부처님 앞에 엎드려 울며 참회하고 용서를 간청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이들을 용서하시며 게송을 읊으셨다.

“‘결국 우리 모두는 죽음의 문턱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사람들은 계속 다투고 있다. 이것을 바로 아는 이들은 더 이상 서로 다투지 않고 마음을 쉰다.”

살아가야 할 남은 생이 얼마나 된다고 정진하지 않고 다투며 삶을 소비하는가. 하기야 이처럼 스님들 또한 사소한 일로 다투고 화합을 깨뜨리는데 중생들의 삶이란 어떠하겠는가.

내 안의 모든 다툼을 종식시키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다툼이 종식될 때 마음에도 평화가 자리 잡기 쉬워진다. 수행이라는 것은 내 마음 안에서의 온갖 다툼을 쉬는 일일진데, 내 안에서의 다툼은커녕 타인과의 다툼조차 쉬지 못한다면 어찌 수행자라 할 수 있겠는가. 타인과의 인연이 맑아져야 내면 안에서도 텅 빈 하늘처럼 평화가 깃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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